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the Son of the Final Boss RAW novel - chapter (57)
최종 보스의 아들이 되었다-57화(57/278)
57화.
나는 데이비드의 삶이 어떠했는지 대략 알고 있었지만 잠자코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살인은 옳지 않은 일이라 배웠고, 또 살인을 통해 내가 무엇인가 이득을 보는 건 혐오스러운 일이라 생각했습니다.”
데이비드의 표정이 가라앉았다.
괴로운 기억을 떠올리는 그의 얼굴에 나는 차분하게 말했다.
“굳이 하고 싶지 않은 이야기라면 하지 않아도 괜찮아.”
데이비드가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이 이야기를 하지 않고는 전하와의 관계가 이어나가더라도 제가 진심을 다해 충성을 바치지 못할 겁니다.”
나는 입을 다물었다.
데이비드의 말이 이어졌다.
“제국 지방의 영주들보다 작은 영토였지만 저는 왕국의 왕자로 태어났고 인자하신 아버지 밑에서 왕족으로서의 책임감에 대하여 교육받았습니다.”
“왕자?”
내가 짐짓 모르는 듯 묻자 데이비드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엄연히 왕국이었죠. 주변의 가문들이 비웃어도 아버지께서는 자신의 백성들을 사람답게 살기를 원하셨습니다. 당시 대륙에는 수백, 수천 개의 소규모 왕국이 난립했기에…… 아버지 역시 왕국을 선포하셨죠.”
“그렇군.”
데이비드는 본론을 꺼냈다.
“지금의 폐하께서 대륙에 명성을 떨치시고 제국이 건국되고…… 그 여파를 아버지도 피해가시지 못했습니다. 현재 애트란 가문의 가주, 당시 제국 군단 사령관이 이끄는 군대에 아버지의 왕국은 멸망했죠.”
나는 어떤 위로의 말도 건네지 않았다.
미안하다는 사과도 할 수 없었다.
그저 데이비드의 낮은 목소리를 들었다.
“베레곤 공작이 무참하게 살육했던…… 그날의 기억을 저는 영원히 잊을 수 없습니다. 아버지는 저희라도 살리기 위해서 무조건 항복했지만…… 그의 검에는 자비가 없었죠.”
데이비드가 쓰게 웃었다.
“그리고 한 마디 덧붙이더군요. 지금 내 검에 죽는 것이 차라리 비참한 노예로 살아가는 것보다 나을 것이라고요. 자신의 살인을 정당화하는 그를…… 저는 용서할 수가 없었습니다.”
나는 짐작한다는 듯 물었다.
“그래서 베레곤 공작만 죽이기로 결심한 것인가?”
데이비드가 고개를 저었다.
“저는 그 후로 오래 살아남았습니다. 용병 생활도 오래했고 그만큼 보고 들은 것도 많거니와…… 아버지께서 제게 말씀하셨던 신념은 죽음을 동반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는 것도 깨달았습니다.”
데이비드가 무릎을 꿇었다.
“전하께서는 나누겠다고 하셨습니다. 자신의 것도 그리고 생산량의 대부분을 가져가는 저 탐욕스러운 귀족들의 것을요. 그때 베레곤 공작의 목을 제가 베게 허락해 주십시오.”
“복수를 하기 위해서 내게 충성하겠다는 것인가?”
내 질문에 데이비드가 대답했다.
“아닙니다. 전 전하처럼 생각할 줄 몰랐습니다. 한 개인이 세상을 바꾸려면…… 그만큼 똑똑해야 하며 큰 세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그저 빈민가의 아이들을 돕는 데 그치지만 전하께서 신념을 세우시면 빈민가가 사라질 수 있습니다.”
나는 데이비드 허리춤에 있는 검을 뽑았다.
데이비드가 움찔 몸을 떨었다.
“이름이 무엇인가.”
무딘 검 데이비드, 그 역시 왕족 출신이기에 성이 있을 것이다.
왕국이 멸망한 뒤에는 이름만 사용했고, 용병으로 명성이 퍼졌을 때는 무딘 검이라는 별명으로 더 많이 불렸다.
데이비드가 대답했다.
“데이비드 덴 하레스입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데이비드에게 기사의 맹세를 받았다.
솔직히 기사의 맹세를 받는 건 나도 처음 있는 일이라 내색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데이비드의 맹세가 끝난 뒤 나는 그를 나의 신하로서 임명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덧붙였다.
“베레곤 공작은 제국을 대표하는 소드 마스터야. 지금 자네의 수준으로는 베레곤 공작과 전투가 벌어지면 순식간에 목이 떨어져.”
“네. 전하를 위해서 반드시 그와 버금가는 강자가 되도록 하겠습니다.”
나는 싱긋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보다 더 뛰어난 기사가 되게. 베레곤의 목을 베는 데 있어 자네의 피 한 방울도 낭비하지 말도록.”
