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e a music monster overnight! RAW novel - Chapter 161
하루 아침에 음악괴수! 152화
그러나 꼬리가 일곱 개가 된 여우는 한번 문 먹잇감을 쉽게 놓으려 하지 않았다.
“마침 대표님이 안식기이시기도 하잖아요.”
“그래. 본래라면 이렇게 회사에 나와서는 안 되는 일이었지.”
“어머! 그래요? 그런데도 이렇게 회사에서 만난 거 보면 참 운명이 아닌가 싶네요?”
운명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라는 생각을 속으로 속삭이던 나는 퉁명한 얼굴로 말했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야?”
“……그게. 뭐, 별건 아니고요.”
짐짓 ‘진’의 모습을 흉내 내 보이기까지 하자 그제야 여우는 더는 장난을 치지 않고 본론을 꺼냈다.
“다른 게 아니라 우리 애 좀 가르쳐 달라고요.”
“……제이미?”
“네. 가수로 활동을 하기 시작하면서 점점 더 음악에 진지해지고 있거든요.”
“으음.”
나는 이 여우가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알 수 있었다. 과거와 달리 지금의 제이미는 이제 대가라 할 수 있는 자리에 오른 상태였다.
말하자면 자신만의 스타일을 만들어 내었다는 것이다.
그 사실을 이번 앨범을 통해 확신할 수 있었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빨리 이처럼 성장을 한 건 아무래도 그간 정신 상담을 비롯해 자신을 추스렸던 시간 덕분이라 보았다.
혼란스러웠던 마음이 자리를 잡으며 자신의 정체성이 확고해지자 자연스럽게 음악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 것이다.
그 덕분인지 이번 앨범은 타이틀 곡을 제외한 모든 곡이 자체적으로 제작하였음에도 미친 성적을 이루어냈다.
아마 앞으로 이대로 3, 4년만 더 지난다면 더는 내 도움이 필요 없게 될 게 분명할 터.
그러한 변화를 가장 느끼고 있는 건 본인일 테니. 음악에 대해 더욱 갈망이 클 수밖에 없었다.
“뭘 말하는지 알겠는데, 지금 녀석의 상황에서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많지 않아.”
많지 않다고 한 말은 사실이었다.
대가의 자리에 올랐다는 건 이제 자신의 음악을 해야 한다는 거니깐 말이다.
그러니 보통은 혼자 머리가 깨져라 고민하고 더듬어 나아가야 할 시간이었다.
그러나 사실 내 말은 모순적이게 사실이 아니기도 했다.
비록 과거처럼 이끌 수는 없어도 삼촌들에게 그렇듯이 등대처럼 어디로 가야 할지 길을 비출 수는 있었으니 말이다.
그건 아마도 나밖에 할 수 없는 일인 거고, 그렇기에 녀석에게 많은 걸 해줄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덕분에 매일은 어려워도 일주일에 며칠 정도는 이처럼 두세 시간 동안 제이미와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어째 처음 만났을 때가 생각나네.’
당차다고 해야 할까? 무대 위에 오른 뮤지션을 부러워하면서도 막연한 자신감으로 자신이 더 잘한다고 믿던 애송이가 겨우 몇 년 만에 미국이 가장 사랑하는 아티스트가 되었다니 참 신기할 일이었다.
특히나 많이 변한 건 외모였다.
처음 만났을 때도 배우 지망생을 연상케 했을 정도였지만, 지금은 미국의 여왕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관능미가 곳곳에서 드러났다.
가벼운 청바지에 파스텔 연녹색 티 하나만으로 이런 분위기를 만들어 내다는 게 신기할 지경.
그러나 그런 관능미와 달리 제이미는 종종 바보같이 나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리 재미있는 이야기를 한 것도 아닌데, 푸스스거리며 웃는데 웬만한 사내라면 애간장이 녹아 날지 모르겠다.
“크흐흠…….”
다행히 웬만한 사내 중에 나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타격이 있던 건 사실이라 나는 분위기를 바꾸려 괜히 헛기침을 흘리다 물었다.
“그러고 보니 너한테도 대본이 많이 들어오고 있다고 하던데 말이야?”
“네. 감사하게도 드라마나 영화 쪽에서 대본이 곧잘 들어오고 있어요.”
“호오? 생각이 아예 없는 건 아닌 모양이네.”
“……네. 궁금한 분야이기는 하잖아요.”
미국에서도 가수가 배우 일을 겸사겸사하는 건 흔한 일이었다.
특히나 그 비주얼이 개성이 넘치거나 훌륭한 경우는 더욱 그러했다. 그런 점에서 제이미는 감독들이 러브콜을 부를 만도 했다.
