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e a music monster overnight! RAW novel - Chapter 112
하루 아침에 음악괴수! 103화
제법 오랫동안 비워졌던 무대에 제이미와 영찬이 올라가자 관객들이 흥미로운 눈길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건 앳된 외모 때문일 것이다.
보통 자신의 앳된 외모를 스모키 화장으로 극복하던 제이미였지만, 애초 오늘은 가게에 나오는 날이 아니다 보니 기초 화장이 다였다.
그러니 서양인 기준으로 본다면 그녀를 하이스쿨 학생 정도로 보는 건 놀랄 일이 아니었다.
영찬도 마찬가지였다.
어제처럼 후드 티까지는 아니어도 펑퍼짐한 티에 머리를 내리고 큰 뿔테 안경을 쓴 영찬은 여지없이 10대 아시아 소년이었다.
어린 소년 소녀가 갑자기 무대에 오른 거니 평소 이곳의 단골들이 불만을 보이는 건 당연했다.
“여기도 이제 예전 같지 않은 모양이네. 저런 꼬맹이들이 무대에 올라오게 되는 걸 보면.”
“그래. 잘하겠지. 여기가 학예회 발표장이라면 말이야.”
“작년 스미스 씨가 돌아가신 뒤, 어딘가 어수선해지더니 결국 무대 오른 가수들도 관리를 못 하게 되었나 보네.”
그런 불만은 단순히 말로만 전해지는 게 아니었다.
눈빛과 같은 표정 혹은 제스처 따위로도 충분히 전해지는 게 가능했다.
“어……. 음.”
당연히 이를 무대에서 보게 된 제이미는 얼어붙을 수밖에 없었다.
한국 나이로 23살.
어리다면 어린 그녀는 생각보다 무대에 오른 경험이 없었다. 특히나 이만큼이나 안 좋은 분위기 속의 무대는 더욱더.
‘…….’
드디어 무대에 오를 수 있게 되었다는 기쁨도 잠시, 갑작스레 올라선 무대에 적대 어린 시선들이 함께하자 그녀는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해 버렸다.
보통 이런 무대에 오른 뮤지션이라면 마이크 체크를 비롯해 해야 할 일들이 한둘이 아니었지만, 지금의 그녀는 그런 걸 떠올릴 정신이 없었다.
당연히도 그녀가 그렇게 바보처럼 아무것도 하지 못할수록 무대 아래에서의 분위기는 점점 더 안 좋아졌다.
“하아~ 어쩔 수 없지…….”
그녀를 무대로 올린 지배인은 한숨을 내쉬며 그녀를 서둘러 무대에서 내려보내려고 했었다. 그녀가 바라는 기회라는 걸 알지만, 저래서야 노래를 부를 수 있을 리 없었다.
차라리 조금이라도 일찍 무대에서 내려보내는 게 그녀에게 나을 일일 것이라, 서둘러 무대로 올라가려던 순간……. 그 일이 벌어졌다.
-다다다단 단단!-
바로 갑작스럽게 합류하게 된 제이미와 함께 온 동양인 소년이 피아노를 연주하기 시작한 것이다.
레스토랑이라고 하지만 술집이라고 해도 크게 다르지 않은 곳에 있는 피아노답게 그 상태가 그리 좋을 리 없었다.
그나마 누군가가 주기적으로 관리를 해주고는 있는 모양인데, 전문가의 솜씨가 아니다 보니 조금씩 망가져 가는 중이었다.
당연히 그런 피아노의 소리가 좋을 리 없었다.
실제로 멍멍이 똥 같은 소리에 멋모르고 앉은 연주자들은 당황하다 실수를 연발했으며, 일부 경험 있는 이들은 어찌어찌 곡을 이어가거나 혹은 전자피아노를 따로 챙겨 오기도 했다.
지금 관객석에 있는 이들 대부분은 단골들이었고, 그렇기에 피아노 앞에 앉은 그에게 눈길을 주지 않은 것이다.
분명 자초할 게 분명한데 괜한 기대감 따위는 하지 않겠다는 의지였다.
그랬건만…….
-다라라란 다다단!-
지금 펼쳐지는 피아노 소리는 이들의 이성을, 아니, 그들의 감성을 뒤흔들어 놓기에 충분했다.
마치 어디서 몰카라도 하는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동양인 소년이 연주하는 피아노의 소리는 어딘가 묵직하면서도 맑았다.
그 아름답고도 슬픈 음색, 그러면서도 피아노 건반 위에 펼쳐지는 폭발적인 에너지와 격렬해지는 흐름은 말이 안 되는 수준이었다.
