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the wolf's only companion RAW novel - Chapter (57)
늑대의 하나뿐인 반려가 되었습니다 57화(57/60)
“됐어. 이제 다 정리하고 가면 되는 거야.”
각인의 문양이 있던 손목을 옷으로 가리며 중얼거렸다.
그때, 그녀의 눈에는 익숙한 인형이 들어왔다. 하인리히가 매일 밤 껴안고 잔다던 은색 털에 옥빛 눈을 가진 토끼 인형이었다.
분명 그의 방에 있어야 하는 것인데, 어째서 제 침대에 있는지 몰라 솔리타리에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가까이 다가가 토끼 인형을 만지려는 순간, 밖에서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리엔 님, 레오입니다.”
솔리타리에는 제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은 토끼 인형을 아쉽게 쳐다보다 가볍게 손을 털곤 방문을 열었다.
그 앞에는 레오가 차와 약을 함께 들고 서 있었다.
“무거울 텐데, 제가 앞까지 가져다드려도 될까요?”
“아니에요. 바로 앞인걸요?”
솔리타리에가 쟁반을 받아 들며 레오와 이 맞닿았다.
그러나 하인리히가 다른 수인과 부딪혔을 때와는 달리 어떤 반응도 없었다.
레오는 쟁반을 놓지도 못하고 멍하니 솔리타리에를 바라보았다.
“……정말 아니었군요.”
“네?”
솔리타리에는 레오의 물음을 이해하지 못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무것도 모르는 듯한 솔리타리에를 본 레오는 실례를 해 죄송하다며 등을 돌려 사라졌다.
사라진 레오를 바라보던 솔리타리에는 제 손에 들린 쟁반을 확인하고선 하인리히의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몇 걸음 안 되는 거리가 멀게만 느껴졌다.
“후.”
마침내 그 앞에 다다랐을 땐, 싱숭생숭한 기분을 무시하지 못했다.
솔리타리에가 앞에서 고민하던 중, 문이 예고 없이 열렸다. 화들짝 놀란 그녀가 몇 걸음 뒤로 움직이자 손에 들린 쟁반이 위험하게 흔들렸다.
문을 열고 나온 상대는 화들짝 놀라며 솔리타리에가 들고 있던 쟁반을 받아 들었다. 서로에겐 닿지 않았지만, 그는 깜짝 놀란 듯 그것을 들곤 방 안으로 모습을 감췄다.
솔리타리에 역시 그를 따라 방으로 들어가자 방문은 저항 없이 닫혔다.
적막한 공기.
하인리히가 쟁반을 놓는 소리를 제외하면 그곳에서는 아무것도 들려오지 않았다.
먼저 입을 연 건 하인리히였다.
“……이거 전달해 주려고 왔으면 그냥 주고 가지. 왜 따라 들어와.”
날카로운 목소리에는 경계가 잔뜩 깔려 있었다.
솔리타리에는 그런 그의 모습에 침을 꼴딱 삼킬 수밖에 없었다. 지금 자신이 늑대의 아가리로 들어온 것은 아닌지, 이제껏 하인리히에 대해 생각해 오던 것을 모조리 엎어야 하는 것은 아닌지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아무런 대답 없는 솔리타리에에, 하인리히는 초조했는지 되물었다.
“내 동생 하겠다는 발언 철회할 생각이 아니면 나가. 그리고 지금은 나랑 닿아 봤자 좋을 거 없으니까, 잠깐 거리를 둬.”
제 마음대로 되지 않는 상황이 하인리히는 꽤 벅차 보였다.
갑작스러운 솔리타리에와 부모님의 선언. 거기다 자신도 모르는 반려 때문에 솔리타리에와 닿을 수 없다는 사실이 하인리히의 신경을 자극하기 충분했다.
그 사실을 모르는 솔리타리에는 하인리히가 너무 날카로워서 몸을 잘게 떨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허리를 꼿꼿하게 펴곤 하인리히의 눈을 바라보며 솔리타리에는 당당하게 행동했다.
