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e a music monster overnight! RAW novel - Chapter 12
5장. 장태식
잠시 손님을 상대하려 자리를 비웠던 이아현이 의아하다는 얼굴로 그에게 다가왔다.
“다른 분들은 어디가고 저 분 혼자서 뭐하시는거예요?”
“블랙타이거 그거 저 녀석 혼자 하는 거란다. 아마 팀이 깨져서 그런 모양인데. 이왕 이렇게 온 거 한 곡은 하고 가야지.”
“…..”
다른 부분에서는 피도 눈물도 없으면서 이상하게 음악하는 이들에게는 다른 모습을 보이는 사장님에 그녀는 뜻 모를 미소를 지어보였다.
하지만 장태식은 그런 그녀의 미소를 알아 차리지 못한 채 무대 위에서 준비를 하고 있는 사내를 묵묵히 바라보고 있었다.
투덜거리기는 했다지만, 사정이야 어쨌든 혼자서 이렇게 무대까지 올라갔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기 때문이다.
30년을 넘게 음악을 하면서도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끝내 무대에 오르지 못한 그였기에 더더욱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혼자서 능숙하게 준비를 하고 있던 블랙 타이거라 소개한 사내. 영찬은 장태식 옆에 있는 이아현을 뒤늦게 발견하고는 흠칫하며 중얼거렸다.
“어? 아현이 누나를 이렇게 보게 될 줄은 몰랐네. 지금 두 분 결혼은 하셨을까?”
장태식과 이아현은 사장과 직원으로 함께 하다 15살의 나이 차이를 뛰어넘고 결혼에 성공했다.
애가 생겨서 가는 그런 식의 결혼이 아니었다.
본래가 이 두 사람은 사업을 함께 하는 입장에서도 사적으로서도 정말로 한 마음처럼 맞는 사이였다.
오히려 10년 넘게 아무런 썸이 없었다는 게 이상할 정도.
그런 사이였다보니 작은 물꼬가 일자 마자 그 터져 나오는 감정을 이기지 못했고, 자연 결혼까지 이어진 것이다.
영찬과 나이차가 얼마 안 되다보니 숙모보다는 누나라고 더 불렀던 이아현은 그가 여러모로 신세를 진 이이기도했다.
그립다면 그리울 이를 두 사람이나 만나게 되자 영찬은 저도 모르게 흘러나오는 미소를 감추지 못했다.
그는 바보처럼 미소를 지으며 이내 마이크를 자신의 키에 맞추고는 곧 목소리를 높였다.
“들려줄 곡은 자작곡인 ‘노장은 죽지 않는다.’입니다. 이 곡은 두 가지 버전이 있는데, 그중 하나를 들려드리겠습니다.”
“끄응.”
자작곡이라는 말에 일부 손님들은 미소를 지어 보였으나, 정작 장태식은 한숨과도 같은 신음을 흘려보였다.
대개 해체당한 밴드의 자작곡 수준이 뻔한 편이라서다.
그 같은 생각을 하는 장태식과 달리 이아현은 어째서인지 흥미 어린 시선으로 무대를 바라보고 있었다.
10년 넘게 이곳에서 일하면서 많은 뮤지션들을 만났던 그녀는 지금 무대 위에 있는 저 뮤지션에게서 기묘한 느낌을 받아서다.
그건 3년 전 만났던 이제 전설이 된 레전드 급 뮤지션에게서 받았던 느낌과 유사했다.
아직 20대로 보이는 무명의 뮤지션을 레전드와 비교한다는 건 사실 말이 되지 않는 일이다.
그러나 특유의 편견 없는 시선을 가진 그녀는 자신의 그 느낌을 무시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느낌이 확신이 되는 데에는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따다단!-
그가 기타를 다루는 순간 더 이상 무대 위에는 무명의 뮤지션은 없었다.
그저 세계를 뒤흔들 괴물만이 있을 뿐이다.
-따다다단 따다단!-
-……-
본격적인 연주가 시작되면서 바의 모든 이들의 시선이 그에게 집중되어갔다. 시시콜콜한 이야기 따위로 웃어 재끼던 소음은 거짓말처럼 사라졌고, 오직 무대 위 뮤지션의 기타 소리만이 바를 가득 채웠다.
그들도 안 것이다.
