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e a music monster overnight! RAW novel - Chapter 44
14장. 일본 정복.
“이렇게까지 해 줄 필요는 없는데.”
NK 방송국으로부터 이른 아침에 안내받은 연습 공간은 영찬의 기대를 가볍게 뛰어넘었다.
그도 그럴 게 그저 규모가 있는 피아노 연습실 정도를 생각했던 수준을 아득히 넘어섰기 때문이다.
-와세다 대학교 내부의 콘서트홀-
NK 방송국에서는 이걸 통째로 그에게 빌려다 주었다.
아마 다른 때였다면 가능할리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 겨울 방학이라 사용하는 이가 없기에, 이런 호화로운 연습 공간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규모는 그리 크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콘서트홀답게 소리의 울림 자체가 달랐다.
무엇보다 영찬이 원하던 스타인웨이 그랜드 피아노가 설치되어 있었다.
-따다 다단! 딴딴딴!-
영찬은 가볍게 한 손으로 건반을 치더니 이내 고개를 주억거렸다.
“달리 조율을 할 필요는 없어 보이군요.”
“다행입니다.”
그의 말에 답한 건 이치로였다.
어지간히도 마음이 쓰였던 모양이다.
지금쯤 콘서트 준비로 크게 바쁜 와중에도 이 이른 시간에 기어이 영찬의 연습을 챙겨 보러 온 것을 보면 말이다.
그의 가벼운 장난에 고생하는 모양인지라 영찬은 괜히 미안한 마음에 턱을 긁적이다 물었다.
“클래식 좋아하십니까?”
“클래식…사실 그리 좋아하지도 소양이 깊지도 못합니다. 그저 어릴 때 아버지가 좋아하셔서 이것저것 들은 게 있는 정도죠.”
“아···.”
생각과는 다른 답변에 영찬은 저도 모르게 탄식을 흘렸다.
그의 아버지이자 일본에서 여러모로 신세를 졌던 사토시의 이른 죽음이 그의 삶에 큰 영향을 끼쳤음을 안 것이다.
각인된 기억 속 세상에서 이치로는 클래식에 진심인 남자였다.
‘이것도 나비 효과인가?’
실제로 사토시의 죽음은 영찬과 관련이 없다고는 할 수 없었다.
영찬과 함께하면서 사토시가 세웠던 레드 선 엔터는 대번에 중견 엔터로 성장했었다.
그러나 영찬과 함께하지 못했던 이쪽 세상에서 레드 선 엔터는 그리 평탄한 나날을 보내지 못했다.
아들에게 이 레드 선 엔터를 물려주고 싶었던 사토시는 나름 회사를 키우기 위해 노력했으나, 이치로가 그랬던 것처럼 대형 엔터의 방해에 번번이 실패로 끝이 났다.
그러나 이치로와 달리 포기하지 않았고 결국 과로와 스트레스로 인해 몸이 악화하면서 갑작스레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그러니 아버지와 공감의 대상이기도 한 클래식을 그가 제대로 누리지 못한 건 당연한 일이었다.
‘한 달에 한두 번은 꼭 클래식 콘서트를 찾았을 정도였는데.’
그걸 잘 알고 있던 영찬은 이 참에 이치로 그 자신도 모르고 있던 취미를 찾아주고자 했다.
영찬은 가벼운 미소를 보이며 그에게 물었다.
“베토벤 아십니까?”
“베토벤? 아! 압니다. 딴딴딴 딴! 이거 작곡하신 분 아닙니까?”
“하하하. 베토벤 교항곡 5번 운명 1악장이 유명하기는 하죠.”
실제로 베토벤의 곡을 떠올리면 많은 이들이 이 곡을 떠올리기도 한다. 그만큼 시작부터 강렬한 이미지를 담은 곡이기 때문이다.
“그래요. 그것도 좋은 곡이기는 하지만….”
-따다다다단!-
영찬은 그 말을 끝으로 가볍게 피아노 선반 위에 손을 풀어댔다.
‘오랜만이네.’
그랬다.
생각보다 긴 시간만에 피아노를 접하는 것이었다.
이쪽 세상에서는 아예 처음이기도 한데다, 각인된 기억 속에서도 마약을 하기 한 달 전에서나 접했었다.
이걸 세월로 꼽는다면 거진 3년 가까이를 멀리 한 것이다.
그러다 갑자기 스타인웨이 그랜드 피아노에서 치게 되니, 영찬은 손이 호강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괜히 그랜드 피아노 중에서 스타인웨이가 억 단위를 가볍게 넘어가는 물건이 아니었다.
“!!!”
그렇게 가볍게 손을 풀어대던 영찬이었지만, 정작 그를 옆에서 지켜보던 이치로의 눈은 더 할 수 없이 커져 있었다.
달리 악보를 연주하는 것이 아닌 그저 손을 푸는 것임에도 그러했다.
그만큼 영찬이 내는 피아노 소리는 그가 그동안 들었던 어떤 피아노 소리와도 남달랐다.
마치 영찬의 손길 속에 88개의 건반이 한순간 살아난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다.
