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the Son of the Final Boss RAW novel - chapter (48)
최종 보스의 아들이 되었다-48화(48/278)
48화.
정신을 차리기가 힘들었다.
눈앞이 하얗게 변했다.
‘독이다.’
목구멍으로 포션이 넘어가는 순간부터 느껴지는 고통은 끊이지 않고 나를 괴롭혔다.
나는 필사적으로 주저앉지 않기 위하여 두 다리에 힘을 주었다.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지만, 여기서 쓰러질 순 없었다.
봄 평가 대회에 암살이라는 규칙은 없지만 경쟁자를 제거하기 위해서 대회 전의 암살은 종종 일어나는 편이었다.
황가는 그런 암살에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
암살을 방치함으로서 자연스레 참가자들의 수준은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나는 버터야 했다.
여기서 쓰러지면 나 역시 암살을 이기지 못한 참가자 중 한 명으로 전락하기 때문이었다.
황태자 암살에 대한 죄는 추후의 문제이고 당장 평가 대회에 참가하지 못한다는 사실 자체가 나에게는 가장 중요했다.
‘운디네…… 운디네.’
정신이 흐릿해지는 와중에도 나는 운디네는 물론이거니와 운다이론까지 불렀다.
그들은 본래의 형체가 아니라 내 의식을 따라 몸 속에 물방울 형태로 들어왔다.
물의 정령은 치료와 정화 그리고 방어에 특화되어 있다.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나는 내가 직접 적은 설정을 기억해냈고,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일단 물의 정령들을 소환했다.
운디네와 운다이론의 물방울이 혈맥을 따라 거칠게 흐르고 있었다.
“크윽.”
결국 나는 신음을 참지 못했다.
주변의 인물들이 내 신음에 시선을 돌렸지만, 이내 신경을 껐다.
황태자의 상태가 이상함에도 그들은 무대 위에 집중했다. 황태자보다는 자신의 경쟁 상대가 어떻게 싸우는지 더 중요한 모양이었다.
‘도와달라고 할 것도 아니고.’
나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얼마나 세게 깨물었는지 입안에서 비릿한 피 맛이 나고 있었다.
물방울들은 더욱 거세게 흘렀다.
동시에 고통이 서서히 가라앉았고, 몸속에서 이질감이 강하게 느껴졌다.
‘역시 독이군.’
시야가 서서히 살아나면서 나는 어느 정도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나는 운디네와 운다이론에게 몸 속에 있는 독을 일단 한 곳으로 몰아달라고 부탁했다.
독은 움직이지 않기 위하여 발버둥쳤고, 고스란히 통증으로 이어졌다.
“흡.”
나는 신음을 참으며 독을 억지로 움직였다.
마나 홀이 찢어질 것 같은 고통은 도저히 참아낼 수 없는 수준이었다.
결국 나는 독을 움직이는 것을 포기하고 마나 홀의 마나와 공존시킬 수밖에 없었다.
‘일단 마나로 감싼다.’
나는 독 주변에 마나로 얇은 막을 만들어냈다.
기상천외한 방법이었고, 나 스스로도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해냈는지 의문일 지경이었다.
인간은 위기에 몰리면 초인적인 힘을 발휘해낸다고 하는데 지금의 내가 딱 그런 경우 같았다.
독이 얇은 마나 막에 쌓이고 마나 홀의 일부를 자신의 집처럼 여기며 꼼짝하지 않았다.
‘차라리 다행이다. 독이 날뛰었다면 힘들었을 것 같은데.’
첫 경기도 치르지 못하고 기권패를 할 뻔했다. 아니,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다.
이 지독한 독은 존재 자체만으로도 나에게 막대한 부담감을 안겼다.
그사이 무대에서는 리오덴이 무명의 용병을 쓰러뜨린 뒤 목에 검을 가져다대고 있었다.
“하, 항복합니다.”
무명의 용병은 제법 오래 버텼지만 리오덴을 이길 순 없었다.
리오덴 역시 처음부터 최선을 다하지 않고 몸을 풀기 위하여 대결 시간을 오래 가져갔다.
나에게는 큰 도움이 되었다.
그사이 독을 어찌어찌 가둬두는 데 성공했으니까.
“다음 참가자 아룬 칼 레오드, 첸 칼 레오드는 무대 위로 오르도록.”
참가자의 신분이 되는 순간 그 전의 신분은 별의미가 없었다.
황궁 기사단 중 최고의 기사단이라 불리는 철혈 기사단의 기사단장은 황자들을 거침없이 불렀다.
나는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표정을 수습했다.
등은 이미 흠뻑 젖어있었지만 다행히 겉으로 티가 나지는 않았다.
첸은 여유로운 표정으로 내 앞에 섰다.
철혈 기사단장이 곧 신호를 보냈다.
친절함을 가장한 설명은 첫 경기로 끝이었다.