저 무대 위에 지금껏 본 적이 없는 괴물이 있음을 말이다.
-지지지지징!-
“아아아~. 그래 내가 돌아왔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화려한 기타 속주로 그 자신의 존재를 키워가던 영찬이 마이크에 다가가 목소리를 내는 순간 세상이 달라졌다.
마치 락의 신이 일갈을 터트리는 듯 거대한 앰프에서 터져 나오는 그의 목소리는 그곳의 모든 이들의 심장을 미친 듯이 뛰게 만들었다.
상상치도 못한 미친 기타 소리와 그 못지 않은 끝내주는 목소리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담고도 감당을 하고 있는 ‘노장은 죽지 않았다.’에 관객들은 머릿속이 터져 나가는 것 같은 충격을 받아야 했다.
그야말로 미친 무대를 보게 된 것인데, 그럼에도 그 누구도 노래가 끝날 때까지 환호하거나 하는 이들이 없었다.
두려움.
그건 두려움이었다.
자칫 지금 이 꿈만 같은 거짓말 같은 현실이 혹시나 흐트러질까 봐.
쓸데없이 높아진 자신들의 귀를 경악케 한 이 음악이 거짓말처럼 사그라질까 봐 그들은 두려운 것이다.
그저 소리 없는 아우성만이 그곳에 가득했고, 그 아우성의 중심에는 장태식이 있었다.
‘이건······. 이건!’
진짜가 나타났다.
흔히 그들 친구 사이에서 농담처럼 말하는 진짜가 거짓말처럼 그의 앞에 나타난 것이다.
“언젠가 우리나라도 레드 제플린이나 퀸 같은 세계를 뒤흔들 진짜가 나오겠지?”
“미친놈! 시대가 변했어. 우리가 한참 활동하던 시대에는 정부가 규제한다고 바빴고, 조금 풀리려고 하던 때에는 깡패 새끼들이 설쳤지. 그런데 생각해 보면 차라리 그때가 나았어. 지금 봐라. 누가 요즘 락 한다고 설치냐. 이미 흐름이 바뀌었어. 주류가 다른 데로 넘어 간 지 오래라고.”
“그건 또 모르는 거지. 진짜가 왜 진짜겠어. 그따위 흐름 따위는 다 때려 부술 수 있으니 진짜인 거지.”
“아이고. 술에 취했으면 발 닦고 잠이나 쳐 자. 진짜고 나발이고 요즘 애들은 락 안해. 그 빌어먹기 딱 좋은 이걸 왜 하냐.”
“그게 락이니깐! 그래서 말인데. 이번에 우리 애들 곡 좀 하나 써보자. 걸그룹이 락 한다고 하면 시선 끌지 않겠어?”
“진짜를 이야기하는데, 또 걸그룹 이야기는 왜 하는 거야?”
“….진짜고 나발이고 우리 애들 곡 달라고 새끼들아!”
그와 친구들의 술자리 이야기처럼 그가 말하는 진짜는 그런 것이었다.
음악 시장의 흐름을 흐름 따위를 무시하며 성장하는 괴물.
어쩌면 세계의 흐름까지 뒤흔드는 게 가능한 괴수로 성장할 이.
하지만 열악한 한국 락의 역사를 보면 그런 진짜가 나타날 리 없었다.
공급이 있어야 수요가 있을 것인데, 지금은 힙합이니 뭐니 하며 점점 공급줄은 줄어들기만 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장태식만큼은 언젠가는 나타날 것이라고 막연히 기대하고 있었다.
역설적이게도 친구들 중에서 가장 이성적인 장태식이 가장 이상에 가까운 꿈을 꾸고 있던 것이다.
사업에 한없이 냉철한 그가 유독 뮤지션에 약한 모습을 보이는 것 또한 그런 이상을 꿈꾸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러기를 30년이 흘렀고, 이제 더는 그게 가능할리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게 된 그였다.
‘그랬는데….’
그랬건만, 거짓말처럼 갑자기 그 진짜가 그의 앞에 나타난 것이다.
그것도 괴물 따위 수준이 아닌 세계를 먹어치울 괴수로서.
-투두두둑!-
온몸에 소름이 일었지만, 그의 눈은 그의 귀는 그의 모든 감각은 온통 지금 무대 위의 사내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이제 세상의 흐름이 변하겠구나.’
