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e a music monster overnight! RAW novel - Chapter 40
13장. YC 사마(さま,?)
“어디라고? YC 엔터?”
“네. 장난 전화 같았는데, 번호 확인해보니 정말 한국에서 전화 온 거였습니다.”
“연락처, 연락처는 어디 있어?”
“여기….”
-탁!-
레드 선 엔터의 사장 이치로는 날렵하게 전화번호를 챙겨 살폈다. 전화번호는 두 개가 있었는데, 하나는 연락 온 이의 개인 휴대폰 번호였고, 다른 하나는 엔터에서 사용되는 번호였다.
이치로가 중점을 본 것은 바로 이 엔터 쪽 번호였다.
그는 서둘러 스마트폰을 켜 구골에 YC 엔터를 검색했고, 나타난 홈페이지를 열었다.
그리고 그의 어깨가 부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다름 아닌 자신의 생각이 맞았음을 확인해서다.
“정말 블랙 타이거······.”
상대방이 남겨둔 엔터 쪽 번호는 블랙 타이거가 소속된 YC 엔터 쪽 전화번호였다.
그는 이제 반 밖에 남지 않은 머리카락을 조심스레 정리하며 흥분을 가라앉혔다.
그렇게 흥분을 가라앉히자 가장 먼저 든 의문은 역시나 블랙 타이거 쪽에서 어째서 자신에게 연락했을까? 라는 것이었다.
현재 블랙 타이거의 일본 내 위상은 웬만한 K팝 아이돌 이상이었다.
이건 전적으로 YC 사마라 불리는 블랙 타이거의 보컬의 영향이 컸다.
뮤비를 비롯해 너튜브 영상에 올라온 YC사마는 지금껏 일본이 본 적이 없는 형태의 아우라를 가진 존재였다.
‘정말이지 폭력적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는 존재!’
이치로는 자기 생각이 결코 과장된 것이라 여기지 않았다.
실제로 그 자신 또한 그 항거할 수 없는 폭력적인 매력에 강제로 입덕을 해버렸기 때문이다.
락이라는 비 장르 요소, 평균 나이가 45세, 생긴 지 얼마 안 된 소형 기획사 등.
블랙 타이거는 정말 많은 불안 요소를 안고 있는 팀이었다.
그런데도 지금 일본에서 블랙타이거 혹은 YC사마 신드롬의 조짐까지 보이고 있는 것은 그만큼 YC사마가 보이는 매력이 터무니없을 정도라서다.
하기야 이치로 같은 연예계에 닳고 닳은 중년의 관계자마저 홀렸으니, 지금의 현상은 오히려 당연하다고 봐야 했다.
그런 엄청난 곳에서 자신에게 손을 내민 것이다.
YC 엔터가 생긴 지 몇 달 되지도 않은 소형 기획사라는 이유를 떠올리기는 했지만, 이치로는 떠올리기 무섭게 지워 버렸다.
그런 단점 따위는 이미 YC 사마가 사장으로 있는 시점에서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아서다.
아마 그가 일본 진출에 함께 할 도움을 줄 곳을 구한다고 하면 일본의 공룡 같은 기업들이 다투며 달려들 것이었다.
그만큼 블랙 타이거는 아니 YC 사마는 적어도 일본인들에게 있어 터무니없는 존재였다.
그러니 이치로는 YC 사마가 자신과 같은 소형 엔터에 손을 내민 것은 다른 이유가 있다고 보았다.
그리고 이내 그는 그 정답을 찾아내었다.
“레드 선 엔터를 YC 엔터의 일본 지부로 만들 생각일지도…”
그렇게 정답을 찾아낸 이치로는 다시금 부르르 몸을 떨어댔다.
그들이 그런 수작을 부렸다는 것에서 화가 나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가 몸을 떨어댄 것은 드디어 자신에게 기회가 왔다는 것을 깨달았기에 보이는 기쁨의 전율이었다.
아버지가 운영했던 레드 선 엔터를 반강제로 맡게 되었을 때만 해도 그는 자신 있었다.
대형 엔터에서 무려 10년 동안 쌓은 인맥과 인정받은 자신의 실력이라면 얼마든지 레드 선 엔터를 키울 수 있다고 본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만용이라는 걸 깨달은 건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는 나름 타고난 안목과 경험을 통해 스타의 자질을 보이는 이들을 캐스팅했다. 그리고 인맥에 힘입어 그들을 스타로 띄울 수 있는 자리까지 끌어 올렸다.
