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the Son of the Final Boss RAW novel - chapter (4)
최종 보스의 아들이 되었다-4화(4/278)
4화.
첫 정령 소환의 기쁨을 누릴 새도 없이 나는 바로 기절하고 말았다. 무거운 눈꺼풀을 밀어 올리자 게일의 얼굴이 가장 먼저 보였다.
“일어나셨군요.”
게일의 목소리는 평소처럼 차분했다.
내가 처음으로 소환한 정령이 무려 최상급이었음에도 별로 놀라지 않은 모양이었다.
“내가 기절한 모양이네.”
“네. 기절한 뒤 푹 주무셨습니다.”
분명 정령을 소환할 때는 대낮이었다. 기절한 뒤 아주 푹 잔 모양이다.
지금까지 자리를 지킨 게일을 안심시키기 위해서 부드럽게 말했다.
“난 괜찮아. 내가 기절한 건 그냥…….”
게일이 무거운 눈빛으로 내 말을 잘랐다.
“무리하셨습니다.”
게일은 한번 깊게 숨을 들이쉬더니 속사포처럼 말을 이었다.
“목숨이 위험할 정도로 무리하셨습니다. 이그니에 가문은 대대로 정령과 함께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겪어 보지 못했습니다. 아니, 들을 수조차 없었습니다. 대륙에서 가장 강했던 정령술사조차 처음으로 소환한 정령은 최하급이었으니까요. 반드시 푹 쉬면서 몸을 제대로 회복하셔야 합니다. 또다시 그렇게 무리하시면 안 됩니다.”
모처럼 게일이 길게 말하자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다소 장난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친화력만 확인하려는데 대뜸 최상급 정령이 나타날 줄은 나도 몰랐어. 어쨌든 그대의 잔소리는 철저하게 가슴에 새겨서 푹 쉴 예정이니 이만 가서 쉬어. 눈에 피곤함이 가득해.”
게일이 몸을 일으켰다. 여전히 마음이 놓이지 않는 듯 게일은 나를 보며 다시 한 번 당부했다.
“지금 전하는 최상급 정령과의 계약을 감당하실 수 없는 몸입니다. 정령과의 계약은 제가 있을 때 시도하십시오.”
게일이 침실을 나가기 전 내가 한 가지 더 물었다.
“어제 갑작스럽게 최상급 정령이 소환되어 마나 파동이 크게 퍼졌습니다. 제가 재빨리 막았지만…… 아마 폐하께서는 아실 겁니다.”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론 칼 레오드라면 충분히 황태자궁에서 최상급 정령이 소환되었다는 사실을 마나 파동만으로도 알아챌 수 있는 능력자였다.
‘당분간 조심해야 되겠어.’
다행히 게일이 빠르게 막았으니 큰 소란은 없을 것 같았다. 소란이 일어났다면 이미 게일이 내게 말했을 테고.
게일이 나가자, 나는 게일이 언급한 바람의 호흡법을 떠올렸다.
-이그니에 가문의 독문 호흡법.
소설에서 바람의 호흡법에 대해 자세히 기술하지는 않았다. 이그니에 가문의 독문 호흡법, 어머니인 이리엘을 상급 정령사로 만들어준 호흡법 정도로만 짧게 기술했지.
인간의 기억력이니 한계가 있지만, 난 영웅 카렌 설정의 대부분을 기억하고 있다.
한때 설정집을 자세히 써 놓기도 했는데. 아쉬웠지만 미련은 버리기로 결심했다.
“상태창!”
-아룬 칼 레오드
반투명한 상태창 가장 윗줄에 이제는 내 이름이 된 아룬 칼 레오드라는 멋들어진 글자가 적혀 있었다.
-칼페온 제국 황태자
-최하급 정령술사
정령과 계약조차 하지 않았는데 바람의 최상급 정령을 불러낸 것만으로도 상태창은 나를 ‘정령술사’로 인정했다.
무척이나 기뻐 소리를 지를 뻔했지만 한밤중임을 자각하고 조용하게 상태창을 꼼꼼하게 살폈다.
직업에는 정령술사, 스킬에는 바람의 호흡법, 재능에는 바람의 동반자가 추가되었다.
-S 바람의 동반자(Lv1)
-S 바람의 호흡법(Lv1)
재능은 일종의 패시브 스킬이라 할 수 있다. 바람의 동반자라는 재능은 아마도 바람의 정령 친화력과 관련 있는 것 같고.
내게 이런 재능도 다 있었군. 아마도 나와 기존의 아룬 칼 레오드가 합쳐지면서 어마어마한 재능을 가지게 된 건 아닐까?
아니면 나를 이곳으로 보낸 어떤 존재가 준 선물일 수도 있다.
‘차근차근 강해지자.’
상태창을 종료하고 책상으로 향했다. 게일이 책상 위에 고이 모셔둔 어머니의 정령술서를 펼쳤다.
첫 번째 장은 게일이 말했던 바람의 호흡법.