실제로 음계에 대해 잘 모르는 이조차도 그 투명하면서도 선명한 음에 저도 모르게 각인이 되어 버릴 게 분명했다.
그렇게 대략 1분가량 손을 풀었던 영찬은 이내 작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생각했던 것보다 괜찮은데?’
무슨 이유 때문인지 각인된 기억 속의 그보다도 더 손이 가벼웠다.
그동안 피아노를 쉬고 있었다는 게 거짓말인 것처럼.
그렇기에 영찬은 더는 손을 풀지도 않은 채 그대로 건반에 손을 가볍게 올리며 이치로를 바라보았다.
어딘가 바보같이 멍하니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는 이치로의 모습에 영찬은 가벼운 웃음을 소리없이 보이며 말을 이었다.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8번. ‘비창’ 중 2악장. 아마 이치로씨는 이 곡도 좋아하실 겁니다.”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8번. 비창의 1악장은 단조로운 곡이다.
잔잔하고 슬프고 우울하며 때로는 처량한 느낌을 받게 만든다.
그런 1악장과 달리 2악장에서는 아다지오 칸타빌레 A flat 장조로 시작한다.
여타 베토벤의 곡들과는 달리 나른하면서도 포근한 느낌을 주는데, 그 한구석에 서러운 느낌을 감출 수 없었다.
비장함 뒤에 나오는 서러움.
그렇기에 더욱 애처롭게 들리는 곡이라 할 수 있다.
-따다다단! 따~다단~-
영찬이 치는 비창 2악장은 그런 점에서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손이 가볍다는 그의 생각은 착각이 아니었다.
어느새 영찬은 각인된 기억 속과 차이가 나지 않는 연주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그의 전성기 때의 솜씨를 드러낸 것인데, 다만 그렇다고해서 기타처럼 초절정 기교를 보이지는 못했다.
오히려 기교만 놓고 본다면 여느 피아니스트도 겨우 쫓아갈 정도였다.
이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기교라는 게 영감과는 달리 시간과 노력을 들여 쌓아 올라가는 것인데, 아쉽게도 그가 피아노를 접한 건 군대를 다녀온 뒤였기 때문이다.
여기에 피아노보다 기타에 애착을 두고 있다 보니 기교를 크게 늘릴 시간이 없었다.
그러나 이와 별개로 그와 피아노는 궁합이 대단히 좋았다.
실제로 그의 피아노 연주가 처음으로 세상에 보여졌을 때, 수많은 평론가로부터 기타 이상의 찬사를 받았다.
기교가 약하다는 건 곧 표현한 음악의 주장이 강하지 않는다는 걸 뜻했다.
대게는 그건 약점일 수밖에 없었으나, 믿을 수 없게도 오히려 그것이 그의 장점이 되었다.
보통 대게의 피아니스트들은 작품 해석으로 자신의 독특한 생각을 표현하려고 한다. 하지만 영찬은 그 음악이 가장 잘 드러나는 것을 목표로 할 뿐이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보지 못했던 미학(美學)이 드러났다.
기부 콘서트에서 영찬의 피아노 연주를 들은 대가는 감격한 표정으로 이 같은 평론을 남겼다.
-그의 피아노 음색은 감히 비교할 자가 없을 만큼 아름답다.
그렇기에 안타깝다.
노후한 공연장이 그의 음색을 제대로 구현화지 못한 것이 이토록 아쉬움을 남길 줄 몰랐다.-
기부 이벤트이기에 구색을 갖추는 정도였던 시설이 그는 크게 아쉬웠던 모양이다.
당시 그런 아쉬움을 보인 건 그만이 아니었다.
현장에 있는 모든 음악가들이 넋을 잃다 아쉬움에 탄식했다.
이런 걸 생각한다면 그의 피아노 음색이 얼마나 독보적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멜로디는 효과적이고 깨끗하게 뻗어 나왔고, 화음을 이루는 음들은 딱 알맞은 정도의 음량으로 각각 울려 탄탄하게 쌓였다.
드뷔시의 화음은 같은 마디 안에서도 각각 다른 뉘앙스로 변화했다.
어떤 소리는 공중에 떠 있었고, 그다음 소리는 고무줄처럼 팽팽했으며, 또 다른 소리는 묵직했다.
그의 부족한 기교를 생각하면 지금의 모습은 이해하라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그의 터무니없던 영감은 그의 부족한 기교를 대신할 수 있었고, 덕분에 이런 연주가 가능해졌다.
그야말로 이적이라고 해도 다르지 않은 데, 놀랍게도 마냥 그런 음을 낼 수 있는 건 우연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본래 뭐든 간에 가득 차야 비울 수 있는 법이다.
하지만 영찬은 차지도 않았음에도 그걸 비우는 경지에 발을 들이게 되었다.
그의 압도적인 재능이 그의 영감이 아무렇지 않게 몇 단계를 건너뛰어 그를 끝자락에 올려 놓은 것이다.
