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e a music monster overnight! RAW novel - Chapter 70
하루 아침에 음악괴수! 61화
본래는 일본과 한국 양국에서만 하려고 했던 콘서트에 중국을 추가하게 된 건 역시나 지금의 중국 시장이 너무도 먹음직스럽기 때문이다.
일본에 이어 중국에서 활동 하고 있는 G1 밴드만 보아도 그러했다.
K팝이라는 한류를 앞세운 G1 밴드는 연일 콘서트 매진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특히나 앨범 판매량은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수직 상승 중이었다.
얼마 안 되는 굿즈마저 빠르게 동이 나고 있을 정도다.
국내에서 초대박을 쳤던 Blue Rose와 비교가 될 정도의 매출을 G1 밴드가 올리고 있다 보니, YC 엔터 내부에서도 중국 진출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설마 제가 중국 진출을 먼저 권유하게 될 줄 몰랐습니다.”
매니아 엔터가 중국 진출을 하다 어떻게 망해가고 있었는지를 실시간으로 바라보았던 토카시마저 권유할 정도였다.
더욱 무서운 건 지금도 거대한 중국이 엄청난 속도로 경제 성장률을 찍어 올라가고 있는 중이라는 점이다.
외부에서 보기에는 미래가 밝을 수밖에 없었고, 이 때문에 국내 엔터들이 앞다투어 중국 진출에 목숨을 거는 것이었다.
이 때문에 YC 엔터 내부에서는 못해도 일본처럼 대대적인 투자를 하자는 말들이 나왔다.
“이러니 녀석이 중국에 미쳐 뛰어들었던 거지.”
물론 각인된 기억을 통해 어떻게 흘러갈지를 아는 나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이야기였다.
“앞으로 3년 뒤에 갑자기 한한령(限韓令 : 한류제한령)을 발효한다는 걸 어떻게 설명하겠어.”
한한령이 발효되는 순간 중국에 뻗어 둔 발이든 다리든 머리든 모두 잘려져 버린다.
상식이 통하지 않을 만큼 한순간 한류를 옹호하며 즐기던 분위기는 단순에 적대적으로 바뀌고 만 것이다.
이것이 공산국가의 무서운 점이었다.
정보 통제 따위는 아무렇지 않게 하는 이 같은 체제는 최소한 겉으로는 그 한류의 흐름이 바뀌었음을 만드는 게 가능했다.
이 일로 인해 기억 속 녀석이 얼마나 큰코다쳤는지 아는 나는 중국에 한해서만큼 소극적으로 대처했다.
“그 나라는 믿을 수 있는 사람도 정부도 없습니다. 지금 정도의 거리를 유지하겠습니다.”
물론 그것만으로도 적잖은 수익을 내는 게 가능했기에 블랙 타이거의 중국 진출은 거진 확실히 되었다.
이처럼 콘서트 투어의 규모가 동북아시아 투어로 확장이 되자, 콘서트 준비에 좀 더 심혈을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컴백을 준비 중인 우리들을 웬만한 극성팬 못지않게 즐기는 이가 있었다.
바로 홍의찬 감독이었다.
그는 Blue Rose 다큐 예능을 거론하며 우리의 연습 장면 또한 다큐처럼 담고 싶다는 요청을 했었다.
“???”
처음 그 요청을 들었을 때 아이돌도 아니고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싶어 황당했지만, 확실히 팬들은 좋아할 게 분명하다는 내부의 말에 그를 허락했다.
그리고 그 결과 나는 기억 속 녀석이 종종 당했던 스토킹을 실시간으로 느끼게 되었다.
“으흐흐흐.”
연습 중간중간 수상하기 그지없는 웃음소리가 귓가를 스쳐 지나갔다.
특히나 기타 솔로 연주 연습을 할 때면 이 웃음소리는 더욱 음침함을 드러냈다.
실내 밴드 연습실이다 보니 삼촌들은 듣지 못하는 모양이었지만, 절대음감과 더불어 예민할 정도로 청력을 타고난 나로서는 듣지 않으려고 해도 들릴 수밖에 없었다.