일단 그녀가 자신의 작품에 들어오기만 한다면 적어도 홍보에 있어서만큼은 따 놓은 당상일 테니 말이다.
“그럼 연기 연습도 하고 있는 거야?”
“하고는 있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더 어려워요.”
“그렇겠지. 하지만 너는 잘할 거야. 보통 표현력이 좋으면 잘하던데, 너도 그런 부분은 탁월하니깐 말이야.”
괜한 빈말 따위가 아니었다.
그녀는 캐런의 환생이라 여겨질 정도로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졌다. 그러나 그녀의 진짜 재능은 그 아름다운 목소리가 노래의 감정을 표현할 때다.
마치 물 흘러가듯이 너무도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감정의 흐름이 돋보이는 그녀의 노래를 듣고 있노라면, 어느새 그 노래 속의 주인공이 된 것 같은 착각에 빠지기도 하니 말이다.
그걸 연기로 표현하는 방법을 배울 수만 있다면 확실히 대단한 배우가 될 수 있을 게 분명했다.
“……그래도 지금은 음악에 신경을 쓰고 싶어요.”
그러며 에메랄드색이 감도는 눈으로 나를 빤히 바라보는 데, 나는 순간 움찔하고 말았다. 나는 잠시 사고가 멈칫거리려는 걸 겨우 잡고 돌리며 아무 말이나 이어나갔다.
“크흐흠. 그래. 그러고 보면 너도 참 운이 좋아.”
“제가요?”
“그래. 운이 좋지 않으면 이렇게 훌륭한 선생님을 어디서 찾을 수 있겠어.”
농담 식으로 나를 높이는데, 제이미는 푸스스 웃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맞아요. 정말 저는 운이 좋은 것 같아요. 이렇게 멋진 선생님과 함께할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에요.”
“어……. 하하. 그래, 내 말이.”
나는 바보같이 웃으며 그리 중얼거리고는 얼마 가지 않아 수업을 일찍 종료했다.
마침 급한 일이 생각 났다는 되도 않는 거짓말 따위를 늘어놓으며 수업을 일찍 종료해야 했는데, 어째서인지 제이미는 아쉬워하면서도 내 말을 믿는 모습이었다.
“그럼 다음에 만날 때까지 말씀하신 거 해내볼게요.”
“어……. 그래.”
나는 서둘러 그리 말을 하며 자리를 떴다.
어딘가 낯설면서도 그리웠던 감정에 가슴이 조금은 답답하다는 생각이 들던 나는 이후 몇 차례고 녀석에게서 그런 감정을 느껴서야 알게 되었다.
“그러니깐 이게 그 썸이라는 건가?”
썸씽(something)의 약자인 썸은 그 단어처럼 ‘정확하지 않은 것’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사귀기 전의 남녀 사이의 불확실한 감정이라는 건데, 그 감정을 제이미와 가지게 되었다는 게 나는 놀랄 지경이다.
하지만 정말 놀랄 일은 이러한 감정을, 그러니깐 이런 썸을 타는 게 제이미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뭔데, 요즘 이렇게 알짱거리냐?”
“알짱이라니요! 사부가 보고 싶은 소녀의 마음을…….”
“……소녀라니. 네 나이가 이제 몇인데.”
19살에 데뷔해 8년이 지났으니 벌써 27살이 된 지원이 스스로 소녀라고 하는 모습이 참 뻔뻔했다.
‘그러고 보니 이 녀석도 정말 대단하기는 하네.’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어딘가 나사가 풀린 것 같은 오타쿠 느낌의 여고생이었는데, 지금은 빌보드 1위를 종종 해대는 밴드의 보컬이 되었으니 말이다.
그것도 이제 대다수의 곡들은 자신들이 써서 내는 세계적인 밴드라는 점은 정말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동안은 G1 밴드는 정말 바쁘게 지냈다.
처음부터 실전에서 성장하도록 험하게 굴렸던 탓인지, 그야말로 안식기 따위도 없이 컴백과 콘서트 투어를 쉼 없이 전진했다.
젊은 나이와 패기가 그걸 가능케 해주었겠지라고 생각하니, 부럽기도 했지만 또한 한편으로는 미안하기도 했다.
너무 일찍부터 세계 무대로 밀어 넣은 탓에 또래들이 쉽사리 하는 것들을 제대로 누리지도 못하고 살았으니 말이다.
아마 코로나19가 아니었다면 이 녀석들은 지금도 자신의 귀한 청춘을 무대 위에서 불태우고 있었을 것이다.
어째 그런 생각에 내가 미안하다고 말을 하자, 지원은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특유의 빙구 같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하하하. 사부님이 그런 말을 하신다니 정말 안 어울리네요.”
“이 새끼가.”