전설의 시작을 보게 된 것이라는 것을 알아서일까?
장태식은 자신도 모르게 눈앞이 흐릿해지는 감추려 몇 번이고 눈가를 훔쳐야 했다.
‘어휴~. 또 감수성 폭발이네.’
영찬은 그리운 그 모습에 저도 모르게 실실 나오려는 미소를 참느라 고생해야 했다.
장태식은 정말 안 그렇게 생겨서는 종종 저렇게 감수성을 폭발했는데, 이건 나이를 먹어서도 달라지지를 않았다.
하지만 이런 모습만큼은 드럼 사부도 빈정거리거나 하지 않았다.
그러한 감수성이 그의 음악 세계관의 근간임을 알아서다.
-와아아아아!-
20여 초간의 정적이 지난 뒤에야 폭발적인 환호성이 일었다.
사장인 장태식과 매니저 이아현을 포함해도 20명밖에 되지 않은 관객들이었지만, 그 열 배는 넘은 듯한 환호성을 선보였다.
“미쳤다. 내가 뭘 들은 거야 도대체!”
“한국 사람 맞지? 이게 도대체 무슨 말도 안 되는 감성이야!”
“음악도 노래도 기타도 이런 곳에서 들을 수 있는 수준이 아닌데? 내가 지금 라스베가스에 있나?”
“내가 88 올림픽 때부터 락 페스티벌이라면 다 달려갔던 사람이지만, 이런 경험은 이런 느낌은 손에 꼽을 정도야!”
“하아! 놀래라. 안 그래도 심장약 먹고 있는데···. 실려 갈 뻔했네.”
“하하. 다른 버전도 있다고 하지 않았어? 그것도 들려줘! 잘하면 이 새끼 보낼 수 있겠다.”
“크크. 그래 오랜만에 병원 밥 좀 먹어 보자. 앵콜!”
“앵콜! 앵콜!”
입에 거품을 물 듯 앵콜을 외쳐대는 나이든 관객들의 열기는 어느 젊은이들보다도 더 뜨거웠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어느새 눈물을 다 훔친 장태식이 있었다.
“제발 다른 버전도 들려줘! 앵콜! 앵콜!”
“어휴···. 사장님.”
이아현은 정말 오랜만에 뜨겁게 불타오르는 사장님의 모습에 낯설어하며 그를 말리는 데 진땀을 빼야 했다.
영찬은 이런 관객들의 모습에 크게 미소를 보이며 마이크에 입을 가져갔다.
“열화와 같은 환호가 마음에 듭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다른 버전은 보조해 줄 분이 필요해서요. 최소 키보디스트 한 분 있으면 좋겠는데. 여기 가능한 분 있나요?”
갑자기 연주자를 찾는 영찬에 관객들의 눈이 동시에 한 사람을 향해 돌아갔다.
“있어! 여기 있어! 장 사장! 뭐해? 안 일어나고!”
“빼지 말고 일어나! 이런 음악 코 앞에서 들을 수 있는 게 어디 쉬운 일인 줄 알아?”
“뭐하냐. 늙어서 다리 힘이 없냐?”
“빨리 나가. 엉덩이 걷어차 버리기 전에!”
정말 다들 지인이긴 한 듯 거칠기 그지없는 말들을 쏟아냈다.
그리고 이런 거에 참지 않는 장태식은 발끈한 모습을 보이며 소리쳤다.
“닥쳐! 누가 늙었다고 그래. 너희들 나중에 보자!”
“우우우! 안 무섭다. 어서 무대나 나가라!”
“그래. 노망이 든 게 아니면 빨리 나가! 네 주제에 저런 분과 언제 연주해 보겠냐!”
“으음.”
장태식은 침음을 흘리며 잠시 망설였으나, 이내 눈을 반짝이며 자신을 바라보는 영찬에 어느새 그는 무대에 발을 들이고 있었다.
“자, 이건 혹시나 해서 가져온 악보입니다. 생각보다 그리 복잡하지는 않죠. 필요한 부분은 다 악보에 적어두었으니 이거대로만 따라와 주세요.”
“아, 알겠습니다.”
그리고 어느새 정신을 차렸을 때 그는 무대 한편에 놓인 키보드 앞에 서 있었다. 처음에는 어딘가 멍한 느낌을 받았지만, 그도 잠시 영찬이 내어 준 악보를 본 순간 그는 정신없이 빠져들었다.
