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the Son of the Final Boss RAW novel - chapter (99)
최종 보스의 아들이 되었다-99화(99/278)
99화.
헤밀튼 남작이 내 막사를 찾았다.
서부 영주들 대부분이 그을린 구릿빛 피부에 단단한 근육질의 몸매였는데, 헤밀튼은 그중에서도 특별했다.
건강하게 그을린 구릿빛 피부야 다른 영주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갑옷조차 터질 듯한 근육은 여러 영주들 중에서도 단연 압도적이었다.
다소 둔해 보일 정도로 커다란 근육질 몸매였는데 맡은 역할은 기동력이 중요한 정찰대였다.
‘겉모습만으로 기사를 판단하는 건 바보 같은 일이라지만.’
“그쪽에 앉게.”
나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는 존대를 사용하지만, 개인적인 만남에서는 편안하게 말했다.
‘그러고 보니 이제 겨우 성년식을 앞둔 나이잖아?’
나는 내가 서른이라고 인식하는 경우가 많았다. 열일곱이라는 나이가 당최 적응이 되지 않았지만, 칼페온 제국은 성년식을 치른 남자는 결혼을 하고 아이를 보는 나이이니 내가 살던 현대의 삼십 대와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쓸데없는 생각은 접어두고 나는 헤밀튼 남작에게 차를 한 잔 권했다.
“감사합니다.”
헤밀튼 남작은 꾸벅 고개를 숙였다.
서부 영주들은 이미 나를 매우 높게 평가하는 중이었고, 충성 맹세까지 했으니 내 수하라 생각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말을 굳이 빙빙 돌려서 하지 않았다.
“서부 영주 중 유일하게 세습 귀족이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
서부 영주들 한 명, 한 명에 대하여 자세히 알고 있지 못했다. 영주들은 물경 마흔 명이 넘었고, 마이크 후작에 관한 정보를 머릿속에 새기는 것만 하더라도 상당히 힘들었으니까.
사람 한 명에 관한 정보의 양은 방대한 법이었고, 서부 영주 중 가장 중요한 건 당연히 마이크 후작이었다.
다른 영주들은 대충 특이한 점 몇 가지만 알고 있을 뿐, 아는 게 없었다.
헤밀튼 남작을 기억하는 건 그가 세습 귀족이 아니라는 사실과 유난히도 큰 덩치를 자랑하기 때문이었다.
“그렇습니다. 지난 1차 통일 전쟁 당시 작은 공을 세워 폐하로부터 남작 직위와 영지를 하사받았습니다.”
“아바마마께서 귀족 작위를 하사하실 정도면 결코 작은 공이 아니었던 모양인데?”
나의 추측은 론 칼 레오드라는 사람을 잘 알고 있으니 할 수 있는 추측이었다.
아버지는 누구보다 공과 사가 명확하고 논공이 정확하신 분이니, 귀족이 아닌 사람에게 귀족 작위를 주었다면 큰 공을 세웠을 게 분명했다.
“맡았던 임무에 충실했습니다.”
나는 헤밀튼의 전공은 나중에 알아보기로 결정한 뒤 부른 이유부터 말해주었다.
“오크들의 정확한 전력부터 파악해야 되겠어.”
“본진 안까지 정찰을 해야 된다는 뜻입니까?”
헤밀튼이 정확하게 알아듣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정령들로 알아볼 생각도 했지만 아무래도 거리에 한계가 있어. 직접 본진 안으로 침투해야 될 것 같아.”
무척이나 위험한 요구였다.
정령으로 정찰하면 최악의 상황은 정령계로 역소환당하는 것이다. 사람이 직접 정찰을 하다 들키면? 죽을 수도 있었다.
어쩌면 부당한 요구처럼 비칠 가능성이 농후했다.
그럼에도 나는 별다른 내색 없이 헤밀튼에게 명령을 내렸다.
“오크 왕이 도착했는지, 진영 어디에 있는지 그리고 오크 술사는 얼마나 있는지 파악했으면 좋겠다.”
헤밀튼도 표정 변화가 없었다.
그저 짧게 고개만 숙였다.
“네. 이틀 정도 걸릴 것 같습니다.”
“더 오래 걸려도 좋으니 누구의 희생도 없이 정찰에 성공하기를 바란다.”
“네. 전하.”
헤밀튼이 나갔다.
내가 아무런 정보도 없이 헤밀튼 남작에게 무리한 작전을 맡긴 건 아니었다.
내게 작전을 추천한 장본인 마이크 후작이 내 막사를 찾았다.
“아, 후작님 앉으세요.”