덕분에 화려함의 정도를 원하는 만큼 조절할 수 있었고, 두터운 화음들 사이에 청중이 집중할 수 있는 멜로디를 만들 수 있었다.
어쩌면 그는 그러한 경지에 이르렀음을 본능적으로 알았기에, 오히려 피아노 연습에 그리 많은 시간을 투자하지 않았는지 모른다.
그처럼 터무니없는 영찬의 피아노가 연주하는 소나타 비창 2악장은 신파로 갈 수 있는 음악으로부터 감정적인 거리를 유지하며 우아하고 느리게 노래했다.
그러면서도 박자대로, 담백한 톤으로 연주하니 그야말로 듣는 이의 감정을 한없이 뒤흔들기에 충분했다.
-딴~딴~······. 딴.-
“후우···.”
마지막 음을 음미하던 영찬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
중반 이후부터 저쪽 세상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흘러넘치는 영감에 파묻히지 않게, 마지막 감정을 한없이 털어내야 해서다.
“어떻습니…….”
잠시 자신의 감정을 추스르던 영찬은 그제야 이치로가 있는 곳으로 돌아보았고, 이내 말문을 잃고 말았다.
-뚝뚝!-
눈물, 콧물을 모조리 다 쏟아내는 듯 볼썽사나운 얼굴을 한 이치로가 그를 올려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마치 고해성사를 하듯 무릎을 꿇고 있던 이치로의 모습에 영찬은 고개를 저으며 그에게 다가가 그를 일으켜 주었다.
한참의 시간이 지난 뒤에야 이치로는 감정을 추스를 수 있었다.
감정을 추슬렀다고 해도 아예 잠재우지는 못했다. 한번 일어난 감정은 마치 거센 파도처럼 그의 심장을 흔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난파선 꼴과 같았던 좀 전에 비할 정도는 아니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무어라 말을 해야 할지 몰랐던 이치로는 겨우 그와 같은 감사의 말을 토해낼 뿐이었다.
그게 잊고 있었던 아버지와의 추억을 떠올리게 해 주어서인지, 아니면 영찬으로부터 이 정도의 피아노를 듣게 해 준 것에 대한 감사인지는 알지 못했다.
하여 영찬은 콧잔등을 긁적이다 말했다.
“이만하면 콘서트에서도 반응이 나쁘지 않겠지요?”
장난기가 있는 영찬의 말에 이치로는 크게 고개를 저으며 한없이 진지한 모습으로 답했다.
“그들은 더는 다른 피아노를 듣지 못할 겁니다. 제가 그러했듯이.”
“…..”
극찬이라고 말할 수도 없는 터무니없는 찬사에 영찬은 나지막이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그 모습에서 과거 친구 같았던 형으로 만났던 이치로의 모습을 더는 볼 수 없게 되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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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려 3만장이나 되는 표는 불과 10분도 안 되어 매진되었다.
혹시나 매진되지 않으면 어쩌지라고 불안해하던 김일 삼촌이 무색할 정도의 속도였다.
이마저도 일본의 열악한 인터넷 환경으로 인해 딜레이가 된 결과란 걸 생각하면, 본래라면 그보다 배는 더 이른 시간에 매진이 되었을 것이다.
“S급이 가장 먼저 빠졌어. 가격이 2만엔이나 하는데.”
공연장 티켓의 가격은 방송국과 여러 기업들의 광고를 달고 하는 만큼 낮게 잡았음에도 2만엔을 잡았다.
공연장 자체의 구성상 S급이 겨우 500석도 안되기에 책정된 가격이었다.
그런 뜨거운 관심 속에 공연 준비는 순탄하게 되고 있는 중이었다.
NK 방송국에서 이렇게까지 준비를 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온 힘을 다해 준비를 해주고 있는 덕분이다.
사정을 알면 그리 이상할 일은 아니었다.
이번 공연의 특석에는 영찬이 일본에서 관계를 맺었던 고위층들이 대거 자리를 함께하기 때문이다.
한, 두 명만 와도 PD가 아닌 CP나 예능국장이 나서야 할 고위 인물이 이처럼 무더기로 함께 하게 되니 이들이 이처럼 긴장해 하는 건 무리가 아니다.
오프닝 게스트에는 ‘G1 밴드’ 가 함께 하기로 했다.
아쉽게도 G1밴드는 ‘Legends of Rock’에서 우승을 하지 못했다.
상대가 강했던 것도 있지만, 아무래도 활동으로 인해 아이들을 제대로 신경 쓰지 못했던 게 컸다.
그래도 내가 작사·작곡한 ‘Legends of Rock’에서 불렀던 G1밴드의 ‘엔돌핀’은 엄청난 인기몰이를 하고 있었다.
비록 7주 동안 음원 1위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노장은 죽지 않는다.(90’S)를 밀어내지를 못했지만 대신 터줏대감 노릇을 하던 다른 곡들을 제치고 2위에 자리를 잡는 데 성공한 것이다.
가끔 3위 자리에 있는 태양과 엎치락뒤치락하기는 하지만 그건 여전히 신드롬의 여파가 남아있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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