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 doctor since age 1 RAW - chapter (211)
211화 제3장 전생과의 차이점(1)
-준비 끝났다. 조만간 참관 스케줄 잡으려고.
안부 인사를 주고받은 후 백경민이 처음 한 말이었다.
중요한 단어들이 몇 개 빠져 있었지만 이해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다.
3D 프린터를 활용한 인공심장판막 수술.
백경민이 심혈을 기울여, 또 야심 차게 기획한 신수술이 세상에 드러나려는 참인 것이다.
하지만 수술이 대실패로 끝난다는 것을 알았기에 내 마음은 편치 않았다.
-뭐야? 왜 말이 없어? 축하라도 해 줘야 하는 거 아니야?
“너무 감격해서 잠깐 할 말 잃었어. 축하해, 형.”
-이거 원, 엎드려 절 받기네. 전화도 네가 먼저 해 달라고 했잖아. 이러기 있기? 없기?
백경민은 그 후로도 재잘재잘 떠들었다.
대충 그동안 몸 고생, 마음고생이 심했다는 이야기였다.
나는 백경민의 이야기에 공감해 주고 내일 있을 외진 때 더 자세한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다.
통화를 마친 후 나는 깊은 생각에 빠졌다.
백경민의 신수술이 실패한다는 사실은 알았지만 실패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
내가 알아야 할 것은 그 이유였다.
이유를 알아야 비극을 막을 수 있었다.
쓸 만한 신수술이 학계의 무관심 속에 사라지는 것도.
백경민이라는 유능한 흉부외과의가 수술 실패의 후유증으로 메스를 놓는 것도 나는 바라지 않았다.
그리고 그 모든 불행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백경민의 신수술은 대체 왜 실패했을까.
환자의 문제일까, 판막의 문제일까.
그것도 아니면 돌발 사고가 터지는 걸까.
나는 혼자서 질문을 던지고 혼자서 답변을 해 보았다.
자세한 건 내일이면 알 수 있으리라.
* * *
사단 의무대를 거쳐 도착한 국군 태극 병원.
외진 담당인 강진수는 여느 때와 바를 바가 없었다. 환자들에게 주의 사항을 알려 주고 운전병과 PC방으로 떠났다.
혼자 남은 나는 5층에 흉부외과 병동을 찾았다.
태극 병원 흉부외과 병동은 일반 병원 흉부외과 병동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른 점이라 있다면 환자의 성비였다.
아무래도 환자들이 군인이다 보니 중년 이상의 남자들이 대다수였다.
똑. 똑. 똑.
노크를 하고 회의실로 들어가자 백경민은 나를 향해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그는 책상에 앉아 노트북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어때? 참관 준비는 잘하고 있어?”
“잘하고 못할 게 있나. 솔직히 인공 판막을 3D 프린터로 만든다는 게 핵심이잖아. 수술 과정은 일반 판막 수술하고 똑같고.”
“하긴, 그것도 그렇지.”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백경민의 말을 인정했다.
노트북 모니터를 쳐다보니 백경민은 이번 수술의 의의를 작성하는 중이었다.
3D 프린터로 제작한 인공 판막은 옷으로 비유하면 기성복이 아닌 맞춤복이다.
그래서 혈액 누수가 적다.
수술 과정이 더 쉽고 빨라진다.
판막의 지속성 또한 더 길어질 것으로 기대한다 등등.
대부분의 내용에 나는 공감했다.
이번 수술의 실패가 안타까웠던 것도 그 때문이었고.
백경민은 신수술의 참관이 열흘 뒤로 잡혔으며 수술 환자 선정 및 수술에 필요한 인공 판막 준비까지 끝났다고 전했다.
“형이 어떤 환자를 선택했는지 궁금하다. 환자 차트 좀 띄워 줘.”
“얼마든지.”
환자의 이름은 우세원.
나이는 50대 중반으로 승모판막 폐쇄 부전증과 삼첨판막 폐쇄 부전증을 앓고 있었다.
쉽게 말해서 판막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해 심장에 무리가 가는 상황이었다.
“신수술 적용하기에는 환자 병증이 심한 것 같은데? 안전하게 가는 게 낫지 않아?”
나는 껄끄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환자는 두 개의 판막 질환이 동반된 복합 판막 질환 환자였다.
할 일이 두 배로 늘었으니 수술 난이도도 두 배로 증가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신수술을 할 거면 단일 판막 질환 환자를 고르는 게 좋지 않았을까.
내 의견은 그랬다.
“이런 걸 성공해야 의사들의 주목을 받지. 수술이 대중화하는 속도도 빨라질 테고.”
