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e a music monster overnight! RAW novel - Chapter 6
3장. 비트 코인이 5달러?
3장. 비트 코인이 5달러?
그 꿈을 꾼 지 벌써 한 달이 지났다.
그동안 내 인생에 큰 변화를 가져다 줄 일들이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퇴사다.
퇴사를 한 두 번 한 게 아님에도 유달리 이번 퇴사가 크게 다가온 것은 다른 이유가 아니다.
보통 퇴사를 결심하는 경우가 월급 등의 조건이 괜찮은 곳을 찾았을 경우였는데 반해, 이번 퇴사는 달랐기 때문이다.
“생각보다 너무 쿨하게 받아주셔서 섭섭할 정도였어.”
보통 빈말이라도 잡아주기라도 하던데, 말 꺼내기 무섭게 기다렸다는 듯이 냉큼 퇴직을 받으니 나도 모르게 섭섭함이 얼굴에 드러났던 모양이다.
그런 나에게 부사장은 혹시나 마음 바뀔까 싶어서인지 괜히 헛기침을 흘리며 말했다.
“크흠. 자네 일 잘하는 거 알지. 하지만 요즘 회사 사정이 어렵다 보니 규모를 줄일 계획도 가지고 있어서 말이지.”
“아닙니다. 그보다 퇴직금을 좀 빨리 챙겨주셨으면 합니다.”
“하하하. 그건 걱정하지 말게. 어쨌든 다른 곳에 가서도 잘 지내길 바라네.”
“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그랬다.
이번 퇴사는 오직 퇴직금 하나를 바라보고 하는 퇴사였다.
마지막 날이라고 해서 그리 다른 날과 다른 것은 없었다.
4년 넘게 일하던 곳이었음에도 그리 친분이 있거나 하는 이들이 없어서다.
뭐, 당연한 이야기다.
2교대로 돌아가는 곳에서 그런 여유가 생길 리가.
그나마 친분이 있던 우리 쪽 조장 아저씨와 평소보다 긴 인사를 한 걸 끝으로 그렇게 나는 백수가 되었다.
“헐!”
부사장이 장담하기는 했지만, 퇴직금은 정말 빠르게 나왔다.
다음 날 아침 은행이 문 열기 무섭게 입금이 된 것이다. 그간 본 회사의 일 처리 속도를 생각한다면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묘하게 기분 나쁜데?”
어째 마음이 바뀔까 싶어서 그랬던 것 같아 나는 괜히 투덜거렸다.
그렇게 퇴직금을 찾은 나는 은행들을 방문해 모든 적금을 깨기 시작했다.
적금 중에는 만기가 얼마 남지 않은 것도 있었고, 이 때문에 은행원의 설득이 있었지만 마음을 바꾸지는 않았다.
적금만 깬 것이 아니었다.
전세를 담보로 돈을 빌릴 수 있는 최대치를 빌리기도 했다. 덕분에 매달 적잖은 이자를 내게 되었으나, 그럼에도 내가 이러는 이유는 간단했다.
“비트 코인!”
바로 비트 코인에 투자하기 위해서다.
2년 전 이제 막 생겨난 비트코인의 가치는 엄청나게 낮았다.
1만 비트코인으로 피자 2판을 교환할 정도였으니 그 가치가 얼마나 형편없는지 알 수 있으리라.
그러다 2011년이 되면서 이야기가 달라졌다.
전 세계에 여러 비트코인 거래소가 만들어지며, 사람들이 비트코인 채굴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자 본격적으로 가격이 형성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 당시 비트코인은 0.29달러에 시작되었는데, 주로 쓰여지던 쓰임은 해외 야구사이트 결제였다.
덕분에 동영상 보려고 산 비트코인을 까맣게 잊고 있다 뒤늦게 대박을 친 행운아들이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런 대박 친 행운아 중 하나가 나였다.
휴식기를 맞이해 느긋하게 야구를 보려고 넉넉하게 사 놓았던 코인을 제대로 쓰기도 전에 강제로 미국 진출을 하게 되면서 생긴 일이었다.
2013년.
당시 비트 코인이 1163달러를 찍었다는 걸 알게 되었던 나는 너무도 놀라 순간 심장이 멎을 뻔 했다.
“허어억!”
하기야 유흥 거리로 산 돈이 1000배가 넘어 돌아왔으니 그럴 법도 했다.
그 액수가 무려 천만달러 정도였고, 그 돈은 정말이지 당시의 나에게 큰 힘이 되어 주었다.
나의 유명세에 힘입어 YC엔터를 세계 곳곳으로 확장 하던 때라 여러모로 돈이 부족하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내 음악보다 레전드 가수들의 내민 손길을 잡아댄 건 그 돈을 마련하기 위한 것도 있었다.
그러나 생각보다 더 많은 돈이 필요했고 결국 투자와 상장을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그러던 차에 천만달러를 손에 넣게 된 것이다.
덕분에 상장을 뒤로 미룰 수 있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이 돈은 훗날 최소 백배 이상의 이득으로 돌아와 주었다.