문제는 여기서부터였다.
거기까지 이르자 대형 엔터에서 이들의 잠재력을 보고 손을 뻗은 것이다.
그리고 당연히도 이들은 망설임 없이 그들의 손을 잡았다. 그것이 가장 쉽게 성공을 할 수 있는 길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배신을 당한 이치로는 분노하고 슬펐지만, 다시 일어섰다.
그리고 새로운 스타를 발견하고 다시금 그를 키웠다. 하지만 이번에도 다른 대형 엔터에서 그 손길을 뻗어 그를 채갔다.
그렇게 그의 곁을 떠난 이는 누구나 이름만 들으면 아는 스타가 되었다.
두 번의 실패 속에서 이치로는 깨달았다.
“나의 역량을 넘는 스타를 키우는 건 어렵구나.”
그 불합리한 현실 앞에 이치로는 끝내 수긍하기로 한 것이다.
이때부터 이치로는 생각을 바꾸어 스타성은 낮지만 나름 제 몫을 하기에 충분한 이들을 찾아 키워내기 시작했다. 배우로는 잘해야 조연 정도였고, 가수로는 지방 행사 정도나 어렵지 않게 내보낼 정도의 자들이었다.
그렇다 보니 많은 돈을 벌지는 못했지만, 레드 선 같은 작은 엔터를 굴릴 정도는 충분했다.
‘한 번은…단 한 번은 기회가 올 것이다.’
언젠가 한 번은 올 기회를 노리기 위해 이치로는 인맥을 중요시하며 쌓아갔다.
하지만 그 시간이 10년이 다 되어가자 그도 이제 반쯤은 포기하고 말았다.
그랬건만, 생각지 못한 기회가 갑자기 찾아왔다.
“이번 기회를 잡는다. 반드시!”
결심이 서자 그는 바로 행동으로 옮겼다.
한국으로 갈 비행기 표를 구하는 것과 동시에, 자신을 어필 할 수 있는 모든 걸 챙긴 것이다.
이치로를 맞이한 건 실장이었다.
당장 영찬은 스케줄을 소화하기 움직이고 있는 터라, 실장이 그를 맞이한 것이다.
이치로를 마주하게 된 실장의 얼굴에는 감탄이 서려 있었다.
“설마 역으로 제안을 하러 올 줄 몰랐습니다.”
그리 말했지만 그가 감탄한 건 그것만이 아니었다.
기회를 잡기 위해 이치로가 가져온 자료 때문이다. 꼼꼼하게 그의 인맥의 수준은 이 바닥에서 오래 뒹굴었던 그도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대표님이 레드 선 엔터를 콕 찍은 이유가 있었구나.’
다시금 영찬의 기업적 안목에 감탄하던 실장은 그와 별개로 이치로가 내민 조건에 고민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치로가 내민 조건이 까다롭지는 않았다.
오히려 현재 YC 엔터에 너무도 후한 조건이라서다.
레드 썬 엔터의 지분 51%를 내 준 조건으로 그가 바라는 건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블랙 타이거 혹은 박영찬이 일본에 정식으로 앨범 활동을 할 때 자신이 그 총 책임자가 되고 싶다는 것이다.
전적으로 그를 통해 일본의 모든 활동을 하고자 한다는 것인데, 이건 YC 엔터가 생각한 것보다 더 많은 권한을 내어주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손해냐 하면 그렇지 않았다.
그가 내어준 회계 장부와 인맥 장부를 보았을 때 오히려 그러는 게 YC 엔터에 이득일 것이라서다.
‘아마도 이번 기회를 통해 일본 내에 자신의 영향력을 끌어올려는 것이겠지.’
레드 선 엔터가 YC 엔터의 지부가 된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독자적으로 일본에서 활동하지 못하는 건 아니었다.
무엇보다 레드 선 엔터의 수장인 이치로의 영향력이 커지면 그곳을 지부로 삼은 YC 엔터에게도 큰 이득이었다.
첫 번째가 그렇다면 두 번째는 바로 YC 사마가 자신이 발굴한 이들을 키워주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짐작가는 것은 있었지만 실장은 그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요구했고, 이에 이치로는 자기 생각을 정리해 이야기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앞으로 K팝은 일본에서 점점 더 영향력을 키워나갈 것입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학예회 수준의 공연을 펼치던 아마추어들 앞에 갈고 닦은 프로들이 등장했으니 다시 고개를 돌릴 이유가 없지요. 그 말은 그동안 게으르게 쉬이 돈을 벌었던 일본 연예계도 그 흐름을 따라가야 한다는 말입니다. 저는 그 새로운 바람을 앞서 맞이하고 싶습니다.”
