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e a music monster overnight! RAW novel - Chapter 163
하루 아침에 음악괴수! 154화
47장. 희정
“날이 덥지?”
“아…… 네.”
바로 가볍게 식사나 함께하자던 말과 달리 영찬이 그날 따라 다른 모습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공식적인 자리에 나갔을 때 것처럼 화장을 하거나 크게 꾸몄다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보다는 영찬이 그녀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고 하는 게 맞는 말일 것이다.
그것은 말로 어찌 설명할 수 없는 미묘한 성질의 것이었지만, 정작 그 대상이 된 입장에서는 너무도 큰 변화로 다가왔다.
덕분에 그동안의 만남으로 나름 편해졌다고 익숙해졌다고 했던 그간의 시간들은 거짓말처럼 리셋되어 버렸다.
덕분에 그녀는 동경하는 스타 앞에 선 소녀처럼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을 보였다.
“잡아먹기라도 한대. 오늘따라 왜 이렇게 긴장을 해?”
“네? 잡아먹어요?”
침을 꼴깍 삼키며 놀라 되묻는 제이미에 영찬은 당황스럽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내가 겁을 먹게 하냐라는 뜻으로 하는 한국식 표현 중 하나야. 정말로 잡아먹는다는 게 아니라.”
“…….”
외국인이라 오해를 하는 건가 싶어 서둘러 변명하는 영찬이었지만, 사실 오랫동안 한국에서 살며 한국어를 거의 마스터한 제이미는 달리 설명을 하지 않아도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다만 그럼에도 놀라 그리 되물은 건, 또 다른 의미가 그 안에 담겨 있음을 알아서다.
‘대표님이면 잡아 먹혀도……. 아휴~’
오늘따라 분위기가 남다르게 다가오는 영찬에 그녀는 저도 모르게 마음 깊이 둔 바람을 드러내다 이내 앗 뜨거라는 얼굴이 되어 버렸다.
그런 제이미의 모습이 귀여운 건지 아니면 재미있다고 생각되는지 영찬은 소리 없이 웃어 보이다 말했다.
“일단 차나 한잔하자. 이대로 밥 먹다가는 체하겠네. 아아(아이스 아메리카노)?”
“네? 네!”
“좋아. 잠깐만 기다려.”
영찬은 작업 때마다 종종 제조해 먹는 자신만의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만들어냈다.
영업용으로 사용되는 차 한 대 값의 커피 머신에 특별히 공수한 원두로 내려 먹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향기부터가 남달랐다.
괜히 썸녀라 할 수 있는 제이미에게 영찬이 커피를 내려 주는 게 아니었다.
“내 입맛에 맞게 제조한 거라 입맛에 맞는지 모르겠네.”
“좋아요. 감사합니다.”
먹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좋다는 제이미에 영찬은 피식 웃어 보이며 먼저 잔을 들어 보았다.
사실 동생의 도움 이후 결심을 굳힌 뒤의 첫 만남이라 영찬은 그녀와 만나기 전에 제법 긴장하는 기미를 감추지 못했었다.
그러나 막상 썸녀가 자신보다 더 긴장하는 모습을 보이며 실수를 하니 어느새 영찬은 여유를 찾은 상태였다.
카페인이 들어간 덕분일까?
이후 두 사람의 담화는 제법 즐거웠다. 전과는 다른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었기 때문인데, 대부분이 사생활적인 이야기들이었다.
가족에 대한 이야기나 삼촌들의 이야기 등을 영찬이 주로 꺼냈다면, 제이미는 세미를 비롯해 자신의 크루에 대한 이야기와 가끔 이모와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정신 치료를 받고 있는 어머니가 최근에 호전되고 있다는 이야기나, 동생에 대한 내용으로 곡을 쓰고 있는 중이라고도 했다.
그러며 부끄러워하면서도 작업을 한 곡을 들려주기도 했는데, 영찬은 그녀가 녹음한 부분을 듣고 잠시 생각하더니 바로 대표실 한편에 놓인 피아노에서 즉석으로 곡을 만들기 시작했다.
-다다다단 단단단!-
3분이 넘는 피아노 연주가 물 흘러가듯이 펼쳐졌다.
모르는 이가 본다면 원래 이런 곡이 있을 것이라 착각을 할지도 모를 만큼 곡의 퀄리티는 대단히 높았다.
사실상 피아노 하나만으로도 곡을 가득 채울 정도였다.