그런 경험 때문인지 나는 바쁜 일상 속에서도 비트 코인을 확인하는 취미를 가지게 되었다.
“화수분(재물이 계속 나오는 보물단지)이 달리 있는 게 아니야. 이게 화수분이지.”
녀석의 기억이 각인되면서 자연 비트코인 시세를 기억하고 있는 나로서는 당장 돈을 벌기 위해 움직였다.
조금은 아쉬운 점은 있었다.
“작년에 알 수 있었다면 진짜 대박이었을텐데.”
그도 그럴 게 2011년에 비트코인은 32달러까지 찍었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올해는 반감기를 거치고 있는 때다 보니 그런 대박을 노리기는 어려웠다.
이 마저도 내 생일이 1월이 아니었다면 노리기도 힘들 일이었다.
“…내년부터가 진짜지.”
저쪽 세상의 내가 겪었던 것처럼 이번에도 나는 2013년을 기회로 돈을 크게 벌 생각이었다.
“현재 비트코인이 5달러니깐…”
최고점을 놓고 계산하면 232배의 수익이 가능했다.
백만원을 투자하면 약 2억 3천만으로 돌아오는 꼴이었다.
‘눈 돌아가겠네.’
이러니 내가 적금을 깨고 전세 대출을 할 수밖에.
그렇게 끌어모은 돈이 1억이었고, 나는 이 돈을 전부 비트 코인에 넣었다.
“…어휴. 떨려.”
비트 코인의 시세는 여느 기억들처럼 각인이 되어 뚜렷하게 기억하고 있음에도 나는 일말의 불안을 감출 수 없었다.
달라진 나의 인생으로 인해 생긴 나비 효과가 대중 음악사가 달라졌음을 확인해서다.
그러니 내가 아는 비트 코인 역사의 불안성에 걱정이 들 수밖에 없었다.
“일단 천천히 지켜봐야지. 뭐가 되었든 비트 코인이 오르는 건 확실하니깐.”
나비 효과니 뭐니 해도 거대한 흐름을 거스를 수 없는 일이니깐.
퇴사와 비트 코인의 투자 못지 않게 특이한 일이 있었다.
이틀 전 알 수 없는 알고리즘에 보게 된 튜브의 인기 동영상이 그 정체였다.
-흔한 동네 아저씨(Bohemian Rhapsody)-
클릭하지 않고서는 넘어가기 어려운 제목이라 나는 클릭했고, 이에 당혹스러워 할 수 밖에 없었다.
영상에서 한달 전 동전 노래방에서 불렀던 내가 나왔기 때문이다.
내 동영상을 보게 된 나는 당혹스러우면서도 이내 안도의 한숨을 흘렸다.
영상 시간은 5분짜리였고, 그 말은 제목처럼 Bohemian Rhapsody의 노래만이 올라왔다는 걸 뜻해서다.
모자를 눌러 써 얼굴을 가렸다고는 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부끄러운 일인 건 확실했다.
“그나저나 뭐가 이렇게 많이 봤어?”
현재 조회수가 300만.
적지 않은 조회수답게 아래에 달린 댓글 수도 이미 3000개가 넘었다.
-노래를 듣는 내내 프레디 머큐리가 부른 Bohemian Rhapsody 가 생각나지 않았다. 세상에 이런 레전드 가수가 있을 줄이야!-
-적어도 이 노래만큼은 김나박이도 한 수 접어야 할 듯.-
-단순히 잘 부른다 수준이 아닌데? 그래서 이 분 정체가 뭔데? 절대 동네 아저씨는 아닌 것 같은데?-
-이게 흔한 동네 아저씨면 우리 동네 고양이는 호랑이겠다.-
-웃으려고 왔다가 울고 갑니다. 락은 살아 있구나 ㅠㅠ 락앤롤!-
-발음이 외국분인 것 같았는데, 모자 챙 아래 피부색을 보니 한국 분인 듯. 소속사들은 뭐하냐! 여기 프레디 머큐리 못지 않은 가수가 한국에 있는데!-
-미친 것 같다. 벌써 100번 넘게 이 노래를 듣고 있다. 겨우 동전 노래방 시스템으로 이 정도 퀄러티를 보이다니…-
노래방 시스템을 비롯해 당시 내 몸 상태를 생각하면 영상의 노래는 아쉬움 점이 많았지만 이처럼 극찬과도 같은 댓글들이 즐비했다.
저쪽 세상의 기억을 공유하면서 다소 찬사에 익숙해진 나조차도 민망할 정도의 극찬들이 늘여 져 있던 터라, 나는 더는 댓글을 읽을 수 없었다.
“어디 보자. 수시아(誰是我: 나는 누구인가)… 서동고 밴드 동아리?”
누가 이걸 올렸나하고 살펴보니 고등학교 밴드 동아리였다.
그러고보니 그 아이들 중 스마트폰으로 촬영을 하던 여고생이 있었는데, 그 아이가 올린 게 아닌가 싶었다.
