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e a music monster overnight! RAW novel - Chapter 79
하루 아침에 음악괴수! 70화
24장. 챌린지
그러나 그와 별개로 영찬은 괜히 투덜거려댔다.
“……팩트가 아프긴 아프구나.”
생각해 보면 그는 문란하던 기억 속 또 다른 자신과는 달리 그 흔한 썸이라는 것도 해본 적이 없었다.
학창시절에는 그럴 여유가 없었고, 성인이 되어서는 빚 갚기 바빴다. 그가 겨우 한숨을 돌렸을 때에는 그런 쪽으로 시선을 돌릴 시간이 없었다.
이때쯤 그가 다니던 곳 사장이 딸에게 사장직을 물려주면서 정말 답도 없는 곳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이후 옮긴 곳에서는 친구라 생각하던 동료에게 사기도 당했고, 이래저래 자존감이 낮아지면서 여자에게 말 거는 것도 무서워졌다.
“그러고 보니 30살까지 동정이면 마법사가 될 수 있다는 말이 있었지…… 설마!”
밈 따위를 농담처럼 말하던 영찬은 순간 움찔할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게 실제로 그는 동정인 채 30살 생일을 맞이하던 날. 자신의 인생을 뒤바꿀 꿈을 꾸게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너무나 X신 같은 생각이었기에 영찬은 떠올리기 무섭게 고개를 저어댔다.
부끄러워서 말을 안 하는 거지 생각보다 자신 같은 이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에휴~”
그는 괜히 한숨을 길게 내쉬다 이내 리허설을 위해 준비 중인 무대 위를 향해 나아갔다.
블랙 타이거는 일본 활동을 재개했다.
현지 못지않게 뜨거운 지지를 보내는 일본 팬들을 위해 바쁜 시간을 쪼개어 활동을 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더불어 본격적으로 일본 지부의 영향력을 키우기 위함이기도 했다.
콘서트 준비로 인해 많은 스케줄을 소화할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콘서트 홍보와 더불어 블랙 타이거의 이름값을 재확인시켜 주기에는 충분했다.
덕분에 이치로 일본 지부장은 정말 하루 24시간이 모자랄 만큼 바쁜 스케줄을 소화해야 했다.
블랙 타이거 일본 콘서트 투어 준비에 도움을 줘야 하는 것도 그렇거니와 이외에도 여름 이전에 한일 아이돌 콘테스트를 준비에도 바빴기 때문이다.
“다행히 이번에도 NK와 함께하게 되었군요.”
“하하하. 네. 저희로서는 더할 수 없이 좋은 일이지요.”
한 주간의 스케줄 중 가장 중요할 수 있었던 아이돌 콘테스트 방송국 협약이 성공적으로 마무리가 되자 이치로 지부장은 이제야 살았다는 표정을 보였다.
이들이 NK를 선호하는 이유는 민영방송사들 중에서 가장 친한적인 방송사이기 때문이다.
그 말은 일본 특유의 말장난 같은 스케줄 바꾸기 등의 일들이 벌어질 위험이 적다는 말이기도 했다.
물론 이 조건으로 영찬은 최소 3회차 분량을 출연해야 했다.
첫 화, 본선 시작, 마지막 화 이렇게 3회에 출연하는 조건을 수락한 것이다.
영찬으로선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었다.
그때쯤이면 콘서트 투어도 끝이 날 때이기도 한 데다, 아이돌 프로젝트가 성공하기 위해서라면야 그보다 더한 조건도 사실 수락이 가능했다.
바쁜 열흘간의 스케줄을 소화한 끝에서야, 블랙 타이거는 드디어 일본 투어 콘서트를 시작하게 되었다.
첫 번째 장소는 그 유명한 도쿄 돔이었다.
55,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돔 중 최대 수용을 자랑하는 곳이기도 했다. 블랙 타이거는 이곳에서 3회차를 하기로 하면서 총 165,000 관객석을 확보했다.
엄청난 숫자의 관객석이었지만, 블랙 타이거의 멤버들도 YC 엔터의 관계자들도 그 누구 하나 우려를 보이는 이가 없었다.
이미 현지 내에 뜨겁게 달아오를 대로 오른 블랙 타이거의 인기를 생각하면, 오히려 확보한 관객석이 적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리고 이런 그들의 생각대로 도쿄 돔 티켓은 순식간에 매진이 되어 버렸다.
2분이 채 걸리지 않았을 정도였고, 이마저도 서버의 딜레이 때문에 벌어진 시간이다.
콘서트 첫날 30만이 넘는 인파가 도쿄 돔으로 몰려왔다.
비록 도쿄 돔 안에 들어가지 못하겠지만, 밖에서라도 즐기겠다는 뜻을 보이며 생긴 일이었다.
이런 일을 작년 사이타마 슈퍼아레나에서 겪어 보았던 YC 엔터에서는 이미 그들을 맞이할 준비를 마쳤다.
따로 빼놓은 스피커들은 물론, 간이식으로 준비한 굿즈 샵도 넉넉히 준비한 상태였다.
