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the Son of the Final Boss RAW novel - chapter (88)
최종 보스의 아들이 되었다-88화(88/278)
88화.
새벽부터 보급품을 정리했다.
켄, 톰슨, 람이 각각 마법 주머니 하나씩 차지했다.
켄의 마법 주머니에는 톰슨으로부터 지원받은 아이템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톰슨이 자네가 원한 아이템들은 모두 넘겼나?”
“네. 오히려 내주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몇 개의 아이템도 넘겼습니다.”
켄의 대답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해가 뜨려면 멀게만 느껴지는 새벽에 성 안은 무척이나 분주했다.
나는 이미 모든 준비를 마쳤고, 톰슨의 마법사들도 준비가 끝난 모양이었다.
애트란 기사들까지 원정 준비를 마친 뒤 서부 영주들과 마이크 후작이 모습을 드러냈다.
“사령관님.”
“또 무거운 책무를 맡기게 되어 마음이 좋지 못합니다. 하지만 후작님을 믿고, 이 전쟁을 끝내기 위하여 반드시 필요한 일이기에 원정대를 꾸린 것이니 부디 후작님께서는 넓은 마음으로 이해해주십시오.”
나의 말에 마이크 후작은 한쪽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이곳에서 방어를 하는 것보다 악의 종자를 죽이는 일이 훨씬 위험합니다. 그럼에도 전하께서 원정대 대장을 맡으셨으니 저를 포함한 서부의 모든 영주들, 백성들은 전하의 은혜를 평생 가슴에 새길 것입니다.”
“나는 이 나라의 황태자로서, 또 서부의 사령관으로서 나의 책임을 다할 뿐입니다.”
마이크 후작의 어깨를 두드리며 격려한 뒤 나는 길을 나섰다.
리오덴은 이제 선두가 익숙한 듯 앞으로 나섰다.
람과 톰슨과도 눈빛을 주고받았다.
일단 고르란의 부활을 막기 위해서는 그 둘의 힘이 필요했다.
‘고르란을 죽인 이후 곧바로 적으로 돌아설지도 모르지만…… 그 전까지는 협력하는 게 중요하다.’
게일이라는 든든한 아군이 있었지만, 어둠의 숲에는 변수가 너무 많았다.
스켈레톤, 듀라한, 리치를 비롯한 언데드와 그 숫자를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오크, 폐허의 지배자 와이번 역시 무시하기 힘든 변수였다.
그 모든 방해물들을 뚫고 고르란을 죽이기 위해서는 게일 한 명만의 힘으로는 당연히 부족했다.
‘그래도 든든한 건 사실이지.’
켄의 작전을 실행하기로 과감하게 결정할 수 있었던 이유 역시 게일이 소드 마스터이기 때문이었다.
‘정말 다행이야.’
어느새 성문이 보였다.
우리는 오크들이 진을 치고 있는 곳을 우회하여 어둠의 숲으로 들어갈 작정이었다.
지난번 원정은 은밀하게 성문을 나왔지만 이번에는 영주들과 병사들의 배웅을 받고 성문을 나왔다.
마이크 후작의 말이 과장은 아니었다.
병사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나를 신뢰하고 감사하는 느낌이 깃들어 있었다.
그들은 일제히 나와 원정대를 향해 경례를 붙이고 고개를 숙였다.
이 길이 얼마나 위험한지, 병사들 역시 잘 알고 있었다.
나는 잠시 손을 흔들어 준 뒤 길을 잡았다.
오크들이 진을 치고 있는 곳을 우회하여 어둠의 숲으로 들어갈 요량이었다.
“전하, 지난번과는 길이 달라 서둘러야 합니다. 요정의 숲 북쪽을 통해 들어가는 길이 가장 최단 거리인데 그 길을 선택하지 않았으니 어둠의 숲 진입에만 족히 하루는 더 걸릴 것입니다.”
리오덴의 대답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가지.”
리오덴이 길을 잡기 위하여 가장 앞으로 나섰고, 나는 게일과 함께 대열 중앙에 위치했다. 마법사들도 마찬가지였다.
보통 마법사들은 이런 대열에서 가장 안전한 중앙에 위치하는 것이 기본이었다.
선두는 길을 안내하는 자와 임기응변에 뛰어난 기사들로 구성했으며 후미는 방어가 단단한 기사들이 주를 이루었다.
리오덴이 본격적으로 속도를 내자 나 역시 스킬을 펼치면서 따라갔다.
마법사들 역시 마법을 펼치며 속도를 끌어올렸다.
지금부터는 성벽이 없으니까.
언제 어디서 위험에 노출될지 모르는 상황에 다들 긴장한 것 같았다.
그나마 리오덴을 비롯하여 나와 함께했던 기사들은 확실히 표정부터 달랐다.