데이비드가 움찔 몸을 떨었다.
나는 데이비드와 시선을 맞추기 위하여 무릎을 같이 꿇고 말했다.
“자네의 피 한 방울이 내게 있어 수십, 수백의 적들이 흘릴 피보다 가치가 있으니까.”
“전, 전하…….”
“그만 가지. 점심을 먹고 오후 경기를 치러야 하니까.”
나는 데이비드와 함께 점심 식사를 하기 위하여 이동했다.
이제 4강이었다.
강력한 우승 후보들은 모두 떨어졌다.
“이제 남은 이들은 본래 우승 후보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이번 대회 수준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는 모양입니다.”
데이비드의 말에 내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대회 수준?”
“네. 쭉정이들만 참가했다는 소문이 돌고 있습니다.”
나는 절로 얼굴이 일그러졌다.
“예사 소문이 아닌 것 같은데?”
“켄은 전하의 우승 확률이 높으니 귀족들이 전하를 깎아내리기 위하여 의도적으로 퍼뜨린 것 같다고 했습니다.”
켄의 판단에 나도 동의했다.
“멍청하고 무능한 겁쟁이 황태자가 평가 대회 우승이라니. 황자나 황녀를 외손주, 외손녀로 두고 있는 가문들은 그 결과를 받아들이고 싶지 않겠지.”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데이비드의 질문에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평생을 무능하다고 시달려왔는데 대회 수준이 낮다는 소문이 뭐. 내가 우승하면 서부 사령관으로 내려가는 사실은 변하지 않아. 소문은 결과를 바꿀 수 없는 법이니까.”
* * *
준결승마저 나는 쉽게 승리하고 오늘 오전 결승을 위하여 다시 무대에 섰다.
그리고 평가 대회의 전통에 따라 결승전은 아버지가 직접 무대까지 내려와 격려했다.
“짐의 기대를 충족하도록.”
격려는 그게 끝이었다.
곧 철혈 기사단장이 나와 상대의 이름을 호명한 뒤 전투 시작 신호를 보냈다.
* * *
론은 다시 황좌로 돌아왔다.
“아무래도 황태자께서 우승하실 것 같습니다.”
오스틴 공작의 말에 여러 귀족들의 시선이 저절로 아룬에게 집중되었다.
론은 자리에 앉으며 짧게 말했다.
“짐이 이미 이야기하지 않았던가.”
오스틴 공작이 빙긋 웃었다.
“폐하의 안목도 안목이거니와…… 황태자 전하께서 참으로 많이 달라지셨군요. 아무리 이번 대회 참가자 수준이 낮다고는 하지만 우승은 대단한 것이죠.”
은근슬쩍 대회의 격을 낮추는 말에도 론은 지적하지 않았다.
후후,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그런가? 짐이 데리고 오고 싶은 참가자들이 많았는데…… 어차피 모두 제국의 일원이 될 것이지만 서부 방어군보다는 동부 정복군으로 말이야.”
론의 한 마디가 대회의 수준을 다시 격상시켰다.
황제가 탐내는 인재가 많다는 것, 그 자체가 주는 의미가 귀족들에게는 굉장히 컸기 때문이었다.
론의 인재 욕심은 모두가 아는 바였고, 그의 안목 역시 마찬가지였다.
오스틴은 몰래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그사이 아룬이 상대를 거세게 밀어붙이고 있었다.
실페레와 피닉스가 조화를 이루어 공격하는 기술의 위력을 상대가 감당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베레곤이 나섰다.
“우승자…… 아마도 황태자 전하가 되시겠군요. 전하께서 꾸리는 방어군에 애트란 기사단을 포함시키겠습니다.”
론의 눈썹이 꿈틀거렸고 모두의 시선이 단숨에 베레곤 공작에게 모였다.
“무슨 뜻이지?”
론의 질문에 베레곤의 미소가 진해졌다.
“악의 세력이 부흥하면 언제나 대륙의 큰 재앙을 가져다주었습니다. 가뜩이나 피레온 정복군 징집으로 병사가 부족한데 정예 기사단마저 지원하지 않으면 서부 영주 연합군만으로는 방어가 힘들 겁니다.”
베레곤의 대답에 론의 눈가가 가늘어졌다.
“그래서 자네 가문의 기사단을 파견하겠다? 애트란 가문의 애트란 기사단은 오직 가주와 함께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곳의 단장도 당대 애트란 가문의 가주 아니던가.”
베레곤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정확하게는 오직 당대 가주의 명령만 따르죠. 그들에게 전하를 받들라 명령하겠습니다.”
베레곤은 론이 무엇이라 말하기도 이전에 말을 이었다.
“저는 오랜만에 폐하를 모시고 동부에 가 볼 생각입니다. 그쪽에 강자가 꽤 많다는 건 폐하께서도 말씀하신 바이죠.”
