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e a music monster overnight! RAW novel - Chapter 184
하루 아침에 음악괴수! 175화
“태몽? 그런 게 있었어?”
“어…… 미국에는 그런 게 없나?”
“응. 적어도 나는 처음 들어 본 것 같아. 신기하다.”
“그래서 그 거울이 우리 딸이라는 거야?”
“아마도 그렇지 않을까? 아마 찾아보면 그와 관련된 내용의 태몽이 있을지도 몰라. 그나저나 미국인들은 태몽을 꾸지 않는구나.”
아니, 모든 미국인들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울지 모르겠다.
수많은 나라의 인종들이 살고 있는 나라이니 말이다.
‘모르긴 몰라도 원주민들인 인디언들은 태몽을 꿀지도 모르겠네.’
오랜 세월을 거쳐 지금도 영적 생활을 이어왔던 그들이니 당연하게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어디 보자. 여기 있네. 고급스럽고 비싼 거울을 선물 받는 꿈은 태몽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나오네. 영특하고 현명하며 사교력이 좋은 아이를 낳게 된다라니. 너무 좋잖아!”
“정말? 그렇게 나와!”
제이미는 태몽 해석에 대한 이야기에 너무도 기뻐했다.
그녀는 다시금 나에게 태몽에 대한 해석을 불러 달라고 하더니 이내, 그걸 녹음해서 몇 번이고 들으며 이를 외웠다.
나는 그런 그녀를 보며 오랜만에 낄낄거리며 웃어대다, 조심스럽게 마음속으로 바랐다.
‘가능하면 딸이었으면 좋겠네. 제이미를 닮은…….’
남자아이도 괜찮기는 하지만, 나를 닮은 아이라면 조금 겁이 났다.
사실 일이 잘 풀려서 다행인 거지, 어릴 때부터 자기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사는 사내 녀석이라니 자칫 육아 난이도 헬일 가능성이 높았다.
‘생각해 보면 여자아이도 나를 닮았다면 문제겠는데?’
농담이 아닌 게 기억 속 녀석의 희정이 얼마나 막 나갔는지를 생각한다면 정말 어릴 때부터 교육을 철저히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딸이든 아들이든 제이미를 닮아야 해.’
육아 난이도가 헬이 될지 헤븐이 될지의 이야기라 나는 이 태몽을 안겨 준 아버지에게 내 소망을 빌었다.
당연한 일이지만, 이 소식이 지인들에게 전해졌을 때 그 반응은 대단했다.
특히 엄마는 호들갑을 보이며 너무도 기뻐했었다.
“아이고! 다행이다. 이러다 결혼은 안 하고 늙는 게 아닌가? 싶어서 걱정이었는데.”
이럴 때가 아니라면서 당장에라도 지인들에게 전화를 하려고 하는 어머니에 나는 깜짝 놀라 서둘러 말렸다.
“아직은 소문내면 안 돼.”
혼전 임신이 요즘에서야 그리 흠잡을 것도 아니라지만, 여전히 이 사회에는 보수적인 이들이 많았다.
그들은 혼전 임신을 한 것만으로도 무지성 비난을 할 터.
물론 이런 게 공인의 비애니 지금 와서 그리 놀랄 것도 없을 일일지 모른다.
하지만 나도 제이미도 유명세만 놓고 본다면 세계적으로 한 손 안에 들다 보니, 제법 파장은 클 수밖에 없을 터.
나야 평소에도 그리 신경 쓰지 않는다지만, 내가 사랑하는 제이미와 우리 아이에게는 축복만이 있기를 바랄 뿐.
그런 나의 생각에 어머니는 아쉬워하면서도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며칠만 참아요. 일단 혼인 기사부터 대대적으로 터트릴 테니깐요.”
물론 갑작스러운 혼인 이야기가 떠돌면 자연스럽게 혼전 임신 이야기가 나올 테지만, 추측성의 이야기까지는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럴 줄 알았다! 하여간 사내놈들이란!”