한번 다녀온 경험은 고스란히 자산이 되었고 자신감의 밑바탕으로 작용했다.
다른 이들보다 한결 여유가 있었다.
‘그나저나 마법사 열 명이라…….’
톰슨의 의도가 눈에 훤한 제안이었지만 나는 굳이 거부하지 않았다.
마법사가 한 명이라도 더 있다면 좋은 일이니까.
‘아마도 자신들의 전력을 한 명이라도 더 늘리려고 한 거겠지. 고르란을 죽인 이후 나마저 전사시킬 생각이니까. 게일의 존재가 없었다면 몰라도 게일이 있으니 저들로서도 꽤 불안한 모양이군.’
하나의 원정대였지만 각자의 생각은 모두 달랐다.
서로가 적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잠시 협력하는 이 상황은 어딘지 모르게 웃겼다.
그사이 해가 떠올랐다.
성 밖에서 진을 치고 있던 오크들에게는 들키지 않고 잘 우회할 수 있었다.
이제는 서서히 어둠의 숲 끝자락이 눈에 보일 때쯤, 리오덴이 걸음을 멈췄다.
“잠시 쉬었다 가겠습니다.”
원정대 일정은 모두 리오덴과 켄에게 맡겼다.
리오덴이 쉬자면 쉬는 것이었고 다시 출발하자면 출발하기로 결정했다.
그 부분에서는 람과 톰슨도 별 말 없이 수긍했다.
아침 겸 점심을 위하여 분주한 준비가 시작되었다.
람을 비롯한 애트란 기사들, 톰슨과 마법사들은 밖에서 먹는 밥이 마땅치 않은 듯 표정이 좋지 않았다.
나는 람과 톰슨에게 다가가 말했다.
“먹을 수 있을 때 잘 먹어 두도록 해라. 어둠의 숲에 들어가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까. 언제나 최상의 몸 상태를 유지하는 건 기본이지 않은가.”
* * *
점심을 해결하고 노을이 질 때까지 나는 말없이 달렸다.
물론 실울펜과 이그니스, 중급 정령들까지 소환한 상태였다.
정령들과 함께 달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수련이 되었다.
어둠의 숲이 점차 가까워질 무렵 나는 정령들을 잠시 돌려보내고 바람의 호흡법을 운용하면서 마나 홀을 꽉 채웠다.
“근처에 야영지를 찾아보겠습니다.”
리오덴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리오덴이 몇 명의 기사들을 뽑아 수색에 나섰고, 나와 나머지 사람들은 잠시 대기했다.
리오덴은 금세 돌아왔다.
야영지는 멀지 않았다.
“확실히 서쪽 숲 북단에서 진입하는 거랑 길이 많이 다르군.”
내 말에 리오덴이 고개를 끄덕였다.
리오덴, 데이비드를 비롯한 기사들은 익숙한 듯 야영을 준비하기 시작했고, 애트란 기사들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전하.”
람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무슨 일이지?”
“어둠의 숲 입구까지는 무사히 왔는데 아마도 안으로 들어가면 전투가 시작되겠죠. 오크들을 아예 피할 순 없을 것 같으니 말입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딱히 특별한 정보는 아니었고 모두가 예상하고 있었다.
“악의 종자는 오크 군단 본진 근처 어딘가에 있는 것으로 추정되니 오크와의 전투는 피할 수 없지. 아마 어둠의 숲에 서식하는 몬스터들도 제법 많이 만날 거야.”
“우리 애트란 기사단은 제국 최고의 기사단입니다.”
“알고 있어.”
굳이 말하지 않아도 잘 알고 있는데, 무슨 목적으로 말하는 것일까?
람이 말을 이었다.
“하지만 경험이 부족합니다. 인간이 아닌 존재와 싸우는 경험.”
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
더 말해보라는 듯한 나의 표정에 람은 잠시 숨을 골랐다.
“가주와 함께 전장을 누빈 기사들이지만 그 상대는 언제나 같은 인간이었습니다.”
나는 람의 말을 정리했다.
“전장에는 익숙하지만 변수가 많은 이런 작전에는 익숙하지가 않다?”
“그렇습니다.”
“그래서 경험자들을 원정대에 포함 시킨 것이고 나 역시 직접 나온 거잖아.”
“톰슨의 마법사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하고자 하는 말이 무엇인가?”
“전하와 휘하 기사들이 그 점을 헤아려 주시면 감사하겠다는 뜻이었습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별것도 아닌 말이었지만, 람은 나름대로 자존심을 죽이고 하는 말 같았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하지 않아도 돼. 충분히 감안하고 있으니까. 경험은 부족하지만 자네 말대로 애트란 기사들은 최고의 기사들이니 충분히 잘해낼 수 있으리라 믿어.”
“감사합니다, 전하.”
람이 고개를 숙인 뒤 물러났다.
