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e a music monster overnight! RAW novel - Chapter 80
하루 아침에 음악괴수! 71화
장웅이 내민 조건 중에는 프로듀싱에 대한 것도 있었다.
중국인들로 K팝 아이돌 느낌이 나는 아이돌을 만들고자 한 것이다.
그 요청을 들었을 때 나는 내심 반겼다.
의외로 이 요청이 YC 엔터에 도움이 되는 길이기 때문이다.
블랙 타이거의 컴백이 엄청난 성공을 거두면서, YC 엔터는 4대 엔터 중 하나라는 말이 나오는 중이었다.
아마 기업공개를 했다면 단순히 말이 나오는 수준에서 그치지 않았을 것이다.
콘서트 투어에서도 엄청난 흥행을 보이며 매진시켜 이름값을 제대로 각인시키고 있어서다.
여기에 다음 달이면 Blue Rose의 미니 2집이 나온다.
본래라면 이번 달에 나왔어야 했지만, 블랙 타이거의 흥행 여파가 아직도 쉬이 가라앉지 않고 있어 생긴 일이었다.
이번 컨셉 또한 핑크 다이어리였지만 색깔은 달랐다.
미니 1집이 비비드 핑크였다면, 미니 2집에서 사용할 색깔은 인디 핑크로 그 복고 느낌을 더 부각시킬 생각이었다.
여담이지만, Blue Rose 미니 1집 이후 학생들 사이에서 다시 다이어리 꾸미기가 재유행이 되고 있었다.
그리고 이 유행은 자연스럽게 Blue Rose 미니 1집을 증쇄하는 선순환을 불러들였다.
비싸기는 하지만 그만한 값을 하는 고급스러운 Blue Rose 다이어리는 00벅스의 단골 손님이 되고 있는 중이다.
더불어 자연스럽게 Blue Rose 다이어리 꾸미기 굿즈의 판매량은 기록을 갱신하고 있는 중이었다.
이 외에도 이나은 정규 1집 준비가 순조로웠으며, G1 밴드 또한 정규 1집을 올해 안에 낼 준비 중이다.
4대 엔터 중 하나로 불리지 못하는 게 더 이상할 일이다.
문제는 국내 시장이 한정적이라는 점이었고, 결국 전쟁이 벌어진다는 점이다.
“자신이 없는 건 아니지만…….”
문제는 그 피해를 고스란히 내 가수들이 본다는 점에 있다.
그러니 나로서는 다른 4대 엔터들의 힘을 빼는 게 중요했고, 그것이 바로 이들의 중국 진출을 방해하는 일이다.
“자국의 아이돌로 그 못지않은 성과를 볼 수 있다면 굳이 K팝에 매달릴 필요가 없지.”
나는 훗날 C팝이라고 불리는 독을 미리 풀어낼 생각이다.
하여 오히려 역으로 제안했다.
“판을 키우죠. 중국 국적을 가진 아이돌 지망생들을 모아 경쟁을 시키는 거죠. 말하자면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만드는 겁니다.”
“서바이벌?”
의아해하는 그에게 나는 앞으로 2년 뒤 크게 흥행하는 아이돌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대해 간략히 설명해 주었다.
“!!!”
확실히 중국에서 한 손에 꼽히는 거대한 엔터를 만들어낸 이답게 장웅은 대번에 이 프로그램의 진가를 알아보았다.
그러나 그만큼 문제점 또한 알아보았다.
“인재가 문제겠군.”
어디 인재만 문제일까?
곡도 문제고 이 프로그램을 진행할 수 있는 프로듀서도 문제며, 그들을 가르치고 이끌 선생들도 문제였다.
하지만 돈만 있다면 이건 얼마든지 채울 수 있는 부분이다.
그리고 중국 20대 기업 중 하나인 장진 기업의 손자 장웅은 돈은 물론 인맥 또한 모자란 게 없었다.
적어도 그가 중국 내에서 할 수 없는 일은 거진 없는 것이다.
“인재는 어려울 것 없습니다. 한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아이돌이나 혹은 연습생으로 있는 이들을 데려오면 됩니다. 중국 시장을 생각하면 오히려 그쪽 기획사에서 반기겠죠.”
갈수록 대형 엔터의 등쌀에 정신을 차리기 힘든 지금 중소 엔터가 살길은 해외 진출뿐이었다.
이 중에서 중국은 블루 오션이라 할 정도로 미개척된 곳이다.
그저 한류를 잘 타기만 해도 큰돈을 벌 수 있는 것이다.
“프로그램을 진행할 프로듀서는 제가 추천해 드리겠습니다. 선생들도 추천해 드리죠. 어디 그뿐이겠습니까? 곡도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일단 이번 1기만 성공시키면, 그 뒤에는 중국의 아이돌 시장은 구룡 엔터가 먹는다고 보아도 무방했다.
이 아이돌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조금씩 변화를 주는 것만으로도 지방 아이돌까지 잡아먹는 건 금방일 테니.