-…….-
조금 전 영국의 펍 같이 시끄러웠던 가게 내부에는 이제 적막만이 남겨졌다.
그렇게 이들은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정도로 신경을 곤두세우며 피아노 연주에 흠뻑 빠져들어 갔다.
그렇게 연주한 지 10초도 되지 않아 사람들의 넋을 빼앗아 버린 동양인 소년은, 아니, 그렇게 오해받고 있던 영찬은 정작 찌푸려진 얼굴을 펴기 힘들었다.
‘생각보다 이거 정말 엉망진창인데?’
이틀 전 이곳에서 들은 피아노 소리를 통해 피아노가 문제가 있다는 걸 알고 있지 않았다면, 어쩌면 연주를 그만둬 버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농담이 아닌 게 연습 때에도 무대 위에서도 그가 다루는 피아노는 그랜드 피아노 중에서도 스타인웨이 피아노였다.
그런 그가 이런 망가진 피아노를 그것도 울림이 답답한 곳에서 연주하게 되었으니 그가 느끼는 역체감은 상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는 최선을 다해 묵묵히 연주를 이어나갔다.
새삼 그에게 피아노를 가르쳤던 피아니스트의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X 같은 피아노라도 잘 치는 법을 알아 둬야 된다.”
가능하면 베스트의 컨디션과 베스트의 무대를 하는 게 좋을 테지만, 세상이 어디 뜻대로만 되던가?
당장 기억 속 영찬이 암 환자를 위해 연주했던 무대만 해도 여러모로 끔찍했었다.
다행히 그에게 피아노를 가르친 이는 이런 엉터리 같은 피아노를 포함해 다양한 피아노를 경험하도록 하였고, 그 경험 덕분에 그는 그런 무대에서도 훌륭한 평론을 받게 되었다.
피아노의 특성과 환경을 빠르게 파악해, 좋은 연주를 끌어낸 결과물이다.
물로 그렇다고 해서 너무 나쁜 피아노만 경험하면 안 되었다. 자칫 그 나쁜 소리가 자신의 소리라 오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조금이라도 더 좋은 소리를 찾아야 하는 수준에 오른 뒤부터는 그는 지금까지 스타인웨이 피아노만을 고집한 것이다.
‘정말 엿 같은 경험을 오랜만에 하는군…….’
조금이라도 방심하면 어렵게 쌓은 서사들이 와르르 무너질 것이라, 영찬은 곡이 종장을 향해 달려가는 마지막까지 모든 신경을 써야 했다.
그리고…… 마침내 피아노 연주가 그 끝을 맞이했다.
4분도 되지 않는 즉흥 연주를 마무리하는 영찬의 손길은 너무도 섬세했다.
그리고 그 섬세함 이상으로 피아노 소리는 너무도 서글프면서도 아름다웠다.
-다……다다단.-
-…….-
그러다 거짓말 같은 끝을 맞이했고, 관객들은 그제서야 현실로 돌아왔다.
“하아~”
긴 한숨을 흘리던 영찬은 고개를 저어대다 이내 이 연주를 하게 만든 제이미에게 고개를 돌렸다.
“!!!”
제이미는 경악 어린 시선으로 그와 마주하게 되었다.
그녀를 움츠리게 한 긴장들은 이미 오래전 사라져 있었다. 대신 그녀의 얼굴에는 환희와 공포 혹은 경악 따위의 격렬한 감정들이 복잡하게 물들어졌을 뿐이었다.
-짝짝…… 짝짝짝!-
-와아아아!-
그녀가 현실로 돌아오게 만든 건 누군가의 박수 소리 속에 균열이 가면서 터져 나온 관중들의 환호였다.
“최고다!”
“도대체 누구야! 나…… 이런 연주 처음 들어 봐!”
“미쳤어! 저 고물 피아노로 저런 소리를 낼 수 있다고!”
“이봐! 혹시 피아노가 바뀐 거야? 아니, 바뀌었다고 해도 피아노에서 저런 소리가 날 수 있나?”
그 환호와 함께 찬사들이 곳곳에서 일어났지만 영찬은 익숙하다는 얼굴로 묵묵히 제이미를 바라보더니 말했다.
“자, 이제 네 차례야.”
“어? 아! 응.”
어마어마한 천재라는 말로도 부족한 터무니없는 괴물이 자신에게 하는 말에 제이미는 고분고분한 태도로 서둘러 무대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긴장이고 뭐고 다 날려 버린 이러한 비현실 속에서 그녀가 할 건 그것 하나뿐이기도 했다.
선곡은 The Carpenters ‘Close to you’였다.
이 곡은 한국에서도 유명한 올드 팝송이었다.
