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 Hunter Killer RAW novel - Chapter 1
1
01. 이동
“집주인이 퇴역한 군인이라지?”
“그거 소문 아니야? 젊던데…….”
“그러게, 30대 초반? 중반?”
“부인 없이 딸이랑 살던데.”
“거기 아줌마들이 좋아하겠어.”
“어머머.”
한 여인이 다른 여인의 팔뚝을 치며 눈치를 주었다. 저 멀리서 후줄근한 점퍼에 주머니가 많이 달린 바지, 그리고 단단해 보이는 워커를 신은 남자가 걸어왔다.
동네 여인들은 그가 지나가자 다시금 속닥거리기 시작했다.
“어유, 무서워.”
“좋아할 인상은 아니네…….”
“왜, 깔끔하게 생겼구먼.”
여울은 귓가에 들리는 여인들의 대화를 무시하며 마트 앞으로 갔다.
워커의 두꺼운 발굽 소리가 나야 하건만 마치 고양이처럼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마트 앞에 있던 다른 여인들은 여울에게서 한 걸음 떨어지며 힐끗힐끗 곁눈질했다.
끼이익.
얼마 후, 진웅 피아노라고 쓰여 있는 노란색 봉고차 한 대가 마트 앞에 정차했다.
차 문이 열리며 긴 생머리에 검은 눈동자가 유독 짙은 여자아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건조한 여울의 눈빛에 온기가 스며든다. 입가에는 미소가 옅게 번졌다. 아이가 두 손을 활짝 펼치며 그에게 달려갔다.
“아빠!”
“은서야.”
여울은 딸 은서를 포옥 안아 들었다. 가까이서 마주한 은서의 눈동자는 티끌 하나 없는 유리구슬처럼 맑게 반짝였다.
“저 양반이 저런 표정도 짓네.”
“이때 아니면 못 봐.”
“재미있네.”
여울은 은서를 내려놓고는 손을 잡고 집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힘차게 팔을 흔들며 걸음을 옮기던 은서가 돌연 고개를 돌려 눈을 마주하며 그 조그마한 입을 열었다.
“아빠, 걸을 때는 앞을 보고 걸어야 하는 거야.”
“은서가 아빠 혼내는 거야?”
은서는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웅, 위험하니까.”
“하핫.”
여울은 헛웃음을 터트리며 고개를 돌려 앞을 보았다. 그리고 얼마 못 가 다시금 은서에게 시선을 빼앗겼다.
이제 청소년 나이 중간을 뜻하는 중학교에 입학했건만 자신의 눈에는 언제나 네 살배기 아이와 같다.
십여 년 전, 한없이 우울했던 어느 날 자신에게 떨어진 천사와도 같은 아이, 얼음장 같은 자신의 심장을 녹인 아이, 평범하지 않은 자신에게서 컸음에도 주변이 따뜻해지도록 밝게 자라 줘 고맙기만 했다.
바라만 보고 있어도 마음이 꽉 차는 사랑스러운 아이였다.
여울에게 은서는 구원자다.
* * *
쿵쿵쿵!
소파에서 낮잠을 자고 있던 여울의 몸이 꿈틀거렸다. 눈을 가리고 있던 팔을 치우고 반쯤 눈을 떴다가 다시 감았다.
이 시간이면 택배일 것이다. 문 앞에 놓고 가겠지.
쾅쾅쾅!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더욱 크게 울렸다. 이 정도면 예의 범주를 넘어서서 무슨 일이 있을 경우의 강도이다. 여울은 이상함을 느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문을 열어 보니 심각한 얼굴의 여인이 보였다. 은서와 같은 학교를 다니고 이 빌라에서 사는 지나의 엄마였다. 그녀의 뒤에는 눈물범벅인 지나가 보였다.
“은, 은서가…….”
눈이 번쩍 뜨였다. 손이 저절로 뻗어 나가 그녀의 가녀린 두 어깨를 붙잡았다.
그녀는 고통스러운지 말을 끊으며 이를 악물었다. 여울은 그녀에게 얼굴을 가까이하였다.
“똑바로 말해 봐, 은서가 왜?”
“하굣길에…… 어떤 남자들한테…….”
그녀는 숨을 꾹꾹 누르며 말을 이었다. 은서는 학교가 끝나고 바로 피아노 학원을 간다. 피아노 학원 차가 학교 앞에서 대기하다가 태우는 형식이다.
그런데 그사이에 어떤 남자 둘이 은서를 납치한 것이다.
