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 doctor since age 1 RAW - chapter (141)
141화 제4장 격돌(1)
관상동맥 우회술(CABG, Coronary Artery Bypass Grafting)의 첫 시작은 서인석의 손에서 이루어졌다.
“10번 블레이드.”
간호사에게 건네받은 메스로 서인석은 환자의 명치부터 5번 늑골까지 세로로 그었다.
스으으윽.
환자의 피부가 종잇장처럼 매끈하게 베어졌다.
벌어진 절개창 사이로 진득한 핏물이 새어 나왔다.
나는 기다렸다는 듯 거즈를 이용해 피를 닦아 냈다.
이번 수술에 임하는 내 각오는 예전과는 180도 달랐다.
지금까지는 솔직히 실력을 꽁꽁 숨겨 왔다.
직급은 아직 인턴이었고, 소화했던 수술은 대부분 응급이 아니었다.
설령 양순재 교수가 내 뒤를 봐주고 있다고 한들 인턴인 내가 레지던트를 제치고 수술에 나설 수 있는 환경도 아니었다.
하지만 오늘은 나를 위한 판이 깔렸다.
나는 집도의를 가장 측근에서 돕는 제1 보조가 되었다.
집도의는 서인석이었으며 양 교수에게 내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
내가 보통이 아닌 수재라는 것을.
그렇다면 가진 것을 남김없이 보여 준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었다.
서인석을 전력으로 도와 수술의 속도와 정확도를 올린다.
이것이 제1 보조에 임하는 내 마음가짐이었다.
“두 분이서 절개창 견인 좀 해 주시겠어요?”
서인석의 1차 절개가 끝난 뒤 내 차례가 시작되었다.
스크럽 간호사와 인턴이 리트렉터(견인기)를 사용해 절개창을 좌우로 벌렸다.
위이이잉.
위이이잉.
그사이 나는 준비되어 있던 의료용 절개톱을 손에 쥐고 작동시켰다.
톱이 난폭하게 움직이면서 진동이 손에 고스란히 전해졌다.
“정말 할 수 있겠니?”
맞은편에 있던 서인석이 나를 걱정스런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레지던트 2년 차부터 배우는 흉골절개술을 내게 맡기려니 불안한 모양이었다.
톱날이 흉골이 아닌 혈관이나 갈비뼈를 건드리면 대형 참사가 벌어질 테니까.
떨리는 그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했지만 그와 별개로 나는 자신이 넘쳤다.
내가 전생에서 절개한 흉골만 해도 한 트럭은 될 테니까.
“충분히 할 수 있습니다.”
야무지게 대답하며 나는 양손으로 절개 톱을 단단히 손에 쥐었다.
복숭아뼈처럼 생긴 환자의 흉골을 세로로 갈랐다.
톱이 흉골에 닿으면서 하얀 뼛가루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절개톱의 소음도 한층 거칠어졌다.
하지만 흉골을 바라보고 있는 내 눈빛.
톱을 손에 쥐고 움직이는 내 손짓은 흔들림 없이 날카롭기만 했다.
빠각.
톱으로 인해 손이 진동하는 와중에도 미묘한 감촉이 느껴졌다.
흉골이 반쪽으로 갈라졌을 때 느껴지는 감촉이었다.
나는 곧바로 톱 사용을 멈추고 톱을 내려놓았다. 때마침 흉골이 좌우로 가지런히 갈라졌다.
갈라진 흉골을 보는 내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떠올랐다.
단순히 미관성의 문제는 아니었다.
이렇게 흉골 절개를 잘해 놓으면 나중에 접합할 때 뼈가 잘 붙으니까.
사소하지만 환자의 경과까지 챙길 수 있어서 기뻤다.
“허…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겠네.”
흉골을 한 번 쳐다보고 다시 나를 쳐다보는 서인석.
고작 인턴이 이렇게 흉골절개를 깔끔하게 할 줄은 몰랐을 것이다.
“고정기 사용하겠습니다.”
나는 사각 고정기를 능숙하게 절개창에 결합시켰다.
고정기란 스태프들이 견인기로 절개창을 끌어당기면서 확보한 시야를 고정시켜 주는 물건이었다.
고정기가 없었던 예전에는 인턴들이 수술 시작할 때부터 끝날 때까지 절개창을 잡아당겼다.
그래서 수술이 끝나면 항상 팔에 쥐가 났다고…….
끼리리릭.
끼리리릭.
흉골을 절개하고 고정기까지 설치하자 완벽한 수술 시야가 잡혔다.
쿵쿵쿵 요동치는 환자의 심장이 똑똑히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과정조차 본 게임에 들어가기 위한 준비에 불과했다.
“선생님, 심정지액 투입하겠습니다.”
내 말에 서인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대동맥 근육을 통해 심정지액이 주입되었고, 격렬하게 박동하던 심장의 움직임이 서서히 잦아들었다.
