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 Hunter Killer RAW novel - Chapter 100
100
100. 무의식
여울은 수언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수언은 처음으로 그의 손길에 두려움을 느꼈다. 그때 묵직한 저음이 들려왔다.
“여기 왔어?”
“아, 아니요. 은서는 원팀이 함께할 때만 움직일 수 있어서…….”
김이수는 은서 이야기가 나오자 분위기가 확 달라진 여울을 보고는 수언에게 물었다.
“이분이 여은서 대원과는 어떤 관계…….”
여울은 그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바로 대답했다.
“제 딸입니다.”
“아!”
김이수는 탄성을 내질렀다. 어쩌면 자신의 길드로 역대급 헌터를 끌어들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이거 은서 대원 아버님을 몰라뵈었네요. 반갑습니다. 은서 대원은 지금 길드 본부에서 출동 대기를 하고 있습니다. 불편하지 않으시다면 저희 길드에서 모시겠습니다.”
수원에서 대구까지 다 같이 걸어왔으면서 뭘 모시겠다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아 멀뚱멀뚱 김이수를 바라만 보는 수언이었다.
“아닙니다.”
여울은 그의 제의를 거절하고는 바로 바닥을 박찼다. 그의 뒷모습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 * *
여울은 대구에서 수원으로 돌아오자마자 바로 신한길드를 찾아갔다. 그러나 연락을 통해 이미 대기조가 해체되어 은서는 집으로 귀환한 이후였다.
딩동.
-누구세요?
인터폰 너머로 가녀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울은 순간 멈칫했다.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고민이 되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그의 인생에 이런 상황은 흔치 않았다.
“여, 여은서 아빠다.”
-네? 무슨…… 헙!
얼굴을 확인했는지 말을 뒤늦게 이해했는지 이상한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하얀색 짧은 반바지와 남색 브이넥 티셔츠를 입고, 어울리지 않게 분홍색 레이스가 달린 앞치마를 한 보라가 그를 반겼다. 한 손에는 뒤집개를 들고 있었다.
“여울 오빠!!”
그녀가 안을 듯이 다가왔다가 멈칫하고는 한 손으로 어깨를 마구 쳤다. 특이한 반가움의 표시다. 그녀의 말을 듣고는 식탁에 앉아 있던 은서가 의자를 뒤로 기울여 머리를 빼꼼 내밀었다. 그리고 여울을 확인하고는 의자를 내팽개치며 달려왔다.
“아빠아!!”
퍼억!
은서는 단숨에 보라를 젖히고는 여울에게 강하게 안겼다. 그는 오른발을 한 걸음 뒤로 물리고는 은서의 등을 토닥여 줬다.
“우리 은서, 잘 있었어?”
“우웅, 아니 잘 못 있었어. 아빠가 있어야 잘 지내.”
“미안, 미안.”
은서는 여울의 가슴에 얼굴을 비비며 어리광을 부렸다. 보라는 팔짱을 끼고 그들을 바라보며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참 희한해. 둘이 만나면 저 애늙은이는 갓난애가 되고, 냉혈한은 한없이 다정한 남자가 되니…… 이런 이중인격자들.”
은서는 그의 품에 안긴 채 고개만 휙 돌려서 보라에게 눈을 흘겼다.
“언니도 남자들한테는 성격 파탄자잖아요.”
“정말?”
“얘, 애가 무슨! 파탄자라니? 철벽 치는 거지, 철벽. 남자들은 단순해서 잘해 주면 자길 좋아하는 줄 아니까.”
“그럼 언니가 잘해 주면 좋아한다고 착각해도 되는 거예요?”
“으, 응? 그건 아니고 뭐…….”
보라는 슬그머니 여울의 얼굴을 보았다. 그는 보라와 은서를 보면서 살며시 웃음을 짓고 있다. 저것이 진정 아빠 미소가 아닌가 싶었다.
“뭐 아무튼, 오랜만에 집에 온 오빠를 현관 앞에 너무 오래 세워 뒀네. 얼른 들어와요. 저녁 먹어요.”
“알았다.”
