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the Son of the Final Boss RAW novel - chapter (39)
최종 보스의 아들이 되었다-39화(39/278)
39화.
나는 오전에 바람의 호흡법 수련을 마친 뒤 집무실에서 노트를 펼쳐 놓았다.
현 시점을 기준으로 미래에 일어날 일들을 한번 훑어본 뒤 다른 노트를 꺼냈다.
현대에서 만드는 노트와는 필기감도 떨어지고 불편했지만 메모에는 충분했다.
만년필을 들고 새로운 노트 위에 무딘 검 데이비드라는 이름을 적어 넣었다.
“무딘 검이라…….”
무딘 검은 내 기억 속에 강렬하게 남아 있는 인물이었다.
그동안 적은 메모 중에도 무딘 검 데이비드는 심심치 않게 등장했다.
그는 켄과 함께 주인공 카렌을 보좌하는 동료 중 한 명이니까.
조연 중에서도 상당히 비중이 높은 인물로서 주인공 카렌이 가진 정의로움에 감복하여 함께하는 인물이었다.
“용병 출신인데 사람 한 명 죽이지 않았지.”
데이비드가 주인공 카렌의 정의로움에 반하는 이유야 간단했다. 데이비드는 올곧은 사람이고 자비로움도 넘치는 성격이었다.
고통받는 제국민들을 위하여 카렌의 대의에 따라 전쟁까지도 감수할 수 있는 대범함도 지니고 있었다.
여러모로 데이비드를 수하로 두는 건 굉장한 이득이니 어떤 수를 써서라도 그와 접촉하여 켄과 같이 내 곁으로 데리고 오는 게 중요했다.
줄거리를 쓰면서 데이비드에 관한 내용은 따로 자세하게 써 놓지 않았다.
훗날을 위하여 주인공 카렌의 동료들의 특성을 잊지 않으려 적어 놓은 정도였다.
이제 그가 수도에 있고 접촉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으니 데이비드에 관한 정보를 머리에서 쥐어 짜낼 필요가 있었다.
“켄처럼 결정적인 한 방이 없는데.”
켄은 수잔이라는 동생 덕분에 비교적 쉽게 수하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켄에게 수잔은 인생의 과제이자 살아가는 이유나 다름없었으니까.
켄에게 큰 도움을 주었고 또 진정한 충성을 이끌어내기 위하여 그에게 내 진심과 여러 능력들을 보여주고 있는 중이었다.
충성이라는 감정 자체에 대하여 나는 여전히 잘 모르고 신뢰 관계라는 것 역시 짧은 시간에 쌓이는 건 아니니까.
물론 나는 켄을 신뢰하지만 켄이 나를 완전히 신뢰하는 건 다른 문제였다.
‘어쨌든 데이비드를 끌어들이는 게 중요해. 분명히 기억나는 건 데이비드가 주인공 카렌과 합류하는 시기가 지금보다 훨씬 훗날의 일이라는 거야.’
나는 고민에 잠겼다.
어째서 데이비드는 이 시점에 제국 수도에 왔을까?
봄 평가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서라고 쉽게 생각할 수 있었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데이비드는 제국을 증오하는 사람이니까.
나는 몸을 벌떡 일으켰다.
“맞아! 애트란!”
기억 깊숙이 숨겨져 있던 게 불쑥 수면 위로 튀어나왔다.
데이비드가 용병임에도 살인을 하지 않았던 이유는 그의 성격도 성격이었지만, 이미 자신의 첫 살인 대상을 정했기 때문이었다.
바로 애트란 가문의 가주 베레곤 드 애트란 공작!
칼페온 제국은 피 웅덩이로 쌓아 올린 제국이다.
셀 수 없는 전쟁 가운데서 가장 많은 영토를 확보한 전쟁을 1차 정복 전쟁이라 불렀다.
데이비드는 멸문한 왕가의 왕자 출신이었는데 국가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할 정도로 소국이었다.
거의 한 지방의 영주 정도의 세력에 불과한 정도였지만 어쨌든 데이비드 가문은 왕가를 선언했고 왕국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왕국은 1차 정복 전쟁 당시 베레곤이 이끄는 제국 정복 1군단에 의하여 멸망했다.
데이비드는 간신히 살아남아 애트란 가문과 제국, 그리고 내 아버지에 대한 복수심을 불태워 자신의 첫 살인 대상을 베레곤으로 정하면서 용병으로 대륙을 떠돌았다.
“잠깐…… 제국에 대한 원한과 아버지에 대한 원한이 그렇게 깊으면 내 수하로 끌어들이기가 너무 어려운데?”