이러니 나도 모르게 연습 중간중간 미간을 찌푸리게 되었는데, 그럴 때면 또 다른 투덜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쯧~저 덩어리들 좀 옆으로 치웠으면 좋겠네. 왜 계속 시야를 방해하는 거야!”
홍의찬 감독이 도대체 뭘 본 건지 몰라도, 분명한 그가 자신이 뭘 하고 있는지도 잊어버리고 있는 건 분명했다.
‘오랜만에 방송 촬영이라고 곽도훈 삼촌은 매일 피부과를 다니고 있는데. 좀 찍어주지.’
물론 관리와는 별개로 여전히 렌즈에 담기에는 상당히 많이 부담스러운 외모다 보니 쉽사리 권유하기 어려웠다.
그렇게 처음에는 연습실에서만 촬영한다고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홍의찬 감독은 노골적으로 변해갔다.
아예 대놓고 스토킹을 하는 스토커처럼 나를 따라다니고 있는 것이다.
“아아~ 늘 새로워. 짜릿해. 역시 YC가 최고야.”
“…….”
그러다 중간중간 뭔가를 건질 때면 오싹하게 만드는 소리를 저처럼 지껄여댔다.
만약 기억 속 녀석의 스토킹 당한 경험들이 없었다면 밤잠을 설쳤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다행히도 홍의찬 감독의 다큐 촬영(그가 주장하는 바로는)은 보름이 채 되지 않아 끝이 났다.
보름이 짧은 건 아니었으나, 광기 어린 스토커 짓을 했던 걸 생각하면 놀라운 일이다.
하지만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이제 본격적으로 블랙 타이거 정규 1집 타이틀 brilliant struggle 뮤비를 촬영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 뮤비 준비는 생각보다 짧게 끝이 날 듯 보였다.
벌써부터 뮤비 세트를 짓고 있었고, 변수가 없다면 다음 주에 바로 촬영이 시작될 것이다.
“뮤비 시안도 좋았지.”
brilliant struggle을 그토록 아꼈음에도 결국 내놓은 건, 레전드 밴드와의 콜라보가 마냥 탐이 났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이 콜라보의 취지가 좋았기 때문이다.
암 환자 기부 콘서트를 위한 게네시스 프로젝트에 적합한 곡이 필요했고, 처절하면서 찬란한 투쟁을 나아가는 암 환자들을 보았던 녀석은 결국 brilliant struggle을 헌정하기로 결정했다.
그 생각은 이번에도 다르지 않았다.
이번에도 brilliant struggle을 그들에게 헌정하기로 했다.
락 역사상 가장 웅장하면서 처절할 게 분명하다며 극찬을 받았던 곡을 헌정하겠다고 했을 때 내부에서는 말들이 많았었다.
하지만 대게의 여론이 내 쪽으로 기울었다.
홍보적인 면에서 본다면 아깝지 않을 것이라 본 것이다.
그러한 홍보팀의 의견에 맞춰 좀 더 제대로 된 판을 벌이기 위해 이 곡은 국내 버전과 영어 버전으로 나오기로 결정을 내렸다.
여전히 brilliant struggle 음원이 가져다줄 자금이 아깝다는 말이 있기는 했지만, 이 정도 금액의 손실 정도는 지금 나에게 그리 큰 손실이 아니었다.
드디어 가장 큰돈을 벌 수 있는 비트코인 3차 정산 시기를 맞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10월이 되면서 비트 코인은 본격적으로 폭주를 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조금씩 오르고 내리기를 반복하던 코인 시세가 드디어 100달러를 회복한 것이다.
물론 이후 다시 또 100달러 전으로 내려가기도 했지만, 이미 정해진 대세의 흐름을 막을 수는 없었다.
결국 10월 중반을 넘기며 비트코인은 다시 200달러의 벽을 넘어섰다.