짐 캐리와 케이트 윈슬렛이 연기한 이터널 선샤인의 OST로 나왔기 때문인데, 올드 팝송답게 복잡한 연주 소리가 없다 보니 뮤지션의 실력이 고대로 반영되는 곡이기도 했다.
‘아마도 연주자가 피아노 하나뿐이라 선택한 것 같기는 하지만.’
영찬은 그녀가 이 곡을 고른 이유를 짐작하면서도, 잘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로써 며칠째 그를 궁금증에 일게 만들었던 이 기시감의 정체가 밝혀지게 될 것이라고 보아서다.
“다만 저래서야 괜찮을지 모르겠네.”
자신의 연주로 긴장감은 사라진 건 분명해 보였지만, 어째 너무 놀란 탓에 넋이 반쯤은 날아가 보였다.
그러나 그 걱정도 잠시 영찬은 빠르게 이 피아노 악보를 살펴보았다.
그렇게 한 차례 악보를 다 보았을 때쯤, 제이미는 준비를 마쳤다.
“그…… 준비 다 되었어요.”
“흐음.”
아마 영찬과 만난 이후 처음으로 경어를 보이는 제이미의 모습에 영찬은 내심 걱정이라는 듯 짧은 숨을 흘렸으나 이내 악보를 펼쳐두고는 연주를 하기 시작했다.
-딴따다 딴따다다 딴따다.-
다시금 영찬이 피아노를 연주하기 시작하자 다시금 소란스러워져 가던 관객들은 단숨에 침묵에 빠져들었다.
-!!!-
앞서의 즉흥 연주와 달리 The Carpenters ‘Close to you’를 모르는 이들이 없었지만, 그렇기에 이들은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같은 곡이라고 해도 피아노 소리 자체가 너무도 다르다 보니 곡 자체의 퀄리티가 한 단계 높아진 모양새라서다.
그렇기에 한편으로 마이크 앞에 선 소녀에게로 시선이 갈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어떤 보컬을 보이느냐에 따라 자신들이 느끼는 이 감정들이 나락으로 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관객들의 시선이 자신에게 집중되었지만, 이미 반쯤 넋이 나간 그녀는 어느새 눈을 감은 채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Why do birds suddenly appear every time you are near…….”
-……!!-
그렇게 시작된 그녀의 보컬은 단 첫 마디만으로도 관객들의 그 불안함을 단숨에 흩트려 버렸다.
너무도 아름다운 피아노 선율에 어울리는 보컬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이 곡에 빠져들었지만, 그렇기에 사실 이는 대단히 놀랄 일이기도 했다.
앞선 영찬의 피아노 즉흥 연주로 인해 눈이 높아질 대로 높아진 그들을 충족할 노래 솜씨를 보였다는 이야기였으니 말이다.
‘……미쳤는데?’
이런 이유로 지금 그녀의 보컬을 가장 객관적이면서도 가장 놀라 하고 있는 이는 다름 아닌 피아노를 연주하고 있는 영찬이었다.
실제로 초반이 지나면서부터 영찬은 Close to you를 불렀던 캐런 카펜터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캐런 카펜터는 십 대 시절 비만을 극복하기 위해 극단적인 다이어트를 시작했다 끝내 거식증이 원인이 되어 사망하게 된 비운의 가수다.
제임스 폴 매카트니는 캐런을 두고 “세계 최고의 여성 보컬”이라 평했으며, 존 레논 또한 정말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졌다고 극찬했다.
엘튼 존 또한 ‘우리 시대 최고의 목소리’라 평했고, 수십 년 동안 음악캠프 진행자로 유명한 국내의 모 음악가 또한 ‘그 누구도 캐런 카펜터처럼 편안하게 노래할 수 없을 것’이라며 칭송했다.
이러한 평론에 대해 영찬 또한 일부 동의하는 바였다.
그녀의 죽음 이후 수많은 여성 보컬들이 쏟아졌고 그중에서 그녀의 명성을 뛰어넘는 가수들이 한둘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캐런 카펜터와 같은 노래를 낼 수 있는 이는 아직 없었고, 그렇기에 영찬은 아쉬웠다.
“만약 그녀가 그렇게 가지 않았다면, 아니, 지금 시대에 태어났었다면 그녀의 보컬은 더욱 완벽해질 수 있었을 것이다.”
영찬이 앞서의 레전드들와 달리 일부 동의하는 이유였다.
하지만 그녀는 이미 수십 년 전에 죽었으니, 그의 그런 바람은 아무런 의미마저 주지 못했다.
그랬건만.
거짓말처럼 그의 앞에 캐런 카펜터의 환생과 같은 재능을 탄 그녀가 등장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