Became the Son of the Final Boss RAW novel - chapter (33)
최종 보스의 아들이 되었다-33화(33/278)
33화.
나는 소심한 사람이었다. 겁쟁이였다. 누구나 무시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나는 달라졌다.
사람 자체가 변했으니까.
“첸, 불필요한 오해를 받고 싶지 않으면 말을 조심해야 되지 않을까?”
첸은 대답을 하지 못했다.
나는 한 발 첸에게 다가갔다. 옆에 있는 테드와 베레곤 공작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첸.”
내가 다시 한 번 첸을 부르자 그제야 그의 입이 열렸다.
“죄, 죄송합니다. 형님.”
첸의 입장에서는 엄청난 굴욕이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가장 크게 경쟁심을 느끼고 있는 테드 앞에서 내게 고개를 숙였으니까.
더구나 첸은 나를 황태자는커녕 사람으로도 생각하지 않았다.
지금 여기서 굳이 더 시비를 틀 이유는 없었다.
가볍게 첸의 어깨를 두드린 뒤 베레곤 공작을 향해 짧게 예의를 표하고 자리에서 벗어났다.
나는 이제 황태자였다.
황태자라는 직위에 대하여 충분히 자각했고 그동안 떨어진 권위가 고작 이런 식으로 회복되지 않으리라는 사실 역시 충분히 느꼈다.
하지만 그동안에 권위가 떨어졌고 앞으로도 계속 이런 상황을 방치하라는 법은 없었다.
하나하나 바꿔 나가야 했다.
단순한 신경전만이 아니라 실력으로서 한 명 한 명을 눌러야 내가 생존할 수 있었다.
“후우!”
나는 황태자궁 입구를 보면서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마치 오후의 일이 꿈만 같이 느껴졌다.
‘네가 처음은 아니다.’
아버지의 말이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솔직히 정령과 계약을 시도할 때마다 최상급 정령이 소환되었고, 하급 정령들의 목소리도 들었을 때 내가 특별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아버지 정도의 강자라면 나의 특별함을 당연히 알 것이라 짐작했고, 실제로도 아버지는 누구보다 내 재능에 대해서 자세히 알고 계셨다.
딱 거기까지였다.
아버지는 내 재능에 대해서 찰나의 순간만 놀라셨을 뿐 그 이후 어떤 감정도 가지지 않았다.
다른 황자나 황녀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아버지가 평가하는 건 눈에 보이지 않는 재능이 아니라 눈에 보이는 능력이다.’
내가 설정한 론 칼 레오드를 수도 없이 연구하고 실제로 몇 번 만나 본 끝에 내린 결론이었다.
아버지에게 아직 개화되지 않은 재능은 아무런 의미도 가지지 못했다.
“재능이라는 건 결국 꽃을 피워야 완성이 되는 것이니까. 개화시키지 못한 재능은…… 재능이 아니다.”
내 나름대로의 결론도 내렸다.
지금의 수준에 만족해서는 결코 이 황궁에서 살아남을 수 없고 다가오는 봄 평가 대회에서 내 자신을 증명할 수 없다.
나는 집무실로 향했다.
켄과 소리스가 잔뜩 궁금한 표정으로 나에게 다가왔지만 나는 잠시 혼자 있고 싶다며 그들을 물렸다.
아버지와의 대련에 대해서 복기할 생각이었고, 앞으로 있을 일에 대하여 줄거리를 간단하게 점검할 예정이었다.
집무실에 들어간 뒤 창문을 활짝 열었다.
차가운 바람이 정신을 맑게 해주었다.
대련을 복기하기 전에 노트를 펼쳤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줄거리들을 최대한 자세하게 적어 놓은 노트였다.
인간의 기억력은 한계가 있으니 미래의 일에 대하여 도움이 될 법한 것들을 빠지지 않고 적었다.
“아무래도…… 주인공 시점에서 적었으니 의외로 황궁에 대한 정보는 적어. 칼페온 제국 전체에 대해서도 그렇고.”
특히 지금 시점은 영웅 카렌을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초반에 해당하는 부분이었다.
초반에는 당연히 주인공의 성장에 초점이 맞춰져 있고 최종 보스인 아버지에 대해서는 간략한 언급이 전부였다.
칼페온 제국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굵직한 사건이라고는 2차 정복 전쟁의 조짐이 보인다, 정도가 전부였다.
“봄 평가 대회에 관한 기억은 아예 없고…… 하긴 지금 주인공은 서쪽 국경에서 악의…….”
나는 혼잣말을 멈췄다.
재빨리 기억을 더듬었다.
초반부 주인공 카렌의 성장을 급격하게 가속화하는 사건이 있었다.
그동안 너무 제국에 관한 기억에만 초점을 맞췄고 2차 정복 전쟁이라는 큰 전쟁이 있었기 때문에 잊었다.
“고르란의 부활.”