동생은 무지성으로 나를 비난하면서도, 한편으로 제이미가 자신의 언니가 된다는 것과 조카가 생긴다는 것에 너무도 기뻐했다.
“제발! 제발 제이미를 닮아야 하는데! 저 인간은 절대 닮으면 안 되는데!”
“……그것참.”
나 또한 녀석과 같은 마음이라 공감을 하면서도 저렇게까지 말을 해대니 살짝 기분이 나빠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삼촌들에게 아이가 생겼다는 소식을 전했을 때, 의외로 삼촌들은 그리 놀라지 않았다. 오히려 올 게 왔다는 태도를 보였다.
“솔직히 너희 사귄 지 몇 달 안 되어서 애가 생길 줄 알았는데. 이렇게 늦을 줄이야!”
“그러게. 생각보다 많이 늦었네. 에휴. 너 혹시 문제가 있는 건 아니지?”
“크크크. 너도 이제 좋은 시절 다 갔다. 육아가 얼마나 빡신지 이제 죽어라 느껴봐라!”
“아무리 그래도 나보다 힘들까? 나는 쌍둥이였어! 애 하나가 울면 또 다른 애가 우는 그 끝없는 지옥의 물레방아와 같은…… 끄윽.”
“축하한다. 드디어 너도 유부남 클럽에 입성했구나.”
그나마 멀쩡하게 축하해 주는 김일 삼촌에 나는 큰 감사의 마음을 가지다, 곧 준비해 둔 청첩장을 건네주었다.
그리고 그 청첩장을 받은 삼촌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어이없다는 얼굴을 보였다.
“미친 거 아냐? 한 달도 안 되어서 결혼식을 잡겠다고?”
“너 결혼 준비 할 게 얼마나 많고 힘든지 모르는 거냐!”
“미친 녀석!”
삼촌들의 비난에도 나는 어깨를 그저 으쓱했다.
“모를 리가 있겠어요. 제 동생 결혼식 준비에 제 지분이 얼마나 많은데요. 돈을 좀 쓰면 충분히 가능할 것 같아요.”
그런 내 말에 삼촌들은 정말 철없는 조카를 보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런 삼촌들의 우려가 무엇이었는지 나는 얼마 가지 않아 알 수 있었다.
“……살려줘!”
제삼자 입장에서 준비하는 것과 그 당사자가 되어서 준비하는 것의 차이가 그야말로 천지 차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렇게 살기 위해 허덕거리던 가운데, 드디어 결혼 관련에 대한 입장문을 공식적으로 흘려냈다.
-제이미 YC 커플 드디어 결혼한다!-
└무슨 소리야? 오늘 만우절도 아닌데?
└진짜임! YC엔터뿐 아니라 제이미와 YC가 본인 계정들을 통해 공식적으로 소식을 알렸음.
└우와! 진짜네. 그동안 너무도 조용했던 터라, 헤어졌다는 소문들이 많았는데.
-결혼식은 과거 동생이 결혼했던 YC 소유의 휴양지에서 한다는데?
└하기야 이해 못 할 건 아니지. 세기의 커플의 결혼식인데…… 취재진들이 오죽 많을까?
└ㅋㅋㅋ. 기자들 입장에서는 정말 아쉬울 듯. 내가 알기로는 대륙에서 제법 떨어진 곳이라 헬기를 띄우기도 힘들 텐데.
-그나저나 갑자기 이렇게 결혼하는 거 보면 역시 혼전임신이겠지?
└그럴 가능성이 높지! 요즘은 흠도 아니기도 하고.
└그래도 YC와 제이미라면 이야기가 다르지. 둘 다 사건 사고 친 것도 없던 걸 생각하면 이게 그나마 사고 친 걸지도.
-다들 추측성이 판을 치는군. 그러나 YC 나이를 생각하면 사실 이것도 늦은 거임.
└YC 나이가 어떻길래?