“크크. 그런데 처음에는 어땠는지 몰라도 저희는 이 일이 즐거워서 하는 거예요. 비록 사부님 말씀대로 또래들이 하는 일상을 누리지는 못해도 대신 그들이 평생 누리지 못할 특별한 경험들을 매번 하게 되잖아요.”
그러며 눈을 고양이처럼 반짝이는 녀석은 슬그머니 내 눈치를 살피다 다가왔다.
“예를 들면…… 이런 거요!”
그 말과 함께 그 작은 몸체가 안 믿어지게 팔짝 뛰어 내 품에 안기는데 얼떨결에 녀석을 잡아버렸다.
그렇게 과거 어느 화단에서 맡았던 꽃 냄새와 함께 조그마한 계집아이가 갑자기 내 품에 들어오게 되었다.
“한 번에 성공할 줄…….”
뭐가 좋은지 잔뜩 들뜬 얼굴로 내 품에 안겨들어 무어라 떠들어 대던 녀석은 이내 말을 잇지 못했다.
깜짝 놀라서인지 얼굴이 붉어지고 만 내 얼굴과 내 눈과 바로 마주하여 버렸던 탓이다.
“어……?”
“……내려와. 이 녀석아 무거워.”
바보처럼 굳어 버린 녀석에 나는 괜히 얼굴이 화끈거리는 걸 느끼며 서둘러 녀석을 조심스럽게 소파에 내려 앉혔다.
평소 같았다면 소파에 던져 버렸을 터인데, 왜 그랬는지 알 수가 없었다.
제이미와 지원 말고도 이런 감정을 느낀 대상들이 있었다.
코로나19로 인해 나처럼 안식기를 가졌던 이나은과의 만남도 그랬으며, 한동안 일적으로 가깝게 했던 강아영도 그중 하나였다.
이외에도 ‘오만의 왕’ 두 번째 이야기에서 ‘진’의 옛 연인 역을 맡으며 친분이 깊어진 김아영도 그랬었다.
어째 시간이 지날수록 썸이라는 감정을 느끼게 되는 이가 점차 늘어나는 모습을 보이자 나는 다시금 상담사를 찾아야 했다.
“썸을 느끼는 이들이 많아졌다고요?”
“네. 무슨 일인지 점점 늘어나고 있어요.”
“…….”
상담사는 뭣 때문인지 고개를 잘게 저어대며 나를 보더니 잠시 생각하다 입을 열었다.
“영찬 씨는 갑자기 그렇게 썸을 타게 되었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사실 그렇지 않습니다.”
“네?”
“본래 그분들은 영찬 씨에게 마음이 있었어요. 그러던 걸 영찬 씨가 연애에 대한 마음을, 그 가능성을 열기 시작하자 썸이 되기 시작한 거죠. 말하자면 오랫동안 일방향이었던 감정이 반응을 맞이하면서 이런 썸 같은 감정을 마주하게 된 겁니다.”
“!!!”
나에게 있어 충격적인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늘어놓은 상담사는 그와 별개로 정말 흥미롭다는 얼굴로 나를 이리저리 바라보았다.
마치 정말 흥미로운 실험체를 보는 것 같은 눈빛이라, 나는 서둘러 말을 꺼냈다.
“다시 말하지만 저는 케이스에 오르고 싶지 않습니다.”
“……아까비.”
뭐가 그리 신기한지 케이스 논문을 쓰고 싶다는 상담사의 요청을 이번에도 사전에 배제한 나는 이후에도 상담을 이어나갔다.
많은 말이 오갔지만, 결론은 하나였다.
“그들 중 가장 마음 가는 사람과 좀 더 많은 시간을 보내 보도록 해보세요. 제가 보기에는 적어도 지금 썸을 타는 분들 중 누구라도 영찬 씨와 연애를 하기에는 적합한 대상자인 걸로 보입니다.”
오랫동안 나를 좋아하고 있음에도 이처럼 묵묵히 옆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혼란스러운 연애관을 정리하며 천천히 끌어올려야 하는 나에게 적합하다는 말이었다.
마지막으로 너무 진지하게 만남을 이어나가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남겼었다.
나이가 나이인지라 결혼을 생각을 하는 건 어쩔 수 없겠지만, 연애도 어려운 내가 결혼까지 생각한다면 아예 일 자체가 성사가 안 될 거라면서 말이다.
“당장은 연애라. 으음. 이건 이거대로 고민이네.”
너무 진지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에 마음의 짐이 놓인 듯 편안해지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어려웠다.
그러나 그사이 썸을 타게 된 사람이 점차 늘어나 8명이 되어버리자, 나는 이 알쏭달쏭한 마음을 어떻게든 잡을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