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the Son of the Final Boss RAW novel - chapter (68)
최종 보스의 아들이 되었다-68화(68/278)
68화.
나는 칼페온 제국을 우습게 생각했다.
매일같이 이곳은 살아 있는 세계라고 되뇌었지만, 마음 속 깊은 곳에는 여전히 내가 집필한 소설이라는 사실이 남아 있었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인데, 나는 칼페온 제국에 온 이후 그 선택에서 많은 고민을 한 적이 별로 없었다.
덕분에 일이 잘 풀린 면도 분명히 있었지만, 결국 오늘과 같은 상황이 벌어지고 말았다.
“오늘을 잊지 않겠다.”
내 말에 모두가 집중하고 있었다.
나는 쓰게 웃었다.
어느 때보다 말을 하는 입이 텁텁했고, 가슴은 무거운 돌덩어리를 얹어 놓은 듯 무거웠다.
그럼에도 나는 피하지 않고 나를 믿고 따라온 리오덴, 데이비드 그리고 평가 대회 참가자들은 물론이거니와 기사들에게도 솔직하게 고백했다.
“충분히 임무를 완수하리라 생각했고, 작전을 세밀하게 세우지 않았다. 그 대가를 치렀다. 나의 목숨이 아니라…… 저들의 목숨으로.”
여전히 타오르고 있는 시신들을 보면서 나는 주먹을 쥐었다.
손톱이 살을 파고들어 지독한 통증을 선사했다. 몸도 목소리도 덜덜 떨렸다.
“목숨의 무게는 모두가 같다.”
이번에는 기사들이 몸을 떨었다.
철저한 신분 제도 아래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었으니, 지금의 내 말은 이해도 되지 않을 것이고 혹은 황태자가 미쳤다고 여길 수도 있었다.
평민과 귀족의 목숨은 같지 않다.
귀족과 황가 일원의 목숨도 같지 않았다.
이곳은 신분에 따라 철저하게 목숨의 무게는 물론이거니와 사람의 가치에 대해서 나누는 곳이었다.
‘칼페온 제국은 현실이다. 그리고 나는 아룬 칼 레오드다.’
이제야 나는 내가 누구인지, 이곳에서 사는 게 어떤 의미인지 느끼고 있었다.
“나는 오늘 나의 협소한 시각과 오만함으로 죽은 이들을 결코 잊지 않을 것이다. 이 시간 이후로 나는 그대들이 나머지 시간을 나와 함께한다면 내 목숨의 무게와 그대들의 목숨의 무게가 같다는 사실을 평생 가슴에 새기고 살겠다.”
“저, 전하…….”
데이비드가 낮게 나를 불렀다.
나는 미소를 머금었다.
“그대들을 위로하기 위한 사탕발림이 아니다. 말했듯, 여기서 돌아가도 그 어떤 불이익도 없을 것이다. 그대들이 나를 위해 목숨을 걸어준다면, 나 역시 그대들을 위해 목숨을 걸 것이다.”
데이비드가 시작이었다.
그가 가장 먼저 무릎을 꿇었다.
이내 리오덴이 무릎을 꿇은 뒤 말했다.
“제 목숨의 무게가 진정 전하의 목숨과 같다면 어찌 전하께 목숨을 바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이내 나머지 기사들이 함께 무릎을 꿇고 내게 기사도를 맹세했다.
나를 제외하고 모두 백 명의 기사들이었지만, 열두 명이 전사하여 이제 여든여덟 명의 기사들은 기사 서약을 한 이후 오랜만에 다시 한 번 기사도를 읊고 있었다.
숲 속 한 가운데서 나는 그들의 기사도 맹세를 들으며 결심했다.
결코 이런 실수를 두 번 반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지금 나는 작가가 아니라 황태자다. 내가 쓴 소설 속으로 들어온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이지만, 이곳 역시 살아 있는 세계.’
마음가짐이 달라지자 나는 당장 이번 퀘스트부터 다시 점검하기로 결심했다.
나는 한 사람, 한 사람을 직접 위로한 뒤 리오덴과 데이비드에게 명령을 내렸다.
“오늘 하루는 쉰다.”
“적당한 곳을 찾겠습니다.”
리오덴의 대답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주의를 주었다.
“알고 있겠지만 요정으로 짐작되는 이들이 오크와의 전투 때 우리를 공격했다. 서쪽 숲은…… 요정들의 숲이지. 그들을 자극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아.”
“아마도 요정들은 오크들을 소탕하려고 왔다가 저희까지 공격한 것 같습니다. 더 깊은 숲으로 들어가지 않는 이상 그들을 마주칠 가능성은 크지 않을 겁니다.”
데이비드도 동의했다.
“리오덴의 말이 맞습니다.”
나는 그래도 한 가지 사실은 짚고 넘어갔다.
“그들이 우리를 공격한 것은 사실이지. 원인을 따지자면 우리가 그들의 숲에 마음대로 들어온 것도 있지만…… 충분히 대화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였는데. 어쨌든 요정도 조심하고, 쉴 곳을 찾은 뒤 계획을 처음부터 다시 수립해야 되겠어.”
