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the Son of the Final Boss RAW novel - chapter (51)
최종 보스의 아들이 되었다-51화(51/278)
51화.
나는 바람의 호흡법을 통해 긴장을 풀었다.
마나 홀의 독이 매우 거슬렸지만, 그 존재 자체를 잊기 위하여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다.
마음을 편하게 먹었다.
중급 정령사가 되면서 마나 홀이 대폭 늘었는데, 아예 그 일조차 없었던 일로 생각했다.
‘소드 익스퍼트 상급과 최상급 사이의 경지라.’
나는 리오덴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그는 검을 비스듬히 쥐고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마치 나에게 선공을 양보해준다는 태도에서 그의 여유를 느낄 수 있었다.
“후우!”
나는 짧게 숨을 몰아쉬었다.
무대 밑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조금씩 커졌다.
시작 신호가 들렸는데도 나와 리오덴이 서로를 탐색만 하자 답답한 모양이었다.
지난 경기보다 사람이 훨씬 많았다.
아버지가 지켜보고 있는 황좌와 그 주변에 마련된 귀족들의 좌석 역시 가득 채워져 있었다.
나에 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증가한 것이다.
더구나 상대가 우승 후보로 손꼽히는 리오덴이었다.
누군가는 내가 무대 위에서 처참하게 쓰러지기를 바랄 것이고, 어떤 이는 정말 첸을 운으로 이긴 것인지 확인할 모양이었다.
어쨌든 나는 이번 평가 대회를 통하여 기존의 소문을 모두 잠재우고 있었다.
겁쟁이, 무능력의 대명사였던 황태자가 어느새 모든 이의 관심을 사로잡을 정도로 성장했다.
‘그리고 여기서 이기면…… 내가 후계자 경쟁에서 가장 앞서 나갈 수 있지.’
내가 후계자 다툼에서 가장 유리한 건 바로 명분이었다.
황제의 첫째 아들!
더구나 어머니의 신분이 비천한 것도 아니었다.
몰락 귀족이지만 어머니는 엄연히 정령 명가로 손꼽히는 귀족 가문의 가주셨다.
어머니가 아버지의 두 번째, 세 번째 부인도 아니었으며 유일하게 황후 직위를 받은 첫 번째 부인이었다.
정통성으로는 그 누구와도 견줄 수 없는 게 바로 나의 태생이니 남은 건 바로 실력 문제였다.
그동안은 그 실력과 인성에서 비난을 넘어 조롱과 모욕을 당했지만 오늘을 통해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
나는 옅게 웃으며 정령들을 소환했다.
리오덴 역시 서서히 호흡을 골랐다.
‘실전 검술의 달인…….’
내가 리오덴에 대해서 아는 것이라곤 켄과 소리스가 조사하여 보고한 보고서, 그리고 데이비드에게 들은 이야기뿐이었다.
즉 리오덴은 내가 기억하는 ‘등장인물’이 아니었다.
평가 대회 자체를 나는 자세히 집필하지 않았다.
론 칼 레오드 밑에는 수많은 인재가 있고, 그의 권력을 보좌하는 직속 조직의 인재들은 대부분 평가 대회를 통해 뽑았다고만 썼다.
게다가 그 인재들이 모조리 카렌과 그의 동료들에게 쉽게 당하는 설정이었다.
내가 기억하는 건 그 정도였다. 그러니 우승 후보라고 알려진 리오덴에 대해서 내가 모를 수밖에.
내게 이름조차 부여받지 못한 등장인물이 강력한 적수가 되어 내 앞에 서 있었다.
나는 눈을 가늘게 뜨며 먼저 움직였다.
실프가 가볍게 날아 바람의 사슬을 날렸다.
리오덴이 슬쩍 검을 들었다.
챙-!
간단한 동작으로 막아내는 리오덴을 보면서 나는 공격의 강도를 더했다.
‘선공의 이점을 주었으니 방심의 대가를 알려줘야겠지.’
순식간에 실프가 셋으로 늘고 운디네와 노움 그리고 샐러멘더까지 모습을 드러냈다.
단숨에 몰아붙일 생각이었다.
나는 불의 장막을 공격적으로 사용했다.
방어 스킬을 꼭 방어하는 데만 사용할 필요가 없고, 공격 스킬도 마찬가지.
모든 스킬은 역량에 따라 얼마든지 다양한 형태로 사용할 수 있었다.
샐러멘더가 일으킨 불의 장막이 좁아지면서 리오덴을 압박했다.
그리고 리오덴이 드디어 움직였다.
‘발을 묶어야 한다. 흐름을 타게 두어서는 안 돼.’
나는 바람과 대지의 흐름에 몸을 맡기면서 리오덴의 움직임을 최대한 자세히 관찰했다.