└41살이잖아!
└진짜? 맙소사! 우리 엄마하고 같은 나이라고! 동양인이 나이를 안 먹는다고는 들었지만 이건 너무 한 거 아니야? 아마 옛날부터 좋아하지 않았다면 20대라고 해도 믿을 외모인데.
└억울하다. 나는 이제 20살인데 내 얼굴이 YC보다 더 늙어 보여.
예상했던 대로 혼전임신에 대한 이야기들이 커뮤니티 곳곳에서 나오고 있었지만, 우리는 그 어떤 입장발표도 하지 않았다.
어차피 긍정을 하든 부정을 하든 사람들은 자신이 믿고 싶어 하는 것만 믿는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그래도 다행이라면 내 나이 때문인지 몰라도 팬들은 나의 결혼에 대해 축하를 아끼지 않았다.
-딴딴딴다~-
그런 대사건들을 거쳐 오늘 나는 드디어 결혼을 하게 되었다.
하필이면 비가 주르륵 내리는 날에 하는 야외 결혼식이었지만, 다행히 그리 많은 비가 내리는 게 아니라 식을 진행하는 건 문제가 없었다.
‘마음 같아서는 정말 화려하게 하고 싶은데.’
세상 요란하고 화려하게 하고 싶었지만, 아직 조심해야 하는 시기의 제이미를 위해서라도 이렇게 하는 게 맞았다.
요란한 결혼 행진곡과 함께 혼례를 치르게 되었고, 이후 일주일에 걸쳐 파티가 이어졌다.
결혼식 날 의외로 어머니는 울지 않으셨다. 대신 허파에 바람이 든 것처럼 웃음을 참지 못하셨는데, 새삼 그 모습에 어머니가 내 결혼을 얼마나 바랐는지 알 수 있었다.
울음이 많았던 건 제이미의 어머니였다.
그동안 상담사와의 치료를 통해 이제 트라우마를 극복한 장모님이었기에, 그 눈물에 담긴 감정은 슬픔만이 있는 게 아니었다.
대견함과 기쁨 등의 감정이 담긴 눈물이었고, 그런 어머니의 마음을 아는 것인지 제이미도 어머니가 울 때면 자신도 함께 따라 울기도 했다.
“어이구. 기쁜 날에 왜 그리 울어대고 그래!”
다행히 유난히도 씩씩한 제이미의 이모 덕분에 그 눈물이 반으로 줄어든 건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다행히 입덧이 심하지는 않네.”
어머니는 정말이지 제이미를 딸처럼 여기는 것처럼 시간이 날 때마다 찾아왔다.
한국인이어도 부담이 갈 텐데, 개인주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미국인인 제이미라면 싫어할 것이라 생각했으나 그건 나의 편견이었다.
“아니? 나 엄마 오는 거 좋은데?”
“……진짜?”
“응. 엄마가 얼마나 나 이뻐해 주는데. 정말이지 엄마하고 함께 있을 때면 아이가 된 것 같은 기분이야.”
“그렇다면 다행이고.”
고부갈등이 결혼 생활에 큰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걸 들은 나는 남편이, 아들이 잘해야 한다는 것을 주변 사람들로부터 너무도 많이 들었었다.
하지만 제대로 된 10대 시절을 보내지 못한 영향인지 정에 굶주린 제이미는 오히려 어머니의 그런 적극적인 애정이 그저 반가운 모양이었다.
어머니도 외모와 달리 순둥이 같은 막내딸 성격의 제이미가 더욱 맘에 든 모양이고.
-짝!-
“갑자기 왜 때려!”
“너 때문에 애가 고생하는 게 미워서 그런다!”
“…….”
얼마나 마음에 드신 건지 최근 입덧이 심해지면서 고생하는 제이미의 모습에 내 등짝을 때릴 정도였다.
“헤헤헤.”
그런 어머니에 제이미는 힘든 와중에도 재미있던지 웃음을 흘리기 바빴다.