켄이 다가왔다.
“람은 역시 계산적인 사람이군요.”
켄의 말에 내가 물었다.
“왜?”
“아무것도 아닌 말인 듯 전하에게 부탁을 하면서 의도적으로 자신과 애트란 기사들을 살짝 낮췄습니다. 아마도 람은 지속적으로 저런 형식의 대화를 전하와 나눌 겁니다.”
켄이 설명을 이어나갔다.
“그런 대화들이 쌓이면 어느 순간 상대를 보호해 줘야 되는 존재로 인식하게 됩니다. 의식하지 않아도 저절로 방심하게 되죠.”
나는 켄의 말을 이해했다.
“마치 자신을 약자처럼 포장하여 결정적인 순간 내 방심을 노리겠다는 뜻이군?”
켄이 동의했다.
“네.”
나는 피식 웃었다.
일종의 심리전이라 할 수 있는데 솔직히 잘 통하지 않을 것 같았다.
내가 칼페온 제국에서 태어나 황태자로 쭉 살았다면 모를까, 나는 얼마 전에 칼페온 제국에 온 사람이었다.
‘나는 항상 약자였다. 칼페온 제국에 온 이후에는 목숨마저 위협받는 처지가 되었지. 그런 나에게 약자 코스프레라?’
켄은 내가 람을 만만히 본다고 생각하는 모양인 듯 다시 입을 열었다.
“인간의 마음은 간사하고 갈대와 같습니다. 심리전은 가볍게 여길 작전이 아니죠.”
“켄, 난 언제나 약자였어.”
켄이 잠자코 내 말을 들었다.
“황태자로서 무능했고, 마음을 고쳐먹은 뒤에는 늘 생존을 위해 싸워왔지. 내가 이 원정에 나선 근본적인 이유가 무엇이라 생각하나?”
켄의 대답이 있기 전에 내가 먼저 대답했다.
“황태자로서 살아남기 위해서야. 제국민들을 위해서, 악을 물리치기 위해서? 그런 거창한 명분은 솔직히 내게 없네. 그건 나를 위한 포장에 불과하지. 자네가 옆에서 지켜보았으니 가장 잘 알겠지. 내가 서부에 온 목적은 어디까지나 내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라는 사실을.”
켄이 실망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솔직하지 않으면 나를 주군이라 부르는 이들을 진정으로 따르게 만들 수 없었다.
“아직 나는 원대한 이상을 위해 달려나갈 때가 아니라 생존을 위해 발버둥칠 때야. 이상은 생존을 확보한 이후에 꿈꿔도 늦지 않지. 여전히 나는 한 줌의 세력도 없는 사람이잖아. 그나마 이제야 겨우 조금씩 사람을 모으고 있는 실정이고.”
켄이 입을 뗐다.
“네, 전하.”
“난 방심할 수 없어. 방심도 어느 정도 힘이 있어야 하는 법이지. 방심을 하기에는 저들은 여전히 악의에 찬 강자이니까.”
나는 람과 톰슨을 가리켰다.
켄이 빙그레 웃었다.
나는 켄에게 슬쩍 물었다.
“실망했나? 함께 이상을 꿈꾸자며 자네의 충성을 받았는데 내가 생존 운운하고 있으니까?”
“아닙니다. 당장 제국이 어떻고, 황제의 자리를 위해서는 어떻고 하셨다면 제 머리는 더 아프겠죠. 자신의 처지를 모르는 주군을 모시는 건 힘든 일이니까. 자신을 정확하게 아는 사람은 더 빨리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켄의 순화한 표현에 나는 직설적으로 말해주었다.
“내 주제는 내가 아주 잘 알지.”
켄과 함께 웃었다.
“작업이 모두 끝난 모양이군요. 어둠의 숲에서의 첫날, 일단 오늘은 무사히 넘어갔지만 내일부터는 꽤 긴장해야 될 것 같습니다.”
켄은 주위를 살펴보았다.
이미 해는 졌다.
나는 피닉스와 샐러멘더로 곳곳에 불을 밝히는 데 도움을 주었다.
크르르릉!
“이거 뭐, 말이 끝나기가 무섭네요.”
야영지는 순식간에 분주해졌다.
“오크는 아닌 것 같고.”
오크는 저런 울음소리를 내지 않는다.
점차 살기가 가까워졌다.
꽤나 큰 존재감이었는데, 숫자는 그렇게 많지는 않은 것 같았다.
곧 소리의 정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크르르릉!
늑대들이었다.
숫자가 별로 없다는 건 나의 착각이었다.
그들은 마치 하나처럼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살기마저 한 마리가 내뿜는 듯 일치했다.
족히 수백 마리가 넘어 보이는 늑대였다.
“뼈밖에 없는 늑대는 또 처음입니다.”
켄의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