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e a music monster overnight! RAW novel - Chapter 54
17장. 베이비 폭스.
촬영 이전부터 무슨 이유인지 홍의찬 감독은 촬영장을 소란스럽게 만든 그녀의 상대역인 영찬을 그녀에게 숨겼다.
이나은은 그 이유에 의문을 보였지만 그 의문은 이내 그녀의 머릿속에서 지워져 버렸다.
“NG! NG! NG!….”
바로 무료하고 힘든 일상을 보여줘야 하는 그녀의 건조한 생활 연기를 마땅찮아 하는 홍의찬 감독 덕분이다.
의외로 이건 마냥 나쁜 신호만은 아니었다.
홍의찬 감독은 가능성만 보인다면 OK보다는 어떻게든 마음에 드는 샷이 나올 때까지 찍으려는 독종이다.
이는 달리 말하면 지금의 그녀에게서 끄집어 낼 수 있는 무언가가 있음을 그 가능성을 발견하였다는 뜻이기도 했다.
“하아~. 연기를 하려고 하지 마시고, 그냥 마음을 비우고 일상적인 일을 한다고 움직이세요.”
“….죄송합니다.”
“그…지금 좋아지고 있으니깐. 지금보다 좀 더 메마른 느낌으로.”
“…네.”
홍의찬 감독은 정말 끈질겼다.
인내심이라면 자신 있던 그녀조차도 너무나 괴롭고 지겨워서 어느새 진이 빠져 질려버리는 중이었다.
이나은을 그리 예뻐라하는 블랙 타이거 멤버들이 촬영장에 올 생각도 하지 못하는 건 그런 홍의찬 감독의 광기를 알아서다.
“OK!”
그토록 괴롭힌 덕분일까?
홍의찬 감독이 처음으로 OK를 외쳤다.
실제로 그의 집요함에 진이 빠져서인지는 몰라도 지금 나은의 모습은 희망 따위 없는 무미건조한 소녀 그 자체였다.
“저 녀석이 이때부터 연기를 잘했던가?”
그 모습을 먼 곳에서 지켜 보던 영찬은 신기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홍의찬 감독에게 시달리는 모습이 안타깝기는 하지만, 지금 그녀는 연기를 잘 모르는 영찬이 보았을 때에도 대단했기 때문이다.
“하기야 그러니 여우주연상까지 받은 거겠지.”
그의 각인된 기억에서 이나은은 음악만 탑을 찍은 게 아니었다.
배우로서도 훌륭한 커리어 쌓아 나갔고, 그 결과 3대 시상식 중 하나인 베를린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까지 받게 되는 쾌거를 이루어냈다.
아마도 홍의찬 감독은 그런 가능성을 본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렇기에 그는 더 뽑아낼 것이 있다는 듯 중간중간 NG를 외쳤고, 끝내 원하는 샷을 손에 넣고야 말았다.
“하얗다. 세상이 하애.”
뭘 본 것인지 이해할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던 이나은은 달콤한 휴식 속에서 초콜릿을 먹다 한탄 같은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하아~. 어쩌지…”
그녀가 보기에는 진짜 고난은 지금부터다.
키다리 아저씨를 처음 본 순간 첫 사랑에 빠져 어쩔 줄 몰라하는 소녀를 연기해야 하는데, 타버린 심지같은 상태에서 그런 애틋하면서 발랄한 감정선을 일으킬수 있을지 그녀는 의문이었다.
“살아야지…”
우적우적거리며 제법 큰 초콜릿 하나를 기어이 먹어치우던 그녀는 이내 교복으로 갈아입고는 다음 신을 위해 힘차게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의 심정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도착한 촬영지에서 그녀는 오늘 처음으로 대표님을 만나게 되었다.
“!!!!”
그 순간 이나은은 조금 전의 모든 걱정거리를 잊어버리고 말았다.
갈팡질팡하며 감정을 잡지 못하던 그녀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면서다.
그렇게 촬영이 시작되었다.
촬영이 시작되는 내내 그녀는 티 없이 맑고 촉촉한 눈으로 기쁨을 멍하니 드러내며 그를 바라보았다.