‘누가? 복수하는 건가? 복수 대상은 남아 있지 않을 텐데? 그들의 자녀들? 알 수 없다. 일반적으로 생각하자.’
장기 밀매, 유괴, 성매매.
장기 밀매를 하려고 대낮에 여자 중학교 앞에서 대담하게 납치를 하진 않았을 것이다.
납치범들은 대부분 치밀하고 계산적이다. 위험도 높고 영양가 없는 수고는 하지 않는다.
유괴로 돈을 요구하려면 보통 그 아이의 집안 조사를 먼저 한다.
‘빌라를 산 것이 실수였나?’
그래 봤자 노후된 10가구짜리 빌라다.
‘내 소문이 덜 퍼졌나?’
성매매, 이게 가장 유력했다.
성취향이 독특한 재력가가 미리 아이를 점찍어 두고 전문가에게 의뢰하거나, 전문가들이 미리 예쁘장한 아이를 납치하여 재력가들에게 경매를 하는 것이다.
머릿속에 그런 일을 하고 있는 자들의 얼굴이 몇 명 떠올랐다.
여울은 상념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하얗게 질린 지나 엄마의 얼굴이 보인다.
“미안합니다. 경찰에 대신 신고 좀 해 주십시오.”
“예…… 에?”
지나 엄마는 잘못 들었나 싶어 되물었다. 잠시의 침묵 후에 들리는 목소리는 차분하고 냉정했으며, 대신 신고해 달라는 말은 황당을 넘어섰다.
그렇게 딸아이를 아끼던 아빠가 맞나 싶었지만, 그의 집 문은 이미 굳게 닫혀 있었다.
여울은 빠른 걸음으로 서재에 들어섰다. 책상 바닥을 뜯으니 날카롭게 벼린 단검 두 자루와 검은 옷, 그리고 여러 기기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중에 휴대폰 크기의 네모난 기기를 꺼내 전원을 켰다.
삐빗, 삐빗, 삐빗.
그리드로 거리를 나타내는 화면이 켜지며 빨간 점이 반짝였다.
여울은 한숨을 깊게 내쉬고는 기기를 안주머니에 넣으며 단검을 챙겼다.
그의 눈동자는 전에 없이 차갑게 얼어붙어 있었다.
* * *
퀴퀴한 냄새가 가득한 지하 석실, 한 여자아이가 입에 재갈이 물린 채 잠들어 있었다.
남자는 한쪽 무릎을 꿇은 자세로 검지를 뻗어 아이의 이마부터 가슴께까지 천천히 쓸어내렸다.
“예쁘네…… 마 사장이 좋아하겠어.”
남자는 손가락을 멈추고 고개를 번쩍 들었다.
“오랜만에 제대로 일했네? 어디서 데려왔냐?”
그의 앞에 있는 사내는 오랜만에 듣는 칭찬에 실실 웃으며 대답했다.
“흐흣, 그 구의동에 있는 동아여중 있잖습니까? 제가 며칠 살펴보다가 확 그냥 데려왔죠.”
“음…… 구의…… 구의에 동아여중이라…… 잠깐, 얘 낯익은데…….”
남자는 휴대폰을 들어 어떤 사진을 확인했다. 갑자기 그의 동공이 커졌다.
“형님, 왜 그러십니…….”
쩌억!
말이 끝나기도 전에 사내의 고개가 휙 돌아갔다. 살과 살이 맞닿는 소리가 지하 전체에 크게 울려 퍼졌다.
그의 따귀를 갈긴 남자는 씩씩거리며 눈을 부릅떴다. 아까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
호흡이 거칠고 이가 악물려 있다. 분노라기보다는 두려움에서 기인한 모습이었다.
“너 이 개새끼…… 누굴 죽이려고 작정했어? 내가 거기서 작업하지 말라고 했냐? 안 했냐?!”
돌연 따귀를 맞은 사내는 억울한 얼굴로 울먹이며 벙긋거렸다.
“왜, 왜 그러십니까, 형님? 거기가 뭐가 어쨌다고…….”
콰악!
남자는 사내의 머리채를 거칠게 잡아채고는 얼굴을 가까이 들이댔다.
“귓구멍에 잘 처박아 넣어, 이 멍청한 새끼야, 대성 그룹 알지?”
“그…… 10년쯤 전에 망한 조폭 기업 말입니까?”