켄은 물론이거니와 테드의 두 기사, 그리고 데이비드마저 움직임에 일정한 규칙이 있었다.
데이비드 같은 경우에는 그 속도가 너무 빨라 정확한 규칙을 읽기 힘들었지만, 공격과 방어를 할 때 확실히 발놀림이 달랐다.
데이비드가 말한 정통 검술 덕분이었다.
규칙적인 움직임은 효율적으로 이어졌고 경지가 높아짐에 따라 규칙마저 자유자재로 바꾸면서 상대방을 교란시켰다.
데이비드를 상대할 때 어려웠던 점이 바로 그는 일정한 규칙에 얽매이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공격하는 발놀림 같았는데 어느새 거리를 벌리고 정령들의 기술을 쉽게 쳐내는 모습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나는 샐러멘더에게 더욱 많은 마나를 공급했다.
불길이 거세지면서 리오덴을 따라다녔다.
리오덴이 호오, 감탄을 터뜨렸다.
아마 내가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의 실력자라고 느낀 것일까?
그의 얼굴에 비친 미소의 의미를 알 수 없었지만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았다.
‘실페레.’
곧바로 중급 정령을 소환하면서 더욱 강한 공격을 실현했다.
실페레의 존재감은 실프와 다른 하급 정령들과는 확실히 달랐다.
리오덴 역시 드디어 검에 마나를 불어넣었다.
은빛 검날이 붉게 물들었다.
고오오오-!
바람의 사슬이 구현되면서 리오덴의 검과 무대 중앙에서 만났다.
콰아아아앙-!
대결이 시작된 이후 처음으로 터지는 굉음이었다.
리오덴은 번개같이 나에게 접근했다.
나는 뒤로 물러났다.
운디네가 일차적으로 내 앞을 가로막으며 수십 개로 나뉘어 찔러오는 리오덴의 검을 막아냈다.
쾅-! 쾅-! 쾅-!
나는 쉬지 않고 바람의 사슬을 날려댔다.
실프들이 끊임없이 옆구리와 뒤를 노리자 리오덴은 한 바퀴 빙그르르 돌았다.
콰아아앙-! 쾅-!
“컥!”
나는 절로 신음을 토해냈다.
리오덴이 돌면서 쳐낸 실프들에게 전해지는 충격은 나에게도 고스란히 이어졌다.
오러를 덧씌운 검의 공격은 실프들이 견뎌낼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
‘한 번이라도 공격을 허용하는 순간 끝이다.’
나는 처음으로 오러의 위력이 어떤 것인지 생생하게 느끼고 있었다.
* * *
“황태자께서 소문과는 많이 다르신 것 같군요.”
어느 귀족의 말에 베레곤이 피식 웃으며 거들었다.
“소문은 소문일 뿐이지요.”
테드가 제 기사들이 당하고 온 것에 대한 화풀이의 일종으로 첸을 충동질한 것은 베레곤 역시 잘 알고 있었다.
실론을 통해 그 과정을 부친 것도 사실이었지만, 놀라운 건 아룬의 상태였다.
뱀의 독 길드가 희석한 오색뱀 독을 이용하여 독을 만들었다.
아룬은 분명 그 독을 복용했다.
그런데 멀쩡히 싸우고 있었다.
‘해독은 하지 못한 것 같은데.’
소드 마스터의 눈은 다른 사람이 볼 수 없는 것도 보게 해주었다.
베레곤은 마나의 흐름을 통하여 아룬이 아직 독을 풀지 못했음을 정확하게 읽어냈다.
베레곤이 슬쩍 론을 바라보며 말했다.
“황태자 전하께서 설사 이 경기에서 패배하신다 해도 참으로 눈부시게 실력이 향상되신 것은 확실합니다.”
론은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그런가?”
론의 눈빛에는 무료함이 묻어 있었다.
베레곤은 다시 경기에 시선을 돌렸다.
‘관심이 없는 것인가, 없는 척하는 것인가.’
평가 대회를 누구보다 신경 쓰는 황제인데 지금은 모든 것을 귀찮아하는 것 같았다.
베레곤은 눈을 가늘게 떴다.
실페레가 하늘을 날며 바람의 사슬을 뿌려대는 모습은 확실히 중급 정령사다웠기 때문이었다.
‘독을 먹고도 저 정도 실력이라.’
무엇보다 베레곤은 아룬의 전투 감각에 놀랐다.
실전 경험이 거의 없는 아룬의 전투 감각은 천부적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났다.
리오덴은 실전 검술의 달인이라 변칙적인 공격을 주로 사용하는데, 아룬은 막힘없이 대응하고 있었다.
“리오덴이 밀어붙이는군요. 저 친구는 실전 검술 하나로 마스터 경지를 엿보고 있다고 들었는데, 확실히 대단한 것 같습니다.”