그런 그녀의 모습은 옆에서 훔쳐 보는 것만으로도 절로 설레여지고 또한 아련한 아름다움을 느끼게 만들었다.
홍의찬 감독이 그리고자 했던 첫사랑에 어쩔 줄 몰라하는 소녀.
그녀는 지금 그 이상향을 재현하는 중이었다.
그래서일까?
어느 순간부터는 오전 내내 NG를 주구장창 외치던 홍의찬 감독은 OK를 남발하기 시작했다.
촬영이 시작된 30시간.
드디어 그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뮤비의 주인공인 이나은도 촬영 스테프들도 그 몰아치는 강행군에 지쳐 파김치가 되었지만, 이나마도 일찍 끝이 난 것이다.
실제로 최대 나흘까지도 촬영 일정이 잡혀 있었을 정도다.
“내 마음을 모르는 당신이 미워~. 바니바니!”
“바니바니…”
어느새 촬영 스테프들은 저도 모르게 후렴을 불러대고 있었다.
본래도 가볍고 중독성이 있던 ‘바니바니’가 영찬의 손에 편집되고 이나은이 그 곡을 찰떡같이 불러 된 결과물이었다.
물론 30시간동안 제대로 자지도 쉬지도 못했던 터라, 대부분 머리가 멍해져 있었던 이유도 그 중 하나일 것이다.
그러나 언제나 의외의 인물은 있기 마련이다.
촬영 감독까지 맡고 있는 홍의찬 감독은 피로 따위는 모르는지 어느 때보다도 빛나는 눈으로 자신의 촬영본을 확인하고 있었다.
그 옆에서 침을 꼴깍이던 FD는 이내 홍의찬 감독이 크게 고개를 끄덕이자 얼굴이 활짝 폈다.
“촬영 끝입니다!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와아아아!-
혹시나 추가 촬영이 있을 줄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을 졸이던 스테프들은 FD의 공식 선언에 환호를 금치 못했다.
“와아아! 끝이다.”
그리고 그 심정은 이나은 또한 다르지 않았다.
대개의 뮤비가 그렇듯이 이나은 혼자서 그 모든 걸 채워야 하는 입장이다.
그나마 영찬 때문에 강제적으로 요구하던 감정선을 잡았기에 다행이지, 아니었다면 지금도 언제 끝날지도 모를 악몽 같은 고통에 시달리고 있었을 것이다.
-툭.-
“오늘 잘했다. 수고했어.”
“….감사합니다.”
기뻐하는 이나은의 모습에 영찬이 등을 툭 치며 위로하자, 이나은은 어쩔 줄 모르겠다는 얼굴로 겨우 답했다.
그 모습을 영찬은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여기에 대해 무어라 말을 하지 않았다.
그저 일찍 끝난 촬영 덕분에 생긴 이틀의 공백 동안 몸 관리 잘 해라는 말 정도만을 더 했을 뿐이다.
뮤비 촬영을 일찍이 끝내기는 했지만, 이나은과 달리 영찬은 쉴 수 없었다.
소속 가수이기 이전 대표이기에 엔터 확장이 한참인 지금 그가 해야 할 일은 산더미처럼 많았다.
그나마도 실장 덕분에 뮤비 촬영 시간을 빼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바쁜 여정의 끝을 달리고 있던 중, 그는 정말 생각지도 못한 충격적인 기사를 보게 되었다.
-4년간의 활동 끝에 소속사의 합의에 의해 베이비 폭스가 해체되었다.-
어쩌면 대다수의 사람들에게는 관심도 없었을 기사일 것이다.
4년이라는 긴 활동 기간이 무색하게도 베이비 폭스는 처참하게 인지도가 낮은 흔한 3류 아이돌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일은 생각보다 주변에 흔했다.
그나마도 기사로 마지막 소식을 알린 건 운이 좋은 케이스였다.
대개는 기사 한 줄도 없이 소리소문도 없이 사라지는 게 보통이었다.
“….이게 무슨 날벼락이야!”
