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e a music monster overnight! RAW novel - Chapter 38
13장. YC 사마(さま,?)
13장. YC 사마(さま,?)
“아이고~디다.”
“미치겠네.”
“편의를 봐준 게 이렇다니. 미쳤어.”
“우리도 우리지만, 이런 걸 10대 애들이 한다고? 아동 학대로 신고해야 하는 거 아냐?”
“원래 이 바닥이 그래.”
투덜거리는 삼촌들을 보며 나는 헛웃음을 지어야 했다.
괜한 투정이 아니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만큼 활동이 생각했던 것보다 고되었다.
문제의 시점은 A 방송사의 ‘더 라이브쇼’에서의 20분에 달하는 특별 무대가 큰 반응을 일으키면서 부터였다.
그 반응이 뜨겁자 타 방송국들 또한 특별 무대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12분을 이야기하던 S 방송사에서조차 5분을 더 추가한 17분으로 늘려 버렸을 정도다.
“덕분에 콘서트 투어 제대로 했지.”
설마 방송사를 돌며 미니 콘서트를 하게 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갑자기 잡힌 스케줄들인만큼 이 과정은 생각보다 더 고되었다. 음원을 따로 준비한 아이돌들과 달리 락 밴드 특성상 라이브 연주로 진행되기 때문이다.
물론 밴드라고 해서 모두 라이브로 연주하지는 않았다. 음향, 시간 등의 사정상 페이크 연주를 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대중들의 관심과는 별개로 블랙타이거는 신인이다보니 이는 고려조차 하지 못했다.
음악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PD들이 라이브를 고집했기 때문이다.
“어쩌겠어. 너무 잘해 버린 게 문제인데.”
무려 순간 시청률 20% 넘겨버린 ‘Legends of Rock’에서의 라이브 연주가 확실히 너무 인상 깊었긴 했나 보다.
‘얼마나 인상 깊었던지 방송사마다 기타 솔로 연주를 해야 했지.’
물론 ‘Legends of Rock’에서처럼 5분을 넘기지 않았다.
2분 정도의 기타 솔로 연주로 그쳤는데, 즉석 기타 연주다보니 이 연주들만 모아 편집된 영상이 너튜브에 떠돌 지경이다.
“덕분에 확실히 눈도장은 찍었지.”
방송국 관계자들 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엄청난 홍보가 되었다.
1주차만에 엄청난 인지도가 쌓이자 자연 2주차 부터는 각 방송국의 메인 예능에서도 우리를 불러들이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하게 된 예능은 이제 국민 예능이 된 ‘무모한 도전들’이었다.
국민MC가 진행하는 ‘무모한 도전들’은 매 회 새로운 도전으로 진행되는데, 우리가 나갔던 회차의 도전은 바로 ‘락 음악에 도전하라!’였다.
혹시나 우리 때문에 이 도전이 정해졌는가? 싶어 부담스러웠으나, 그건 또 아니라고 했다.
‘Legends of Rock’을 통해 락이 다시 관심을 받기 시작하자, 이 도전거리를 생각중이었다고.
멘토를 누구로 할지가 문제였는데, ‘Legends of Rock’에서 우리가 공연하는 걸 보고 PD는 바로 섭외 첫 번째 순위로 고려했다.
다만 이 당시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나오지 못한 건 아무래도 블랙 타이거의 인지도 때문이다.
화제의 밴드라고 해도 결국 신인 밴드라는게 문제인 것이다.
하지만 방송국 미니 콘서트 투어를 통해 대번에 인지도가 높아지자 더는 고민 없이 우리를 섭외했다.
그리고 이 무모한 도전들에서 가장 화제를 낳은 게스트는 내가 아니었다.
가장 크게 활약을 하고 화제를 낳은 이는 바로 곽도훈 삼촌이었다.
무모한 도전들은 가끔씩 멤버들을 골탕 먹이기 위한 코너를 만드는데, 이번에 만든 코너는 ‘놀라주기 바래.’라는 코너였다.
제작진들은 멤버들을 서울에서 먼 외진 창고로 오게 주소를 보내었고, 지방 촬영에 멤버들은 대부분 투덜거리며 창고로 들어선다.
그때 멤버들이 본 건 다름 아닌 무언가 험악한 거래가 벌어지고 있는 장소였다는 설정이다.
세트도 그 내용도 허접한 면이 있기는 했기에 과연 이런 걸 속아 줄까? 생각했던 우리 생각과 달리 무모한 도전들의 멤버들의 반응은 하나같이 대단했다.
“으아아아아!”
“꿀꺽! 여기가 아닌가?”
“어….죄, 죄송합니다. 무, 문이 왜 안 열려.”
“저, 저는 아무것도 못 봤습니다….으윽.”
“아니, 도대체 뭔데 이렇게 먼 곳까지 오라고 하는…..!!”
“엉엉엉…문이 왜. 아니요. 다가오지 마세요!”