켄의 경우에는 제국을 좋아하는 것도 아니었지만 데이비드나 혹은 카렌처럼 가족이 직접적으로 죽임을 당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데이비드는 직접적인 피해자라 할 수 있었다.
“이건…… 일단 만나봐야겠군.”
데이비드가 봄 평가 대회를 위해서 수도로 올라온 건 아니라는 짐작은 확신에 가까웠다.
아마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고 일단 직접 만나보고 싶었다.
내가 설정한 것과 현실의 데이비드는 분명한 차이점이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내가 만난 모든 사람은 소설 속 등장인물과 달리 살아 있는 세계 속 입체적인 인물들이었으니까.
“밖에 있나?”
하인 한 명이 노크를 한 뒤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부르셨습니까, 전하.”
“가서 소리스와 켄을 불러오도록.”
“네.”
하인이 고개를 숙인 뒤 나갔다.
이제 하인들을 대하는 것도 제법 익숙해졌다.
현대에서 살던 내가 계급 사회에 익숙해지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았는데, 시간이 지나니 자연스러워졌다.
곧 켄과 소리스가 집무실에 들어왔다.
“전하.”
나는 소리스에게 시선을 돌렸다.
“준비는 끝났나?”
“네. 전하를 경호할 인원은 모두 준비시켜 두었습니다.”
켄은 내 의지가 확고하다고 느꼈는지 더 이상 반대하지 않고 말했다.
“데이비드의 소재부터 확인하겠습니다. 수도에 들어온 건 확실한데 정확한 위치는 알아봐야 합니다.”
“소재까지 확인되면 그때 출발하지.”
켄과 소리스가 준비를 위하여 집무실을 나갔고 나 역시 몸을 일으켰다.
‘암살의 가능성을 배제할 순 없으니 나도 마음의 준비는 해야지.’
* * *
“궁을 나갔다고?”
“네. 조금 전에 남문을 통해 나가셨다고 합니다.”
론은 아무런 표정을 짓지도 않았지만 머릿속은 복잡했다.
“이 시점에 다시 궁을 나간다…… 수사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지?”
론의 질문을 받은 남자는 기계적으로 대답했다.
“하인들과 시녀들 그리고 부집사장이었던 이들과 애트란 가문을 엮는 데 주력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테드의 기사들은 테드에게 보내주었나?”
“네.”
화려하고 넓은 집무실을 촛불은 물론이거니와 마법석까지 빛나며 따뜻하게 만들고 있었지만 론과 남자의 주변에는 한기가 흘렀다.
론의 차가운 느낌에 못지않게 딱딱한 목소리의 남자 역시 표정 하나 없었기 때문이다.
론은 잠시 서류에서 시선을 뗀 뒤 의자에 등을 기댔다.
“서부 영주들에게 보고는 들어왔나?”
“네. 아무런 징후도 느끼지 못했답니다.”
남자의 말에 론이 눈을 감았다.
‘오크의 왕이라…….’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었지만 론은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아룬이 어둠의 숲 초입에서 기적적으로 살아왔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오크 한 마리 감당하지 못하던 아들이 갑작스레 사람이 바뀐 것처럼 달라졌다.
론은 일부 귀족들이 아룬은 그동안 경쟁자들을 방심시키기 위하여 멍청이 노릇을 한 것이라는 말을 전혀 믿지 않았다.
론은 자신이 사람의 본질을 꿰뚫어 볼 수 있다고 믿었다.
사람의 본질, 기질이라는 건 바뀌지 않는 법이고 아룬의 기질은 나약함이었다.
이리엘과 자신의 피를 이은 아들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재능도 없었다.
그런데 처음으로 자신의 안목이 빗나갔다.
최상급 정령을 소환한 건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내재된 재능이라는 건 언제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르니까.
하지만 테드의 두 기사들을 감금하고, 그들을 이용하여 테드에게 모욕을 준 건 아룬의 기질로는 생각하기 힘든 일이었다.
어디 그뿐이랴.
대전에서 자신에게 또박또박 수사권을 요구하던 일과 습격자들을 물리친 것을 넘어 아룬이 직접 죽인 인원이 상당하다는 것도 론이 생각했던 아룬과는 완전히 달랐다.
‘내가 틀린 것인가.’
론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앞에 서 있던 남자의 눈동자에 이채가 스쳤다.
황제가 미소 비슷한 것을 짓는 일을 처음 보았으니까.
“폐하.”
“서부 영주들에게 당장 게일을 수배하라고 해.”
“네. 즉시 조치하겠습니다.”