그리고 마침내 그 시간이 찾아왔다.
-응애애앵!-
드디어 우리의 아이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따님입니다. 축하드려요.”
“으하하하하!”
딸이라는 말에 나는 세상 다 가진 것처럼 미친 듯이 웃어댔다.
그런 내 모습에 어머니는 어이없다는 얼굴을 보이더니 이내 내 등짝을 때리며 눈치를 주었고, 이에 나는 정신을 차리고는 서둘러 딸을 안고 있는 제이미에게 다가갔다.
얼굴이 퉁퉁 부을 정도로 힘들어 했던 걸 까먹었던지 제이미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나는 그런 제이미의 모습에 묘한 감동을 받아 갑작스레 목이 메었던 터라, 겨우 한마디를 꺼냈다.
“……고생했어.”
“헤헤헤. 오빠, 우리 딸이야.”
나는 나에게 딸을 건네주는 제이미에 조심스럽게 딸을 받아들였다. 너무도 작고 가벼웠기에 그 손길은 더욱 조심스러워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 네가 은경이구나. 안녕? 아빠야.”
우리는 딸 아이 이름을 태몽에서 본 은경(銀鏡) 그대로 은경으로 짓기로 합의했기에 제이미는 내가 딸을 은경이라 부르는 것에 그저 미소를 지을 따름이다.
“……다행이야. 당신을 많이 닮은 것 같아.”
“그래? 나는 오빠 닮았으면 했는데.”
“……아냐. 그건 아냐. 당신 닮아야 돼.”
“헤헤헤.”
진심이 담긴 내 말이 뭐가 웃긴 건지 제이미는 한참을 그리 웃어댔다.
그렇게 그날.
나는 한 가정의 가장이 되었다.
* * *
-이번에 서울에서 열리는 RRHOF(Rock & Roll Hall of Fame : 로큰롤 명예의 전당) 후보에 블랙 타이거가 드디어 올랐다!-
└맙소사! 이제야 블랙 타이거가 RRHOF에 오르다니 정말 미친 거 아니야?
└하여간 RRHOF 놈들 고지식한 거 보소. 주최지를 한국에서 연 것만 해도 몇 번째인데, 그놈의 룰을 바꿀 생각을 안 하네.
└‘첫 번째 레코드가 출시된 후 25년이 지나야 한다.’라는 미친 룰을 정한 새끼가 누구일까?
└요즘 새삼 미국 애들이 더 보수적인 것 같아.
-나 같으면 더러워서 안 받을 텐데. 역시 블랙 타이거 형님들의 인성이란!-
└ㅋㅋ 그러게 말입니다. 사실 YC 아카데미에서 받는 상이 더 권위적인데 말이야.
└와~ 이런 거 보면 정말 세상 많이 변한 걸 새삼 느끼게 되네. 내 어릴 때만 해도 RRHOF는 진짜 권위적인 상이었는데.
└그런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이야기를~
어느 시점부터 한 해가 갈수록 RRHOF의 권위는 떨어지고 있었다.
음악 시장의 중심이 한국이 된 것도 그 영향이겠지만, 가장 큰 건 역시나 매해 RRHOF를 받아야 할 블랙 타이거가 그 후보에 오르지 못하면서다.
이제 전설 아닌 레전드가 된 전무후무한 최고의 밴드.
취향이라는 걸 탄다는 게 용납되지 않는 그들의 음악을 두고 매해 엉뚱한 이들을 RRHOF로 뽑으니 그 권위가 갈수록 퇴색될 수밖에.
하지만 RRHOF 쪽에서도 어쩔 수 없었다.
‘첫 번째 레코드가 출시된 후 25년이 지나야 한다.’ 라는 룰을 바꾼다는 건 그들 입장에서도 상당히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미 주최지가 미국에서 한국으로 넘어온 것만 해도 그들에게는 대사건이기에 더욱 그러했다.