“!!!!!….(어색).”
울고불고 하며 어느새 잠긴 문을 두드리는데, 그런 일이 가능했던 건 역시나 곽도훈 삼촌의 그 무시무시한 외모 덕분이다.
“너무 익숙해서 잠시 잊고 있었어.”
각인된 기억 속에서 곽도훈 삼촌은 유명 격투 만화 야쿠자의 모티브가 되는 하나가타 케이의 환생이라는 말을 종종 들었었다.
단순히 외모 뿐만 아니라, 그 거대한 덩치에서 흘러나오는 박력은 공기마저 달라지게 만든다는 점 때문이다.
그런 존재를 컴컴한 창고 속에서 홀로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패닉에 안 빠지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었다.
겁쟁이가 많은 무모한 도전들 멤버들이 너무 놀라하는 것 같아 곽도훈 삼촌이 달래려 다가갔지만, 오히려 그건 더 상황을 악화시킬 뿐이었다.
덕분에 이 ‘놀라주기 바래’ 코너는 역대 최고의 순간들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제대로 놀란 멤버 한 명은 국민 겁쟁이라는 별명을 얻었을 정도였다.
여하튼 그런 곽도훈 삼촌의 활약으로 예능 스타트를 끊은 우리는 이후 멘토가 되어 연주 실력이 늘 수 있게 도와 주었다.
이날 나는 그 자리에서 즉석으로 곡도 하나 써 주었다.
무모한 도전들의 멤버들이 연주할 노래가 전액 기부된다는 이야기에 좋은 취지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즉석이라고 했지만, 생각보다 곡을 쓰는 과정은 어려웠다.
다들 나름 악기를 다루어 보기는 했지만, 아마추어 중에서도 하급 실력들이라 그에 맞춰 써주어야 했기 때문이다.
초보자도 노력하면 칠 정도로 단순하면서도 매력적인 곡이어야 했다.
그러면서도 무모한 도전들의 분위기도 자아내야 했으니, 이 부분을 조정하는 게 어려웠다.
하지만 멤버들의 실력을 몇 차례 테스트 한 결과 대략적인 윤곽이 보였고 이후 한 번 막힌 게 뚫리자 바로 곡 하나가 써졌다.
“곡이 이렇게 바로 나온다고?”
“가끔 영감을 받으면 5분도 안 되어서 나온다고는 듣기는 했는데? 이런 걸 진짜 볼 줄이야!”
“그거하고는 달라요! 이건 큰 틀 정도가 아니라 세세한 부분까지 악보를 다 완성한 건데. 말해 봐요. 이거 미리 만들어 가져온 거 아니에요? 이런 미친 곡을 이 자리에서 찍어낸다고?”
“진짜 천재였네! YC! 앞으로 친하게 지내자!”
“와! 중독성 개 쩔어! 그런데도 이렇게 쉽다고?”
“나 이거 진짜 치고 싶다. 너무!”
“한 번 보여주면 안되요?”
무모한 도전 멤버 중에는 장르는 다르지만 작곡도 하는 유명한 가수가 있었고, 그는 이 곡의 가치를 대번에 알아 보았다.
나는 그에게 미소를 지어 보이다 연주를 원하는 그들의 요청에 그 자리에서 삼촌들과 함께 연주했다.
-무모한 녀석들!-
제목은 무모한 도전을 오마주했고, 내용 자체는 그들의 이해 안되는 도전 속에서 일어나는 그들의 진심을 담았다.
어설프게 도전을 했다면 결코 느낄 수 없는 오직 혼신의 힘을 다하였기에 그들의 도전에는 언제나 희노애락이 함께 했다.
그런 그들의 진심을 담은 곡이었기 때문일까?
연주가 끝났을 때에는 무모한 도전들 멤버들 모두가 저마다 눈가를 훔치기 바빴다.
남자는 울지 않는다며 멤버들이 우는 걸 이해할 수 없다던 멤보조차도 그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정말 좋은 곡을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한참을 눈물을 닦아내던 국민 MC는 갑자기 나에게 다가와 몸을 숙였고, 나는 놀라 손을 저어대야했다.
그런 나의 모습에 그는 눈가를 붉힌채 말을 이어갔다.
“정말, 정말 많은 위로가 되었습니다. 반드시 이 곡을 마스터해서 오늘 느낀 이 감동을 시청자 아니 국민 여러분들에게 전해지도록 만들겠습니다.”
그 진정성에 나는 괜히 국민 MC가 아니라는 걸 느꼈다.
하기야 각인된 기억에서 이 분의 미담은 끊이지 않기로도 유명했었다.
실제로 기억 속의 녀석은 해외 진출로 인해 그리 친분을 쌓지 못했다는 걸 여러모로 아쉬워했었다.
국민 예능인 무모한 도전들 방송이 나간 이후 블랙 타이거는 단숨에 제대로 국민적 인지도를 굳혔다.