그러나 영찬에게 있어서만큼은 그야말로 마른 하늘에 날벼락과도 같은 소식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베이비 폭스는 그가 도와주고 싶은 걸그룹 6팀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베이비 폭스는 그런 6팀 중 그나마 사정이 나은 팀들중 하나였다.
베이비 폭스의 소속사 맥스 엔터는 중소 엔터라고 하지만 1군에 가까운 남자아이돌이 있어 재정이 건실했다.
자연 회사의 인지도를 크게 높일 수 있는 여자 아이돌에도 관심을 두었고, 그렇게 탄생한 게 바로 베이비 폭스다.
하지만 레드 오션이라 할 수 있는 아이돌 시장에서 걸그룹을 성공시킨다는 건 운이 크게 따라 주어야 가능한 일이었다.
그렇기에 정말 많은 돈을 들여 베이비 폭스를 데뷔시켰지만, 결과는 심통치 않았다.
노래, 춤, 컨셉은 괜찮았다.
무엇보다 작정하고 준비한만큼 베이비 폭스로 뽑아들인 멤버들은 스타성이 넘치는 이들이었다.
어린 나이라는 게 믿겨지지 않을만큼 실력만큼은 확실한 소녀들이었다.
그럼에도 크게 유의미한 결과를 내지 못했다.
운이 없었기 때문도 있겠지만, 굳이 그 이유를 꼽아본다면 실패를 하지 않으려 너무도 신중하게 준비했던 게 문제였다.
좀 더 자세히 말하면 특정 층을 대상에 맞춰 컨셉을 정했어야 했는데, 이 연령층을 좁히지 못하다보니 이도저도 아닌 흐릿한 무언가가 되어 버린 것이다.
물론 이렇게 가더라도 음악이나 컨셉에서 한 방이 있었다면 또 모르지만, 중소 엔터의 여건상 그건 어려웠다.
결국, 베이비 폭스는 미니 1집이 망한 뒤부터 내리막길을 갈 수밖에 없었다.
미니 2집, 미니 3집을 낼수록 오히려 그 성적은 점차 떨어져만 갔다.
이 때문에 미니 3집을 낸 이후 1년 반이 넘게 활동이 중단된 상태였다. 그러다 결국 맥스 엔터에서는 베이비 폭스를 해체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그나마도 이러한 결정을 내린 맥스 엔터는 양심적이라 할 수 있었다.
대개는 계약 해지에 대한 책임을 지기 싫어 그저 시간만 질질 끌고 가다 자연스레 멤버들이 떠나는 걸 선호하는 편이다.
어찌되었든 이 충격적인 소식을 듣게 되자, 영찬은 마음이 급해졌다.
YC 엔터 사옥 리모델링이 채 끝나기도 전에 굿 나이트를 데려오기 위해 움직인 건 베이비 폭스의 해체 영향도 있었다.
굿 나이트가 있던 J엔터를 좋은 조건으로 통째로 인수하게 되었지만, 그는 이걸로 만족하지 않았다.
“와아~. 존예! 내가 올해 본 이들 중에 제일 이쁜 것 같아.”
“내가 말했지. 여기 진짜 예쁜 알바생이 있다고!”
“웬만한 여자 아이돌은 명함도 못 내밀 정도인데?”
“뭔가 혼자 화질이 다른 느낌 같지 않아?”
그런 반응을 보이는 건 그들만이 아니었다.
“허어. 인생 혼자사나 보다.”
“저 언니 얼굴 미쳤는데?”
반대편에 있던 여학생들도 너무도 이쁜 알바생에 그저 감탄만을 할 뿐이다. 시기 질투라는 것도 어느 정도는 되어야 할 법도 한데, 이 알바생은 그런 레벨을 넘어서 있었다.
“저기, 저…죄송하지만 전화번호 좀 주실 수 있나요?”
용기 있는 몇몇 남자들은 전화번호를 물어보기도 했지만, 그때마다 그녀는 난처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그 모습에 미련을 못 버린 몇몇은 진상짓을 보이기도 했지만, 끝내 그녀에게서 전화번호를 얻지 못했다.
