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the Son of the Final Boss RAW novel - chapter (69)
최종 보스의 아들이 되었다-69화(69/278)
69화.
오늘의 아침은 어제와는 달랐다.
나는 바람의 호흡법으로 맑은 공기와 마나를 흡수하면서 빙긋 웃었다.
정령들은 부르지도 않았는데 모습을 드러냈다.
거대한 바람의 늑대 실울펜은 내 옆에 앉아 크게 하품을 터트렸다.
실프들은 날아다녔고, 샐러멘더와 운디네는 실울펜 머리 위에 앉아 장난을 치고 있었다.
하급 정령들이 바람의 털을 건드리는 게 귀찮은 듯 실울펜이 얼굴을 찌푸렸다.
실페레와 운다이론, 그리고 피닉스는 노움이 땅을 들썩이는 것을 유심히 쳐다보았다.
정령들의 모습을 보니 절로 마음이 평안해졌다.
-주인께서는 아이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십시오.
실울펜의 굵직한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시선이 돌아갔다.
“뭐라고?”
기사들 눈동자가 일제히 모였다.
나는 손을 저으며 말했다.
“아니다. 정리를 마저 하도록. 요정들이 괜스레 이런 것들로 시비를 걸면 앞으로의 일에 골치가 될지도 모르니까.”
서쪽 숲은 요정들이 끔찍하게 아끼니 괜스레 트집 잡힐 이유가 없었다.
더구나 그들은 이미 우리와 한 번 마주치지 않았는가.
-주인, 자연스럽게 하고 싶은 말을 떠올리시면 됩니다.
실울펜의 조언을 나는 곧바로 받아들였다.
‘음…… 그게…… 이런 식인가?’
어렵지는 않았다. 정령들과는 이미 의식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무척이나 쉬웠다.
-역시…… 주인께서는 과연.
실울펜은 길게 말을 잇지 않았다.
나는 곧바로 물었다.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라는 건 무슨 뜻이지?’
내 질문에 실울펜이 일어나 하급 정령들을 잠시 쫓아냈다.
샐러멘더는 불만스러운 얼굴로 실울펜을 쳐다보았지만, 실울펜은 나를 향해 조언을 이어나갔다.
-정령들은 중간계로 소환되면서 온전히 힘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위대한 정령사들은 정령들의 힘을 중간계에서도 온전히 발휘하게 함으로써 명성을 드높였죠.
상급 정령이라서 그런 것일까?
확실히 실울펜은 다른 정령들과 달랐다.
-고대로부터 정령들을 친구로 여긴 사람은 많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주인께서는 다르시죠.
나는 정령사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친화력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정령들과의 친화력은 타고나는 것도 있지만, 정령과 계약했을 때 정령을 어떻게 여기느냐에 따라 달라졌다.
정령은 부리는 게 아니라 함께하는 것이다.
실울펜은 그 부분을 언급하고 있었다.
-태초의 맹약을 따르는 자, 그렇게 불린 이들은 주인이 처음은 아닙니다. 태초의 맹약을 따르고 위대한 정령사의 길을 끝까지 간 자는 단 한 명도 없습니다. 중간계의 정령 수호자라 불리는 요정들도 마찬가지였죠.
나는 눈동자를 동그랗게 떴다.
‘요정 중에서도?’
-그렇습니다. 요정이 정령을 존중하는 것은 사실이나, 정령을 그저 능력 중 하나로 여기는 것은 마찬가지였습니다.
‘정령을 진정으로 존중하고 함께해야 위대한 정령사의 길을 끝까지 걸을 수 있다는 뜻이군?’
-그렇습니다. 주인이시여. 현재 주인께서는 잘하고 계시지만, 힘이 커질수록 정령들을 좀 더 쉽고 효율적으로 부리는 것에만 집중하시게 될 수도 있습니다.
나는 실울펜의 조언을 가슴에 새겼다.
‘변하지 않도록 노력하지.’
실울펜이 빙긋 웃었다.
-계약을 맺은 정령들은 중간계에 머무는 시간이 길수록 좀 더 본연의 힘을 발휘할 수 있게 됩니다. 같은 정령이라 하더라도, 이제 막 계약을 맺은 정령과 오랫동안 정령사와 함께 중간계를 누빈 정령의 힘은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보고 싶을 때마다 자주 불러야겠군. 계속 같이 다녀도 되고. 소환만으로는 마나가 많이 드는 것도 아니니.’
이내 나는 웃으며 실울펜에게 물었다.
‘그건 실울펜도 마찬가지겠지?’
-물론입니다, 주인이시여.
중급 정령까지는 마나가 허용하면 여러 정령들과 계약을 맺을 수 있지만 상급 정령부터는 달랐다.