그리고 이것이 시발점이 되어 3주차에서는 생각지도 못했던 신드롬을 불러오게 만들었다.
물론 제대로 된 신드롬이라고 하기에는 과장된 부분은 있기는 하지만, 어쨌든 신드롬이라는 단어가 나온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었다.
이 때문에 활동이 강제로 연장이 되어 버렸다.
많은 CF가 들어오기 시작해서다.
비록 단기 3개월에서 6개월짜리가 대부분이고, 그중에는 이상한 것들도 많았지만 이미지 훼손이 크게 없는 것이 많아 전부 계약했다.
다만 아쉬운 점이라면 CF 대부분이 블랙 타이거 전체보다는 나를 위주로 돌아갔다는 점이다.
늘어난 스케줄은 CF뿐만이 아니었다.
다음 주부터는 유명 잡지 몇 곳에서 나만 따로 화보를 찍어야 했다.
그 말은 편하게 먹고 있는 삼촌들과 달리 지독하게 관리를 해야 한다는 말이었다. 이 과정은 대단히 힘들었으나, 그렇다고 마냥 참지 못할 것인가 하면 그렇지는 않았다.
각인된 기억속에서 녀석은 이것보다 몇 배는 더 빡빡한 스케줄과 관리를 하였으니 말이다.
그에 비하면 이 정도는 껌이었다.
물론 옆에서 지켜보는 삼촌들의 생각은 다른 듯 보였다.
“정말 독종이야! 어떻게 힘든 기색이 없지.”
“솔직히 말해봐. 너 예전에 따로 활동 했었지? 그게 아니고서는 초보자가 이렇게까지 능숙하게 소화한다고?”
“그러게. 웬만하면 그러려니 넘어가겠는데. 이건 이해가 안되는데?”
“아, 독하다 독해.”
“정말 넌 여러모로 크레이지한 녀석이야!”
“하하하······.”
나는 삼촌들 특유의 감탄에 어색하게 웃음을 보이며 흘려넘겼다.
어쨌든 20년이라는 긴 세월 속에서 탑스타로 군림했던 녀석의 기억 덕분에 광고주들이 만족할만한 결과물들을 빠르게 뽑아낼 수 있었다.
본래라면 온종일 끌었어야 할 CF도 단시간에 끝을 낼 수 있게 되었으며, 힘을 줘야 할 때와 빼야 할 때를 잘 조절해 체력 분배를 할 수 있었다.
그렇게 그간 찍은 CF만 10개가 넘어갔다. 이 중 TV에 방영되는 CF가 4개나 되었고, 덕분에 빠르게 고갈되는 회사 자금은 다시 채워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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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만 장이 다 팔렸다고요?”
“저도 얼떨떨합니다. 가능하다고 생각했지만, 이 정도로 빠르게 완판할 줄이야. 잘해야 활동이 끝날 때쯤이라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며칠 전부터 언론에서 떠들기 시작한 신드롬 현상이 이것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지금 기세대로라면 10만 장도 가능해 보입니다.”
“10만장? 3만장을 더 찍는다는 말입니까?”
영찬은 5만 장을 기어이 판 것도 모자라 끝내 10만 장을 채우겠다는 실장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나 실장은 나름 근거가 있었다.
“의외로 국내만이 아니라 해외에서도 사는 분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블랙 타이거는 태생적으로 K팝과는 거리가 있는데….”
K팝하면 가장 떠오르는 이미지는 무엇인가? 바로 아이돌이었다.
노래와 춤은 물론 외모와 스타성까지 모든 걸 갖춘 존재들.
누군가는 자율성을 통제한 끔찍한 결과물이며 이들은 공장에서 찍어낸 듯 보급품들이다라고도 비판하지만, 한 번이라도 아이돌이 되기 위한 과정을 살펴보았다면 감히 그런 말을 할 수 없을 것이다.
되고 싶다고 해서 될 수 있는 존재들이 아닌 데다, 그렇게 어렵게 기회를 잡아 연습생이 된다고 해도 그때부터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그렇게 경쟁에서 승리해 아이돌이 되었다고 해도 끝이 아니다. 오히려 그때부터가 본 게임의 시작이었다.
K팝이 내세우는 아이돌은 그런 치열함 속에서 수많은 청춘들의 희생 끝에 피어나는 꽃이었다.
타 국의 아이돌과는 아예 어나 더 레벨이라고 봐야 했다.
K팝 아이돌을 보고 사람들이 그처럼 열광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하지만 블랙 타이거는 그런 아이돌과는 하늘과 땅만큼이나 거리가 있었다. 사실상 이 시기에 K팝이라 분류되는 것을 인정받기가 어렵다고 봐야 했다.
이미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엔터를 거느렸던 각인된 기억을 지닌 영찬이었기에 그는 그에 대한 차이를 분명히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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