곧 리오덴과 데이비드는 기사들을 두 조로 나눈 뒤 숲을 수색하기 시작했다.
데이비드의 조는 오늘 쉴 곳을 찾았고, 리오덴은 전투 현장에서도 게일의 흔적을 찾기 위하여 동분서주하고 있었다.
나는 데이비드 조와 함께 움직였다.
해가 기울 때쯤 데이비드와 나는 적당한 공터를 발견했다.
근처에 냇가도 있었기에 하루 지내기에 훌륭한 곳이었다.
금세 해가 지고 어둑해질 때쯤 임시 야영지 마련이 끝났다.
내 천막에 데이비드와 리오덴이 저녁 식사를 가지고 들어왔다.
“보급품은 다행히 분실하지 않았군.”
내 말에 리오덴이 천막 중앙에 있는 테이블에 식사를 놓으며 대답했다.
“네. 모두가 나눠서 들고 있었으니까요. 소량은 오크들의 피에 절어 버려야 했지만 큰 문제는 없을 것 같습니다.”
나와 데이비드, 리오덴은 저녁 식사를 빠르게 마친 뒤 본론으로 곧장 들어갔다.
데이비드가 지도를 펼쳤다.
“현재 저희 위치가 이곳입니다.”
서쪽 숲의 내부까지 표시된 지도였는데 제법 오래된 지도였음에도 정확했다.
“여기가 어둠의 숲 남부 줄기이고…… 리오덴과 조사한 바에 따르면 오크들의 경로는…….”
데이비드가 손가락으로 긴 선을 그렸다.
“이런 모양으로 서쪽 숲은 물론 서부 지역 전체로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가 바로 군단의 본진입니다.”
군사학을 전공하지는 않았지만 나는 필사적으로 기억을 더듬었다.
‘카렌의 동선을 떠올려야 된다.’
내가 소설을 쓸 때 상상한 경로와 직접 지도와 지형을 보고 설정하는 경로는 분명 차이가 있었다.
나는 그래서 몇 가지 특색을 말했다.
“혹시 어둠의 숲 남부에 거대한 폭포가 어디쯤이지?”
데이비드가 즉시 지도 한 곳을 가리켰다.
“죽음의 폭포는 바로 이곳입니다. 오크 군단의 본진 뒤쪽이죠.”
내가 거대한 폭포를 말한 이유는 하나였다.
카렌이 검을 얻은 곳이자 멀지 않은 곳에 바로 고르란이 봉인되어 있는 곳이었으니까.
‘카렌이 검을 얻은 곳.’
* * *
숲의 저녁은 짧았고, 내일을 위하여 오늘은 일단 리오덴과 데이비드를 돌려보냈다.
그들도 쉬어야 하니까.
나는 내 천막 안에 홀로 남아 짐을 뒤졌다.
“마법 주머니를 좀 더 가져올 걸 그랬나.”
아쉬움에 입맛을 다셨다.
황태자궁 전용 창고에 있는 물품 중 마법 주머니는 총 세 개였는데 모두 가져왔다.
마법 주머니에는 야영에 필요한 물품들과 보급품 그리고 내 개인 짐을 보관하고 있었다.
나는 짐 속에서 양피지 묶음과 만년필을 꺼냈다.
리오덴과 데이비드가 있을 때는 언급하지 않았던 기억들을 떠올리기 위하여 집중했다.
“죽음의 폭포에서 카렌은 숨겨진 고대 던전을 발견하고 드워프가 만든 검을 얻는다.”
일단 가장 강렬하게 남은 기억은 카렌이 얻은 검이었다.
주인공 카렌은 이때 얻은 검을 쭉 사용하게 되는데, 무려 드워프 장로가 백 년 동안 만든 순수 미스릴 검으로, 마법 주문까지 새겨 넣을 수 있었다.
“지금 시점에서는 아마 얻지 않았을까?”
미스릴 검은 그 자체만으로도 보물인데, 카렌의 검은 다른 금속은 함유되지 않은 순수 미스릴 검이었다.
보물이라는 표현조차 모자랄 정도로 최고의 검 중 하나였다.
‘미스릴 함유가 50%가 넘어가면 오러의 위력이 1.5배는 증가하는 설정이니까.’
나는 정령사이기 때문에 검 자체는 필요없었지만, 내 휘하 기사들은 달랐다.
당장 게일이 그 검을 얻는다면 소드 마스터와도 대등하게 겨룰 수 있었다.
카렌은 굳이 의식할 필요는 없었지만, 게일이 잡혀 있는 상황에서 그는 큰 변수였다.
만약 카렌이 게일이 잡혀 있는 곳을 모르고 고르란의 부활을 먼저 막는다면?
‘카렌이 우연히 게일을 만나 그를 구출하는 것도 감안해야 되는 변수야. 그는 게일을 만난다면 결코 외면하지 않을 성격이니까.’