론은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다가 이내 크게 웃었다.
“그래, 간만에 공작의 검술을 보겠군.”
오스틴 공작도 나섰다.
“리버힐 마법 병단도 서부에 파견하겠습니다.”
론은 두 공작의 속셈을 곧바로 파악했지만 굳이 내색하지 않고, 두 공작의 제안을 아주 흡족하다는 듯 허락했다.
“좋아. 그럼 오스틴 공작도 나와 함께 동부로 가는 것인가?”
“그렇사옵니다. 폐하. 동부 정복은 이번 정복 전쟁에서 핵심 목표이고…… 소신이 늙기는 하였지만 그래도 대규모 전쟁에서는 제법 역할을 하지 않겠습니까?”
론이 고개를 끄덕였다.
“리버힐 가문의 가주가 가니 병사 숫자가 의미가 있겠는가? 정복군의 전력이 아주 크게 올라갔군.”
론은 선언하듯 말했다.
“그럼 이번 동부 정복군은 피레온만이 아니라 소피아 왕국도 정복해야겠군. 두 공작이 직접 참여하는데 그 정도 성과는 거두고 오지 않아야겠나?”
론의 말에 베레곤, 오스틴 공작의 얼굴은 물론 모든 귀족들의 몸이 굳어졌다.
피레온만이 아니라 소피아 왕국마저 제국이 정복하면 제국은 역사 이래 가장 큰 영토를 지니게 된다.
소피아 왕국은 피레온 왕국보다 족히 영토가 두 배는 넓었고, 많은 인재들이 있었다.
특히 피레온 왕국에는 동부 최강자라 불리는 소드 마스터가 한 명 있었는데, 간혹 론과 비견될 정도로 명성이 높은 기사였다.
“폐하!”
론이 먼저 말을 이었다.
“가는 김에 동부 최강자라 불리는 소드 마스터와도 만나겠군. 이참에 서열을 가리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어때? 짐이 직접 나설까, 아니면 베레곤 공작이 해보겠는가?”
거부할 수 없다는 사실에 베레곤이 쓰게 웃었다.
“어찌 폐하께서 그런 자와 직접 검을 맞대려 하십니까. 제가 동부의 허명을 눌러보겠나이다.”
론이 고개를 끄덕였다.
베레곤은 다시 무대로 시선을 돌렸다.
‘영악한 황제가…… 가만히 우리 말을 들어줄 리는 없지. 그래도 피레온에 이어 소피아까지 점령하려면 제국의 손실도 막대하다. 황제 직속 기사단이 언제나처럼 선봉에 설 것이고.’
이미 베레곤도 자신과 오스틴 공작의 제안에 황제가 쉽게 응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때문에 일부러 대전에서가 아니라 평가 대회 관전 중에 말을 꺼낸 것이다. 론이 쉽게 거부하지 못하도록 말이다.
실내보다는 탁 트인 야외가 론의 압박을 좀 더 견디기 쉬운 면도 있었다.
베레곤은 나름 만족했다.
어차피 자신과 오스틴의 목적은 하나였다.
바로 지금 무대 위에서 상대를 거세게 몰아붙이고 있는 아룬의 죽음!
-대를 이어 충성할 순 없지 않은가?
오스틴은 확실히 뛰어난 사람이었다. 간혹 폐부를 찌르는 말과 과감한 결단을 내릴 줄 알았다.
‘리버힐도 괜히 명문이 아니지. 애초에 7서클 마법사가 멍청할 수도 없고.’
베레곤은 생각을 지우고 아룬에게 집중했다.
* * *
보여주고 싶었다.
막상 결승 무대에 오르자 피가 끓었다. 나를 지켜보고 있는 오만한 귀족들에게 확실히 알려주고 싶었다.
너희가 아는 아룬 칼 레오드는 더 이상 없다고!
내 기세를 느꼈을까?
철혈 기사단장도 눈을 가늘게 뜨며 나에게 집중했고, 상대도 검을 꽉 쥐었다.
나는 강하다.
스스로 되뇌었다. 중급 정령술사 익스퍼트는 결코 낮은 경지가 아니다.
곧바로 실페레부터 불렀다.
고오오오-!
바람과 함께 실페레를 불러내자 상대는 나를 향해 쇄도했다.
과연 기사답게 속도가 매우 빨랐다.
나는 즉시 바람과 대지의 흐름을 펼치면서 기사의 검을 피해냈다.
동시에 실페레는 기사의 어깨를 노렸다.
바람의 사슬이 넓게 펼쳐졌다.
기사는 몸을 빙그르르 돌리며 바람의 사슬을 쳐냈다.
기사가 몸을 돌리는 순간 나는 피닉스를 소환했고 즉시 실페레와 함께 화염의 바람을 구현했다.