“제가 마님과 가주님께 뭐라고 했는지 궁금하세요?”
“뭐?”
하인리히의 고운 미간이 찌푸려졌다.
지금 이게 뭐 하는 행태냐고 묻는 듯했지만, 솔리타리에는 그 모습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다시 물었다.
“궁금하시냐고요.”
하인리히는 그제야 이 말을 이해했다. 그는 제 미간을 문지르며 솔리타리에를 불렀다.
“솔, 난 지금 장난을 치고 싶은 게 아니야. 더 할 말 없으면 나가 봐.”
하인리히는 방문을 가리키며 나가라고 지시했다. 솔리타리에는 한 발짝 더 가까이 다가가며 당당하게 물었다.
“궁금하면 저 약 드세요. 레오 선생님이 전달해 달라고 하셨어요.”
“지금 뭐 하자는 거야?”
“도련님은 제게 궁금한 게 있고, 전 도련님께 바라는 게 있잖아요. 서로 원하는 것을 얻자는 소리예요.”
잔뜩 긴장해 목소리의 끝이 떨려 왔지만 솔리타리에는 멈추지 않았다.
하인리히가 저것을 먹지 않는다면 도망가는 것이 내일이 될지 일주일 후가 될지 알 수 없을뿐더러, 히루프스를 나가지 못하고 여기서 하인리히 손에 죽을지도 몰랐다. 그러니 더욱 뻔뻔히 나가야 했다.
하인리히는 솔리타리에의 그런 모습을 보며 머리를 사납게 털었다.
약간의 정적, 그리고 그 끝에 대답이 들려왔다.
“저것만 먹으면 돼?”
“침대에 누워서 드세요. 레오 선생님이 만드신 건데, 도련님이 먹자마자 잠들면 바닥에서 주무시게 될걸요? 입 돌아가기 싫으면 침대에 가서 드세요.”
솔리타리에는 손으로 침대를 가리키며 하인리히에게 뻔뻔하게 굴었다.
하인리히는 그 모습에 입을 달싹이더니 쟁반을 챙겨 침대로 가 끝에 털썩 주저앉았다. 매서운 눈으로 솔리타리에를 바라보며 그는 제 손에 들린 것을 망설임 없이 입 안에 털어 넣었다.
그가 내려놓은 병을 확인한 솔리타리에는 하인리히의 곁으로 다가갔다.
“이제, 말해 봐. 너무 다가오진 말고. 거기서 말해.”
하인리히는 졸음이 몰려오는지 어눌한 발음으로 솔리타리에를 재촉했다. 그러면서도 그녀와의 거리를 지키려는 듯 단호히 굴었다.
한 발짝 떨어져 그를 가만히 바라보던 그녀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도련님, 전 애초에 마님과 가주님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어요. 그냥 생각해 보겠다고 했지.”
“……뭐?”
“근데 있죠, 그 제안은 애초에 미끼였어요.”
“그게 무슨.”
약 기운이 올라오는지 총기 있던 하인리히의 눈동자가 흐릿해져 갔다.
솔리타리에는 그가 누워 있는 침대에 한 발짝 더 다가가며 물었다.
하인리히는 가까이 다가오려는 그녀에게 오지 말라 외치려고 했다. 그러나 이어진 솔리타리에의 물음을 들은 하인리히는 아무런 제지를 하지 못했다.
“왜 그랬어요?”
“그니까, 도대체, 뭘.”
하인리히는 여전히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에 눈을 꾹꾹 누르며 그녀에게 되물었다.
그사이 점점 가까워지는 솔리타리에에, 하인리히는 손을 뻗으며 더 다가오지 말라 그녀에게 주의를 주었다.
솔리타리에는 그를 잠시 바라보다 이내 등을 휙 돌리고선 자신이 할 말만 그에게 전했다.
“죽이겠다면서요, 절.”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흐려져 가던 하인리히의 눈이 단숨에 떠졌다.