덕분에 미처 도쿄 돔에 들어가지 못한 팬들도 그 주변에서 뜨거운 환호를 보내며 그 열기를 함께 이어갈 수 있었다.
당연한 일이겠지만 첫 번째 일본 투어의 시작인 도쿄 돔 콘서트는 뜨거운 반응 속에서 마칠 수 있었다.
-도쿄 돔에 몰린 팬들만 100만 명이 넘어!-
-도쿄 돔 한국의 검은 호랑이에게 함락되다.-
-본국보다도 뜨거운 일본 현지의 인기!-
-일본 팬들이 얌전하다고? NO! 도쿄 돔에 몰려드는 인파로 일대가 마비 됨!-
-일본 피아니스트 거장 타쿠야! YC의 피아노에 감탄을 금치 못해.-
-블랙 타이거의 등장으로 국내뿐 아니라 일본 현지에서도 심상치 않은 락의 부활이 이야기되고 있어.-
일본 현지에서도 뜨거웠지만 국내에서도 그 반응이 심상치 않았다.
아무래도 일본 뉴스에서도 나왔을 정도로 도쿄 돔에 3일 동안 몰린 약 100만 명이 넘는 팬들 때문이다.
중복되는 팬들의 숫자도 있겠지만, 그 점을 고안한다고 해도 100만이라는 숫자는 쉽게 넘어갈 수 있는 숫자가 아니었다.
이 때문에 도쿄 시에서는 따로 경찰 인력들을 차출해야 했으며, 배차 시간도 늘리는 수고를 해야 했다.
이런 식으로 화제가 되다 보니 자연 블랙 타이거는 방송 활동을 했을 때보다 더 많은 관심을 받게 되었다.
가장 의외라고 한다면 클래식계 팬들이 반응을 한 점이다.
-뉴스에서 타쿠야 님이 나와서 극찬을 하시기에 궁금해서 찾아봤더니…… 순간 내가 잘못 찾은 건 줄 알았음.-
└하하하. 그거 뭔 줄 알음. 내가 그랬음.
└다들 비슷하구나. 나도 내가 알지 못한 엄청난 신성이 등장한 줄 알고 숨죽이며 들었다.
-아쉽게도 피아노 연주 영상은 2개밖에 없네.-
└찾아보니 콘서트에서는 4곡 정도를 친다고 함.
└아, 미치겠네. 이분 피아노 소리 완전 내 스타일인데. 그렇다고 콘서트에 가기는 힘들고.
-정말 무서운 건 이 사람이 다루는 악기가 피아노가 다가 아니라는 거. 기타도 피아노와는 스타일은 다르지만 엄청남.-
└ㅇㅇ 그 외에 다른 악기들도 다 잘 다룬다고 예능에서 말한 적 있음.
└실물 보니깐 분위기 미쳤던데. 막 잘생긴 건 아닌데, 혼자 화질이 다른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그것 때문에 10대에서도 인기가 엄청나다고 하더라.-
이러한 클래식계의 반응 때문인지, 일본의 어느 예능에서는 자국의 피아니스트들을 불러 YC의 피아노를 평론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 평론의 대부분은 찬사로 이어졌다.
YC의 엄청난 인기 때문에 이들이 몸을 사린 것도 있지만, 그들이 그나마 아쉽다고 생각하는 부분도 취향의 문제라 달리 거짓은 없었다.
이처럼 불타는 인기는 도쿄 돔에 이어 삿포로 돔에서도 뜨거운 반응을 불렀으며, 다시 오사카 쿄세라 돔, 후쿠오카 야후재팬 돔, 나고야 돔까지 일본의 5대 돔 콘서트를 성황리에 마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일본 투어까지 성공한 블랙 타이거는 수많은 팬들을 뒤로하며 중국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그렇게 블랙 타이거는 어마어마한 인구를 바탕으로 한 거대한 시장을 가진 중국을 만나게 되었다.
* * *
“사부! 사부!”
중국 현지에 도착한 우리들을 가장 먼저 반긴 건 G1 밴드였다.
그중에서도 박지원은 엉엉 울다시피 하며 앵겨 들었다.
“너무 보고 싶었어요.”
“……우리 지난주에 봤잖아?”
어디 봤을 뿐인가?
아예 일본의 마지막 콘서트였던 나고야 돔 무대 오프닝 무대를 이 녀석들이 채웠다. 이후 뒤풀이로 비싼 술을 먹으며 밤새 놀았건만, 나로서는 도대체 이 녀석이 왜 이러는지 이해가 안 되었다.
어이가 없어 G1 밴드의 다른 아이들에게 시선을 돌리니 녀석들도 나와 비슷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탁!-
“끄윽!”
그때 익숙한 손맛이 내 등을 작렬했다. 놀라 고개를 돌리니 박시영 삼촌이 혀를 차며 고개를 저어대고 있었다.
“쯧쯧. 하여간 멋대가리가 없는 건지 눈치가 없는 건지?”