그때마다 지친 기색을 보이던 알바생이었지만, 그녀는 언제나 미소를 잊지 않았다.
조금 전에도 그런 진상 짓의 남자 하나를 겨우 떼어낸 그녀는 초여름을 앞두고 감기가 걸리기라도 한 건지 선글라스에 마스크까지 한 손님이 다가오자 미소를 보이며 안내했다.
“네. 손님 무엇을 주문하시겠어요?”
“아이스 아메리카노 하나 주세요.”
“네. 다른 건 필요한 것 없으시나요?”
“…..괜찮다면 끝나고 잠시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요?”
“죄송합니다. 손님.”
그동안의 경험으로 요령이 생겼던지 더는 여지를 주지 않는 말투를 보이는 그녀에 사내는 고개를 젓더니 명함 하나를 그녀에게 내주었다.
“보시고 부디 연락 주시기 바랍니다.”
“……”
명함은 생각 못했던지 차마 거절하기 힘들었던 그녀는 얼떨결에 그를 받아들였다.
그걸로 사내는 만족한다는 듯 더는 미련을 보이지 않고 계산을 마쳤다.
그녀가 알바일을 마친 건 해가 완전히 저물던 저녁이었다.
벌써 카페 알바를 한 지 보름이 되었지만, 처음 하는 알바다 보니 아직 일에 익숙하지 않았다. 종종 실수를 하기도 했는데, 그럼에도 사장은 관대했다.
그녀를 고용한 뒤 벌써 매출이 30%나 올랐으니, 관대하지 않을 수가 없는 일이다.
-툭-
옷을 갈아 입고 짐을 정리하던 그녀의 작업복에서 무언가가 떨어졌다.
바로 낮에 받았던 명함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단순히 감기 따위로 여기기에는 수상할 정도로 얼굴을 가린 사내가 준 것이라, 그녀는 그제야 호기심에 명함을 살펴 보았다.
“!!!”
명함을 본 그녀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YC엔터 대표 박영찬-
바로 현재 연예계에서 가장 핫한 인물의 명함이었기 때문이다.
지난 겨울 그녀는 YC가 낸 ‘스노우 레이디’ 노래를 통해 많은 위로를 받았다.
삭막한 그렇기에 희망도 없다 여겨졌던 외로운 겨울을 맞이한 그녀였기에 더욱 와닿았던 노래였다.
자연스레 그녀는 박영찬의 팬이 되었다.
그 팬심은 그가 블랙 타이거로서 데뷔한 뒤 더욱 심화되어갔다.
그렇기에 자신이 받은 명함에서 그녀는 눈을 떼어내지 못했다. 한참을 멍하니 있던 그녀는 뒤늦게 정신을 차리며 중얼거렸다.
“정말….그 분이셨을까?”
그러한 생각은 이내 확신으로 바뀌었다.
아니라고 하기에는 그 체형도 비슷했는데다, 본인이 아니고서는 그 명함을 가지고 다닐 이유가 없어서다.
하지만 그가 자신의 우상인 YC라는 걸 알았음에도 그녀는 선뜻 연락을 할 수 없었다.
다름 아닌 엔터 대표이기도 한 그가 자신에게 명함을 준 의미를 잘 알기 때문이다.
지난 아이돌로서의 그녀가 겪은 4년은 기쁘고 즐거운 일도 있었지만, 대부분 괴롭고 힘들었다.
그 괴로움은 앨범이 실패할 때마다 배가 되었다.
매번 회사의 눈치를 살피며 자신들이 쫓겨나면 전전긍긍하며 마음을 졸였던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간다는 건 그녀에게는 너무도 버거운 일이었다.
그렇기에 처음 자신들을 맡았던 실장이 자신들을 찾아와 베이비 폭스의 해체를 알렸을 때 그녀는 안도했다.
‘드디어 이 끔찍한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겠구나!’
베이비 폭스의 센터이자 막내였던 김아영은 그렇게 안도 아닌 안도를 하며 해체를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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