-바람의 호흡법은 내 가문 독문 호흡법이야. 대륙에는 정말 많은 마나 호흡법이 존재하지만 엄마는 오직 이 호흡법 하나로 상급 정령 마스터까지 오를 수 있었어. 신이 낳은 천재라 부르는 론조차도 바람의 호흡법만큼은 인정한단다.
괜히 S급 스킬이겠는가.
-바람의 정령을 다루는 데 특화된 호흡법이야. 네 외할아버지는 바람의 호흡법으로 마스터의 한계를 넘어서면 바람의 정령만이 아니라 4대 정령왕을 소환할 수 있다고 큰소리도 치셨지. 어릴 때는 아빠의 허풍이라 생각했지만 상급 정령사에 오른 뒤에야 바람의 호흡법이 가진 진정한 위력을 깨달았어.
-그 어떤 마나 호흡법보다 안정적이고 마나를 쌓는 속도가 뛰어나. 무엇보다 4대 정령과의 친화력을 올려주는 데 효과가 있어.
나는 눈을 부릅떴다. 어머니는 바람의 호흡법을 본격적으로 기술하기 이전에 몇 가지 설명을 곁들여 놓았는데, 마지막에 가장 큰 충격을 받았다.
내가 설정한 정령술사의 능력은 기껏해야 두 종류의 정령을 부리는 건데. 상급 정령 마스터가 되어도 4대 정령을 모두 다룰 순 없었다.
놀란 마음을 가다듬고 본격적으로 바람의 호흡법을 읽었다.
가장 먼저 어머니는 ‘마나’의 존재를 느끼는 데 집중하라고 기술했다.
처음부터 막혔다. 소설이나 게임에서만 보던 개념이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일단.’
-편안한 자세로 앉아. 처음 마나를 느낄 때는 바람 자체를 느끼는 게 큰 도움이 될 거야. 바람이 부는 곳이면 어디든지 정령이 곁에 있단다. 바람에 몸을 맡기면 그들의 실체가 조금씩 느껴지면서 호흡 속에 마나가 스며들 거야.
바람의 호흡법 초반을 몇 번이나 다시 읽으면서 머릿속에 새겼다.
몸을 일으켜 창문을 열자 달빛에 걸린 구름과 함께 산들 바람이 뺨을 스쳤다.
햇빛 한 점 들지 않는 반지하 원룸에 살다가 족히 스무 평은 넘어 보이는 방에 살게 되었다.
새삼 황태자가 되었다는 게 실감났다. 더구나 이곳은 잠만 자는 침실이다. 황태자궁에 침실만 있겠는가. 집무실도 따로 있고, 과장해서 수영도 할 수 있을 법한 욕실도 있다. 나는 아차, 하는 심정으로 창문 근처에 자리를 잡았다.
집중하기 위하여 눈을 감았다. 바람과 함께 호흡을 안정시켰다. 명상과 크게 다르지 않아 어렵지는 않았다. 바람의 호흡법 요체는 바람 속에 스며 있는 마나를 느끼는 것이다.
‘나는 마나가 마치 공기와 같다고 설정했다. 바람의 호흡법은 그중 조금 더 강하게 움직이는 공기, 즉 바람 속에 있는 마나와 정령의 존재를 느끼는 것부터 시작한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내심 스스로의 집중력 부재를 우려했던 것과 다르게 나는 호흡 자체에 깊게 빠져 들었다.
사아아아, 머리카락을 휘날리는 바람과 함께 단전이 꿈틀거렸다.
* * *
나는 아침까지 바람의 호흡법에 빠져 있었다.
게일이 식사 시간이라며 문을 두드린 뒤에야 호흡법에서 겨우 빠져 나왔다.
“전하.”
“그래, 좋은 아침이야.”
“식사 준비하겠습니다.”
게일은 아직 달라진 내 상태를 눈치채지 못한 듯 깊게 허리를 숙이며 다시 침실을 나갔다.
“론 칼 레오드에게 인정받으려면 일단 방구석에 틀어박혀 있는 습관부터 고쳐야 될 것 같은데…… 언젠가는 나가야겠지만 아직은 아니야. 나와는 다르게 다른 황자나 황녀들은 뛰어난 인재니까.”
모두 론 칼 레오드의 자식답게 특정 분야에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내 바로 아래 동생, 즉 이황자 테드 칼 레오드의 재능은 눈부실 정도였다.
‘그럼에도 주인공인 카렌에게 단칼에 목숨을 잃었지만.’
그건 내가 집필한 소설의 진행이고 앞으로 내 행보에 따라 많은 것들이 달라질 예정이다.
주인공 카렌이 제국에 본격적으로 대항하려면 아직 많은 시간이 남았다.
‘테드 칼 레오드는 재능만 있는 게 아니다. 욕심도 엄청 많고.’
당장 내가 의식할 건 주인공 카렌이 아니라 바로 형제들이다. 이황자만이 아니라 욕심은 다른 황자, 황녀들도 아주 많으니까.