삼촌은 그리 말하며 여전히 앵기고 있는 지원을 보며 말했다.
“너도 참 사서 고생이다.”
“헤헤헤.”
“???”
도무지 이해 안 되는 전개에 나는 당황하다 이내 앵겨 있던 녀석을 떼어냈다. 이에 너무하다는 듯 물기 젖은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는 지원에 나는 잠시 빤히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제법 연예인 티가 나네.”
‘Legends of Rock’을 준비하면서 살이 빠지며 리즈를 맞이하는가? 싶더니 아니었던 모양이다.
웬만한 걸그룹 사이에서도 센터 자리는 꿰찰 정도로 예뻐진 걸 보면 말이다.
중국 현지에서까지 먹히는 데에는 이유가 있구나. 라고 생각하던 나에게 지원은 손바닥을 치며 헤실거렸다.
“에헤헤. 저 이뻐졌다고 말하는 거죠.”
“…….”
왜 갑자기 그렇다고 말하기가 싫어지는지는 모르겠다.
나는 애써 고개를 저어대며, 중국 활동을 위해 협력을 구했던 구룡이라는 엔터와 만나기 위해 움직였다.
손을 잡은 구룡 엔터는 유명한 곳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마냥 중소 엔터 수준의 작은 곳도 아니었다.
국내로 보면 단순히 규모만 따졌을 때 중견 엔터는 넘는 수준이다.
그러나 그 규모와 달리 소속된 연예인 중에 흔히 말하는 A급은 없었다. 그나마 유명한 이라면 조연으로 유명한 배우다.
유명하다고 해보았자 조연의 한계로 B급을 턱걸이 하는 수준이었다.
그 외에 소속된 연예인들은 대부분 C~D급이다. 대신 엔터 규모에 맞게 숫자가 많았고 그 분야도 가리지 않았다.
그야말로 적자 구조를 겨우 면하는 정도의 엔터라고 할까?
그러나 의외로 중국에서는 이런 형태의 엔터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아무리 중국이 땅덩어리도 크고 지방 방송들도 많다고 하지만, 이해하기 힘든 일이기는 했다.
그럼에도 이런 엔터들이 있는 것은 다름 아닌 바로 중국 거부들의 후계자 실습을 위해서다.
중국에서 거부가 되기 위해서는 시(?系)가 가장 중요하겠지만, 그만한 역량이 필요했다.
문제는 재벌 1, 2세대와 달리 지금 많은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3세대들은 그 역량을 만들어낼 의욕이 없다는 점이다.
그저 놀고먹는 것에만 관심이 있을 뿐인 것이다.
이러니 고민 끝에 이들에게 엔터를 차려 맡기는 것이다.
나름 겉으로 보기에 괜찮은 사업인 데다, 한류로 인해 3세대들도 관심을 가지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실적을 부풀리기에도 좋았다.
일단 매체에 많이 나오다 보니 이름값을 올리기에 좋은 것이다.
구룡 엔터 또한 그런 엔터 중 하나였다.
다른 점이라면 중국의 20대 그룹 중 장진 기업과 끈이 이어진 점이다. 구룡 엔터의 사장이 바로 이 장진 기업 회장의 손자로 그는 생각보다 한류에 대단한 관심을 보이는 이었다.
내가 그를 아는 이유는 기억 속 녀석이 중국에 진출했을 때 제법 신세를 진 이었기 때문이다.
녀석은 한한령으로 물러나야 했을 때, 이 사람에게 자신이 닦은 중국 지부를 넘겼고 이후 구룡 엔터는 중국 내에서 손꼽히는 엔터로 성장하게 되었다.
그러나 망하다시피 한 중국 지부를 그가 사주었다는 점에서부터 그가 호인인 건 분명했다.
중국에서 몇 안 되는 함께할 만한 사업가인 것이다.
“장웅입니다. 이제야 뵙는군요.”
“죄송합니다. 박영찬이라고 합니다.”
“하하하. 죄송할 게 무엇이 있겠습니까? 덕분에 우리도 제법 재미를 보고 있었습니다.”
G1 밴드를 말하는 것일 터였다. 현재 G1 밴드는 지방 방송국을 넘어 대륙 전체로 활동을 넓혀 나가는 중이었다.
물론 올해부터는 어느 정도 중국에서 성과가 있게 되면 다시 일본으로 보낼 생각이다.
앞으로 2년 뒤에 한한령이 벌어질 걸 뻔히 아는데 가장 앞에서 맞는 꼴을 보일 수 없었다.
그래서일까?
장웅은 블랙 타이거 콘서트 투어에 대해 대단히 긍정적인 관심을 보이고 있는 중이었다.
몫을 박하게 나눠 먹다 보니 그리 큰돈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블랙 타이거가 중국에서 그 유명세가 남다르게 상승하고 있다 보니 이에 탑승하기에는 좋았다.
나로서도 우호적인 엔터가 커지면 좋은 일이었기에, 그가 내미는 조건들의 웬만한 것들은 받아주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