마치 심장이 졸려서 잠드는 것처럼.
그 과정을 지켜보며 나는 앞으로 해야 할 처치들을 떠올렸다.
서인석의 집도를 부스트할 처치들을.
남편은 아내 하기 나름이고.
아내는 남편 하기 나름인 것처럼 집도의는 제1 보조가 하기 나름이었다.
집도의의 실력을 온전히 끌어내는 것 또한 어시스트의 크나큰 자질 중 하나였으니까.
‘딱히 어려운 건 없겠어.’
나는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을 순식간에 정리했다.
전생에서 부교수까지 오르고 수도 없이 집도를 해 봤던 나였다.
집도의였던 과거의 내가 받고 싶었던 어시스트를 서인석에게 해 주면 되지 않을까.
“심정지 확인. 심폐기 작동합니다.”
상념에 잠겼던 사이 대기하고 있던 인공심폐기 기사가 환자의 심장과 인공심폐기를 연결했다.
드르르르륵.
컨베이어 벨트 돌아가는 소리와 함께 환자의 혈액이 인공심폐기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환자의 심장이 뛰지 않는 동안 체내의 혈액은 인공심폐기를 통해 환자의 몸을 이동할 것이다.
즉, 인공심폐기가 심장의 역할을 잠시 대신해 주는 것이다.
인공심폐기가 연결되면서 관상동맥 우회술의 본격적인 막이 올랐다.
나는 가볍게 목을 좌우로 꺾었다.
진짜 실력 발휘는 지금부터였다.
* * *
인생은 진짜 오래 살고 볼 일이란 말이지.
서인석은 맞은편에 선 이믿음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양순재가 이믿음을 추켜세울 때만 해도 솔직히 반신반의했다.
듣던 대로 이믿음이 천재라면 영특하고 똑똑하겠지만 그 예리함이 수술실에서 이어진다는 보장은 없었다.
왜냐고?
수술은 잘난 머리만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머리의 스펙을 두 손이 받쳐 주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타고난 강심장.
시원시원한 판단력.
두 가지를 모두 갖췄지만 손놀림이 정교하지 못해 외과를 떠난 동기를 서인석은 숱하게 봐 왔다.
그래서 이믿음도 같은 부류가 아닐까 의심했다.
그런데 웬걸?
뚜껑을 열어 보니 이믿음은 진국이었다.
수술 과정을 꿰뚫어 보면서 스스로 해야 할 처치를 완벽하게 소화해 냈다.
그중 백미는 누가 뭐래도 흉골절개술이었다.
자로 잰 듯한 이믿음의 절개 솜씨에 서인석은 혀를 내둘렀다.
솔직히 자신도 저렇게 하라면 못할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믿음이를 경험해 보면 알겠지. 믿음이의 이름처럼 믿음이를 믿어 보게. 그럼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게 될 테니.
문득 떠오르는 양순재의 조언.
서인석은 퍼뜩 정신을 차리고 수술실에 걸린 벽시계를 바라보았다.
현재 시간: 오후 07:30분.
수술 시간: 2시간 10분.
마취 시간: 1시간 30분.
이믿음의 활약으로 수술 시간을 대폭 단축했으나 결코 마음을 놓을 순 없었다.
검사가 지연되면서 환자의 병세는 더욱 악화되었다.
뿐만 아니라 현 수술은 OPCAB(인공심폐기를 사용하지 않은 관상동맥 우회술)이 아니었다.
심장이 멈춘 시간 동안 심장은 고스란히 대미지를 받아야 했다.
환자의 회복력과 경과를 고려했을 때 수술은 최대한 빨리 끝내면 끝낼수록 좋았다.
‘미친 짓인 것 같지만 어쩔 수 없지.’
마스크 안에서 서인석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이믿음.”
“네, 선생님.”
“너 혹시 그래프트(혈관 채취) 할 줄 아니?”
“네, 할 줄 압니다. 비록 카데바지만 실습도 해 봤습니다.”
이믿음이 기다렸다는 듯 당차게 대답했다.
양순재 교수님은 이믿음을 대체 얼마만큼의 괴물로 만들고 싶었을까.
카데바로 그래프트까지 수련까지 시킬 정도면.
하지만 이믿음이 지금까지 본인의 능력을 증명해 왔기에 서인석은 이믿음을 완전히 믿기로 결심했다.
이믿음을 믿어야만 이번 수술을 완벽하게 끝낼 수 있었다.
“지금부터 내흉동맥 두 개 분지를 채취할 거다. 이쪽하고 이쪽.”
서인석은 검지로 채취할 혈관을 직접 가리켰다.
“왼쪽에 있는 혈관은 내가 채취할 테니까 너는 오른쪽에 있는 혈관을 채취해.”
“…….”
“채취한 내흉동맥을 이용해서 협착된 관상동맥을 우회하는 길을 만들어 줄 거니까.”