“피를 토하고 죽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명줄이 기십니다.”
첸은 독살 시도를 서슴없이 말했다.
“어차피 이 자리에서 죽을 거지만. 지금 항복하시면 목숨은 건지실 수 있겠죠. 아마 잠시뿐이겠지만.”
첸은 내가 독을 이겨내지 못할 것이라 확신하는 듯 말을 이었다.
“처참한 망신을 당하고 싶으신 것 같으니 원하시는 대로 해드리죠.”
나는 옅게 웃으며 정령들을 소환했다.
샐러멘더가 내 곁에서 불꽃을 일으켰다.
첸의 얼굴에 물든 비웃음이 점점 진해졌다.
“발악입니까?”
첸이 마법을 펼쳤다.
그의 신형이 순간적으로 사라졌다.
나는 순수하게 감탄했다.
아무리 마법이라고 하지만 기사도 아닌 첸의 움직임이 무척 빨랐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걸 가만히 지켜만 보고 있지 않았다.
샐러멘더가 불꽃을 크게 일으키면서 내 주변에 불의 장막을 만들어냈다.
동시에 나는 바람과 대지의 흐름을 타며 움직였다.
사라진 첸의 신형이 드러나고 지팡이에서 하얀 빛이 뿜어져 나왔다.
“운디네.”
운디네가 모습을 드러내며 빛이 쏘아지는 방향으로 거대한 실드를 만들어냈다.
콰아아아앙-!
물의 장벽.
마법의 위력이 굉장한 듯 물의 장벽이 흔들리며 내게도 타격이 왔다.
마나 홀이 뒤틀리며 다시 한 번 독을 자극하고 있었다.
‘젠장.’
기다렸던 첸과의 대결을 시작하자마자 나는 수세에 몰릴 수밖에 없었다.
* * *
마지막까지 폴리사아 꽃 포션을 만들던 켄은 뒤늦게 대회장에 도착했다.
무딘 검 데이비드와 함께였다.
“전하께서 이상하네.”
무딘 검의 말에 켄이 무섭게 눈빛을 빛냈다.
“그래. 이상하셔. 폴리시아 꽃의 효능도 즉각 발휘되지 않았어.”
확실히 무대 위에서 싸우고 있는 아룬의 모습은 두 사람의 생각과는 완전히 달랐다.
첸이 4서클 마법사이기는 하지만 중급 정령사 역시 만만히 볼 수준은 아니었다.
더구나 아룬은 웬만한 중급 정령사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강했다.
정령들이 마치 한 몸처럼 움직이는 정령사는 마법사보다 훨씬 무서웠고, 기사의 빠르기도 따라잡을 수 있을 속도였다.
분명 아룬의 우위가 예상되었는데 예상과는 정반대의 흐름이 이어지고 있었다.
켄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했다.
‘몸 상태가 갑자기 안 좋아지신 것 같다. 포션에는 문제가 없어. 심부름을 시킨 하인 역시 그림자 걸음 길드 출신의 믿을 수 있는…….’
켄이 이내 스산한 목소리로 말했다.
“방심했어. 무조건적인 신뢰를 할 수 있는 사람은 없는데. 폴리시아 꽃을 포션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내가 너무 신경을 많이 썼던 것 같다.”
무딘 검이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무슨 말이지?”
켄은 자세히 설명하지 않았다.
“자네는 전하의 경기를 보고 있게. 나는 잠시 궁으로 돌아가봐야겠어.”
일단 포션을 전달한 하인부터 켄은 찾아볼 생각이었다.
* * *
확실히 나는 밀리고 있었다.
스킬을 사용할 때마다 마나 홀에서 고통이 느껴지니 자연스레 스킬이 자연스럽지 못했다.
첸의 조롱과 모욕은 끊이지 않았다.
“고작 이 정도로 황태자라는 게 부끄럽지 않으십니까?”
꼬박꼬박 존댓말을 사용하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실페레는 아껴둔다.’
실페레는 내가 계약한 정령 중 가장 강한 정령인데 아직 소환하지 않았다.
내가 승리할 방법은 첸의 방심을 유도하여 단숨에 첸의 목을 찌르는 것뿐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최대한 전력을 감추는 게 좋았다.
일부러 하급 정령들과만 전투를 하면서 방어에 집중했다.
콰아아아앙-!
첸이 날린 불덩이들이 사방에서 내 몸을 노렸다.
운디네들이 바쁘게 뛰어다녔고, 실프의 바람의 사슬까지 방어에 동원되었다.
‘마법을 즉시 구현하는 건 아니다. 아주 잠깐이지만 시간이 필요해.’
마법사의 가장 큰 단점 중 하나가 바로 마법을 즉시 시전할 수 없다는 사실이었는데, 캐스팅 과정 때문이었다.
첸의 외할아버지 오스틴 공작은 서클이 낮은 마법 정도는 캐스팅없이 곧바로 사용할 수 있지만 첸은 달랐다.