오직 하나의 정령과만 계약을 맺을 수 있었다.
즉, 지금 내 눈 앞에 있는 실울펜 이외에 다른 실울펜과 계약을 맺을 수는 없었다.
그건 바람의 정령만이 아니라 다른 속성의 정령과도 마찬가지였다.
‘그…… 내가 실울펜 등 뒤에 타고 가는 건 불가능하겠지?’
실울펜은 대답 대신 슬쩍 고개를 돌렸다.
분명 가능한 것 같은데 실울펜이 탐탁지 않은 모양이었다.
‘친화력과 진짜 친해지는 건 다른 이야기니까. 시간을 두고 기다리지.’
질풍도 천하의 명마이지만, 실울펜은 말 그대로 바람이다. 바람을 타고 달리는 기분은 왠지 포기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나는 실울펜과의 대화를 마무리한 뒤 데이비드와 리오덴을 불렀다.
정령들은 여전히 뛰노는 상태였다.
“정령들이 활기차 보이는군요.”
리오덴의 말에 나는 옅게 웃었다.
“수련의 일종이라 생각하면 돼.”
“그렇군요.”
데이비드가 입을 열었다.
“이제 출발하시죠, 전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오늘부터는 길이 바쁠 것이니까.”
죽음의 폭포까지는 최대한 오크들과 마주치지 않는 경로를 설정했다.
물론 그건 나와 기사들의 바램이었고, 실제로는 어떻게 될지 몰랐다.
그 부분을 데이비드가 짚었다.
“오크들을 모두 피하기란 불가능할 겁니다.”
“최대한 빨리 움직여야겠지. 오크 왕이 우리를 신경 쓸 것 같지는 않지만…… 그 전에 서부가 뚫릴 수도 있으니까.”
내 걱정에 리오덴이 고개를 저었다.
“전하, 애트란과 리버힐 가문의 정예들이 있지 않습니까. 전하를 잡으려면 일단 서부부터 막아야겠죠.”
리오덴의 말에 나는 진하게 웃었다.
“지금쯤이면 꽤 짜증이 올라와 있겠군.”
* * *
람은 진한 와인향을 음미하고 있었다.
반대편에 앉아 있는 톰슨이 불만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태평하군. 애트란 가문은 머저리 황태자 뒤치닥거리나 하자고 이곳에 온 모양이지?”
람이 잔을 내려놓았다.
“톰슨, 네가 떠드는 건 관심이 없지만 말을 가려서 떠들어라. 목이 남아 있어야 가벼운 입이라도 계속 놀리지.”
톰슨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뭐라고?”
“머저리 황태자한테 조롱을 당한 건 나만이 아니라 자네도 마찬가지이야.”
톰슨이 와인잔을 집어 던졌다.
“그래. 그 빌어먹을 새끼 꽁무니를 쫓아 서부까지 왔는데…… 밤중에 어디론가 갔다라! 총사령관 자리는 마이크 후작한테 임시로 내놓고 말이지.”
톰슨의 눈동자에 살기가 물들었다.
성격이 급하고 포악하지만 톰슨 역시 리버힐 가문의 일원이었으며 고위 마법사였다.
앞뒤를 분간하지 못할 정도로 톰슨은 바보가 아니었다.
“제대로 당했어. 여기서 돌아가면 황제의 명을 거역하게 되는 것이지. 그렇다고 마이크 후작의 명령도 미온하게 따를 수 없지. 마이크 후작 역시 황제가 임명한 사령관이니까.”
람은 와인을 마시며 고개를 끄덕였다.
‘머저리라고 생각했는데…… 수가 있었다는 말이지.’
람이 톰슨에게 말했다.
“황태자는 돌아올 수밖에 없어. 그는 여기서 공을 세우지 않으면 황도로 돌아갈 수가 없거든.”
“황태자는 어차피 황도로 돌아가지 못해.”
톰슨의 단호한 말에 람은 미약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톰슨의 말이 이어졌다.
“애트란과 함께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 가주님들 생각이 오랜만에 일치하셨으니 마음에 들지 않아도 당분간은 자네와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밖에.”
람이 다시 한 번 경고했다.
“말을 가려서 하는 건 잊지 말고.”
“황태자 때문에 잠시 흥분했을 뿐이야.”
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람 역시 리버힐 가문과 연대하는 게 반갑지 않았다.
태어날 때부터 리버힐 가문의 일원은 모두 경쟁자였고, 반드시 제거해야 될 상대였다.
그러나 때로는 그런 적들과도 함께 할 필요가 있었다.
‘가주께서는 기회를 보아서 톰슨도 제거하시기를 바라셨지만…… 황태자만 제거해도 남는 장사가 되겠어.’
람은 톰슨과 다르게 아룬을 높게 평가했다.