연이어 찾아오는 손님에 내 주전자는 계속 마법 난로 위에서 뜨거운 물을 끓이고 있었다.
마이크 후작에게도 차를 대접하면서 나는 헤밀튼 남작에게 맡긴 일에 대하여 말했다.
“후작님이 어제 추천해 주신 대로 헤밀튼 남작에게 정찰 임무를 맡겼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의 정보에 대하여 잘 알지 못해 걱정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솔직히 마음과 같아서는 내가 직접 정령들과 정찰을 도맡고 싶었다.
“내가 직접 정찰을 하면 안전하게 정찰할 수 있습니다.”
마이크 후작이 너그럽게 웃었다.
마치 손자를 타이르듯 마이크 후작의 목소리는 부드러웠다.
“사령관님은 이미 몇 번이나 별동대 활동을 하셨습니다. 눈부신 전공을 세우셨고 악의 종자를 제거하신 건 제국 역사에 남을 정도로 대단한 사건입니다.”
나는 부활하지 못한 고르란을 죽였을 뿐이나, 악의 부활을 막은 일이니 많은 이들에게 의미가 깊었다.
“이제는 전면전만 남았습니다. 전하께서 병사들과 함께 싸우시고 말씀하신 대로 서부에 만연한 기근 문제를 해결하시면 서부는 전하의 든든한 세력이 될 것입니다.”
마이크 후작의 말에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후작님.”
마이크 후작은 단둘이 있어도 존댓말이 저절로 나올 정도로 나이가 많은 사람이었다.
“중앙의 사정은 제가 다른 영주보다 소상히 알고 있습니다. 이 몸이 그래도 십 년 정도 젊었을 때는 폐하와 함께 전장에서 꿈을 펼쳤죠. 하지만 이제 죽을 날이 가까워져 오고 어리숙한 손자의 미래를 생각하면 하나의 줄은 반드시 잡고 있어야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역시 마이크 후작은 단순히 전공만으로 후작에 오른 것은 아니었다.
그도 중앙 정치를 겪을 만큼 겪었고, 그 많은 귀족들을 견제에도 후작에 오른 사람인 것이다.
“전하께서는 이제 눈에 보이는 전공이 필요합니다. 시신이 아니라 직접 오크들을 쓸어버리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호전적인 서부인들의 특성상 전하를 더욱 존경할 것입니다.”
“이거…… 변명은 아니지만 제가 했던 말들은 가식만 들어 있는 건 아닙니다.”
마이크 후작이 빙그레 웃었다.
“가식만으로는 사람들을 감동시킬 순 없습니다. 전하의 진심이 있었기에 서부인들이 전하께 충성을 맹세한 것이지요. 이 늙은이에게도 정치적 계산이 들어가 있지만…… 그 정도는 전하께서도 이해하시리라 믿습니다.”
나도 모르게 하하하, 웃어버렸다.
정말 한 수 배우는 느낌이었다.
내 나름대로 켄의 계획을 통하여 서부인들을 사로잡은 줄 알았는데 마이크 후작의 물밑 작업이 큰 역할을 했었다는 뜻이니까.
“켄 군사는 좋은 인재입니다. 이 늙은이의 계산까지 알고 있는 상태에서 전하께 여러 가지 조언을 한 것입니다.”
“이거, 이거…… 다시 둔재가 된 느낌입니다. 성장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는데 켄과 후작님에 비하면 아직 어린 아이 수준이군요.”
마이크 후작은 차를 한 모금 마신 뒤 말했다.
“전하, 아직은 더 많은 것을 배우실 나이입니다. 오크들을 몰아내고 한동안 서부의 세력을 공고히 한 뒤 황궁으로 돌아가시죠.”
생각지도 못하게 나는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든든한 후원자를 얻었다고 느꼈다.
* * *
헤밀튼 남작이 정찰 준비를 하는 동안 오크들이 성벽 밖으로 진열을 갖췄다.
나는 처음으로 성벽 위에 올라 사령관으로서 전투 지휘를 눈앞에 두고 있었다.
게일과 함께 수성전을 경험했지만, 그때는 그저 몇 번 거드는 것을 끝으로 오랫동안 전투는 하지 않았다.
그 이후 다시 고르란을 죽이기 위하여 떠났기 때문에 지금부터가 정령사 아룬이라는 존재를 서부인들에게 더 확실하게 각인시킬 수 있는 상황이었다.
“오크 왕은 보이지 않는 것 같군.”
내 말에 게일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내심 나는 오크 왕의 행방이 매우 궁금했다.
‘주인인 고르란이 죽었으니 의욕을 잃은 것일까?’
매우 궁금했지만 당장 전투가 눈 앞으로 다가왔으니 나는 굳이 오크 왕에 관해서는 고민하지 않았다.