오스틴의 평가였다.
베레곤이 피식 웃었다.
“황자 전하께서는 좀 괜찮으십니까?”
묘하게 오스틴의 속을 긁는 말이었다. 오스틴은 내색하지 않고 대답했다.
“괜찮지 않을 건 무엇입니까. 기사는 팔 하나가 없으면 검을 휘두르는 일조차 어렵지만, 마법사는 다른 한 손으로 지팡이를 들고만 있어도 됩니다.”
베레곤이 위로했다.
“평가 대회는 언제나 위험한 법이죠. 전하의 일은 안타깝게 되었습니다.”
오스틴은 고개를 저으며 짐짓 포부를 보여주었다.
“칠황자께서 다치신 건 좋지 않은 일이나 황태자 전하의 눈부신 발전은 제국의 복이 아니겠습니까. 제국 귀족의 일원으로 황태자께서 드디어 자신의 능력을 보이시는 것 같아 기뻤습니다.”
베레곤은 더 이상 오스틴의 속을 긁지 않았다.
론의 목소리가 짧게 울려 퍼졌다.
“황태자가 대전에서 괜히 우승자의 사령관 임명을 운운한 게 아니군.”
모든 귀족이 일제히 론을 바라보았다.
절대 권력의 주인이며 귀족들의 입장으로서는 어떻게든 그 권력을 줄여야 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평가 대회의 규모를 어떻게든 축소시키려는 것 역시 황제의 권력을 조금이라도 약화시키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그 모든 것과는 별개로 능력에 대한 황제의 판단은 단 한 번도 틀린 적이 없었다.
기사, 마법사, 정령사, 누구든 마찬가지였다.
누가 더 강하다, 라고 황제가 선언하면 그건 곧 진실이었다.
그런 황제가 지금 아룬의 우승을 암시하는 말을 하고 있었다.
오스틴은 물론이거니와 베레곤의 눈동자도 숨길 수 없이 떨렸다.
론이 미소를 머금었다.
론의 눈동자에 빛나는 것은 호기심이었다.
“황태자의 상태는 정상이 아니야. 독이다. 마나 홀의 반 정도를 독이 잠식하고 있다. 그런데 리오덴을 상대로 덫을 놓다니.”
이내 론이 후후, 웃었다.
베레곤이 움찔 몸을 떨었다.
황제가 소리내어 웃는 것은 실로 오랜만이었다.
제법 재롱을 필 줄 아는구나.
그때 이후 베레곤은 황제의 저런 웃음은 처음 보았다.
고작 이십 대 중반이었던 황제가 대륙의 소드 마스터 중 한 명으로 알려진 자신에게 했던 말과 함께 곁들였던 즐거운 미소였다.
일검을 받을 만하구나.
베레곤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아룬은 어느새 황제가 인정할 정도로 강자가 된 것이었다.
고작 중급 정령사라는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황제는 아룬의 재능이 그 정도에 그치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꿰뚫어 본 것이었다.
자신과 검을 나눠도 될 정도로 성장하리라는 확신도 저 미소 속에는 숨어 있었다.
황제가 가장 즐거워하는 건 전력을 다할 수 있는 상대를 만나는 것이었다.
그와 벌써 몇 년을 함께하고 있는데 황제의 염원조차 모를까.
정복 전쟁도 다 상대를 찾기 위한 일환이었다.
한 나라를 멸망으로 몰아넣으면 그중 누군가는 반드시 죽을힘을 다하여 황제에게 맞섰다.
황제는 그때의 그 전투를 무엇보다 좋아했다.
‘황태자가…… 그 정도인가.’
베레곤 역시 아룬의 재능을 높게 평가했지만 황제의 인정을 받을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서부 영주들에게 곧 총사령관이 내려간다고 전하도록. 아룬 칼 레오드의 깃발도 제작하고.”
황제의 말에 이제는 모두가 움찔거렸다.
이건 선언이었다.
이번 우승은 황태자의 차지라고.
베레곤의 눈빛이 어두워졌다.
‘두 대에 걸친 충성은 있을 수 없다. 또 한 명의 론 칼 레오드는 나도, 제국도 그리고 세상도 원치 않으니까.’
그때 리오덴이 크게 비틀거렸다.
론이 말을 맺었다.
“덫에 걸렸군. 고작 노움 따위에게 당하다니. 후후후, 그만큼 황태자의 덫이 교묘하기는 했지만.”
론은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론이 평가 대회에서 경기를 끝까지 지켜보지 않고 자리를 벗어나는 일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런 일이 처음으로 일어났고, 덕분에 조금 전 했던 말은 신빙성이 커졌다.
아룬의 우승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