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e a music monster overnight! RAW novel - Chapter 63
19장. 핑크 다이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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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장님. 여기 아이스 아메리카노요.”
“응? 아!”
기획실 부 팀장이 된 고우리가 가져 다 준 커피에 그제야 토카시는 화면에서 고개를 돌렸다.
자연 고우리를 보게 된 그는 흠칫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그녀의 얼굴에 묻어 있는 과자 부스러기를 발견해서다.
“…설마 그 몰골로 카페에 갔다 온 거는 아니겠지?”
“네? 왜요?”
자신의 몰골에 대한 자각이 전혀 없는 고우리에 토카시는 고개를 저어대다 끝내 한 마디를 던졌다.
“…. 적당히 즐겨.”
“네? 아…에헤헤.”
어리둥절하던 고우리는 뒤늦게 무슨 말인 줄 알고는 서둘러 입가 주변을 털어내며 실실 웃어댔다.
벌써 열흘 째 이어가는 철야에 다들 피로에 찌들고 있건만, 그녀는 갈수록 생생해져갔다.
체력이 남달라서가 아니었다.
그것보다는 YC 엔터의 특별한 복지 때문이다.
YC 엔터의 복지는 여느 대기업 못지 않은 수준이었다. 보너스를 비롯해 야간 근무 수당 또한 대형 엔터에 비해 50%가 높았다.
그 외에도 여러 복지가 있지만 고우리가 가장 마음에 들어하는 복지는 바로 무인 편의점과 카페 무료 이용권이다.
공짜라면 양잿물도 마실 수 있는 그녀였기에, 이 복지는 그녀에게 엄청난 애사심을 가지게 만들었다.
덕분에 고우리는 이번 프로젝트에서 자신의 한계 이상의 역량을 보여댔다.
어떻게든 이 프로젝트에서 두각을 나타내야, 앞으로도 자신이 이곳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해서다.
이지우 팀장은 그런 고우리의 모습에 혀를 내둘렀다.
“이걸 대단하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네.”
“에휴. 저는 반쯤 내려 놨습니다.”
한숨을 푹 쉬는 토카시의 모습에 이지우 팀장이 다가가 그의 지친 어깨를 주물러 주었다.
“뭐, 어찌 되었든 결과만 좋으면 된 거 아닌가? 그보다 자네도 이제 좀 쉬지 그래?”
1차 보고서를 올린 뒤에도 여전히 고삐를 늦추지 않는 토카시에 그는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토카시는 단호히 고개를 저어댔다.
“아시잖아요. 이제 시작이라는 거.”
“으음.”
이지우 팀장은 짧은 신음을 흘려대고야 말았다.
토카시의 말대로였기 때문이다.
이미 다년간의 경험을 통해 그들은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기획실에서 원하는 컨셉에 맞추어진 음악이 나오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말이다.
실제로 매니아 엔터에서는 그들은 자신들이 생각하는 느낌 그 비슷무리하게 만들기까지 몇 번을 싸웠는지도 모른다.
이마저도 이전 그의 상사였던 이지우가 창립 멤버였으니 그나마 나름의 결과물을 가져왔지 그게 아니었다면 말도 안되는 결과물에 맞춰 다시 기획컨셉을 바꿔야 했을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그들은 이 단계에서 큰 산을 넘어야 했다.
YC 엔터의 음악 대부분이 YC의 손에서 만들어지는 만큼 이번에도 그 주체는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 말은 그들이 싸워야 할 대상이 등장과 함께 업계를 휩쓴 천재이자 그들의 대표인 YC가 된다는 이야기였다.
-쪼로로록!-
생각만 해도 갑갑한지 조금 전 고우리가 가져다 준 커피를 빨아 마시던 토카시에 이지우 팀장은 괜히 그의 어깨를 투닥일 뿐이다.
과거와 달리 자신도 토카시를 통해 이곳에 온 만큼 힘이 없다보니 그저 이러한 위로 말고는 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담배나 한 대 피자.”
“…그러죠.”
토카시는 힘없이 몸을 일으켰다.
그만큼 토카시도 막막하기 그지 없어서다.
그도 그럴 게 영찬이 보여 준 자료의 가치는 이지우 팀장보다 그가 더 잘 알고 있었다. 처음 그 자료들을 본 순간 그는 마치 메시아의 글마냥 그를 받아들였었다.
그만큼 그의 영감을 자극하는 자료들이었다.
단순히 그 아이디어를 곱씹는 것만으로도 그는 사고가 넓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이러니 그로서는 난감할 수밖에 없었다.