콰아아앙-!
바람이 기사의 어깨에 적중했고, 자칫하면 폭발하듯이 갑옷이 터지거나 녹아내릴 수 있었다. 내 나름대로 강도를 조절해 생명에는 지장이 없도록 했다.
상대의 몸이 비틀거렸다.
나는 모든 정령들을 단숨에 소환했다.
상대는 입술을 질끈 깨물고 다시 한 번 나에게 접근하기 위하여 거리를 좁혔다.
기사에게 접근을 허용하는 순간 나는 수세에 몰릴 수도 있었다.
결승전에서만큼은 압도하고 싶었다.
모두의 앞에서 나는 실력으로 외치고 있었다.
실프들이 바람의 사슬로 상대의 다리를 노렸고, 운디네는 물의 폭풍을 쏟아냈다.
운다이론은 물의 장벽으로 상대가 나를 향해 달려드는 것을 막았다.
그리고 피닉스와 실페레 둘로 다시 한 번 화염의 바람을 펼쳤다.
콰아아앙-! 쾅-!
상대는 검으로 화염의 바람을 가르려 했지만 가를 수 없었다.
쾅-!
공중에서 수직으로 찍어내리듯 화염의 바람이 펼쳐져 무대까지 흔들렸다.
콰아아앙-!
노움이 불쑥 모습을 드러내 상대가 버티고 있는 자리를 흔들었다.
서걱-! 서걱-!
실프들이 펼친 바람의 사슬은 갑옷을 군데군데 절단내 벗겨 버렸다.
나는 이제 더 이상 망설이지 않고 상대에게 쇄도하면서 실페레를 내 곁으로 돌아오게 만들었다.
“바람의 사슬!”
마지막 목소리와 함께 실페레가 상대 목에 사슬을 걸었다.
“그만!”
철혈 기사단장이 어느새 내 앞을 막아섰다.
“아룬 칼 레오드, 승리! 평가 대회 우승자로 결정되었다.”
철혈 기사단장의 선언에도 주위는 쥐 죽은 듯 조용했다.
나는 귀빈석을 향해 몸을 돌렸다.
아버지를 향해 허리를 숙였다.
상대는 다리가 풀린 듯 무대 위에 쓰러졌다.
결승에서는 상대의 생명 안전도 확실하게 지켰다. 완벽한 제어. 어마어마한 쾌감에 나는 몸이 떨려왔다.
‘이런 기분이구나. 강하다는 거. 그리고…… 승리한다는 건.’
* * *
“정녕 우리가 알던 황태자 전하신가?”
“그동안 실력을 숨기셨군!”
아래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베레곤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관중들조차도 깨달았다.
중급 정령을 자유자재로 부리는 실력도 실력이었지만, 베레곤은 다른 점을 보았다.
상대를 압도하는 패기!
그 패기는 자신을 절망하게 만들었던 황제의 그것과 꼭 닮았다.
‘반드시 죽여야 한다.’
베레곤은 적당한 기사들을 정예인 양 포장하여 서부로 보내려고 했지만 마음을 고쳐먹었다.
슬쩍 오스틴을 바라보니 그는 떨리는 몸을 주체하지 못하고 있었다.
‘한심한 작자 같으니라고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니. 마법사라는 인간이 냉정하지를 못해. 저러니 첸도 그 모양이지.’
베레곤은 아룬이 떠난 자리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황태자께서…… 어마어마한 실력을 감추고 계셨군요.”
어느 귀족의 말에 다른 귀족들 역시 동조하고 있었다.
“확실히 황태자 전하 나이에 중급 정령을 자유자재로 부리는 건 들어본 적이 없는 일입니다.”
베레곤은 그 말을 하고 있는 귀족의 입을 찢어버리고 싶었다.
누가 그런 사실을 모른다고 굳이 말까지 하고 있나.
허나 저들은 모르고 있었다.
“실력을 숨긴 게 아니다. 정령술을 익힌 지 얼마 되지 않았다.”
황제의 말에 귀족들의 얼굴에 경악이 번졌다.
베레곤은 허탈하게 한숨을 머금었다.
‘꼭 한 번씩 저런 식으로 황태자에게 힘을 실어주는군.’
아룬이 정령술을 익힌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다른 귀족들에게는 알리고 싶지 않았다.
“전하의 재능이 실로 무서울 정도이군요.”
바로 저런 말이 나오기를 원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래. 무서운 재능이다. 너무나도 소름 끼치는 재능이야. 그러니…… 절대 살려둘 수 없다.’
베레곤은 몰랐다.
어느새 자신의 등이 축축하게 젖어 있음을.
상식에서 벗어난 재능을 눈으로 확인하는 건 그만큼 두려운 일이었다.
특히나 그 재능의 소유자가 경쟁자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