그렇기에 무려 25년을 꽉 채워서야 블랙 타이거는 RRHOF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다.
“……생각보다 별것 아니네.”
“눈물이나 닦고 이야기하지.”
“내, 내가 무슨 눈물을 흘린다고…… 아니, 너도 울고 있잖아.”
“X발! RRHOF를 먹었는데, 안 우는 게 이상하지.”
“크크크. 하여간 너희들도 참 한결같다.”
“와아~ 진짜 25년이나 버틸 수 있을지 몰랐어.”
“의학의 승리지. 뭐~”
남들은 은퇴할 나이에 호기를 부렸던 그들은 정말 자신들이 평균 77살 때까지 왕성하게 활동을 할 줄 몰랐었다.
아마 과거였다면 가능한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게 그들은 20년 전처럼 여전히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박시영의 말대로 이게 가능한 건 다름 아닌 발전된 의학 덕분이었다.
2025년을 기점으로 노화 정복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더니 2030년이 되면서 정말로 상용화가 되었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세포가 젊어지기보다는 더 이상 늙지 않는 것에 초점을 두었고, 그 시술을 받는 것도 가격이 어마어마했다.
하지만 가진 건 돈뿐인 영찬은 삼촌들은 물론 자신과 지인들 모두를 그 시술을 받게 했다.
그러다 다시 5년이 지났을 때쯤. 마침내 세포가 젊어지는 시술이 나왔다.
물론 그 한계는 생각보다 빡빡한 수준이었지만, 그것으로도 블랙 타이거의 삼촌 라인들은 만족했다.
이로써 과거 그들끼리 이야기했던 RRHOF를 탈 수 있을 때까지 활동을 이어갈 수 있을 것이라 본 것이다.
특히 이 일에 가장 기뻐한 건 영찬이었다.
“정말 삼촌들과 함께 RRHOF 의 주인공이 될 줄은 몰랐어요!”
그런 조카의 모습에 그들은 머쓱한지 괜히 볼을 긁적거리다 말했다.
“뭘. 그 정도 가지고 그러냐. 앞으로도 써야 할 전설이 한두 개가 아닐 텐데.”
“그러게 말이야. 설마 RRHOF 된 걸로 활동 그만두려는 건 아니지?”
“맞아. 너한테 그렇게 시달리면서 겨우 이 경지에 이르렀는데, 죽을 때까지 해야지.”
“그래. 죽을 때까지 고생해야지.”
“그러고 보면 요즘 또 연기한다고 바쁜 것 같은데. 본업 좀 집중하자.”
“크크크.”
영찬은 여전한 삼촌들의 그런 모습에 낄낄거리며 웃기 바빴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감격스럽기도 했다.
그의 기억 속 영찬과는 달리 그가 처음 밴드를 시작한 건 30살 때였고, 그의 삼촌들의 나이는 당시 50살이 넘었었다.
그런 상황에서 무려 25년 동안이나 활동하면서 끝내 RRHOF의 주인공이 되기까지 했다.
가능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던 일들이 결국 해내고 말았으니 감격스러울 수밖에.
그렇게 한바탕 웃던 영찬은 마침 잘되었다는 듯, 악보를 꺼내 들었다. 여전히 클래식하게 종이로 된 악보를 꺼내는 영찬에 삼촌 라인들의 얼굴이 묘하게 찌그러졌다.
“어허~ 집어넣어. 이 좋은 날에 그런 흉한 걸 왜 꺼내고 그래.”
“이 새끼. 예나 지금이나 눈치가 없는 건 여전하네.”
“또 어떤 미친 걸 보여주려고!”
“아니야! 그건 아니야! 일단 오늘은 집어넣어!”
“……영찬아 이건 아니다.”
“……알겠어요.”
침울해하는 영찬이었지만 삼촌 라인들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하기야 그들이 그러는 것도 이해 못 할 일은 아니었다.