착각인지 몰라도 백경민은 급해 보였다.
자신의 노고를 조금이라도 빨리 인정받고 싶은 것처럼 보였다.
혹시 환자를 잘못 골라서 수술이 실패한 건가.
내 머릿속에 있는 수술이 실패한 이유 리스트에 나는 잘못된 환자 선택을 기입해서 넣었다.
“천천히 가도 괜찮지 않겠어? 어차피 한 번만 집도할 수술도 아니고. 앞으로 계속 임상 데이터를 쌓아야 할 텐데.”
“어차피 할 거면 나중에 하나, 지금 하나 그게 그거지.”
내 설득에도 백경민은 본인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하지만 나 역시 순순히 물러설 수는 없었다.
잘못된 환자 선택이 수술 실패의 원인이라면 더더욱.
“형, 욕심부리지 말고 차근차근 가자. 급할수록 돌아가라, 몰라?”
“걱정도 팔자네. 내가 판막 수술도 소화 못할까 봐 그러냐?”
“신수술이니까 그렇지. 3D 프린터 인공 판막 수술은 해 본 적 없잖아.”
“답답하게 왜 그러냐. 아까도 말했잖아. 수술 과정은 일반 판막 수술하고 똑같다고.”
백경민의 목소리에 살짝 짜증이 섞이기 시작했다.
좋지 않은 신호였다.
“아는데, 모든 수술에는 변수가 있는 법이야. 환자의 상태가 양호할수록 변수를 통제하기도 편하단 말이지.”
백경민이 다른 환자를 선택하도록 나는 끈질기게 회유했다.
대체 판막의 크기가 크고 개수가 많을수록 환자의 수술 중 사망 확률이 올라간다는 논문까지 들먹였다.
그럼에도 백경민은 바위처럼 꿈쩍하지 않았다.
신수술을 향한 백경민의 고집은 쇠고집이었다.
결국 내가 먼저 백기를 들었다.
설득이 길어졌다간 오히려 백경민의 반감을 살 것 같아 적당한 선에서 물러났다.
다음 격전지는 3D 프린터로 제작한 인공 심장 판막이었다.
나는 멸균 봉투에 담긴 인공 판막을 백경민에게 받았다.
인공 판막은 크게 두 가지 종류가 있었다.
사람이나 동물의 조직으로 만든 조직 판막.
기계로 만든 기계 판막.
이번 수술에 사용되는 판막은 기계 판막이었다.
멸균 봉투 너머로 만져지는 기계 판막의 촉감이 단단했다.
‘이게 제일 불안하단 말이지.’
나는 미심쩍은 눈초리로 기계 판막을 바라보았다.
수술이 실패했을 가장 큰 원인으로 나는 인공 판막을 손꼽았다.
백경민은 노련하고 능력 있는 흉부외과의였다.
그래서 수술 중 돌발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었다.
그런 백경민이 유일하게 힘을 쓸 수 없는 분야.
그 분야는 바로 인공 판막이었다.
3D 프린터로 제작한 인공 판막에 문제가 생기면 제아무리 백경민이라도 손 쓸 도리가 없었다.
인공 판막을 만든 건 백경민이 아니라 업체였으니까.
이제 내 생각은 한 발자국 더 전진하기 시작했다.
인공 판막에 문제가 생긴다면 그 문제는 구체적으로 어떤 문제일까.
질문은 곧 답이 되었다.
“형, 수술 전에 이거 실험해 볼래?”
* * *
“실험? 무슨 실험?”
백경민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물었다.
이믿음이 말하는 실험의 의미를 알 수 없었다.
수술 준비가 모두 끝났으므로 남은 건 수술을 집도하는 것뿐이었다.
실험 같은 게 아니었다.
“업체에서 인공 판막을 잘못 만들었을 수도 있잖아. 이게 환자의 심장 구조와 맞는지 확인하자는 거지.”
“야, 이믿음. 너무한 거 아니냐? 넌 날 응원하러 왔니? 아니면 걱정해 주러 왔니?”
백경민의 목소리는 곱지 않았다.
이믿음은 아까부터 그가 힘이 빠질 만한 소리, 즉 안 좋은 소리만 골라서 하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자신의 신수술을 이믿음이 시샘하는 건 아닐까 하는 나쁜 마음이 잠깐 들기도 했다.
“그렇게 말하면 오히려 내가 섭섭하지.”
이믿음이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사실 나는 다 좋다고 말하는 편이 훨씬 편해. 어차피 신수술은 형이 하는 거고, 책임도 형이 지는 거니까.”
