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the wolf's only companion RAW novel - Chapter (54)
늑대의 하나뿐인 반려가 되었습니다 54화(54/60)
여리디여린 솔리타리에가 감당하기엔 너무 벅찬 일들이 한가득이었다.
메리는 지금 이 상황의 원흉인 하인리히가 제일 괘씸했다. 자신의 반려라고 모두를 속여 놓고 끝까지 책임을 지긴커녕 다른 반려를 맞이하다니.
“망할 도련님, 우리 리엔 님 앞길은 다 막곤 자긴 아무렇지도 않은 거야?”
메리가 하인리히의 욕을 하는 순간, 닫혀 있었던 방문이 열렸다. 메리는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지만, 바로 멀끔한 얼굴을 했다.
“리엔 님, 피곤하실 텐데 오늘은 일찍 주무시겠어요?”
“아니에요, 찾아볼 게 있어서. 도서관에 좀 가려고요.”
“오늘 점심도 안 드셨는데 간단한 요깃거리라도 가져다드릴까요?”
메리의 계속된 걱정에 솔리타리에는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주시면 감사하죠.”
아무렇지 않게 평상시처럼 방싯방싯 잘 웃는 솔리타리에를 보며 메리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일이 썩 좋게 돌아가진 않았지만, 아직 솔리타리에가 정확하게 모른다면 이 상황을 어떻게든 수습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럼, 저녁은 식당에서 드실 거죠? 아까 오면서 봤는데 마님과 가주님께서 리엔 님을 많이 기다렸다고 하시더라고요. 지금은 바빠 바로 얼굴을 보지 못하지만, 저녁은 함께 먹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말도 전해 주셨어요.”
그 말을 들은 솔리타리에가 굳었다.
어색한 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이는 그녀를 알아차리지 못한 듯, 메리는 솔리타리에에게 계속 히루프스가 얼마나 그녀를 그리워했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그 외에도 제임스 집사장도 리엔 님을 엄청 그리워했을 겁니다. 오며 가며 본 사용인들 또한…….”
메리는 그제야 조용한 공간을 자각하곤 솔리타리에를 바라보았다.
쓴웃음을 짓는 그녀에, 솔리타리에가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아…… 죄송해요.”
“아니에요. 그냥 혼자 생각할 시간이 필요해서 그런데, 전 이만 가 봐도 될까요?”
담담한 솔리타리에의 물음에 메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빙긋 웃으며 솔리타리에는 가볍게 발걸음을 옮겼다. 그 모습이 마치 날아가기 직전의 새처럼 보여 메리의 가슴 한구석에는 불안이 자라났다.
“……별일이 없어야 할 텐데.”
* * *
메리와 헤어진 직후, 솔리타리에는 서둘러 도서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히루프스에서, 하인리히에게서 벗어나기로 다짐한 이상 시간을 지체할 수 없었다. 이전에 정리해 둔 노트를 가져왔다면 좋았겠지만, 그곳에 두고 왔기 때문에 다시 조사해야 했다.
세세하게 기억할 수 없으니 지금이라도 기억하고 있던 것들을 정리해 두는 편이 좋았다.
“하아, 바쁘겠네.”
솔리타리에의 한숨이 공간을 가득 채웠다.
사용인들의 매서운 눈초리도, 차가운 겨울바람도 그녀를 시리게 만들었다. 그 시선이 어찌나 적나라한지, 솔리타리에는 심장이 쿵 내려앉는 것 같았다.
그들의 시선에서 벗어나자마자 솔리타리에는 벽을 잡고 비틀거리는 다리에 힘을 줘야만 했다.
“욱…….”
어찌나 많은 시선이 달라붙었는지, 솔리타리에는 헛구역질을 참을 수 없었다.
아무것도 먹은 게 없었지만, 목구멍을 타고 올라오는 피 맛에 역겨움까지 올라왔다.
“차라리, 차라리 무시하는 게 나아.”
솔리타리에는 눈을 질끈 감으며 중얼거렸다.
얼마 전까지 따스한 시선으로 바라보던 이들의 차갑고 냉한 모습을 볼 바엔, 차라리 레푸스가(家)에 있었을 때처럼 시선을 빨리 돌리고 무시하는 편이 나았다.
이렇게 온몸을 기어다니는 듯한 시선의 연속은 솔리타리에가 견디기엔 버거운 것이었다.
“괜찮아, 나가면 전부 괜찮아질 거야.”
하인리히에 대한 감정을 죽이며 스스로 마음을 다잡는 순간이었다.
솔리타리에를 비추는 햇살에 그녀의 녹빛 눈동자가 찬란히 빛났다. 마치 그 모습은 그녀의 앞길을 응원이라도 하는 것 같았다.
“이전이랑 다르네. 그땐 도련님이랑 같이 있었는데.”
오늘의 햇살은 이전 성인식 날 내리쬐던 햇살과는 조금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잠깐의 침묵.
솔리타리에는 자리를 툭툭 털고 일어나 나아가기 시작했다.
단호한 그녀의 발걸음에 망설임은 존재하지 않았다.
* * *
“이건 아니고. 이것도 아니고.”
도서관에 도착한 솔리타리에는 이전에 생각해 두었던 책들을 모조리 읽어 보고 있었다.
머리를 쥐어 싸매고 있던 그때, 누군가 책을 들어 올리곤 부드러운 목소리로 제목을 읽었다.