가장 먼저 이그니스를 불렀다.
화려하고 커다란 화염의 불사조 이그니스.
정확히 불사조라고 할 순 없겠지만 내가 어렸을 때부터 상상하거나 혹은 만화 같은 곳에서 보았던 불사조와 모습이 매우 비슷한 게 바로 이그니스였다.
‘피닉스도 비슷하지만 피닉스는 크기가 작으니까.’
이그니스는 기본적으로 피닉스보다 몸집이 훨씬 컸다. 때에 따라 마나를 많이 공급하면 스스로 그 몸집을 더욱 키울 수도 있었다.
슈우우웅-!
이그니스가 성벽 앞을 나는 모습은 병사들의 사기를 올리기에 충분했다.
소드 마스터도 든든한 존재이지만, 대륙에서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정령사, 그것도 상급 정령사 역시 아군이라면 마음이 편하기 마련이니까.
실울펜도 불러 내 옆에 대기시켰다.
진열을 갖춘 오크들이 서서히 전진하기 시작했다.
지평선까지 꽉 채운 오크들이 성벽을 향해 달려왔다.
“준비!”
마이크 후작이 궁수들을 준비시켰다.
궁수들이 성벽 위에서 일제히 준비했고, 나 역시 이그니스와 실울펜에게 많은 마나를 공급했다.
오크들이 궁수들의 사정거리에 들어 온 순간 마이크 후작이 명령을 내렸고, 나도 그에 맞춰 붉은 바람의 폭풍을 펼쳤다.
-붉은 바람의 폭풍(Lv5)
-바람과 불이 만나 거대한 폭풍을 일으킨다. 두 속성 공격 스킬, 광역 범위 스킬.
현재 내 상태창에 있는 붉은 바람의 폭풍 스킬에 대한 설명이었다.
레벨이 5로 올랐다.
리치와 고르란을 죽인 이후 나는 대량의 경험치를 얻었는데, 스킬 레벨이 많이 올랐고 당연히 캐릭터 레벨도 올랐다.
무엇보다 좋은 건 상급 정령술사 익스퍼트가 되었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다른 상급 정령사 익스퍼트보다 훨씬 강하다고 자부할 수 있었다.
당장 실울펜과 이그니스가 그 사실을 증명했다.
푸슉-! 푸슉-!
셀 수 없는 화살을 맞으면서도 오크들은 멈추지 않고 전진하고 있었다. 그들의 두꺼운 가죽은 강한 서부의 궁수들의 활로도 뚫을 수 없었다.
탁-! 탁-!
일부는 성벽에 사다리를 놓았고, 또 일부는 성문을 거대한 통나무로 마구 찍기 시작했다.
쾅-!
그리고 내 옆에 있던 실울펜이 성벽에서 뛰어 올랐다.
동시에 이그니스가 수직으로 하강하면서 두 정령이 공중에서 만났다.
고오오오오오오-!
성벽 앞 공중에서부터 불기 시작한 바람은 이내 오크들을 향하여 폭풍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콰아아앙-! 쾅-! 쾅-! 쾅-!
마나 홀에 있는 마나 절반 이상을 사용할 정도로 나는 첫 번째 스킬 구현에 공을 들였다.
이마에는 절로 땀방울이 흘렀다.
콰아아앙-! 쾅-!
끊이지 않는 폭풍은 성벽 아래에 있는 오크들은 물론이거니와 뒤이어 전진하고 있는 오크들마저 덮치고 있었다.
콰아아아아아앙-!
기나긴 스킬 효과가 끝나자 성벽 밑은 오크들의 시신으로 가득했다.
나는 숨을 가볍게 몰아쉬었다.
“후우우우!”
“와아아아아아!”
어마어마한 함성 사이로 마이크 후작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날 이때까지 이토록 강한 위력을 발휘하는 정령사는 두 번째 만나봅니다.”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아바마마겠죠?”
“아닙니다. 황후마마셨습니다.”
나도 모르게 시선이 저절로 마이크 후작에게 돌아갔다.
‘내가 상상한 것보다 마이크 후작은 훨씬 대단한 인물일지도 모르겠어.’
“와아아아아!”
병사들의 함성이 끝났다.
“궁수 준비!”
이번에는 내가 크게 소리를 질렀다.
착-! 착-!
스킬 한 번으로 족히 천 마리가 넘는 오크들을 일시에 쓸어버렸기 때문에 성벽 밑은 순간적으로 텅 빈 듯 보였다.
하지만 오크들의 숫자는 여전히 많았다.
“쏴라!”
기나긴 하루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