이때부터 비트 코인은 기억 속에서의 흐름과 비슷하게 흘러갔다.
비슷하다고 말한 건 이번 3차 정산에서부터는 기억 속 시세나 그 흐름이 차이가 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건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차이가 날 수밖에 없는 게 현재 내가 보유한 비트코인은 시장의 10%를 넘었기 때문이다.
2차 정산 때는 그 비중이 3%가 채 안 되었지만, 저점인 50달러대에서 사들이면서 이 정도까지 비중이 높아지게 되었다.
그런 만큼 이번 3차 정산에서는 이 흐름에 최대한 영향을 끼치지 않을 정도로 매도를 잘해야 했다.
“본래 역사에서는 1,178달러를 넘겨 버렸지.”
가능만 하면 50달러대에 산 비트코인을 저 값에 팔 수 있다면 거진 20배를 넘게 남겨 먹을 수 있다.
하지만 아직 코인 시장이 그 정도로 크지 않은 만큼 나는 12배 이상을 남겨 먹는 걸 목표로 삼았다.
마음 같아서야 15배 이상도 노리고 싶지만, 거기까지 가기에는 자칫 다른 작전 팀이 일찍 털어버릴 위험이 있었다.
주식 시장 따위와는 비교도 안 되는…… 도무지 예측을 하기 어려운 곳이 이쪽 코인 시장이라 지금 비중에 12배를 먹는 것도 사실 역사를 알기에 가능한 짓이었다.
“……아직 코인 판이 끝인 것도 아니고.”
불과 4년 안에 지금의 코인 시장과는 비교도 안 되는 판이 형성된다는 걸 아는 나로서는 이번 정산에 그렇게까지 무리할 생각은 없었다.
무엇보다 나는 녀석을 통해 돈은 어디까지나 수단일 뿐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여느 기업인들과는 달리 K팝 시장이 건전(健全)해질 수 있도록 유도하고, 세계적으로 노출이 쉽게 될 수 있게 시장을 형성하는 데 성공할수록, YC 엔터는 코인 판 따위와는 비교도 안 되는 엄청난 자금을 손에 쥘 수가 있었다
“뭐, 그래도 돈이 좋기는 하지. 돈이 많을수록 그런 시장을 형성하기가 쉽기도 하니깐.”
10대 때부터 이쪽 시장에 발을 들인 녀석과는 달리 뒤늦게 연예계에 진출한 시간을 당기기 위해서는 돈만 한 게 없었다.
한동안 잠잠하던 비트코인은 11월이 되면서부터 다시 폭등의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다 한순간 300달러를 넘기더니 이내 그 기세 기대로 올라가 500달러마저 넘겨 버렸다.
“아…… 빨라. 생각보다 더.”
기억 속 코인 시세 때에는 11월 중순을 앞두고 500달러를 넘겼었기에 대략 나흘 정도 빨랐다.
“역시나 욕심을 부리면 안 되겠어.”
나는 500달러를 넘긴 뒤에도 주춤하지 않고, 다시 600달러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시세의 흐름에 슬금슬금 기어 나오는 욕심을 털어놓았다.
다음 날 600달러를 넘기기 무섭게 2%씩 5번 지분을 털어낸 것이다.
10%나 되는 양을 털어냈음에도 다행히 상승세는 멈추어지지 않았다.
다음 날 650달러를 넘겼을 때 다시 5%를 5번을 더 털어냈다.
25%를 더 털어냈지만, 이번에도 상승세는 주춤거리지 않았다. 오히려 더 내놓으라는 듯한 기세를 보여주기까지 했다.
‘이거 참. 곤란한데.’
다시 모두 털어놓았다고 생각했던 욕심이 다시 머리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덕분에 잠시 주춤하게 되었고, 그 주춤한 시세는 어느새 800달러를 넘겨 버렸다.
광기. 그 단어로밖에는 설명이 안 되는 흐름이었다.
오히려 이러한 광기 덕분에 나는 다시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이후 이틀에 걸쳐서 다시 40%를 털어내었다.