그러나 솔리타리에는 등을 돌리고 있었기에 그의 온전한 모습을 볼 수 없었다. 하인리히는 그녀를 잡으려 침대에서 내려오려고 했다.
그제야 등을 돌린 솔리타리에가 하인리히에게로 다가가 그를 빤히 내려다보았다.
“그러게요. 그냥 이런 희망 주지 말지. 비참해졌네요.”
“솔, 알아듣게 얘기해.”
솔리타리에가 내려오려는 하인리히의 어깨를 잡고 다시 눕혔다.
갑작스러운 접촉에 하인리히의 눈이 보름달만큼 커졌다. 그러나 그의 걱정과는 다르게 솔리타리에의 얼굴에선 고통스러워하는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왜……!”
그녀의 손목을 가리고 있던 옷이 올라갔고, 하인리히의 눈에 그녀의 손목이 들어온 것도 그때였다.
“무슨.”
하인리히의 얼굴이 당황으로 가득 찼다.
솔리타리에 또한 제 손목에 드러난 각인과 하인리히의 손목에 드러난 각인을 바라보았다.
오른쪽 손목에 있는 그의 각인은 그녀의 눈동자를 빼다 박은 녹색으로 은은하게 빛나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을 실감한 솔리타리에는 그를 거칠게 밀곤 침대에서 멀어졌다.
그녀는 그에게 제 손목에 나 있는 각인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당황해 뻐끔거리는 하인리히를 뒤로한 채 솔리타리에는 거칠게 옷을 끌어 내려 손목을 가렸다.
“도련님은 그 각인에 새겨진 꽃이 뭔지 모르시죠?”
원망 섞인 물음이었다. 그러나 하인리히는 얼이 빠져 아무런 말도 못 했다. 그저 허망하게 솔리타리에를 바라보았다.
“네가, 어떻게. 아니, 그럴 수 없는데.”
“왜요? 미천한 애완 토끼가 고귀한 히루프스의 후계자의 반려라는 게 믿기지 않으세요? 부정하고 싶었나? 그래서 아무도 모르게 죽이려고 했어요?”
솔리타리에의 말이 쏟아졌지만, 하인리히의 눈은 점점 감겨 왔다.
“……솔. 일단, 일단. 내가 일어날 때까지만. 제발.”
하인리히는 자신이 눈을 뜨고 있을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그녀를 애절하게 불렀지만, 솔리타리에는 매정하게 하인리히의 손을 놓았다.
“도련님, 전 절대 도련님 손에 안 죽어요.”
“제발, 그런 게.”
“평생 반려 없이 살아 보세요. 아, 혹시 아나요. 제가 죽으면 새 반려를 맞이할 수 있을지. 매일 손목에 새겨진 각인이 없어지길 비세요. 그걸로 제 마지막 소식을 전하도록 할게요.”
자신을 붙잡는 하인리히를 뒤로 한 채 솔리타리에는 미련 없이 하인리히의 방에서 나가 버렸다.
쫓아 오지 않는 하인리히를 보자, 레오가 말한 대로 이틀이 넘는 시간 동안 그는 침대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았다.
“아가씨?”
솔리타리에는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깜짝 놀랐다. 음성이 들리는 곳을 확인하자 그녀의 방문 앞에 라온이 서 있었다.
“왜 제 방 앞에 있으세요.”
혹시 제 방에 들어갔나 싶어 솔리타리에는 눈을 굴리며 그를 바라보았다.
조금만 진정하고 생각하면 주인 없는 방에 라온이 들어갈 리가 없었다. 그러나 솔리타리에는 그걸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긴장하고 있었다.
순간 욱하는 감정을 참지 못하고 하인리히에게 모든 것을 알려 줬다. 그는 자신을 쫓아오지 못하지만 라온은 달랐다.
라온이 만약 그의 반려가 자신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하인리히가 일어나기 전까지 그녀를 잡아 둘 게 분명했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온몸의 신경이 곤두서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