옛날 사람인 데다 지금도 최소 하루에 두 시간은 악기를 놓지 않던 그였기에, 악보를 보는 것만으로도 무슨 음인지 이해가 되었기 때문이다.
“미쳤구나 이건!”
저도 모르게 튀어나온 감탄사도 잠시 어느 순간 그의 모든 신경이 악보 속에서 헤어나올 줄 몰랐다.
마치 자신과 십수 년은 함께 음악을 한 것처럼 입맛에 딱 맞는 해석들이 악보에 풀어져 있어 생긴 일이었다.
-두근두근-
‘진짜다! 이 녀석은 진짜야!’
저 술주정뱅이의 심장약을 빼앗아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점차 커지는 심장 박동에 장태식은 손이 떨려왔다.
-지지징!-
그러나 그의 앞에서 영찬이 가볍게 기타 음을 내자 한순간 떨리는 손이 멈추었다.
“갑시다!”
그리고 장난기가 깃든 그 한 마디에 장태식은 잘 훈련 받은 일병처럼 키보드를 치기 시작했다.
-따다당! 따다다당!-
키보디스트.
보통은 전자 피아노를 치는 이를 말하는데, 장태식의 경우는 그런 정도를 넘어섰다.
대중 음악에 사용되는 모든 건반 악기를 다룰 수 있었으며, 그만큼 음악의 폭도 넓었고 그 실력도 대단히 뛰어났다.
클래식 피아노에서도 준프로 수준까지 뽐낼 정도이니 이만하면 일류 키보디스트라 할 수 있었다.
‘와우! 밥 먹고 키보드만 치셨나? 왜 더 잘하시는 거지?’
사실 속으로 저쪽 세상의 장태식에 비해 수준이 낮을 것으로 생각했던 영찬이었다.
그러나 적어도 전자 피아노에 있어서만큼은 지금 장태식의 수준이 그보다 더 뛰어나 보였다. 세계적인 거장까지는 어려워도 한국에서는 그만큼 할 수 있는 한 손에 꽂을 것 같았다.
그렇게 시작된 ‘노장은 죽지 않는다.’는 이곳 관객들의 얼굴에 묘한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앞서의 ‘노장은 죽지 않는다.’ 버전이 현시대에 맞춰 재편곡된 곡이었다면 지금 연주하는 ‘노장은 죽지 않는다.’는 원곡의 시대였던 90년대에서 좀 더 보강시킨 편곡이었기 때문이다.
죽음에 이르게 했던 엄청난 마약의 각성에서 풀어져 나온 영감을 담아 만든 ‘노장은 죽지 않는다.(90’S)’는 그 시대 한 획을 그었던 어떤 명곡과 비교해도 부족함이 없었다.
당연히 그 명곡의 기준은 세계를 기준으로 한 것이었고, 그러니 이곳에 있는 모든 관객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벌떡 몸을 일으켰다.
2016년 버전도 좋았지만, ‘노장은 죽지 않는다.(90’S)’는 마치 자신들이 미처 듣지 못한 숨겨진 명반을 찾은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역시, 이걸 제대로 연주해줄 수 있는 건 사부님들밖에 없어.’
7080 때의 그 특유의 감성을 재현할 수 있는 이들은 그때의 세대 말고는 없었다.
그건 90년대부터 일찍이 활동했던 영찬조차도 완전히 표현하기 어려운 감성이었다.
과연 그 시대의 키보디스트 한 명이 함께한 것만으로 ‘노장은 죽지 않는다.(90’S)’의 수준은 한 단계 높아졌다.
S등급이었던 음악이 S+등급으로 상향된 것이다.
“나를 이해 못 하겠다고? 하지만 봐라! 나는 틀리지 않았다!”
절정으로 향해가는 ‘노장은 죽지 않는다.(90’S)’에 클럽 바에 있는 모든 이들이 열광에 빠져 소리쳤다.
위대한 음악이 그들을 젊은 시절로 회귀하게 만든 것이다.
비록 가진 건 없지만 패기와 열정만이 있었던 그 시절.
그때 함께 했던 음악이 돌아오자 이들의 심장은 젊은 시절의 그것과도 다를 바가 없었다.