“네, 선생님.”
“제발 이번에도 이름값 해야 한다? 클램프(혈관 겸자).”
딸칵!
서인석은 간호사에게 건네받은 혈관 겸자로 내흉 동맥의 상단부를 잠갔다.
13번의 날카로운 칼날로 내흉 동맥의 분지(내흉동맥에서 뻗어 나가는 작은 혈관)를 툭, 하고 끊어 냈다.
광학 안경으로 살펴보니 절단면이 매끈했다.
혈관 채취의 출발은 좋았지만 서인석의 마음 한구석은 여전히 불안하고 초조했다.
이믿음이 그래프트를 잘할 수 있을지 걱정된 것이다.
‘멍청하긴. 믿기로 했으면 믿어야지.’
그는 스스로를 꾸짖으며 자신의 혈관 채취에 집중하기로 했다.
이믿음은 쪽은 일부러 쳐다보지도 않았다.
치이이익.
보비(전기소작기)로 절단면의 끝을 지지자 분지의 출혈이 뚝 그쳤다.
서인석은 반대편에도 같은 방식을 적용했다.
메스로 혈관을 절단하고 출혈이 발생한 부분은 소작기로 태워서 출혈을 막는 방식 말이다.
‘됐다!’
서인석은 내흉동맥 분지에서 채취한 혈관을 포셉으로 쥐고 이모저모 살폈다.
혈관 양 끝의 절단면은 깔끔했다.
혈관의 길이는 처음 목표로 했던 5센티 정도였고, 혈관의 탄력성 또한 좋아 보였다.
처치 중 훼손된 부위 또한 없었고.
그렇다면 이제 남은 골칫거리는 이믿음의 그래프트인데…….
“선생님, 저도 막 끝냈습니다.”
“벌써?”
이믿음의 말에 서인석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이믿음에게 채취하기 쉬운 혈관을 골라 주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도 자신과 채취 속도가 비슷할 거라곤 꿈도 꾸지 못했다.
“어디 확인이나 보자.”
서인석은 불안한 마음을 몰아내며 이믿음이 채취한 혈관을 관찰했다.
어떻게 해서든 꼬투리를 잡아낼 심정으로 살폈지만 놀랍게도 지적할 거리는 전혀 없었다.
서인석이 직접 채취한 혈관.
이믿음이 채취한 혈관.
두 혈관을 나란히 놓아도 전혀 위화감이 없을 정도였다.
더 황당한 것은 혈관 채취 후 내흉동맥 주변을 마무리한 솜씨마저 일품이라는 점이었다.
이쯤 되면 레지던트도 아니고 거의 나랑 맞먹는 수준 아닌가.
“믿음아, 너 앞으로 이름 바꿔야겠다.”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이믿음 말고 이놀람으로 해. 너랑 수술실 들어오고 나서 계속 놀랄 일만 있으니까.”
서인석은 현재 자신의 심정을 농담으로 표현했다.
하고 싶은 말도, 물어보고 싶은 말도 많았지만 일단 가슴속에 묻어 두기로 했다.
환자를 살리는 것.
수술을 최대한 빠르고 꼼꼼하게 끝내는 것이 가장 중요했으니까.
“칭찬 감사합니다, 선생님.”
“대신 우쭐하지 말고 끝까지 집중력을 유지해. 10번 잘해도 1번 실수하면 환자가 죽는 게 수술실이니까.”
느슨했던 수술실 분위기를 다잡고 서인석은 본격적인 혈관 문합에 나섰다.
혈관이 막혀 있는 좌전하행 관상동맥의 위아래를 채취한 혈관으로 문합(혈관의 끝과 끝을 봉합하는 것)했다.
막힌 혈관에 우회로를 연결한 것이다.
5mm 크기의 혈관을 문합하는 일은 서인석의 예상보다 훨씬 빨랐다.
이믿음이 손을 떨지 않고 마치 기계처럼 혈관을 잡아 주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경험한 게 있었던지라 서인석은 이믿음의 활약이 그리 놀랍지도 않았다.
당연한 것처럼 여기며 편하게 수술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로 인해 수술 속도와 정확도가 비약적으로 상승한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었다.
이번 수술은 별 탈 없이 끝난다.
환자는 반드시 살 수 있다.
문합술을 하면서 서인석은 그런 확신을 갖게 되었다.
이믿음의 도움으로 그가 머릿속으로 그린 수술 설계를 훌륭하게 재현할 수 있었으니까.
실제로 그의 확신은 곧 현실이 되었다.
수술 시간 4시간 20분.
흉부외과 펠로우 한 명.
제1 보조와 제2 보조에 각각 인턴 한 명씩.
마지막으로 스크럽 간호사.
관상동맥 우회술을 성공시키기엔 택도 없을 만큼 열약한 의료진.
그들은 기어이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치는 데 성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