물론 그 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어마어마한 인맥이 필요하겠지만, 장진 기업이 움직인다면 어려울 것도 없었다.
“……이렇게까지 해주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단순히 협력 관계를 구축했다는 것만으로는 확실히 과한 면이 있기는 했다.
그렇기에 나는 솔직히 대답했다.
현재 경쟁 상대가 될 다른 국내 대형 엔터들의 중국 진출에 타격을 주기 위함이라고 말이다.
그런 나의 대답에 장웅은 의외라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거짓말을 하여 자신에게 크게 이득을 얻을 수 있는 일이건만, 솔직히 대답을 한 내 모습에 제법 감명을 받은 모양이다.
“괜찮다면 박 대표님을 형으로 모시고 싶습니다.”
아직 20대인 장웅이 형제를 논하자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 모습에 장웅이 실망을 금치 못하는 걸 보던 나는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저는 하오펑요우(好朋友:좋은 친구)를 원합니다.”
“!!”
놀라는 장웅을 보며 나는 미소를 머금었다.
중국 사람들만큼 펑요우(朋友:친구)를 입에 달고 다니는 이들이 없을 것이다.
실제로 한국 사람이 중국 사람과 미팅을 가지면서 이 펑요우에 많이들 속곤 한다. 중국 사람들은 하오화(好話:상대방을 기쁘게 하는 화법)에 익숙해, 이런 하오화와 펑요우를 마주하며 미팅을 하게 되면 별다른 성과가 없음에도 큰 성과를 얻은 것 같은 착각을 하기 때문이다.
중국인들과의 관계에서 가시적인 성과를 얻기까지는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무조건 필요하다.
중국 말에는 ‘처음 만나면 낯설고(一回生) 두 번 만나면 낯익고(二回熟) 세 번 만나면 친구가 되고(三回朋) 네 번 만나면 오랜(언제나) 친구가 된다(四回老朋).’는 말이 있다.
여기서 ‘라오(老)’는 ‘오래되다’는 뜻과 함께 ‘언제나, 항상’이라는 의미도 함께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우리가 아는 절친의 관계 즉 제대로 시를 맺은 관계는 ‘라오펑요우(老朋友)’이며 이는 곧 하오펑요우를 말했다.
보통 외국인들은 이러한 중국의 문화에 대해 대부분 이해하지 못한다.
그건 같은 유교권인 한국이나 일본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렇기에 장웅이 그처럼 놀라는 것이다.
“……일단 라오펑요우로서 자리를 가지는 게 어떻겠습니까?”
“알겠습니다.”
나는 장웅의 말에 미소를 감출 수 없었다.
자칫 거절의 의미로 들릴지 모르지만, 사실 이 말은 하오펑요우에 대한 제의를 받아들인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아마 이번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잘 성공만 시켰을 쯤에는 장웅과 하오펑요우의 관계를 공식적으로 맺게 될지도 모르겠다.
‘한국 엔터계 입장에서 볼 때, 단기적으로는 손해인 것처럼 보여도 장기적으로는 중국과는 거리를 두는 게 맞지.’
한한령을 시작으로 중국 내 언론은 점차 한국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키우기 위해 노력한다.
언론이라고 하지만 사실상 중국 공산당의 의지라, 이건 어떻게 거스를 수가 없는 흐름이었다.
그러니 지금처럼 적당히 먹고 빠질 수 있는 현지의 든든한 협력자를 만드는 게 가장 베스트였다.
‘무엇보다 중국 시장만으로도 이들은 배 터져 죽으려고 할 테니깐.’
역량 때문도 있지만 이것이 주 이유가 되어 중국의 엔터 사업은 해외 시장을 넘보지 않는다.
이게 아니었다면 아예 도움을 줄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어찌 되었든 YC 엔터, 아니, 국내 엔터들이 살길은 해외로 나가는 길밖에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거대한 시장을 끼고 있는 중국 엔터와 붙는다는 건 맨몸으로 무장을 마친 상대와 싸우라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아니, 그 정도는 아닌가?’
힘들기는 하지만 싸울 정도는 될지는 모른다.
중국은 한때 아시아를 넘어 전 세계에 영향을 주었던 홍콩과는 아예 결이 다르기 때문이다.
문화가 꽃피우려면 자유주의 사상이 반드시 함께해야 하는데, 중국은 근본적으로 공산주의라 국가라 이게 가능할 리가 없었다.
아이돌 서바이벌 프로젝트.
영찬은 생각난 김에 기억을 더듬어 이와 관련된 내용들을 모두 담아 좀 더 체계화시킨 프로그램을 특허로 내었다.
의외로 이런 것도 특허가 가능했는데, 영찬이 굳이 이를 특허화시킨 건 중국에서 시작한 이 프로젝트가 국내에서 무분별하게 발생할 것이라 보아서다.
1년 내내 같은 플랫폼으로 지방만 돌아도 되는 중국과는 달리 너무도 작은 시장을 가진 한국에서는, 뭐든 지나치면 망하는 법이었다.