정의감이 넘치고 특유의 오지랖이 넓은 카렌이 게일을 죽게 놔 둘 가능성은 없었다.
그렇다면 퀘스트는 실패였다.
‘퀘스트를 실패하더라도 게일을 구출할 수만 있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상관없다. 하지만…… 만약 카렌이 고르란의 부활을 막는 과정에서 게일이 죽는다면?’
나는 오히려 카렌 때문에 게일이 죽을 가능성이 높다고 느꼈다.
게일은 고르란에게 바치기 위한 제물이었다.
카렌이라는 강력한 강자를 상대하기 위해, 게일의 마나를 더 빨리 뽑아내려고 시도할 수 있었다.
“앞으로 이십칠 일인가.”
하루하루 시간은 줄어들었다.
나는 카렌이 고르란의 부활을 막는 과정을 몇 번이나 점검하면서 오크 군단에 관한 정보를 골라내기 위하여 기억을 더듬었다.
양피지에는 벌써 같은 말만 열 번도 넘게 썼다.
‘뭐가 있을까…… 아무리 S급 난이도의 퀘스트라도 분명히 해결할 수 있기 때문에 나왔을 것이다. 어렵다 해도 길은 있을 거야.’
나는 만년필을 내려놓았다.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을 쥐어짜내어 보았자 시간만 낭비할 것 같았기 때문에 편안하게 마음을 먹고 자리에 누웠다.
부담을 갖지 않고 천천히 생각하면 뭐라도 떠오를 것 같았으니까.
누워서 눈을 감고 나는 내가 처음 영웅 카렌을 집필하기 시작했을 때를 떠올렸다.
소설의 내용이 아니라, 집필 당시를 떠올려보았다.
참 힘든 시간이었지만 글을 쓴다는 자체가 즐거웠다.
‘주인공처럼 되고 싶었지. 모든 일이 술술 풀리고, 주위에 사람들이 모여들고…… 악의 세력을 물리치고 칭송을 받아 영웅이 되고…….’
그 순간 나도 모르게 몸을 벌떡 일으켰다.
“숨겨진 동굴!”
카렌이 고르란의 부활을 막을 수 있었던 결정적인 이유가 이제야 떠올랐다.
왜 몰랐을까.
현재 카렌은 대륙에서 명성이 아예 없는 상태였다.
이제 막 강해지기 시작하는 시기였고, 그에 맞춰 나는 가장 먼저 그에게 약간의 명성과 평생 사용할 검을 주기 위하여 여러 설정들을 고민할 때였다.
소설 내용이 아니라 집필 시기 당시 내가 어떤 생각을 했는지 고민하니 자연스레 떠올랐다.
“카렌은 아직 단독으로 고르란을 죽일 수 없는 수준이었어. 그래서 부활을 막는 것으로 설정한 거고, 당연히 오크 군단과의 정면 대결이 힘드니 나는 뒷길을 통해 고르란의 부활을 막고 당황한 오크 왕을 카렌이 새로 얻은 검을 통해 죽인다고 썼다.”
핵심 요소가 생각나자 나머지 상황들이 우수수 떨어지듯 머릿속에 입력되었다.
나는 곧바로 다시 양피지 묶음 앞에 앉아 생각나는 모든 것들을 적었다.
‘이 퀘스트……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
* * *
다음 날 아침, 나는 리오덴과 데이비드를 일찍부터 찾았다.
“전하, 찾으셨습니까?”
데이비드의 말에 나는 펼쳐져 있는 지도를 보면서 말했다.
“죽음의 폭포가 여기라고 그랬나?”
데이비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여기가 오크 군단 본진이고?”
“그렇습니다.”
나는 리오덴에게 시선을 돌렸다.
“게일이 오크들에게 잡혀 간 것은 거의 틀림없는 사실이지?”
“그렇습니다. 서쪽 숲까지 오크들에게 끌려왔습니다. 그리고 서쪽 숲에서 저희는 오크들을 만났죠.”
데이비드가 오크들의 동선을 예측했다.
“이들은 게일을 이끌고 여기서 서쪽 숲으로 들어온 이후 어둠의 숲 남부 줄기와 이어지는 이 산맥을 넘었을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서쪽 숲 북부와 어둠의 숲 남부가 이어지는 산맥 줄기가 있었다.
“이 경로는 군단 본진으로 우회하는 길인데 오크들이 굳이 이렇게 이동한 이유는 무엇일까?”
내 궁금증에 데이비드가 말을 이었다.
“아마도 요정들을 의식한 것은 아닐까요?”
“요정들?”
데이비드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게일 기사님처럼 요정들한테서도 마나를 뽑으려고…….”
나는 아, 하고 탄성을 터뜨렸다.
‘고르란에게 필요한 건 강대한 마나…… 그들은 게일만이 아니라 요정들도 노렸다.’
나는 결정을 내렸다.
“오크들의 예상 경로를 따라 어둠의 숲으로 진입한 뒤 우리는 죽음의 폭포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