“뭐…상관 없겠지.”
잠시 놀라기는 했지만 이내 관심을 껐다.
모자에 얼굴이 가려져 나를 알아 볼 수도 없는데다, 이 정도의 조회수는 기억 속의 나에게 있어 별 개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럴 만 한게 1억 조회수 영상을 찍어내듯 했던 내가 아니었던가?
겨우 천만도 안 되는 영상에 일희일비할 필요는 없었다.
‘그렇게 생각했었는데…’
그러나 내 생각과 달리 그로부터 겨우 이틀만에 조회수는 두 배를 넘기기 시작했고, 그 상승세는 멈추지 않고 있었다.
아니 이제 시작이라는 듯 달려나가고 있었다.
그 증거로 한글이 대부분이었던 댓글에는 이제 영어가 주를 이루기 시작했다.
이건 해외에서도 핫한 영상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는 걸 뜻한다.
“이게 어디까지 갈지는 모르겠지만…나중에 얘네들 한 번 찾아가보기는 해야 할 것 같네.”
지금도 그렇지만 너튜브의 비중은 어마어마하게 커진다는 것을 보았던 나로서는 너튜브 채널을 키워나가야 했다.
그런 점에서 이 영상을 잘 이용한다면 무서운 속도로 채널을 키울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해외 쪽에서 주목받고 있다는 게 마음에 드네.”
치열하기 그지 없는 작은 한국 시장에 연연해서는 제대로 성장할 수 없다는 걸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다.
생각보다 인맥이 판을 치는 곳이 이 바닥이었다.
그러니만큼 리스크는 크지만 해외로 나가야만이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
선봉장이 되었던 내가 없는 이 세계에서는 아직 제대로 된 한류도 없었던만큼, 이런 외국 구독자들의 숫자는 중요했다.
그렇기에 나는 이 영상이 해외로 더욱 활활 타오르기를 간절히 바랬다.
그로부터 3달이 지났다.
3달이라는 시간동안 정말 바쁘게 지냈다.
‘솔직히 공장 일을 다녔을 때보다 배는 더 바빴던 것 같네.’
체력 증진과 함께 한 다이어트도 다이어트지만. 가장 비중이 큰 건 저쪽 세상에서 만들었던 음악을 복원하는 일이었다.
비트 코인에 돈을 다 부은 터라, 제대로 된 시스템을 구축할 수 없어 그저 기타와 목소리로만 녹음하는 정도였지만 그럼에도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툭 하면 찢어지는 손가락 때문도 있지만, 그보다는 내가 그곳에서 만들었던 곡의 숫자가 상당해서다.
단순히 내가 부른 것 말고도 콜라보를 했던 곡들이나 프로듀서 했던 곡들을 모두 합치니 1000곡이 넘었기 때문이다.
중간에 군대도 가고 사업 활동도 한 걸 생각하면 활동한 년 수로 보았을 때 그야말로 미친 숫자였다.
사부들에게 괴물이라 불렸던 화수분처럼 쏟아지는 영감을 가지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 중에서도 반응이 좋았던 걸 연도별로 모아 녹음했는데, 그동안 그렇게 녹음했던 곡이 103곡이었다.
“솔직히 복원하는 수준이었다면 이렇게 고생하지는 않았겠지만….”
그랬다.
단순히 녹음만이라면 이렇게까지 바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간이 편곡까지 함께 진행 하다 보니 일이 이처럼 흔들게 된 것이다.
“어쩔 수 없었다.”
안 그래도 넘쳐나던 영감이었다. 그러던 것이 저쪽 세상의 나를 죽음으로 몰고 간 마약으로 인해 새로운 경지 혹은 형태로 진화되었다.
단순히 넘치다는 수준이 아닌 아예 둑이 무너지듯 쏟아 지고 있는 느낌이다.
덕분에 종종 잠도 자지 못하고 밤을 새는 일이 허다했다.
“이 곡을 이런 식으로 바꿀 수 있구나.”
그러나 힘든 것 이상으로 재미있다보니 쉬려고해야 쉴 수가 없었다.
오만하다 생각할 수 있지만, 더 이상 완성도를 높일 수 없다고 생각하던 또 다른 나의 작품들을 깨부수던 작업이다 보니 더욱 그러했다.
“우물 안의 개구리였네.”
어쩌면 지금도 또 다른 우물 안 일 수도 모르지만, 어찌되었든 새로운 경지에서 바라보는 음악은 나에게 한없는 자유로움과 즐거움을 주었다.
거기에 최근에는 이제 수없이 찢겨져 더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될 굳은 살 박힌 손가락과 제법 전성기 때 못지 않은 폐활량을 가지게 되며 이 곡을 소화하게 되었으니 더욱 그러했다.
그러자 점점 더 완성도 높은 퀄리티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이거 안되겠는데. 아깝지만 일단 작업실부터 구해 보는 게 좋겠어.”
마침 며칠 뒤면 첫 번째 코인을 정산할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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