전 국민을 상대로 오디션을 벌이며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프로그램도 결국 회차를 거듭하다 끝내 소리 소문 없이 사라져 버리지 않았던가?
모든 게 피로도를 생각하지 못해 벌어진 일이었다.
그러니 장기로 갈려면 이런 프로그램은 2년이나 3년을 주기로 가는 게 가장 베스트였다.
그게 아니라면 성별을 바꾸어 팬층을 달리하는 것도 방법일 것이다.
‘역시나 이건 지상파에서 하기는 어렵겠지.’
프로그램의 성격상 지상파가 하기에는 특유의 독한 맛을 내기 어려웠다.
자연 영찬은 케이블 중 YC 엔터와 관계가 깊은 A 방송국을 생각했다.
“마침 이기찬 PD님도 ‘Legends of Rock’ 시즌 2를 끝내서 쉬는 중이기도 하니.”
종류가 다르기는 하지만 서바이벌 오디션을 다루었던 만큼 이 플랫폼을 내주는 것만 해도 알아서 잘할 것이다.
‘여기서 경험을 쌓고 국내로 돌아와 아이돌 서바이벌 프로젝트를 열면 화젯거리도 잘 잡을 수 있겠지.’
겸사겸사 이런 프로그램의 활성화는 YC 엔터 입장에서도 좋았다.
일단 플랫폼 특허를 영찬이 가지고 있는 만큼, 이쪽 시장에 목소리를 높일 수 있는 데다 무엇보다 인재들을 발굴하는 데에도 우선권을 가질 수 있었다.
소속이 있다고 해도 YC 엔터 이름값이면 데려오는 것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게 중국에서부터 새로운 프로젝트를 크게 벌리기로 한 것과는 별개로 중국 콘서트 투어는 착실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장웅이 힘을 써준 덕분에 제법 큰 프로그램에도 나가면서 홍보가 제대로 된 것이다.
덕분에 나름 불안 요소가 있었던 중국 콘서트는 다행히 모든 표를 빠르게 매진시키며 흥행을 이어 나갔다.
워낙 중국이 큰 나라다 보니 홍콩 등을 합해 11곳에서 콘서트가 이어졌지만,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흥행은 더욱 뜨거워지고 있었다.
-대륙을 들썩이게 한 한국산 검은 호랑이!-
-블랙 타이거의 신드롬이 중국에서도?-
-홍콩의 길거리는 지금 블랙 타이거의 음악으로 도배되어…….-
-중국 현지에서도 불어대는 락의 부활!-
민망케 하는 기삿거리들이었지만, 사실과 비교하면 마냥 틀리지도 않았다.
이미 알 사람은 다 알던 블랙 타이거의 매력이 이번 콘서트 투어를 통해서 본격적으로 대중들에게 알려지자 그 열기는 상상을 뛰어넘는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특히나 brilliant struggle에 대한 이야기가 뒤늦게 알려지면서 중국 음악 프로그램에서는 출연도 안 한 블랙 타이거가 1위를 차지하는 일들이 빈번해졌다.
그 인기에 얼마나 놀랐던지 구룡 엔터에서 파견된 직원들의 태도가 어느 순간부터 달라져 있었다.
그전에는 그래도 대등하다 못해 약간 고압적인 자세를 취하기도 했던 이들이 이제는 아예 저자세를 보이는 것이다.
“크크크. 이런 거 보면 중국도 마냥 다르지는 않은 것 같네.”
“하기야 이러니저러니 해도 이 바닥은 인기 많은 놈이 장땡이기는 하지.”
“무엇보다 영찬이 구룡 엔터 사장하고 저렇게 친분을 보이니 직원 입장에서는 내리깔아야지.”
“사장 이름이 장웅이라고 했던가? 그 사람도 여간내기가 아니더라. 뭐 어떻게 했기에 그 귀찮게 굴던 공안 애들을 그렇게 조용히 만들어버리지?”
“젊은 사람이 수완이 참 좋아. 안 그래 영찬아?”
“……아하하.”
삼촌들의 말에 영찬은 어색한 웃음을 흘릴 뿐이다.
구룡 엔터의 장웅이 장진 기업의 후계자 후보라는 걸 말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딱히 비밀로 해야 할 이유가 없음에도 이러는 데에는 이유가 있는데, 바로 아직 장웅이 영찬에게 자신의 신분을 말해주지 않아서다.
영찬도 한한령 이후에나 알게 된 사실이었으니, 장웅이 말해주기 전까지는 영찬은 이를 비밀로 해야 했다.
그렇게 일본에 이어 중국마저도 끝내 함락시켰을 때쯤.
미국으로 돌아갔던 테일러에게서 소식이 왔다.
“그때 말씀하신 챌린지 이제 슬슬 수면 위로 올라오고 있는 것 같습니다.”
“???”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되었던 영찬이었지만, 얼마 안 가 그게 무엇을 말하는지 알게 되었다.
블랙 타이거 공식 SNS에 팔로워 숫자가 엄청난 속도로 올라가기 시작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