“대충 떠오르는 건 이 정도고, 여기에 가사는 이렇게 하면 될 것 같아.”
“!!!”
제이미는 새삼 음악의 신이라고 까지 불리는 영찬의 진면목을 보게 된 건지라 놀란 기색이 완연했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놀란 기색은 영찬이 바로 이어 노래를 부르면서 달라졌다.
동생에 대한 그리움을 꾹꾹 눌러 쓴 가사들이 풀어 헤쳐져 만들어진 노래는 제이미의 가슴을 뒤흔들기에 충분했다.
노래 자체만으로도 그럴 것인데, 그 노래의 잠재력 이상을 뽑아내는 게 가능한 영찬이 그 곡을 불렀으니 그 감정의 파형이 얼마나 클지 달리 말할 것도 없었다.
-콩닥콩닥-
마치 토끼의 심장 소리처럼 그녀의 가슴은 빠르게 날뛰어 갔고, 어느새 영찬이 마지막 피아노 음을 끝으로 노래를 끝냈을 때, 그녀는 펑펑 울고 말았다.
“……저기.”
뒤늦게 제이미가 울고 있다는 걸 알게 된 영찬은 깜짝 놀라 허둥지둥 티슈를 가져와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려다 이내 자연스럽게 그녀를 안았다.
쉽게 그쳐질 감정이 아니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그저 말없이 등을 토닥이며 그녀가 진정되기를 조용히 기다렸지만, 꺼이꺼이 울어대던 제이미의 감정은 쉬이 그칠 줄 몰랐다.
“훌쩍……. 죄송해요.”
얼마나 울었던지 눈이 퉁퉁 부은 채 부끄러워하며 사과하는 제이미에 영찬은 미소를 보이며 고개를 저었다.
“이래서야 밥은 먹기 힘들겠네.”
“죄송합니다.”
농담이 담긴 그의 말이었지만, 제이미는 그의 말을 농담으로 받아들일 여유가 없었다.
그런 그녀의 마음을 알기에 영찬은 다시금 티슈를 들어 그녀의 화장이 번진 눈가를 닦아주며 말했다.
“괜찮아. 어쨌든 너한테 그렇게 마음이 닿은 곡이 나왔다니 정말 기쁜 일이잖아.”
“네. 감사합니다.”
“좋아. 그럼 녹음은 이틀 뒤부터 하도록 하자. 곡은 보내줄 테니깐 제대로 숙지하고.”
“헤헤. 네.”
영찬은 그제야 웃음을 지어 보이는 제이미에 어색한 웃음을 보였다.
어째 사적으로 가진 만남의 자리가 공적인 일로 끝이 나니 그게 기묘해서다.
제이미와의 시간이 그러했다면 강아영과의 시간은 또 달랐다.
30대라는 나이 때문도 있겠지만, 그전에 강아영 그녀 본인의 성향 또한 차분한 편이다 보니 그 함께한 시간들은 크게 극적이거나 하지 않았다.
대신 일상 속에서 이따금씩 따듯한 햇살 속에서 느껴지는 행복처럼 조용히 다가올 따름이다.
“왜 어르신들이 강아영 씨를 좋아하는지 알 것 같아.”
“네?”
뜬금없는 말에 강아영이 놀라자 영찬은 웃으며 말을 이었다.
“하하하. 마치 옛날이야기에서 나올 법한 현모양처 같은 모습이 보인다고 할까?”
“혀…… 현모양처요?”
그녀는 뒤늦게 영찬이 농담을 한 것이라는 걸 알고 특유의 단아한 미소를 보이다 말을 이었다.
“그렇게 보이시는 건 아마 할머니 덕분일 거예요.”
“할머니? 아! 그래, 어릴 때 할머니 아래에서 컸다고 했지.”
“네.”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평소에 친구 같으면서도 예절에 있어서는 무섭게 다그치던 할머니를 이야기했다.
“아마도 부모님 없이 크다 보니 혹시나 뒷말이 나올까 봐 더욱 그러셨던 것 같아요.”
“할머니가 현명하신 분이셨네.”
“네. 정말 미안하고 감사할 수밖에 없어요.”
그런 예절이 몸에 배어 있다 보니, 사람들은 오히려 그녀를 쉬이 대하지 못했다.
덕분에 직장 생활 때에도 득을 많이 봤으며, 힘든 무명 가수 시절 때에도 그녀의 원동력이 되어 주었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모습에 영찬은 새삼 그녀가 대단하게 느껴졌다.