“사기당하지 않고 물건을 사는 방법?”
솔리타리에는 화들짝 놀라 등을 돌렸다. 그곳에는 고작 하루 안 본 하인리히가 서 있었다.
그를 봤는데도 아무 말 없이 서 있는 그녀에 하인리히는 멋쩍게 웃으며 인사했다.
“오랜만이야, 솔.”
갑작스럽게 등장한 하인리히에 놀란 솔리타리에는 그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아무 반응 없는 그녀가 이상했는지 하인리히는 한 발짝 더 다가가 손을 내밀려 했다. 그러다 문득 자신이 어떤 상황인지 깨달아 손을 자신의 등 뒤로 숨겼다.
그녀의 몸에 손끝 하나 대지 않겠다는 다짐이 보여 솔리타리에는 터져 나오는 헛웃음을 꾸역꾸역 삼켜야 했다.
“내려와. 저녁 먹으러 가자.”
“…….”
솔리타리에는 그가 등 뒤로 숨긴 손을 서둘러 머리에서 지우고는 씩씩하게 사다리에서 내려왔다.
아무런 대답이 없는 그녀를 보며 하인리히는 조급함을 느꼈다.
“별장은 어땠어? 좋았어?”
“……네.”
“다음에는 나랑 같이 갈까? 아니면 다른 곳도 좋고.”
오전에 보았던, 자신을 죽이겠다는 하인리히는 어디에도 없는 자상한 모습이었다. 솔리타리에는 얼굴을 구기지 않으려 애썼다.
“가요. 밥 먹자면서요.”
떨떠름한 표정을 지운 채 환히 웃으며 하인리히에게 말했다. 그녀의 행동에 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식당으로 가는 내내 둘은 함께 손을 잡거나 붙어 걷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들 사이에서 정적이 흐르거나 어색함이 묻어나지도 않았다.
다만, 서로가 서로에게 확신이 없어 각자의 속에 있는 말을 꺼내지 않았을 뿐.
* * *
“리엔, 그곳은 어땠니?”
소피아와 에레무스가 솔리타리에의 눈치를 보며 물었다.
솔리타리에는 이 애매한 관계 속에서 어떤 대답을 해야 할지 고민했다.
그곳이 좋으니 앞으로도 그곳에서 지내고 싶다고 하면 이곳에서 지내길 제안할 것 같았다. 반대로 생각에 변함이 없으니 독립을 하고 싶다고 하면 어떻게든 자신을 붙잡아 둘지도 몰랐다.
한참 대답을 망설이던 솔리타리에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좋았어요. 그래도 역시 집이 그립더라고요.”
집이라. 집……. 이곳이 자신의 집이긴 했던가?
까끌까끌한 말이 입 밖으로 나오자 솔리타리에는 쓴웃음을 감출 수 없었다.
그러나 그녀의 말에만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던 히루프스의 늑대들은 그녀의 표정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렇지? 가족이 왜 있겠니. 우리에겐 네가 가족이나 다름없는데. 함께 살아야지.”
소피아는 어색한 웃음을 흘리며 에레무스의 옆구리를 찔렀고, 그 역시 비슷한 웃음을 지으며 솔리타리에에게 말을 걸었다.
“그래, 집에서 지내며 여유가 필요할 때 밖을 돌아다니는 것도 나쁘지 않단다. 올여름에는 우리 다 같이 휴가를 가 보는 건 어떻니?”
“하……하, 네.”
하인리히의 집요한 시선이 닿았지만 솔리타리에는 그가 있는 쪽으론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무거운 시선에 한 번 돌아볼 법도 했지만, 그녀의 시선은 소피아와 에레무스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솔, 이것도 좀, 먹…….”
“마님, 저녁을 다 먹으면 오랜만에 온실에서 티타임 가지는 건 어떠세요?”
하인리히의 말이 무시당했지만, 그녀는 아무것도 모르는 양 빙긋 웃으며 소피아에게 물었다.
그녀의 행동에 하인리히의 입매가 자연스럽게 굳어졌다. 그러나 그는 솔리타리에의 행동을 지적하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그녀의 접시만 채워 갔다.
“……당근.”
앞에 놓인 접시를 힐끔 보더니 솔리타리에는 얌전히 그것들을 먹어 치웠다. 싫은 기색 하나 없이 모조리 먹은 그녀는 하인리히에게 접시를 다시 밀어 주었다.
“…….”
하인리히는 멍하니 접시를 바라보다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더는 그녀에게 말을 걸지 않았고, 오랜만에 함께한 식사는 찝찝하게 끝났다.
다들 그 삐걱거림을 알았으나 말로 꺼내어 분위기를 묘하게 만들진 않았다.
“솔, 이만 일어나서 가자.”
하인리히는 솔리타리에 옆으로 걸어가 익숙하게 손을 내밀며 함께 나갈 것을 권유했다.
그러나 곧이어 자신이 어떤 실수를 했는지 깨닫고 손을 숨기며 그녀에게서 한 발짝 멀어졌다.
“아, 미안.”
솔리타리에는 계속되는 하인리히의 그런 행동에 눈썹이 꿈틀거렸다. 급격히 분위기가 싸늘해져 소피아와 에레무스는 서둘러 나서서 상황을 정리했다.
“하인리, 의논해야 할 일이 있으니 지금 당장 집무실로 따라오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