거대한 제국의 주인이 될 수 있는 기회인데 누가 그걸 놓치려 하겠는가?
“최대한 조용히 지내자. 능력을 보여야 할 때는 나를 함부로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만들고.”
나는 당분간 기존의 무능력하고 연약했던 아룬 칼 레오드 흉내를 내기로 결정했다.
‘게일도 눈치가 빠른 사람이라 이미 내 계획을 어느 정도 아는 듯싶고.’
애초에 황태자궁은 다른 사람들에게 큰 관심이 없는 곳이다. 내 무능력은 오크 술사 저주를 받은 사건이 아니더라도 이미 여러 번 증명되었으니까.
처음에는 내가 장남이라는 이유로 견제했던 다른 황자나 황녀들 혹은 그 배후 세력들도 이제는 거의 신경을 쓰지 않는 편이다. 오히려 테드 칼 레오드를 견제하는 데 바쁘지.
“여러모로 좋은 일이야.”
게일이 오기 전에 상태창을 확인했다.
-아룬 칼 레오드(Lv1)
이름 옆에 레벨이 생겼다. 나는 내게 캐릭터 레벨이 생겼다는 사실에 잠시 흥분했다.
기존에 아룬 칼 레오드는 레벨을 표시할 수 없을 정도로 약했다는 뜻도 되지만, 바람의 호흡법 수련이 헛되지 않았다는 뜻이니까.
상태창이 내 짐작을 사실로 증명했다.
-S 바람의 호흡법(Lv1)
밤새 단전이 꿈틀거렸고 좁쌀만 한 마나가 단단하게 자리를 잡았다. 스킬 목록이 신설되고 바람의 호흡법이 추가되었다. 정령 계약에 성공하면 그에 따른 스킬 역시 생길 것이다.
‘진짜 정령사가 되었다.’
다른 이들에 비하면 지나치게 늦은 시작이지만 상관없었다. 칼페온 제국의 성년은 18살, 내년 생일이 되면 나 역시 성년이 된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30대 중반이었어. 1살로 돌아오지 않은 것은 아쉽지만 십 년 넘게 젊어진 게 어디야. 이 나이면 무엇이든 할 수 있지.’
굳게 마음을 먹은 순간, 게일의 목소리가 들렸다.
“전하.”
“아, 들어와. 게일.”
오늘 아침도 천천히 그리고 아주 꼭꼭 씹어 먹었다. 물론 기존의 양보다 조금 더 많이 먹는 것도 잊지 않았고 식단 역시 육류를 좀 더 풍부하게 추가했다.
내가 한참이나 걸려 아침을 모두 먹자, 게일이 시중을 들던 시녀들에게 축객령을 내렸다.
“그만 정리하도록.”
시녀들이 빈 그릇을 모두 들고 나가자 게일이 나를 보며 입을 열었다.
“전하, 어제 잠을 안 주무신 겁니까?”
“그러게. 바람의 호흡법을 익히다보니까 어느새 아침이더라고.”
“호흡법은 급하게 마음을 먹는다고 익혀지는 게 아닙니다. 수련 시간을 정하고 천천히 하시지요. 먼저 육체를 가다듬고…….”
말을 하던 게일이 이내 흠칫 몸을 떨었다.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게일이 믿을 수 없다는 듯 말했다.
“전하 혹시 하루 만에 마나홀을 만드신 겁니까?”
“마나홀?”
아참, 단전을 마나홀이라 부르지.
나는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좁쌀만큼? 그보다 더 작은 것 같은데? 어쨌든 밤새 마나홀이 생기고 마나가 쌓인 건 사실이야. 어머니가 친절하게 써 주신 덕분에 어렵지 않았어.”
“아무리 바람의 호흡법이라고 하지만…….”
무뚝뚝하고 감정을 좀처럼 드러내지 않는 게일이 연거푸 놀라워했다.
나는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나도 어머니의 아들이잖아. 상급 정령 마스터의 아들이면 이 정도는 해 줘야지.”
나의 허풍에 게일이 후, 숨을 몰아쉬었다.
“놀라운 일이긴 하지만 너무 들뜨시는 건 수련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게일의 충고에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
“오전에는 육체 수련도 병행하시죠. 스케줄을 미리 짜놨습니다.”
게일의 말을 따라서 나쁠 건 하나도 없었다.
-게일
-칼페온 제국 기사
-충신
내가 기존에 보았던 게일의 상태창과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마지막에 몇 줄이 추가되어 있었다.
-레벨이 낮아 상세한 정보를 열람할 수 없습니다.
나는 실망하지 않았다.
저 정보는 한 가지를 더 의미하고 있었다.
‘그럼 나보다 레벨이 낮거나 혹은 같으면 상세한 정보를 볼 수도 있다는 뜻이겠지.’
가장 주목할 만한 점은 바로 다음 줄이었다.
-게일에 관한 퀘스트 개방이 가능합니다. 보너스 스탯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