만약 영찬이 그의 보고서를 보고 만들어 준 음악이 자신이 생각한 것과 다르다면, 그는 별다른 저항을 하기 힘들지 모른다.
자신이 생각한 것보다 이게 더 옳은 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이래저래 답답한 마음을 담배 연기로 풀어대던 그가 다시 자리로 돌아왔을 때, 그에게 메일이 날아 와 있었다.
“대표님이?”
보고서를 올린 지 벌써 하루가 꼬박 지났음에도 별말이 없던 대표님이 보낸 메일이라는 걸 알자 그는 서둘러 메일을 열었다.
“…..”
그리고 열어 낸 메일에는 4개의 음악 파일이 있었다.
별다른 보고서에 대한 여타할 평가도 피드백도 없이 그저 음악 파일들만이 있자, 토카시는 묘한 불안감에 휩싸였다.
혹시 자신의 우려대로 보고서가 마음에 들지 않아, 이처럼 음악을 통해 바꾸라고 하는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한 것이다.
-딱딱딱..-
불안함에 손가락으로 데스크를 치던 것도 잠시 그는 음악 파일을 내려 받기 시작했다.
“뭐든 우선 들어 봐야겠지.”
-탁탁..-
음질을 위해 일부러 압축하지 않은 원음인 탓에, 파일은 하나 같이 용량이 높았다.
덕분에 피 말리는 듯한 시간을 애써 담담하게 받아들이던 그는 한 쪽에 놔 둔 헤드폰을 꺼내 착용했다.
“후~.”
그리고 첫 번째 음악 파일의 다운이 완료되자 그는 더는 망설이지 않은 채 바로 음악을 재생했다.
-단다다단. 다다단.-
첫 시작은 아주 작은 피아노 소리였다.
처음 듣는 구성의 음악 코드를 배경으로 휘파람 소리가 일더니, 이어 바람 소리가 그를 뒤덮었고 그 속에서 고스란히 아기 고양이 울음 소리가 잔잔하게 울리다 사그라졌다.
-치지지징-
그 뒤 몽환적인 신시사이저가 YC 특유의 깨끗한 고음의 허밍이 함께 어울리다 이후 사각거리는 펜 소리가 부각 되더니 그 위로 묘한 드럼 비트가 울리기 시작했다.
마치 최면에 걸린 듯 토카시는 이 불과 십여 초의 인트로에 빠져 들었다.
음악을 틀기 전 만해도 잔뜩 긴장했던 것이 거짓말인 것처럼 그는 온몸에 힘이 빠진 듯 한없이 평온한 기색으로 이 음악이 가져다주는 마성에 홀려 버린 것이다.
그리고 시작된 YC의 목소리는 그의 심장을 뒤흔들어 놓기에 충분했다.
완성된 가사가 아니다 보니 중간중간 허밍으로 부르는 게 더 많았으나, 그 가사의 줄거리를 이해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없었다.
핑크 다이어리 프로젝트에서 강조하던 것 그대로였다.
인위적이지 않으면서도 작가주의를 강요하지 않는, 그 90년대 중반의 새벽 소녀의 감수성을 담담히 써내린 것 같은 가사들이다.
어른이 된 지금이야 별 게 아닌 내용들이겠지만, 그 시절 그 나이 대의 소녀에게는 모든 것일지도 모르는 이야기들.
누군가는 이를 듣고 잊혀진 과거의 우정이나 사랑을 떠올릴 것이고, 또 누군가는 잊고 있던 아니 잃었다고 생각한 자신의 순수함을 찾을지도 모른다.
-단다다단. 다다단.-
처음 음악이 시작했을 때 들은 피아노 소리가 점차 강조되듯 커지는 것을 마지막으로 그렇게 3분 12초짜리 음악은 그 끝을 맺었다.
“…….”
음악을 듣고 난 뒤 토카시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나름 정리하며 구체화시켰다고 생각했던 자신의 기획 컨셉을 완전히 구현화한 음악이었기 때문이다.
‘세상이 좁다 설쳤던 제천대성이 사실 처음부터 부처님 손바닥 위에 있었음을 깨달았을 때 이런 느낌이었을까?’
마치 잘 짜인 극본 위에 올라와 있었음을 자각한 엑스트라가 된 것 마냥 토카시는 심란하기 그지 없었다.
그만큼 그가 들은 영찬이 보내 준 곡은 터무니가 없었다.
“….200%.”