출발하기 전에는 톰슨과 아룬에 대한 생각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서부에 온 뒤 람은 아룬에 대한 평가를 바꾸었다.
‘우리가 따라온 목적을 알고 있는 게 분명해. 톰슨 말처럼 황태자는 어차피 이곳으로 돌아오게 되어 있다. 밖으로 나간 목적이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람은 이미 마이크 후작과 만나 보았다.
마이크 후작이 하는 말은 간단했다.
-사령관으로서 최선을 다하겠다.
그 말은 곧 애트란 가문과 리버힐 가문의 정예를 제대로 사용하겠다는 뜻이었다.
‘황태자는 이미 마이크 후작을 자신의 신하로서 얻었다. 완전한 충성은 아닐지 몰라도…… 최소한 서부 방어에 있어 두 거대 가문의 일원인 우리에게 휘둘리지 않고 우리의 힘을 제대로 사용하겠다는 뜻은 분명하게 전해주었어.’
람은 마이크 후작도 만만치 않은 사람이라고 느꼈지만 분명 아룬과 교감이 있다고 짐작했다.
‘아마도 황제의 권위를 이용했겠지. 뭐…… 그건 중요한 게 아니야.’
생각을 정리한 람이 입을 열었다.
“아마 조만간 오크들이 몰려올 거야. 적어도 우리 두 가문은 황태자가 돌아올 때까지 단 한 명도 희생되어서는 안 돼.”
“물론이지.”
톰슨도 람의 말에 동의했다.
“전력을 그대로 보존하고 황태자를 제거할 때까지는 가주님들 말씀을 충실히 따르기로 하지. 그 이후에는 뭐.”
람이 말끝을 흐리자 톰슨은 새로운 와인잔에 와인을 채우면서 말했다.
“그 이후에도 가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있지. 베레곤 공작께서도 마찬가지 아니신가.”
람은 대답하지 않았다.
* * *
“족히 수만 마리가 넘는 것 같습니다.”
리오덴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서쪽 숲을 벗어나 어둠의 숲 남부로 향하자마자 우리는 거대한 오크 군단과 마주쳤다.
다행히 오크들은 우리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했다.
서쪽 숲 북부와 어둠의 숲 남부가 이어지는 산맥 줄기에서 우리는 제국의 서부로 향하는 오크 행렬을 보고 있었다.
“마이크 후작이…… 쉽지 않겠군.”
내 말을 데이비드가 거들었다.
“전력 보강이 있었다고 하지만 저 정도로 오크가 많다면…….”
리오덴은 그래도 희망을 말했다.
“마법사들이 있지 않습니까? 그들은 수성에 큰 역할을 하지만 대량 학살에도 능합니다.”
나는 오크들이 입고 있는 갑옷을 가리켰다.
“저들이 입고 있는 철제 갑옷들…… 광범위 마법 정도는 충분히 막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정령사가 된 이후 나는 몽골인보다 시력이 훨씬 더 좋아졌다.
오크들이 입고 있는 갑옷은 물론이거니와, 선두에 있는 오크 술사들도 보였다.
“오크 술사들 역시 만만치 않을 거야.”
나는 마냥 절망만을 말하지 않았다.
“마이크 후작은 명장이니 잘 막아낼 거다. 최대한 빨리 작전을 마치고 돌아가자.”
우리는 오크 군단들이 서부로 향하는 것을 뒤로하고 길을 서둘렀다.
“그나마 저들이 본격적으로 공격을 시작한 것 같으니 군단 근처에는 경계가 적을 확률이 높습니다.”
데이비드의 짐작에 나도 동감했다.
“아마도. 죽음의 폭포까지는 얼마나 걸리지?”
내 말에 길을 잡고 있는 리오덴이 대답했다.
“족히 이틀은 가야 합니다.”
지도로 볼 때는 멀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이틀이나 쭉 달려야 한다니 생각보다 거리가 멀었다.
나는 길을 서둘렀다.
“가자.”
물론 내 근처에는 모두 정령들이 함께 따라오고 있었다.
실울펜의 조언을 들은 후에는 항상 정령들을 소환하고 있는 상태였다.
마나가 지속적으로 소모되고 있었지만, 간간이 바람의 호흡법에 집중하여 마나를 다시 채웠다.
‘게일을 구하기 전에 상급 정령사가 되면 좋겠지. 그리고 기회를 보아서 고대의 검, 네프리제도 얻으면 좋고.’
카렌이 이미 얻었을지도 몰랐다.
나는 한 가지 경우의 수가 번뜩 머릿속을 스쳤다.
‘어쩌면…… 죽음의 폭포 근처에서 영웅 카렌을 만날지도 모르겠군.’
주인공을 만난다라, 나도 모르게 머릿속이 복잡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