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the wolf's only companion RAW novel - Chapter (56)
늑대의 하나뿐인 반려가 되었습니다 56화(56/60)
“잘했어, 잘한 거야.”
잔뜩 상처받은 하인리히의 얼굴이 자꾸 아른거렸지만,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했다.
그쪽은 자신을 죽이려 드는 이고, 고작 말 한마디로 상처받았다고 울먹거리며 자신이 나쁜 사람이 된 양 느끼게 하는 건 너무 억울하지 않은가.
“괜찮아, 정신 차리고 여기서 벗어날 준비를 해야지.”
제 뺨을 몇 번 두드린 솔리타리에가 얼른 일어나 방 한구석에 있는 책들을 책상으로 옮겼다.
육지 영역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지도부터 시작해서, 세세하게 설명이 되어 있는 각 가문의 영역을 확인한 솔리타리에는 자신이 갈 수 있는 곳들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가장 중요한 것이 문득 떠올라 손뼉을 쳤다.
“히루프스를 무사히 벗어나려면 돈, 돈이 필요해.”
책상의 가장 마지막 서랍을 열어 소피아가 매월 주던 용돈이 든 주머니를 꺼내 들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돈에 대한 개념이 없었지만, 이제 그녀는 알았다.
“금화 하나가 은화 열 개라는 거지? 백금화는 금화 열 개고.”
주머니에는 백금화 20개, 금화 24개, 은화 10개가 들어 있었다. 솔리타리에는 그 주머니를 꼭 쥐더니 오늘 풀지 않은 캐리어 사이에 구겨 넣었다.
캐리어에서 필요 없는 것들을 꺼낸 후 가벼운 짐들 위주로 챙겨 넣었다. 그러나 이윽고 짐이 너무 많다는 것을 인지한 그녀는 돈이 담겨 있는 주머니를 들어 올려 다시 서랍에 집어넣었다.
“……나가서 전부 살 수 있는 것들이잖아.”
괜히 많은 짐이 없어져 의심을 받는 것보다, 아무렇지 않다는 듯 행동하는 게 지금은 더 중요했다. 솔리타리에는 포기할 물건들을 정리했다.
하인리히에게 설렜던 것과는 다른 의미로 심장이 두근거리고 터질 것 같았다. 몇 번 가슴을 두드린 솔리타리에는 몸을 일으켜 지도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히루프스와 가문들은 전부 지우고, 티그리스와 관련된 곳들도 피해야 해. 레푸스는…… 관련된 여긴 생각조차 말고.”
그렇게 지우다 보니 딱 하나의 가문이 남았다.
알키토이 가문.
박쥐 가문으로, 어떤 가문에도 속하지 않고 자신들끼리 독립적으로 생활하는 이들이었다. 자원이 풍부한 가문답게 히루프스나 티그리스에 의존하지 않아도 되는 데다, 폐쇄적인 성향이니 하인리히가 찾기 힘들 게 분명했다.
“여기로 가야겠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부터 시작이었다.
“……이제 나가는 게 문젠데.”
솔리타리에는 불안함에 서성이며 손톱을 물어뜯었다.
하인리히의 눈은 어떻게 피할 것이며 히루프스를 벗어나는 데 어떤 도움도 없이 홀로 갈 수 있는가도 의문이었다.
그때, 누군가 방문을 두드렸다.
“네?”
솔리타리에는 혹시나 하인리히가 찾아왔나 싶어 놀라 책상 위에 놓인 지도들과 책들을 서랍에 넣었다.
목을 가다듬곤 문을 조심스럽게 열자, 그곳에는 하인리히가 아닌 메리가 서 있었다.
“하녀장님?”
메리는 솔리타리에의 손에 무언가 쥐여 주었다.
익숙하면서도 단단한 것이어서 솔리타리에의 눈이 그곳으로 향했다.
“아.”
“일전에 가주님께서 주셨는데, 큰일 때문에 잃어버리셨잖아요. 그건 신경 쓰지 말라고 가주님께서 전해 달라고 하셨어요.”
솔리타리에는 에레무스가 전달한 것을 바라보며 복잡한 감정에 휩싸였다.
그런 그녀를 이해한다는 듯 메리는 솔리타리에의 손등을 조심스럽게 토닥였다.
“마님과 가주님껜 전해 들었어요. 리엔 님이 원하시는 대로 선택하시면 되는 겁니다. 물론 도련님께서 길길이 날뛰고 계시지만, 어쩌겠어요. 히루프스의 가주님은 에레무스 님이신데요.”
솔리타리에가 가만히 돌을 바라보고만 있어 메리는 그녀에게 생각할 시간이 필요함을 눈치챘다.
“저는 이만 가 보도록 할게요.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지 부르세요.”
솔리타리에의 손을 놓은 뒤 인사를 건넨 메리는 이내 모습을 감췄다.
한참 그 앞에 서서 제 손에 들린 것을 바라보던 솔리타리에는 이윽고 무언가 다짐한 듯 손을 꽉 쥐곤 책상 앞에 섰다.
막혀 보이지 않던 것들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솔리타리에의 계획을 실행할 날이 찾아왔다.
* * *
히루프스는 그야말로 살얼음판이었다.
소피아, 에레무스와 싸운 하인리히.
히루프스에서 지위가 불안정해진 솔리타리에.
암암리에 도는 소문에 의하면, 히루프스의 주인들은 솔리타리에를 가문에 입적시키려 한다고 했다.
그 소문으로 인해 사용인들은 솔리타리에를 함부로 대할 수 없게 되었고, 나날이 아슬아슬한 줄다리기는 계속되었다.