“…….”
“나는 수술이 꼭 성공하길 바라서 혹시라도 생길 문제를 열심히 찾아보는 거야.”
“네 마음 모르는 건 아닌데, 이 업체는 믿을 만해. 내가 4개월 넘게 다른 업체랑 비교해서 고른 곳이고. 또 제작도 여러 번 같이 해 봤어.”
백경민의 설명에도 이믿음은 요지부동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수술할 판막은 미리 맞춰 봐야 한다는 것이었다.
막상 수술에 들어갔을 때 인공 판막에 문제가 생기면 백경민이 감당을 못한다는 논리였다.
“설마 기계가 실수를 하겠니?”
백경민이 걱정도 팔자라는 표정으로 말했다.
“기계는 실수를 안 하지. 하지만 기계를 설계하고 만지는 사람은 실수를 할 수 있지.”
“그래서 어떻게 하자고?”
이믿음의 설명은 간단했다.
3D 프린터로 인공 판막을 제작했다면 그 전에 환자의 심장부터 스캔했을 것 아니냐.
스캔한 환자의 심장을 모형으로 제작해서 그 모형에 실제 수술에 사용할 인공 판막을 이식해 보자는 것이었다.
백경민은 이믿음이 괜히 일을 키우는 것 같아 귀찮았지만 이믿음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그래야 이믿음의 불안과 불만을 잠재울 수 있을 것 같아서.
“모형 이식에서 문제없으면 앞으로 잠자코 있기다?”
“그럼 입이 열 개라도 다물고 있을게.”
“오케이, 콜!”
백경민은 곧바로 업체에 전화를 걸어 용건을 말했다.
다행히도 업체는 환자의 심장 모형을 미리 제작해 두었다고 한다.
역시 그가 고른 업체답게 일 처리가 꼼꼼하고 확실했다.
그로부터 2시간 후 업체에서 퀵으로 보낸 환자의 심장 모형이 병동에 도착했다.
백경민은 그 길로 이믿음과 함께 연습용 수술실을 찾았다.
실제 수술은 아니었기에 수술모, 가운, 장갑 등은 착용할 필요가 없었다.
드디어 시어머니 같은 잔소리에서 벗어날 수 있겠구나.
모형을 수술대 위에 올려놓는 백경민의 마음이 편안해졌다.
서걱, 서걱.
그는 가위로 멸균 봉투의 상단부를 잘라 내고 수술에 사용할 기계 판막을 꺼냈다.
그 후 인조 고무로 만든 환자의 심장 모형에 기계 판막을 맞춰 보았다.
기계 판막은 수술 부위 중 한 곳인 삼첨판막에 딱 들어맞았다.
마치 퍼즐 조각처럼 완벽하게.
“어때? 봤냐?”
백경민은 우쭐하는 표정으로 이믿음을 쳐다보았다.
그와 달리 이믿음의 표정은 아직 굳어 있었다.
이믿음이 왜 저렇게 노심초사하는지 백경민은 아직도 이해할 수 없었다.
“자, 마지막 승모판막으로 갑니…….”
백경민의 익살맞은 목소리가 중간에 끊기고 말았다.
동시에 연습용 수술실에 찾아온 무거운 침묵.
백경민은 두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삼첨판막과 달리 승모판막에 이식할 기계 판막은 아귀가 맞지 않았다.
지름이 대략 4센티 작았다.
기계 판막을 삽입하기 위해서는 손아귀 힘으로 기계 판막을 욱여넣어야 할 판국이었다.
모형이니까 쑤셔 넣으려면 어떻게든 쑤셔 넣을 수 있겠지만…….
과연 실전에서도 그럴 수 있을까.
그랬다간 환자의 심장이 파열될 텐데?
생각이 그쯤 미치자 등골이 싸늘해지고 무릎에 힘이 풀리는 백경민이었다.
이믿음의 제안을 따랐기에 망정이지.
이대로 참관 수술을 했으면 대재앙이 벌어질 뻔했다.
백경민은 이믿음을 쳐다볼 낯이 없어 고개를 숙였다.
“하…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는 게 이런 건가? 설마 업체에서 실수할 줄은 몰랐는데…….”
그가 변명조로 중얼거리자 이믿음이 그에게 다가와 어깨에 손을 올렸다.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괜찮아, 형. 지금부터 바로잡으면 돼. 업체에 전화해 봐.”
“아, 참. 내 정신 좀 봐. 이 사람들 진짜 혼쭐을 내 줘야지.”
백경민은 업체에 책임을 묻기 위해 서둘러 연락을 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