그는 어린 나이에 4서클에 오른 천재임은 분명하지만, 아직 캐스팅 과정을 생략할 정도는 아니니까.
첸은 현재 캐스팅의 틈을 연속적인 마법 사용으로 메꾸고 있었다.
흔히 마법사들이 대인전에서 사용하는 방법이었다.
이미 하나의 마법을 구현하는 순간 다른 마법을 캐스팅함으로서 상대가 방어할 때 그다음 마법으로 공격했다.
‘첸의 예상보다 빠르게 마법을 파괴 시키는 게 필요하다.’
나는 마음을 먹고 조용히 운다이론을 소환하면서 물의 폭풍을 준비했다.
물의 폭풍은 마법보다 시간이 더 걸리는 스킬이지만 위력만큼은 확실하니까.
운다이론이 내 등 뒤에서 솟아오르자 첸의 눈빛이 가라앉았다.
“벌써 중급이시라니…… 형님도 확실히 레오드는 레오드이군요. 천한 피를 이은 반쪽짜리이지만 말입니다.”
첸 혹은 테드의 기사들이 나를 모욕할 때 자주 언급하는 게 바로 내 어머니의 신분이었다.
분명 귀족이었지만 몰락한 귀족은 명문가를 외가로 두고 있는 그들에게는 하찮은 핏줄이었으니까.
나는 싱긋 웃었다.
“피가 좋아서 그런가 확실히 너와 비교할 수 없는 재능이지.”
첸의 얼굴이 굳어졌다.
역시 상대하기 쉬운 놈이었다.
자신을 향한 작은 도발도 참지 못하는 성격이었으니까.
첸이 거칠게 지팡이를 흔들었다.
“곧 그 주둥이도 놀릴 수 없게 될 겁니다.”
“너야말로.”
첸의 불꽃 마법이 터지는 순간 운다이론이 소용돌이로 변했다.
첸은 뒤로 살짝 물러나면서 불꽃 마법을 크게 일으켰다.
‘무슨 마법인지 모르겠군.’
다음부터는 마법에 대한 공부도 게을리하지 않으리라 다짐하면서 나는 마나를 쥐어짰다.
독이 마나 홀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순간적으로 운용할 수 있는 마나는 당연히 전과 비교할 때 반절 정도였다.
고오오오오-!
이내 정령과 마법이 부딪혔다.
콰아아아앙-!
운다이론의 회오리가 마법을 갈랐다.
첸이 흠칫 놀라며 실드를 펼쳤다.
콰아아아앙-!
운다이론이 불꽃 마법을 가르고 실드와 충돌하는 순간 나는 재빨리 바람과 대지의 흐름으로 첸의 뒤쪽으로 돌면서 실페레를 소환했다.
“실페레다!”
지금까지 물의 중급 정령만 보여주던 내가 바람의 중급 정령을 소환하자 무대 밑에서도 탄성이 터져나왔다.
서로 다른 속성의 정령을 동시에 소환하는 건 마스터 경지에 올랐다는 증거였기 때문이었다.
물론 나는 중급 정령사 비기너에 불과했지만 나의 친화력은 단계를 무시했다.
실페레가 바람의 사슬을 펼쳤다.
등 뒤가 완전히 노출된 첸이 화들짝 놀라며 몸을 돌렸다.
콰아아아앙-!
그 때문에 실드가 흔들리고 운다이론의 물의 폭풍이 첸의 복부를 강타했다.
“커어어억!”
드디어 첸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나왔다.
동시에 바람의 사슬이 첸의 어깨를 스치고 지나갔다.
서걱-!
첸의 팔이 허공에 떠올랐다.
마지막 한 수가 정확하게 들어갔다.
마나 홀은 이제 독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한 줌의 마나조차 남아 있지 않아 나는 어지러웠지만 바람의 호흡법으로 호흡을 안정시켰다.
정령들이 모두 돌아가자 나는 시선을 철혈 기사단장에게 돌렸다.
“아룬 칼 레오드 승.”
철혈 기사단장은 짧게 나의 승리를 선언했다.
나는 무대에 내려가기 직전 첸에게 다가갔다.
“무대에서 했던 말들을 잊지 않으마. 암살에 독살에…… 오늘 나를 이 자리에서 죽이지 못한 게 뼈저리게 아플 거다.”
첸은 내 말조차 듣지 못하는 듯 무대 위에 떨어진 자신의 팔을 지켜보고 있었다.
비명조차 지르지 않는 걸 보니 현실을 믿을 수 없어 고통마저 잊은 듯했다.
나는 몸을 돌리며 무대 아래로 내려왔다.
무딘 검 데이비드가 즉시 다가왔다.
“전하.”
나는 짧게 말했다.
“켄을 불러와.”
독살 시도의 전말을 밝힐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