일본식 특유의 둘러 말하는 형태였지만, 실장은 이치로가 무엇을 말하는지 알 수 있었다.
“K팝 아이돌을 일본인들로 구성하고 싶다는 거군요.”
“그렇습니다.”
51%의 지분을 가진 YC 엔터이니만큼 이치로가 키우는 아이돌의 성공은 곧 YC 엔터의 큰 이득을 가져다줄 것이었다.
자본은 물론 일본에서의 영향력을 확고하게 자리 잡을 수 있을 건 물론이다.
다만 그런데도 쉽사리 받아들이기 어려운 건 두 가지 이유였다.
영찬은 실장을 고용하면서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걸 말한 바가 있었다.
G1밴드나 블랙 타이거의 성공은 물론, 몇몇 걸그룹을 데려와 프로듀싱할 계획까지 이야기했던 바, 이치로의 조건은 쉬이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첫 번째 이유가 그렇다면 두 번째는 이치로가 만들어 낼 K팝 식 일본 아이돌이 과연 해외에 영향을 끼칠 수 있을지다.
섞이는 정도가 아니라 모든 멤버가 일본 아이돌이라는 점은 적어도 한국에서는 그들을 인정하지 않을 게 분명해서다.
분명 J-pop의 일부로 볼 것이 분명했다.
한국인이 없는 K팝은 김치 없는 김치찌개나 다름이 없다.
그러니 일본에서 큰 인기를 누릴지언정 세계로는 나가기 어려울 건 분명했다.
‘그래도 일본 시장을 생각한다면 그것만으로도 엄청난 수익성을 가진 그룹이 되겠지.’
그렇기에 실장은 이치로의 제안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일단 저는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대표님은 어떨지 모르겠군요.”
“이야기를 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실장의 말에 크게 실망스러운 기색을 보이는 이치로였다. 그런 그의 모습에 실장은 잠시 의아해하다 이내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워낙 한국말을 잘하셔서 순간 일본 사람이라는 걸 까먹었군요.”
“??”
“일본 특유의 거절하는 제스처로 꺼낸 말이 아닙니다. 말 그대로입니다. 최소한 저는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으며 사장님도 아마 그럴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설사 계획대로 안 되더라도 실망하지 마십시오. 이 정도로 능력 있는 분이 이끄는 기획사인데 이에 준한 조건을 내세울 테니 말입니다.”
“아! 감사합니다.”
그제야 이치로는 얼굴이 밝아졌다.
저녁 식사와 함께 담소를 나누면서 실장은 이치로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 수 있었다.
이치로가 한일 혼혈 3세라는 점이나 레드 선이 재무 표에서 본 것보다 더 건실한 기획사라는 점 등을 말이다.
그건 그가 생각한 것보다 더 능력 있는 이라는 것을 뜻했다.
하지만 가장 놀란 건 그가 엄청난 박영찬의 팬이라는 점이었다.
아무래도 고등학교 때 밴드부를 했던 영향 때문이라 여겨졌는데, 아마도 이러한 영향이 아니었다면 그가 이처럼 과감한 수를 내놓지는 못했을 것이다.
“이 양반은 여전하시네. 그나저나 사토시 그 아저씨가 돌아가셨다고?”
각인된 기억 속 세상에서 영찬이 일본 진출을 하던 당시만 해도 일본의 텃세는 이루말할 수 없을정도로 심했다.
한국에서 손꼽히는 톱스타라는 건 그 무시무시한 텃세 앞에서 먼지만큼이나 가벼웠다.
그때 그에게 손을 내민 게 바로 레드 선이었다.
정확히는 지금 이치로의 아버지 사토시가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단순히 한국의 피가 흐르고 있기 때문은 아니었다. 자연스레 어머니에 의해 방문했던 한국에서 영찬의 음악을 접했기 때문이다.
‘소름이 돋을 지경이로군!’
천재.
사토시는 영찬이 정말 터무니없는 재능을 지녔음을 대번에 알아보았다.
그러다 그가 일본 진출을 위해 도와줄 엔터를 찾는다는 소식을 접하자 바로 달려온 것이다.