말이 쉽지, 실제로 저렇게 어린 시절 배운 마음씨를 그대로 유지한다는 건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 또한 힘든 과거가 있었기에 이게 얼마나 어려운지를 잘 알고 있었다.
그렇게 두 사람과의 썸이라고 할 수 있는 시간을 보내었던 영찬은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났을 때쯤 자신의 마음을 알게 되었다.
정확히 두 사람 중 어디로 자신의 마음이 기울고 있는지 알게 된 것이다.
“제이미. 괜찮다면 우리 한번 만나 볼래?”
“네? 네? 네?”
그녀의 눈물을 쏙 빼놓았던 곡을 녹음한 뒤, 영찬과 조금 더 가까워지게 된 제이미는 오늘도 잡담을 하다 갑자기 훅 들어온 영찬의 말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한번 진지하게 만나 보자고.”
그리고 그동안 만나면서 그런 그녀의 생각을 알고 있는 영찬은 바로 자신이 말한 내용을 다시금 확인시켜주었다.
“……그 진지하게 만난다는 게.”
“사귀자고.”
“!!!”
사귀자는 말 한마디에 제이미는 사춘기 소녀처럼 얼굴이 빨갛게 물들어 버렸다. 실제로 제이미는 머릿속이 하얗게 변해 쉽사리 생각을 이어갈 수 없었지만, 그럼에도 그녀의 입은 자신이 해야 할 말을 꺼내 놓았다.
“네. 네. 좋아요.”
“하하하.”
영찬은 그제야 안도가 되었다는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제이미가 자신에게 큰 호감을 가지고 있다는 건 알고 있지만, 그와 별개로 고백을 하는 건 떨릴 수밖에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38살 여름.
그렇게 영찬은 첫 연애를 시작하게 되었다.
* * *
“뭐? 결혼! 누구 마음대로!”
암울한 2020년의 마지막을 앞두고 오랜만에 함께하게 된 가족과의 식사 자리에서, 희정이 이 녀석이 터무니없는 발언을 꺼내 놓았다.
식사를 끝내고 차를 마시는 와중이라 다행이었지, 아마 밥을 먹고 있다가 들었다면 사레가 제대로 걸렸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만큼 결혼이라는 중대사를 입에 담은 여동생의 발언은 크게 놀랄 만한 것이었지만, 어째서인지 어머니는 놀라는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그 모습이 참으로 답답한 터라, 나는 어머니에게 닦달했다.
“엄마! 뭐 하고 있어. 어서 저 녀석한테 뭐라고 좀 말 좀 해!”
“……에휴.”
그러나 어째서인지 어머니는 그런 말을 하는 나를 철없는 아이 보듯이 바라보며 한숨을 흘리더니 이내 다시 동생에게 시선을 돌렸다.
“잘 생각했어. 아니지. 사실 늦은 거지.”
“……그게 무슨 말이야!”
나는 절규하듯 소리쳤지만, 어머니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은 채 나한테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이 녀석아! 희정이도 벌써 31살이야!”
“아니거든! 아직 30살이거든.”
그새 31살이라는 말에 발끈해 30살을 외치는 동생이었지만, 어머니는 가볍게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어갔다.
“30살이든 31살이든 옛날이었으면 노처녀 소리를 들었어도 백 번 들었을 나이지. 다행히 3년이나 만난 번듯한 사내도 있었으니 달리 말을 안 한 거지. 안 그랬으면 몇 번이고 희정이 선 자리 내보냈을 거야.”
“……음. 현철이가 아깝기는 하지.”
-짝-
“으윽!”
동생과 사귄다는 걸 알고 현철이와 사적인 자리를 몇 번 가졌던 나는 그가 정말 동생에게 아까운 사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러니 나로서는 사실을 말한 것뿐임에도 어머니에게 등짝을 맞은 게 억울했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그래도, 이 꼬맹이를 벌써 결혼시킨다는 건 좀 그렇잖아.”
“꼬맹이라니!”
희정이가 발끈했지만, 어머니는 그런 동생에게 손을 저으며 나에게 말했다.
“영찬이 니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모든 게 다 때가 있는 법이야. 희정이 결혼도 그런 거고.”
“…….”
담담하게 동생이 결혼할 때가 되었다고 어머니가 말했지만, 나는 끝내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