“어휴! 씨발. 진짜 실려 갈 수도 있겠는데?”
손목에 찬 심장박동측정기가 위험을 감지해 삑삑거려대는 거에 걱정한 누군가가 이내 아무래도 좋다는 듯 음악에 빠져들었다.
이런 미친 음악에 제대로 즐기지 못한다면 살아서 뭐하겠냐는 생각이 들었던 모양이다.
그렇게 광란과도 같은 6분 20초에 달하는 곡이 끝이 났다.
요즘 나오는 곡들의 거의 두 배 가까운 긴 타임이었지만, 그 누구도 그 곡이 길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시간은 상대적이라는 것을 증명하듯이 사람들은 벌써 끝이 나버린 음악에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하하하. 한 번 더?”
“한 번 더!”
“앵콜! 앵콜! 제발 앵콜!”
그런 아쉬움은 관객들만이 아니었기에 영찬이 소리쳤고, 관객들은 크게 반색하며 앵콜을 외쳐댔다.
그 심정은 그들만이 아니었다.
영찬과 한 무대에 올라와 생전 경험하지 못했던 연주를 하게 되었던 장태식도 다르지 않았다.
“앵~콜!!!”
그 또한 앵콜을 크게 외쳐대었고, 이어 바로 ‘노장은 죽지 않는다.(90’S)’을 연주했다.
이런 사부의 모습에 영찬은 하얀 이를 크게 드러내며 그 또한 기타를 치기 시작했다.
그렇게 ‘노장은 죽지 않는다.(90’S)’는 세 번을 더 연주한 뒤에야 끝이 났고, 바에 있는 모든 이들이 녹초가 되어 뻗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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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장. 블랙 타이거.
“….정말 우리 쪽 무대에 올라와 주실 생각이십니까?”
마지막 앵콜을 끝으로 장태식은 불그스름한 눈가로 눈치를 보며 물었다.
오랜 세월 락 하나를 바라보며 살았던 인생이기에 그는 알 수 있었다.
신시아 밴드는 물론 국내의 기라성 같은 밴드들 조차도 그와 감히 비교할 수 없음을 말이다.
스타는 기회를 잘 잡아야 날아오를 수 있다고도 하지만, 그의 눈 앞에 있는 뮤지션은 그런 것 따위조차도 필요없는 존재였다.
마음만 먹는다면 당장이라도 세계적인 무대에서도 충분히 성공하고도 남을 진짜라는 걸 장태식은 알고 있었다.
‘확실히 말하기 편하네. 삼촌은…’
본래 그가 면접을 보는 입장이지만, 이 정도 생태계 파괴자 수준의 괴물 아니 괴수라면 그 방향성은 반대가 되기 마련이었다.
영찬도 그걸 잘 알기에 느긋한 태도로 손가락 2개를 펼쳐 보이며 말했다.
“두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의향이 있다는 영찬의 모습에 장태식은 그러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한껏 닳은 모습으로 서둘러 말했다.
“뭐든지 말씀하시게. 원한다면 케세라세라 지분도 넘겨주지.”
“사, 사장님!”
이아현은 미친 거 아니냐는 뜻으로 그를 불렀지만, 진짜를 처음 만난 장태식은 그런 것 따위는 아무래도 좋다는 태도다.
웬만한 중견 기업 수준의 매출일 게 분명한 케세라세라의 지분 이야기에 영찬은 잠시 혹했으나, 이내 고개를 저었다.
“지분···. 은 괜찮습니다. 제가 내미는 조건은 이렇습니다.”
그러며 말하는 영찬의 세 가지 조건에 장태식의 눈이 휘둥그레졌고, 그것은 이아현도 다르지 않았다.
그만큼 생각도 못 한 조건들이었기 때문이다.
첫 번째 영찬이 내민 조건은 블랙 타이거의 멤버를 모으는 데 도움을 주길 원한다는 것이었다.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장태식과 이아현은 너무도 쉬우리라 생각했다.
그는 뮤지션이라면 영혼을 팔아서라도 붙어 있을 괴물같은 실력자이기 때문이다.
아마 케세라세라의 무대에서 그가 본격적으로 알려지게 된다면 온갖 실력자들이 달라붙을 터였다.
하지만 영찬은 단순한 실력자들을 바라는 게 아니었다.