이들의 실력이 마침내 과거의 마빈과 같은 경지에 이르자, 영찬은 정말이지 그동안 어떻게 참았는지가 이상할 정도로 말도 안 되는 고난이도의 곡들을 꺼내놓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대가의 최상위의 경지에 이른 그들조차도 뼈 빠지게 구르고 굴러야 겨우 그 진가를 끄집어낼 수 있을 정도의 음악들이었다.
곡 자체가 그저 어렵기만 한다면, 그들도 할 말이 있을 테지만 문제는 그들도 보는 눈이 높아지다 보니 이 곡이 정말 제대로 소화만 한다면 미친 음악의 퀄리티를 보여준다는 걸 안다는 것에 있었다.
이러니 영찬이 하자고 꺼낸 음악에 그들은 ‘X발X발’ 하면서도 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그 과정이 힘들고 고뇌스럽다고 해도, 뮤지션으로서의 욕심을 능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도 한두 번이지, 매해 그런 행사를 한두 번을 벌여대니 이리 두려워할 수밖에 없었다.
“……어휴 X발!”
“젠장!”
그러나 그렇게 악보를 집어넣으라고 했던 그들은 얼마 가지 못해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영찬에게 손을 내밀었다.
지옥문이 열린다는 걸 알면서도 그 과실의 달콤함을 너무도 잘 아는 이들로서는 애초 영찬의 제안을 거부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해 낸 앨범은 팬들 사이에서 블랙 타이거의 수많은 명반들 중에서도 최고라 손꼽히는 명반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그러나 내년이 되면 또 팬들은 달리 이야기를 할 것이다.
올해의 블랙 타이거 앨범이 역대 최고라고 말이다.
이 모든 건 한계를 모른 채 끝없이 발전하는 YC의 영감으로 탄생된 음악. 그리고 그걸 현실화시켜 주는 블랙 타이거의 밴드의 음악성이 만들어 낸 기이한 현실이었다.
하지만 그런 긴 세월 속에서도 언제나 그들의 콘서트의 첫 번째 문을 연 음악은 하나였다.
-노장은 죽지 않는다.-
블랙 타이거를 알린 첫 번째 앨범의 메인 곡이자, 어쩌면 지금의 그들의 정체성에 가장 맞는 곡이었고, 그렇기에 팬들 또한 이 노래를 가장 애정했다.
하루아침에 음악 괴수가 된 한 존재는 그렇게 세상을 바꾸었고,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을 그를 두고 음악의 신이라고 일컫기 시작했다.
* * *
-에필로그-
딸이 죽었다.
……아들이 죽었다.
시름시름 앓던 부인 또한 결국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나는 더는 술을 마시지 않았다.
아니, 마실 수가 없었다.
술 따위가 끝없는 절망에 허덕이는 나를 구원할 수 없음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신이시여…….”
나는 평생을 찾지 않는 신을 찾았고, 이후 나는 온갖 꼴을 다 당해야 했다.
나에게는 아들이 남긴 막대한 유산이 있었기에, 내가 가진 부를 노리는 온갖 사이비들이 나에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덕분에 나는 알게 되었다.
“세상에는 신 따위는 없구나!”
바로 나를 구원해 줄 위대한 존재는 없다는 것을.
그걸 알았을 때, 나는 이 빌어먹을 세상을 지워 버리고 싶었다.
그리고 그걸 조금은 이루어 낼 힘이 나에게 있었다.
그렇게 분노 속에 타들어 가던 나에게 누군가 나에게 말을 건넸다.
“어휴~ 그건 아니지.”
“???”
중간의 맥락이 사라진 갑작스럽게 등장한 누군가에 나는 놀라 고개를 들었다.
그는 멋들어진 턱시도를 한 어딘가 얼굴에 장난기가 가득한 소년이었다.
누가 봐도 미소년이라 할 정도로 잘생긴 소년의 모습에 나는 잠시 넋을 놓고 말았다.