“이쪽은 내 아들 이치로라고 하네. 제법, 이 바닥에서 굴러다닌 녀석이라 쓸모가 많을 것이야.”
“이치로입니다.”
영찬에게 인사를 건네는 이치로는 어딘가 불만이 가득해 보였다.
하기야 영찬의 합류로 인해 잘 다니고 있던 회사를 그만두고 그의 매니저가 되어야 했으니 불만을 안 가지는 게 더 이상할 일이었다.
하지만 이치로가 아버지 사토시의 이 결정을 따른 것은 그의 인생에 가장 큰 행운이었다.
이치로는 당시 일본에서 처음으로 큰 흥행을 일으킨 겨울 동화의 일본 버전 ost를 영찬에게 물어다 주었다.
그리고 그 단 한 번의 인맥을 통해 일을 성사한 것만으로 영찬은 일본인들이라면 모를 수가 없는 스타의 자리에 올라섰다.
설국(雪?).
영찬이 만들었던 이 곡 하나가 일본에 대히트를 쳤기 때문이다.
이 곡은 일본인들 특유의 마음을 건드린 요소가 있어 겨울만 되면 일본 전역에서 이 노래가 안 들리는 곳이 없었다.
이 곡을 통해 영찬은 일본에서 자리를 잡게 되었고, 이후 다음 일본에서 낸 앨범에서 완벽하게 자리를 잡게 되었다.
영찬에게 기회를 가져다 준 사토시는 일본의 YC 엔터 지부의 사장직을 오랫동안 맡았다. 이후 이치로에게 사장직을 물려준 뒤에도 그는 제법 일본 연예계에서 바쁘게 활동했다.
그랬던 그가 이미 돌아가신 지 오래란 걸 알게 되자 영찬은 마음이 뒤숭생숭했다.
‘나중에 성묘라도 가야겠네.’
비록 다른 자신이지만 신세를 졌던 그 인연의 기억이 짙다 보니 남처럼 여겨지지 않은 영찬으로서는 당연한 생각이었다.
잠시 그에 대한 묵념을 보이던 영찬은 이내 이치로가 가져온 조건들을 보며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조건만 놓고 보면 너무도 후할 정도지. 다만 K팝 일본 아이돌은 확실히 한계가 있어. 그나마 해볼 만한 거라면 한일 혼혈의 숫자를 늘리는 거 정도인데.’
그 정도만 해도 스타성이나 음악이 독보적이면 한국은 물론 세계적으로도 인기를 몰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이런 시도를 대형 엔터 중 하나인 PY 엔터에서 했었다.
문제는 우려했던 대로 일본에서만 그 인기가 고여져 버렸다는 것이다.
하지만 확실히 엄청난 인기를 누렸던 터라, 이때부터 다른 일본의 엔터에서도 K팝 일본 아이돌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확실히 이건 통하는 기획인 건 분명했다.
그러나 문제는 영찬이 이 일에 시간을 내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도와주고 싶은 걸그룹들을 성공시키리면 사실 지금 어쩔 수 없이 보내고 있는 시간들도 아쉬울 지경이다.
아이돌은 특히나 걸그룹의 경우는 수명이 짧기 때문이라서다.
“방법이 없지는 않지.”
나이가 문제라면 어린 멤버를 데려와 그 평균 나이를 낮추면 될 일이었다.
혹은 새로운 걸그룹의 멤버들로 재데뷔를 시켜도 된다.
이도 아니면 해외로 시선을 돌리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어렵기는 하지만 가능만 한다면 평균 7년인 걸그룹의 수명을 대폭 늘리는 게 가능했다.
그렇기에 영찬은 고민 끝에 이치로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다만, 두 번째 조건은 최소 3년 뒤에나 이야기하자고 조건을 걸었다.
그때쯤이면 어느 정도 수습이 될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올해는 정말 바쁘겠어.”
그나마 다행이라면 조마간 두 번째 비트 코인 정산 시기가 온다는 점이다.
‘스노우 레이디’를 비롯해 막대한 자본이 들어오고 있는 지금, 잘만 하면 올해 말에 기대하던 수익 이상을 두 번째 정산에서 벌 수 있을지 모른다.
그리고 이 돈만 넉넉하다면야 한 번에 여러 프로젝트를 돌리는 것도 가능했다.
곡이나 컨셉이야 이미 정해둔 바가 있으니 부족한 시간이야 돈으로 대신 채워넣으면 그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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