“오늘같이 합주하셔서 아셨겠지만 제가 바라는 분들은 7080의 그 감성을 표현할 수 있는 분들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그저 흉내내기 따위가 아닌 그 시대의 진짜 감성 말입니다. 일단 기타 두 분하고 베이스, 드럼, 그리고 키보디스트도 있으면 좋겠는데 키보디스트의 경우는 사장님이 맡으셨으면 합니다.”
“어···. 저 말입니까?”
“네. 오늘 우리 합이 잘 맞지 않았던가요?”
“…그런 걸 합이라고 합니까? 그렇다면 나는 이번 처음 합을 맞추어보는 거군요.”
30년 지기인 친구들과 합주에서도 이 같은 감동은 경험하지 못했다.
실제로 단 한 번 무대를 같이 한 것만으로도, 그의 음악성은 비교할 수 없이 넓어진 상태였다.
마치 자신도 알지 못한 벽을 부숴버린 느낌이라 할까?
“그런데···. 괜찮겠습니까? 원한다면 우리나라 최고들에게 자네를 소개해줄 수도 있습니다.”
살아 있는 전설들을 말하는 그에 영찬은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 고개를 크게 저었다.
“그쪽은 색깔이 너무 짙어서 저랑 안 맞을 거에요. 사장님 같은 분들이면 좋습니다.”
“나 같은 이라면 어떤 이를 말하는 겁니까?”
진짜가 왜 자신을 원하는지 궁금했던 장태식의 물음에 영찬은 생각지도 못한 답변을 해주었다.
“기술적으로는 완성되었을 뿐 그 외에 아직 길을 찾지 못한 분들 말입니다.”
“!!”
의아해하는 이아현과 달리 장태식은 영찬의 말이 무슨 말인지 알고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영찬의 말은 달리 말하면 자신이 그 길을 찾아 줄 수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아마 같이 무대를 하기 전이었다면 장태식은 영찬의 그 말을 농담 거리 따위로도 여기지 않을 것이다.
영찬이 말한 건 바로 재능의 영역이라 여겨지는 영감을 뜻했다.
미디로 정확히 음을 찍어 낼 수 있음에도 굳이 뮤지션을 고용해 녹음을 하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그건 이들이 미디 따위로는 흉내 낼 수 없는 감성을 담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 감성을 다룰 줄 아는 이만이 일류 뮤지션으로서 인정을 받을 수 있다.
그런 것을 영찬이 찾아 줄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니 장태식이 놀라할 수밖에 없던 것이다.
“함께 하시죠. 사장님.”
“…….”
마치 악마가 유혹하는 듯한 그 달콤한 영찬의 제안에도 장태식은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꿈에서도 생각지 못했던 일들이 현실에서 거짓말처럼 일어나니 막연한 두려움이 일었던 것이다.
주춤하는 장태식의 등을 밀어준 것은 다름 아닌 이아현이었다.
“뭐 하세요. 사장님. 평생 바라던 일이잖아요.”
“내 나이에 그게 가능할까?”
나이를 내세우며 주춤하는 그에게 이아현이 보기 드물게 화난 얼굴로 소리쳤다.
“그렇게 바보 같은 말이 어디 있어요! 당장 한다고 해요! 어서!”
“아, 알겠네.”
마치 어린 시절 엄마에게 혼나는 느낌에 장태식은 서둘러 그리 말하더니 이내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 영찬을 바라보았다.
“영혼을 갈아서라도 함께 하고 싶습니다.”
“하하하. 좋습니다. 그럼 앞에서 말했던 대로 제가 말했던 이들을 구성해서 데려와 주세요.”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영찬은 사실상 자신의 모든 목적이 이루어진 것이라 할 수 있는 첫 번째 조건이 성립되자 더할 나위 없이 기뻐했다.
그가 사부님들을 찾으려고 하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단순히 저쪽 세상에서의 추억을 찾기 위함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자신의 음악을 누구보다 잘 표현할 수 있는 동료들을 원했기 때문이다.
‘역시 하나를 잡으니 굴비 엮듯이 다 딸려오네.’
날뛰고 싶은 기쁨을 애써 속으로 내 눌렀던 영찬은 이어 두 번째 조건을 말했다.
“YC 엔터라고 제가 만든 기획사가 있습니다.”