나는 고르란의 부활이라는 문장을 쓴 뒤 이 세계의 종족에 대하여 다시 한 번 정리했다.
“인간, 요정, 드워프, 용…… 그 이외의 종족들도 정말 많이 갖다 붙였어. 그리고 고르란은 타락한 요정이었고.”
서쪽 국경에는 광활한 숲이 하나 있는데 그 크기가 족히 네 개의 국가를 합친 것보다 컸다.
아마존보다 더 넓은 숲. 요정들의 고향이라 불리면서 신성시되는 곳이었다.
그곳에서 타락한 요정 고르란이 부활한다. 칼페온 제국 서쪽 국경과 맞닿아 있는 부근에서 부활한 고르란은 대륙의 서쪽을 피로 물들였다.
그리고 카렌은 정복 전쟁 준비에 여념이 없는 제국을 대신하여 고르란을 죽이면서 큰 명성을 얻게 되는 내용이 영웅 카렌의 초반부였다.
“너무 내 상황에만 맞춰서 생각하다보니까 정작 주인공의 성장과 훗날 제국과 아버지가 민심을 잃는 큰 역할을 하게 된 고르란의 부활에 대해서 생각하지 못했어.”
나는 한 가지가 더 떠올랐다.
“게일!”
지금 게일은 서쪽 국경의 마적단을 정리하러 파견을 나갔다.
기억을 더듬자 한 문구가 떠올랐다.
론 칼 레오드는 기사를 보내는 것으로 마적단 따위는 잊고 정복 전쟁 준비에 여념이 없었지만, 카렌은 달랐다. 그는 고르란의 칼날에 죽어가는 사람들을 외면하지 않았다.
“아!”
나는 마음이 급해졌다.
단순히 나는 ‘기사’라고 썼을 뿐이었지만 현실이 되니 의미 자체가 달라졌다.
그 기사가 하필이면 게일일 줄이야!
“켄!”
나는 급히 켄을 불렀다.
* * *
켄은 소리스와 함께 들어왔다.
가뜩이나 아버지와 독대한 이유가 궁금했던 찰나였는데, 내가 혼자 있다가 부르니 반가운 모양이었다.
물론 나는 게일의 일이 더 급했다.
“혹시 게일에게 소식 온 것 없나?”
내 질문에 잠시 생각하던 켄이 대답했다.
“오전에 소식이 들어왔습니다. 편지 형태였는데 전해드리려는 찰나였습니다.”
“곧바로 가져다 줘.”
내 말에 켄이 급히 나갔다.
소리스는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게일 기사님에게 무슨 일이 있습니까?”
게일을 한 번도 만나 본 적 없는 소리스였지만 소문으로는 꽤 많이 들어본 듯 말을 이었다.
“마적단 처리는 그분에게 어려운 일은 아닐 건데요.”
나도 그 말에는 동의했다.
“일반 마적단이라면 그렇겠지.”
“네?”
소리스가 되물어 본 순간, 켄이 들어왔다.
“전하, 켄이옵니다.”
“들어오도록!”
내 말에 켄이 들어와 편지를 넘겼다.
나는 황급히 편지를 펼쳤다.
딱히 중요한 내용은 없었다. 국경에 무사히 도착했고 마적단을 소탕한 뒤 돌아간다는 말과 함께 수잔 이야기가 있었다.
일단 차분하게 마음을 가다듬고 나는 켄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게일이 내려가면서 수잔을 올려 보냈다. 시기로 보면 금방 도착할 것 같군.”
켄의 눈동자가 찢어지도록 커졌다.
“전하!”
“궁에 들어와서 살 수 있도록 할 것이니 적당한 자리를 마련하도록.”
“감사합니다!”
소리스도 무척 놀란 모양이었다. 하긴, 켄은 그림자 걸음 길드원으로 활동할 당시 나름대로 수잔에 대한 정보를 찾고 있었을 것이다.
켄의 입장에서 소리스는 길드 내에서 영향력도 있고 서로 신뢰하는 관계이니 수잔의 소재에 대하여 소리스의 도움을 받으려 했던 건 당연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림자 걸음 길드 정보력으로도 찾지 못한 사람의 소재를 내가 알고 있었으니 놀랄 수밖에 없었다.
나는 켄에게 당부했다.
“황태자궁이 결코 안전한 곳이 아니라는 사실은 네가 가장 잘 알고 있겠지. 동생을 다시 만나면 잘 지켜주도록.”
“전하…….”
그 정도로 수잔에 대한 건은 넘어갔다.
“얼마 전 서쪽 숲에 대한 소문을 들었다.”
요정들의 고향이라 불리는 서쪽 숲 이야기가 뜬금없이 나오자 켄과 소리스의 눈동자에 의문이 어렸다.
나는 천천히 이야기를 시작했다.
“어둠의 기운이 서쪽 숲 경계에서 살아났다는 소문이었어.”
소리스는 입을 벌렸고, 켄은 고개를 저었다.