“그래, 그 조폭 기업! 사람들은 내부 갈등으로 망한 줄 알지만, 진짜 이유는 따로 있어, 대성을 그 자리까지 키우는 데 큰 몫을 한 칼잡이가 있는데 그놈이 돌연 은퇴 선언을 한 거야. 그래서 대성이 쫄려서 불안의 싹을 잘라 버리려고 했어. 그놈이 워낙 아는 게 많으니까…….”
남자는 침을 꼴깍 삼키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런데 말이야…… 대성이 역으로 당했어, 1년 만에 서울을 접수하고 3년 만에 천하 그룹과 어깨를 나란히 한 그 대성이 말이지, 수뇌부들은 모두 목이 따였고, 회장은 자살했어. 하지만 누구도 그가 자살이라고 생각하지 않지.”
불안함을 느낀 듯 남자는 이제 손을 벌벌 떨고 있었다.
“그렇게 그 칼잡이는 지하 세계를 발칵 뒤집은 은퇴식을 치르고 지금은 딸과 함께 낡은 빌라에서 쥐꼬리만 한 월세나 받으면서 조용히 살고 있어, 우리 같은 놈들은 쉬쉬하며 그것을 모른 체하고 있었고…… 그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도록 눈치를 보면서.”
남자는 쥐고 있던 사내의 머리를 거칠게 잡아당기며 말했다.
“그런데 내 멍청한 부하 새끼가 그의 딸을 떡하니 데려다 놓았네? 고맙다. 사자의 코털을 한 뭉치 뽑아 줘서.”
사내는 입술을 떨며 말했다.
“다, 다시 아이를 갖다 놓을까요?”
남자는 그를 놓고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아니, 갖다 놔도 죽고 데리고 튀어도 죽어. 딸에게 손을 댄 순간 우리는 그의 살생부에 이름이 적힌 거다.”
“그, 그러면 어떻게 합니까?”
“그래도 튀어 봐야지, 애는 걸리적거리니까 그냥 죽여. 추적 장치 달았을지도 몰라.”
“넵!”
사내는 재빨리 회칼을 하나 집어 그 끝을 아이의 목에 겨누었다.
아이의 여린 피부에 차가운 칼끝이 닿자 핏물이 배어 나왔다.
그때.
콰앙!
커다란 굉음과 함께 철문이 거칠게 열렸다.
* * *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것은 마른 눈물이 붙어 있는 은서. 은서의 목에 칼을 대고 있는 사내도 눈에 들어왔다.
여울은 한 치의 머뭇거림 없이 단검을 던지며 같이 앞으로 튀어 나갔다.
푸슉!
던진 단검이 간단하게 사내의 손목을 꿰뚫었다. 그와 동시에 여울의 무릎이 놈의 턱을 쳐 올렸다. 놈의 입이 강제로 다물어지며 살짝 나와 있던 혀끝이 잘렸다.
또 한 명의 사내가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려고 한다. 여울은 손바닥을 뻗어 그의 팔꿈치를 쳤다.
우득!
기괴한 소리와 함께 품에 들어갔던 그의 손이 더 깊숙이 들어갔다. 그의 어깨가 축 내려앉은 것이 보인다.
여울은 한 손으로 그의 목울대를 움켜쥔 채로 다른 놈의 손목에 박힌 단검을 뽑으며 경동맥을 향해 서슴없이 휘둘렀다.
그때.
어둠이 세상을 덮었다.
* * *
후우우웅!
고층 엘리베이터가 멈출 때 나는 소리와 중력이 느껴졌다.
덕분에 몸이 순간 경직되어 목적을 이루지 못했다.
‘정전?’
아니다.
어두운 곳에서 자주 활동했던 자신은 웬만한 지하에서도 사람이 내는 인광을 구별할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마치 누군가가 눈을 가리고 있는 것처럼.
‘적은?’
아직 기절하지 않은 상태였다. 적의 술수일 수도 있다는 뜻.
‘함정에 빠진 것인가? 아니면 내가 그 순간에 기절한 것인가?’
사지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보니 기절은 아니었다.
여울은 손잡이에서 느껴지는 익숙한 서늘함을 믿으며 마저 단검을 휘둘렀다.
팟!
눈에 보이는 건 없었지만, 단검 끝에 살갗이 얇게 썰리는 감촉이 그의 세밀한 감각에 느껴졌다.
조금 질긴 경동맥이 툭 끊어지는 것까지, 오랜만에 느끼는 위험하고도 매력적인 촉감.
입안에 침이 고이고 심장이 빨리 뛰었다.
마무리를 위해 목이라고 생각되는 부분을 잡아 옆으로 비트는 순간, 아주 가까운 곳에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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