나 때문인지는 몰라도 이 이틀 사이 정신없이 올라가던 비트코인은 숨을 고르듯 정체되는 모습을 보였다.
남은 건 이제 25%.
이제부터는 분위기를 보며 가능한 어깨 위에 선까지 팔아넘겨 보기로 했다.
본 역사의 흐름대로 정점을 찍은 11월 말까지 기다려보기로 한 것이다
자칫 폭락을 마주할 위험이 있기는 하지만, 그 정도 위험은 감수할 수 있을 정도로 이미 엄청난 자금을 손에 넣은 상태였다.
손에 들어온 달러를 현 시세 원화로 바꾸면 3조는 가볍게 넘어갈 정도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렇게 들어온 달러 상당 부분은 미국 기업 주식으로 바꿀 생각이다.
지금도 대단하지만 앞으로는 더 대단해질 애플과 같은 초거대 공룡의 주식은 물론, 미국 진출의 근거지가 될 실속 있는 미국 엔터사를 주식을 통해 사들여 지부로 만들 예정이다.
미국도 생각보다 이쪽에 배타적인 면이 있어서 인프라를 다지기가 쉽지 않아서다.
그러니 바닥부터 다져 세우기보다는 이런 엔터사를 사들이는 게 오히려 싸게 쳤다.
물론 싸게 친다고 해도 최소 몇백억이 날아가겠지만, 이번 코인으로 벌어들인 돈을 생각하면 얼마든지 투자가 가능했다.
* * *
비트 코인 3차 정산이 어느 정도 마무리가 되었을 때쯤.
블랙 타이거의 활동이 이제 바로 코앞까지 다가왔다.
본격적인 활동에 앞서 짧은 휴식기를 마주하게 된 블랙 타이거는 어제 완성된 brilliant struggle 뮤비를 보고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홍의찬 감독 접근금지 가처분 해야 하는 거 아냐? 이런 시선으로 너를 본다는데 너는 무섭지 않아?”
“김도아 씨 보면 게이는 아닌 건 분명한데.”
“설마 바이(bi man 의지에 따라 남성과 여성 모두 성적으로 대하는 양성애자)는 아니겠지?”
“어휴~ 이 새끼들 여전히 무식한 거 봐라. 도무지 예술을 모르는구만.”
“미친놈아! 저런 걸 보고 예술 찾는 이가 더 이상한 거 아냐?”
이런 삼촌들의 말에 영찬은 괜히 턱을 긁적거리며 고개를 저었다.
김도아 씨에게 잡혀 살고 있어서 그렇지 바이라기에는 홍의찬 감독은 제법 염문설이 많은 만큼 여자를 좋아하는 감독이었다.
정확히는 성 자체를 즐기기보다는 특별한 심미안의 소유자답게 여성의 아름다움을 화면에 담는 걸 좋아했다.
아마도 본래도 그랬어야 했겠지만, 영찬이라는 말도 안 되는 변수가 그를 그처럼 바꾸어 놓고 말았다.
영찬도 그러한 사실관계를 알기에 삼촌들의 이상한 우려에 신경 쓰기보다는 벌써 10번을 넘게 본 뮤비를 즐겼다.
그만큼 자신이 이걸 어떻게 찍었지라고 생각이 들었던 촬영이었고, 결과물이라서다.
아낌없이 돈을 투자한 덕분인지 이번 brilliant struggle는 이 전 ‘노장은 죽지 않는다’보다 몇 배는 더 퀄리티가 높아져 있었다.
퀄리티만 높아진 게 아니었다.
마치 단편 영화를 보는 것처럼, 영상 시간도 무려 10분을 넘길 정도로 길어졌다.
너무 뮤비 영상 시간이 길어진 게 아니냐는 말이 있었지만, 한 번 뮤비를 본 이는 다시 그런 말을 하지 못했다.
오히려 10분이라는 시간이 짧다는 생각에 탄식을 흘릴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