정말 이상한 일이지만, 그 소년의 모습에서 이제 흐릿해져 버린 아들의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덕분에 나는 오히려 냉정을 찾을 수 있었다.
“……누구십니까?”
“호오? 분명 미쳤다고 생각했는데…… 제법인데?”
“…….”
그 이상할 정도의 여유. 외모와는 어울리지 않는 말투.
그리고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달라진 주변 환경들.
설마, 설마 아니겠지.
너무도 많은 끔찍한 꼴을 당했기에 나는 아니겠지라고 몇 번이고 생각하면서도 기대를 감추지 못했다.
그렇기에 나는 덜덜 떨며 그 소년 앞에 무릎을 꿇은 채 조심스레 다시 물었다.
“……신이십니까?”
“헤헤. 뭐, 비슷한 존재이기는 하지.”
-꿀꺽-
나는 요란하게 침을 삼키고 말았다.
신이다. 그토록 찾던 신이다. 신이 내 앞에 강림하셨다.
드디어 나는…….
“잠깐! 원하는 게 구원이라면 나는 이루어 줄 수 없어.”
“……!!”
다시금 나를 절망으로 밀어 넣는 신에 나는 소리 없이 비명을 지르려는 데 신이 서둘러 말을 이었다.
“대신 거래는 할 수 있지.”
“거래?”
“그래……. 거래.”
신은 구원은 어렵지만, 대신 그 비슷한 건 해줄 수 있다고 말했다.
“하나만 포기하면 그대의 딸도 아들도 부인도 살릴 수 있네.”
“……뭘 포기하면 됩니까?”
“그대의 목숨.”
“하겠습니다. 얼마든지 내놓겠습니다.”
“나야 좋지만…… 너무 빨리 결정하는 거 아냐?”
빠르다고요? 아닙니다. 죽지 못해 산다는 게 무슨 말인지 아십니까?
그건 지옥입니다.
이 지옥을 드디어 벗어날 수 있다는 데 빠르다니요. 부탁입니다. 어서 저의 목숨을 가져가시고…….
“하아~ 역시 미쳤구나. 그래. 알겠어. 사실 이건 나한테도 큰 이득이 되는 일이니깐.”
신은 ‘드디어 내 일 하나를 줄일 녀석 하나가 탄생하겠네.’ 라고 혼자 중얼거리더니 이후 나에게 종이 한 뭉치를 내주었다.
“계약서?”
“어. 거래를 하려면 제대로 해야지. 읽어 보면 알겠지만 사실 좀 파격적인 조건이야.”
“어? 감사합니다.”
“그래 감사해야지. 에헴.”
그리고 그 감사하다는 말은 계약서를 다 읽은 뒤에 진심이 될 수밖에 없었다. 아들과 딸, 부인을 살리는 것만으로도 부족해 여러 가지 혜택을 아들에게 줄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나는 망설임 없이 계약서에 싸인을 했고, 이에 신은 만족스러워하더니 품에서 작은 거울 하나를 내게 주었다.
은경(銀鏡)이었다.
“이건 서비스. 원래 이 녀석은 앞으로 쌓아갈 업 때문에 아이를 가질 수 없는데, 이거면 가질 수 있을 거다. 나중에 직접 만나서 전해줘.”
“어…… 감사합니다?”
“그래 감사해야지. 에헴.”
신은 한결같이 장난기 어린 모습을 내내 보이는 것을 끝으로, 이후 기분 좋은 얼굴로 말했다.
“이로써 계약은 성립되었다.”
-파아아앗!-
그 말과 함께 거대한 빛이 나를 삼켰다.
-빠아아앙!-
그렇게 나의 운명이 뒤바뀌었다.
교통사고에서 운 좋게 살아남았던 나는 죽음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대신 나의 가족들이 살아남게 되었다는 걸 죽음을 코앞에 두면서 알게 된 나는 환호할 수밖에 없었다.
오~ 신이시여!
감사하나이다.
하루 아침에 음악괴수! 완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