아룬을 완전히 신뢰하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자신의 안목을 처음으로 벗어났기 때문에 아룬의 말을 한 번쯤은 귀담아 듣기로 결정했다.
아룬이 여지껏 황태자 자리에 있었던 이유는 이리엘 덕분이었다.
론은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인정했다.
‘그녀에 대한 연민…… 그리움이 그 아이에 대한 너그러움으로 변했지. 하지만 이제 그 아이도 무대 위에 올라왔다. 이 제국은 앞으로 내가 수십 년을 넘게 운영하겠지만, 황태자라는 자리 자체가 주는 권력과 환상은 모든 이를 마비시키기에 충분하다.’
아마 치열한 권력 투쟁이 벌어질 것이다.
론은 그것을 막을 생각이 없었다.
‘귀족 나부랭이들이 암투로 인해 힘을 소진하는 건 나쁘지 않은 일이니까.’
론이 몸을 일으켰다.
“만약 게일에게 무슨 일이 있다면 서부의 모든 역량을 동원해서 구출하도록.”
“네.”
론이 집무실을 나가기 위하여 걸음을 옮기는 남자에게 덧붙였다.
“아룬에게도 사람을 붙여.”
“알겠습니다.”
남자는 론에게 명령에 대한 이유도, 론의 생각도 묻지 않았다.
그저 철저하게 론의 명령을 처리할 뿐이었다.
“얼마나 내 예상을 빗나가는지 보는 것도 즐거운 일이겠지.”
* * *
수도 경비대장이 직접 정문으로 찾아왔다.
“전하!”
내가 또 궁 밖으로 나가자 수도 경비대장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무슨 일인가?”
내 질문에 수도 경비대장이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궁 밖에 행차하신다 들었습니다.”
“그게 그대와 관련이 있는가?”
“아닙니다만…….”
나는 웃으며 수도 경비대장을 골려주었다.
“그대가 일을 잘하고 있다면 수도는 어느 도시보다 안전한 곳이겠지. 지난번과 같은 일은 없을 거라 생각하네. 아, 물론 자네가 일을 잘한다는 가정 아래에 말이야.”
수도 경비대장은 굳은 표정으로 몸을 떨었다.
나는 켄과 소리스를 향해 말했다.
“그만 가지. 길이 바쁘다고 들었다.”
“네. 전하.”
데이비드의 소재는 생각보다 빨리 파악할 수 있었다.
나는 어떤 대답도 하지 못하고 그저 배웅하는 수도 경비대장을 뒤로하고 켄에게 물었다.
“빈민가에 있다고?”
“그곳에서 아이들을 돌보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일부 도둑 길드와는 벌써 마찰을 일으켰더군요.”
나는 소리스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림자 걸음 길드는?”
“그림자 걸음 길드가 도둑 길드이긴 하지만 빈민가 아이들을 길드원으로 들일 정도의 길드는 아닙니다. 빈민가 아이들을 길드원으로 데리고 있는 건 대부분 소규모 길드이거나 혹은…….”
내가 차마 소리스가 하지 못한 말을 이어주었다.
“선을 넘은 놈들이라는 거겠지. 도둑 길드 자체가 이미 제국에서 불법으로 규정한 길드다. 뭐 어쨌든…… 데이비드가 아이들을 돌보고 있다니.”
절로 웃음이 새어나왔다.
참으로 데이비드다운 일을 하고 있었다.
‘그가 수도로 올라온 건 빈민가에 봉사하기 위해서가 아니야. 다른 목적이 있어서 올라왔지만 차마 빈민가 아이들을 외면할 수 없었겠지.’
물론 이 생각은 입밖으로 내지 않았다.
켄도 내가 데이비드라는 이름을 소문으로만 들었을 거라 생각하니까.
“그럼 남쪽 빈민가로 방향을 잡아야겠군.”
“네.”
켄이 옆으로 다가오며 말을 이었다.
“아마도 다른 이들은 지난 습격 사건 조사라고 생각할 겁니다. 공교롭게도 데이비드가 있는 곳이 그 근처이니까요.”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충분히 오해할 수 있겠군. 그렇다면 지난번에 가지 못한 대장간에도 한번 들르는 게 좋겠어. 이왕 나온 김에 말이야.”
“네.”
나는 이번에도 마차도 말도 없이 직접 걸었다.
‘나름 불편하군. 승마라도 먼저 익혀야겠어.’
궁으로 돌아오면 승마를 배우기로 마음먹고, 승마 위에서의 정령술은 어떤 모습일지 떠올려 보았다.
데이비드를 만나러 가는 길은 꽤 기대감이 컸다.
과연 그는 어떤 모습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