“오랜만이네요, 리엔 님.”
솔리타리에는 도서관에 앉아 책을 보던 도중 레오가 말을 걸어오자 눈을 반짝였다.
“그러게요, 오랜만이네요. 레오 선생님은…… 음.”
그의 얼굴을 본 솔리타리에는 입을 열었다 다물었다. 레오의 얼굴은 좋게 봐도 좋다고 할 수 없었다.
“아, 피곤해 보여서 그런가요?”
“네, 다크서클이 턱까지 내려온 것 같아요.”
솔리타리에의 진지한 대답에 레오는 피식 웃었다.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그랬는데 그녀의 반응을 보니 남들이 보는 모습도 비슷하겠다 싶었다.
레오는 솔리타리에의 옆에 있는 의자를 빼내곤 털썩 주저앉았다.
“피곤해요?”
“요즘 도련님이 통 잠을 안 주무셔서 마님께서 수면제를 처방해 달라고 하셨거든요.”
“그런데요?”
솔리타리에는 하인리히를 그날 이후로 본 적이 없었기에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도련님이 보통 수인인가요. 코끼리 수인이 쓰러질 만큼의 수면제를 처방해도 아마 안 주무실걸요? 거기다 주면 순순히 받아먹냐고요.”
“음, 그래서 방법은 찾았어요?”
“여러 가지 조합하다 보니, 도련님도 이틀 정도 주무실 수 있는 약을 만들긴 했는데……. 도통 먹일 방법이 없네요.”
그 말에 솔리타리에의 눈이 번뜩였다.
히루프스를 벗어날 준비는 모두 끝났지만, 여전히 하인리히의 눈을 피할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는데 이렇게 운이 좋을 수가.
솔리타리에는 들뜬 마음을 숨기며 레오에게 물었다.
“……제가 전해 드려도 될까요?”
솔리타리에의 물음에 레오가 눈을 크게 떴다.
“정말요? 리엔 님, 정말인가요? 그래 주시면 너무너무 감사하죠.”
“선생님, 근데 그 약 먹으면 도련님 정말 이틀…… 정도 주무시는 거 맞죠?”
“그럼요. 아무리 괴물이라고 해도 이틀, 아니 사흘은 잘 겁니다.”
레오의 말을 들은 솔리타리에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그녀의 안색을 살피며 다시 물었다.
괜히 자신 때문에 솔리타리에가 가지지 않아도 될 부담감을 가진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 때문이었다.
“그…… 리엔 님, 부담되시면 그냥 제가 가도 됩니다. 몇 번 가면 도련님도 제가 안타까워서라도 드셔 주시겠죠.”
솔리타리에는 레오의 배려에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도련님 얼굴을 안 본 지 너무 오래되기도 했고……. 절 가짜 반려로 세워 놓고 이런 곤란한 상황 한가운데에 끌어들였는데. 수면제 먹어 달라는 부탁은 당연히 들어주시지 않을까요?”
그녀의 말에 레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누군가 듣는다면 괜히 하인리히를 들쑤시다 도망조차 가지 못하고 죽는 것 아니냐고 걱정할 수도 있었지만, 솔리타리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하인리히는 그의 방에 들어간 자신을 죽이지 못한다.
그건 소피아와 에레무스가 한 말 때문도 있었고, 그녀가 아는 그라면 분명 조용히 일을 처리하지 자신의 방에서 대놓고 일을 벌일 인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가기 전에 그 얼굴에 욕은 한번 해 주고 가야지.”
감동에 젖은 레오가 솔리타리에의 말을 듣지 못해 되물어 왔지만, 그녀는 어깨를 으쓱이며 아무것도 아니라고 했다.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레오를 뒤로한 채 솔리타리에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준비되면 제 방으로 전해 주실래요?”
“물론이죠. 오늘 저녁에 가져다드릴게요.”
솔리타리에는 우아하게 인사를 건넨 후, 가벼운 발걸음으로 도서관을 나섰다.
겨울이 지나가는 것을 뽐내기라도 하듯 땅에서는 흙을 뚫고 나오려는 풀들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했다.
가던 발걸음을 멈추고는 주위를 둘러보던 솔리타리에는 아무도 보지 않는 것을 확인했다. 그러고 나서 소피아와 에레무스가 있는 집무실 방향으로 인사를 건넸다.
“감사했어요. 이건 진심이에요.”
허리를 핀 솔리타리에가 이윽고 모습을 감췄다. 그녀가 사라진 곳에는 그저 온화한 바람들이 불어올 뿐이었다.
어떤 변화도 없이.
* * *
방으로 돌아온 직후 솔리타리에는 가장 중요한 돈주머니를 확인했다. 요 며칠 돌아다니며 구했던 사용인들의 옷과 로브, 제 눈을 숨길 수 있는 안경까지 전부 확인했다.
리엔나가 남긴 책을 들고 갈까 고민하다 솔리타리에는 작은 메모와 함께 제 첫 번째 서랍에 집어넣었다.
하인리히에게 전하는 처음이자 마지막 편지였다.
“……이 정도면 나름 괜찮은 토끼 아닌가요?”
방을 둘러보자 처음 왔을 때와 다르게 가득 채워진 공간이 눈에 들어왔다.
침대는 매년 제 몸에 맞춰 구매했고, 계절마다 커튼을 다르게 달았으며 옷장엔 다양한 옷들이 걸려 있었다. 곱게 정리된 화장대도 눈에 들어왔다.
솔리타리에는 제 뺨을 두드리며 고개를 주억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