100% 구현화 한 정도를 넘어 200%를 구현화 한 것 같은 그의 음악은 단순히 듣는 걸 넘어 무의식에게까지 침범했다.
말 그대로 초현실주의의 음악인 셈이다.
‘부끄럽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다.
실제로 그는 이 음악을 좀 더 파고들어 기획컨셉을 짜야 하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잠시 혼란스러움에 정신을 차리기 힘들어하는 토카시는 이내 침을 꼴깍 삼켜댔다.
“그러고보니 아직 3곡이 더 있었지.”
영찬이 그에게 보낸 음악 파일은 총 4곡이다.
그리고 자신은 그 중 이제 겨우 하나를 들었을 뿐이다.
“설마 이 것들도 앞에 음악과 같은 수준……”
말을 이어가던 토카시는 순간 온몸을 떨어대야 했다.
-투두두둑!-
음악에 빠져 정신을 차리지 못하다 뒤늦게 깨달은 사실에 소름이 돋아나면서였다.
그가 깨달은 건 다른 게 아니었다.
“….이런 음악을 겨우 하루 만에 만든 거라고?”
그것도 한 곡도 아닌 4곡이나 만들었다는 사실이 그는 믿겨지지 않았다.
그는 설마설마하는 마음으로 남은 3곡 또한 듣기 시작했고, 이후 그의 얼굴은 혼란에 빠져들고 말았다.
기쁨과 두려움, 공포와 슬픔 등 복잡한 감정들이 얼굴에 질서없이 일어났다 사라지기 반복했다.
“괴수…”
블랙 타이거의 멤버들이 영찬을 괴수라고 불렀을 때, 당시 옆에 있던 토카시는 그저 웃을 뿐이었다.
친분이 짙어 장난을 치는 것이라고 여긴 것이다.
하지만 지금 와서 보니 그건 결코 장난으로 하는 말이 아니었다.
천재, 괴물 따위로는 그를 표현하기에는 부족해 찾은 말이라는 걸 이제야 알게 된 것이다.
“….하하하.”
그는 실성한 것 같이 웃음을 흘려대었고, 이런 그의 모습에 몰래 초코 과자를 먹어대던 고우리 부팀장은 침을 꼴깍 삼키며 고개를 밑으로 처박았다.
그동안 일에 미쳐 있던 토카시가 정말 미친 게 아닌가? 싶어 무서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그녀가 공포에 떨게 된 건, 토카시가 기획 컨셉팀을 회의실로 데려오면서였다.
-단다다단. 다다단.-
속사이듯한 피아노 코드 소리와 함께 시작된 음악은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이들을 경악으로 몰고 가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정말 경악스러운 일은 그와 같은 퀄리티의 곡이 3곡이나 더 이어졌다는 점이다.
“미쳤어!”
본래 실용음악과를 나왔던 만큼 음악에 대한 감각이 뛰어난 고우리는 절망과 공포를 담아 그리 중얼거려야 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그 심정은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 또한 이제야 안 것이다.
YC가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말도 안되는 존재라는 것을 말이다.
그 누가 이런 엄청난 곡을 하루 만에 4곡이나 써 내려 갈 수 있을까? 그것도 거진 완성본이나 다름 없는 수준으로.
팀으로 움직였다고 해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무거운 혼란의 침묵을 깨트린 건 토카시였다. 그는 뜨거운 눈길로 컨셉 팀을 바라보며 말했다.
“덕분에 우리가 가야 할 길은 명확해졌습니다. 최대한 빠르게 움직일 생각이니 부디 잘 따라와주시기 바랍니다.”
-꿀꺽.-
어떻게든 곡에 담긴 초현실주의적 이미지를 구현화하겠다는 그의 의지가 전해진 것일까?
고우리를 비롯해 팀원들은 긴장감에 침을 꼴깍였다.
그렇게 이들은 폭풍 같은 나흘을 보내게 되었다.
“벌써 2차 보고서?”
영찬은 대대적인 재정비 끝에 이제 본부장이 된 장길산으로부터 기획 실이 요즘 심상치 않다는 소식을 듣기는 했었다.
하지만 그 결과가 이처럼 빠르게 날 줄은 생각지도 못했었다.
1차 보고서 때처럼 열흘 정도는 지나야 받을 것이라 생각했기에 더욱 그러했다.
“…설마 날림으로 올린 건 아닐테고.”
애초에 토카시가 그런 성격이었다면, 그 막막한 매니아 엔터에서도 그 정도의 성과들을 내지 못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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