“YC 엔터?”
밴드 결성도 놀랍건만 갑자기 엔터를 설립했다는 말에 장태식과 이아현은 의아해하다가도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이 정도 실력을 갖춘 뮤지션이라면 엔터를 만든다고 놀랄 일은 아니었다.
“현재 저와 수시아라고 제가 가르치던 고등학생 밴드부가 이곳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당분간 자리를 잡을 때까지 사장님께서 도움을 주셨으면 합니다.”
“알겠습니다.”
장태식은 별 어려움 없다는 듯 두 번째 조건도 받아들였다.
아예 맡는 것도 아닌데다, 제법 큰 사업을 하고 있는 장태식 입장에서 이제 기지개를 연 소형 기획사 하나 맡는 건 어려울 일도 아니었다.
아니 굳이 그가 직접 맡을 필요도 없이 이쪽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 하나 데려오면 될 일이니 말이다.
그렇게 영찬의 조건을 받아들인 장태식은 조금 이해 안된다는 얼굴로 물었다.
“한데 개런티 이런 거에 관해서 이야기하지 않는군요?”
“이제 음악을 같이 할 동료인데 그런 거는 믿어야죠.”
“…..”
음악을 같이하는 동료.
그것도 꿈에 그리던 진짜에게서 그 말을 듣게 되자 장태식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에 휩쓸렸다.
-쿠르르릉!-
그간 인생에 어긋났던 아니 멈추었던 톱니바퀴가 굴러가는 소리가 귓가에 들릴 정도다.
‘또 이상한 부분에서 빠지시네.’
잘 모르는 이는 알아보지 못할 테지만 같이 있던 시간이 15년이 넘었던 영찬은 그 내면을 쉬이 알아 차렸다.
“…..동료. 좋아! 나를 믿게. 자네는 자네가 하고 싶은 것만 하면 되네.”
“네. 그럼 사장님만 믿겠습니다.”
“그래, 그래. 아하하하.”
흥분해 꺼내는 말에 영찬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서둘러 그 말을 받아들였다.
“이상한데······.”
이아현은 뭔가 당했다는 느낌에 말려야 할지 고민에 빠졌으나, 이미 모든 일은 끝이 난 뒤였다.
공연은 금토에 하기로 결정되었으며, 개런티는 정상급 밴드 수준으로 맞췄다.
실력이야 어찌 되었든 무명의 뮤지션을 그렇게 맞춘다는 건 말이 안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영찬이 자신의 너튜브 채널을 그들에게 공개하자 해결되었다.
“자네가 그 갓 싱어였다고? 그래, 확실히…”
비록 최근 영찬이 만든 YC 엔터 너튜브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 장태식이었지만, 갓 싱어 영상은 그도 잘 알고 있었다.
당시 기성 뮤지션들 사이에서도 갓 싱어의 정체에 대해 말들이 많았을 정도다 보니 너튜브를 잘 알보는 그도 알 수밖에.
그런 장태식에 비해 너튜브의 파급력을 누구보다 잘 알며 따로 케세라세라 채널을 운영중이기까지 한 이아현은 조금은 놀란 눈길로 YC 엔터 채널을 살펴보고 있었다.
“구독자가 벌써 80만… 지금 속도라면 조만간 100만도 찍을 것 같군요.”
하지만 더 놀라운 건 그의 커버 영상들의 조회수다.
하나 같이 수백만에 달하는 조회수를 찍는다는 건 정말 엄청난 일이라서다. 거기에 1000만이 넘은 영상은 벌써 2개나 된다는 점은 확실히 관객들에게 크게 어필할 수 있는 요소다.
정상급 밴드 수준의 개런티를 내준다고 해도 결코 손해가 아니라는 뜻이다.
‘무엇보다 사장님께서 저렇게 즐거워하시니.’
벌써부터 어린 아이처럼 들떠하는 장태식의 모습을 따스한 눈길로 지켜보던 그녀였고, 그런 그녀의 모습에 영찬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번에도 오작교 노릇 좀 해야겠네.”
사실상 저쪽 세상에서도 두 사람 사이를 밀어주었던 게 그였기에 영찬은 남모를 사명감을 가졌다.
여름의 끝자락을 앞둔 어느 날.
영찬은 그렇게 다시 자신의 밴드를 부활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