“전하, 뜬소문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서쪽 숲은 대륙의 요정들 중 절반 이상이 사는 숲입니다. 그곳에 어둠의 기운이 살아난다는 건…….”
나도 고개를 끄덕이며 켄의 말에 어느 정도 동조해주었다.
“물론 믿기 힘든 소문이지. 하지만 아무리 요정들이 많아도 어둠의 기운은 어디에서나 살아날 수 있어. 소문을 뒷받침하는 증거도 있지. 오크들이 날뛰고 있으니까.”
켄이 말하려는 찰나 내가 덧붙였다.
“더불어 그곳의 마적단 역시 평범하지 않다는 소문이었어.”
켄은 정보의 출처는 묻지 않았다.
수잔의 정보에 대한 것도 얼버무리고 넘어갔는데 이번 소문에 대한 것도 내 정보망이 따로 있나, 라는 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나는 그런 정보망이 없다는 사실을 켄에게 솔직하게 말했다.
“수잔에 대한 건 내가 자네를 점 찍은 뒤 자네에 관한 것을 알아보면서 정말 우연히 운 좋게 알게 된 사실이었다. 하지만 이번 소문은…… 솔직하게 말하면 어둠의 숲에서 엿듣게 된 내용이야.”
켄과 소리스는 방금 전보다 훨씬 더 놀랐다.
나는 정보 출처에 대하여 적당히 지어냈다.
“오크 술사가 내게 저주를 건 뒤 내가 곧바로 의식을 잃은 건 아니었어. 몸에 마비는 왔지만 의식은 뚜렷했지. 그때 오크들이 떠드는 것을 들었다. 서쪽 숲에 왕이 탄생했다고.”
어느새 켄은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듣는 어린 아이처럼 경청하기 시작했다.
내 이야기는 살이 붙었다.
“오크의 왕이 탄생했다는 건 어둠의 기운이 강하다는 증거지. 오크는 어둠의 종족이니까.”
나는 세계의 종족 전체를 크게 두 분류로 나누었다.
빛의 종족과 어둠의 종족.
빛의 종족의 대표는 으레 그렇듯 요정으로 설정했고 어둠의 종족은 몬스터들을 이르는 말이었다.
오크는 그런 몬스터들 중 대표 격이었다.
“전하는 게일 님이 토벌하러 간 마적단도 어둠의 기운과 관련 있을 것이라 생각하시는 모양이군요?”
나는 곧바로 서랍에서 지도를 꺼냈다.
대륙 전체가 그려져 있는 지도였고, 서쪽 숲 경계를 가리켰다.
“게일이 파견 간 곳이다. 어둠의 기운이 서쪽 숲 경계에서 살아났다면 가장 확률이 높은 곳도 바로 게일이 파견 간 곳이야.”
켄도 이제야 심각한 눈길로 지도를 바라보았다.
소리스도 마찬가지였다.
켄이 입을 열었다.
“요정들은 숲 중앙에 모여 산다고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외곽 쪽에 어둠의 기운이 살아날 확률이 높고…… 게일 님이 가신 곳은 서쪽 숲에서도 몬스터가 많이 나오기로 유명한 곳이죠.”
소리스가 켄의 설명에 동조했다.
“아무래도 요정과는 멀고 어둠의 숲과는 가까운 곳이니…….”
어둠의 숲은 수도 외곽 서쪽에 있다. 세로로 기다란 어둠의 숲은 중앙까지 뻗어 있는데 서쪽 숲의 북쪽과 가까웠다.
그리고 서쪽 숲 뒤로 사막이 펼쳐져 있고 사막을 건너면 서대륙이었다.
서쪽은 제국의 영향력이 가장 작은 곳이었다. 아무래도 어둠의 숲에 막혀 있고 또 서쪽 숲도 있었다. 거기에 사막을 건너야 인간의 왕국이 나오니 지리적으로 진출하기가 매우 어려웠다.
“마적단이라면 인간들인데 관련이 있을까요?”
소리스가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다.
“당장 오크만 하더라도 술사들은 인간을 현혹하는 주술을 사용한다. 오크들의 왕이라면…… 휘하 오크 술사들도 만만치 않을 것이고 마적단이 충분히 현혹될 수 있지.”
내 말에 켄이 눈을 가늘게 떴다.
“하지만…… 당장 여기서 할 수 있는 일은 없습니다. 냉정하게 지금은 그쪽을 신경 쓸 상황이 아닙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게일을 믿지만 경고는 해 주는 게 좋아. 그리고…… 봄 평가 대회가 끝나면 서쪽 숲으로 간다.”
켄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내가 단호하게 말했다.
“게일은 마적단을 토벌하겠지만…… 어둠의 기운은 직접 상대하기 힘들 것이다. 황가가 나서야 돼.”
켄은 그제야 내 뜻을 알아챘다.
“공을…… 황태자 직위를 누구도 흔들 수 없을 정도로 큰 공을 세우실 생각이시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