여울은 은서와 나란히 식탁에 앉아 보라의 음식을 기다렸다. 남의 집에서 남이 해 주는 음식을 기다리는 이 시간이 낯설면서도 설레는 복잡 미묘한 감정이 들었다.
“다 됐습니다. 맛없어도 맛있다고 하세요. 백만 년 만에 하는 요리니까.”
김치전을 내놓는 보라의 말에 여울과 은서의 눈이 마주쳤다. 은서는 바로 젓가락으로 전을 찢으며 말을 이었다.
“백만 년은 아니고 일주일에 한 번? 근데 요리 잘해, 맛있을 거야. 아빠도 언능 먹어 봐.”
은서는 김치전을 야무지게 쥐어 여울에게 내밀었다. 여울은 머뭇거리다가 입을 떡 벌리고 그것을 받아먹었다.
“효녀 나셨네. 여울 오빠 이런 모습은 아무도 상상하지 못할 거야.”
“언니도.”
“먹기나 해.”
여울이 중국에 나가 있던 5개월 동안, 은서는 보라와 함께 지내서인지 둘은 허물없이 친해 보였다.
보라를 처음 봤을 때는 내면의 벽이 상당히 두꺼워 은서와 친해지기가 힘들 줄 알았는데 괜한 걱정이었다.
셋은 저녁을 먹으면서 지금까지 지내 왔던 이야기를 나누었다. 은서가 예서를 구하다가 위험할 뻔했던 것을 들었을 때는 미안한 감정이 솟구쳤다.
마족만 생각했었지, 게이트에서 나오는 몬스터들이 은서를 위험하게 만들 줄은 몰랐다. 수언이 있다고 해도 그를 뛰어넘는 강한 몬스터가 나올지 모른다. 자신이 만났던 거대 오크 갈락만 하더라도 수언과 비등할 것이다.
“신한길드…… 가입했다면서?”
한참을 신나게 떠들던 보라와 은서가 순간 조용해졌다. 그러고는 살며시 여울의 눈치를 보았다. 지연의 말대로 몬스터와 가까이하는 삶이니 위험에 더 크게 노출되는 것이다.
“으, 응. 그때 보니까 나도 레벨을 올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여울은 같이 시무룩해진 보라를 살짝 보고는 다시 은서에게 고개를 돌리며 말을 이었다.
“잘했어, 이제 레벨을 올리지 않으면 안 돼. 대신 지금처럼 수언과 꼭 함께하고, 위험한 작전은 참여하지 말고. 알았지?”
은서는 이렇게 쉽게 허락할 줄은 생각도 못했기 때문에 입을 반쯤 벌리고 멍한 표정으로 있다가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아…… 응! 알겠어!”
“학교도 곧 개교한다고?”
“응, 학교도 열심히 다니면서 주말에만 사냥 다닐게.”
“그래, 무슨 일이 터질 것 같다 싶으면 무조건 수언이한테 연락하고.”
“알겠어어~ 어? 왜? 아빠는?”
가만히 듣던 보라도 토끼처럼 귀를 쫑끗 세우며 물었다.
“그러게요. 오빠는요? 또 어디 가시게요?”
여울은 얼굴을 가까이한 두 여자를 번갈아 보다가 대답했다.
“아직 일이 덜 끝났어…… 대충 6개월은 더…….”
“뭐야, 그게! 왜 이렇게 오래 걸려? 또 아빠랑 떨어져야 해?”
“맞아! 이 꼬맹이를 6개월이나 더 맡아야 해?”
두 여자가 얼굴을 들이대며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니까 정신이 없다. 아니, 보라의 파인 옷 사이로 드러난 골에 정신이 없는 건가?
보라의 말에 은서가 고개를 홱 돌려 그녀를 보았다.
“이제 키도 비슷하면서…….”
보라는 몸을 돌려 은서에게 가슴을 일부러 더 앞으로 내밀었다.
“키만 비슷하면 뭐 하니? 꼬맹아.”
은서는 자동으로 시선이 내려가 그녀의 풍만한 가슴을 보았다가 여울에게 고개를 돌렸다. 참고로 보라는 지금 속옷을 입지 않은 상태였다.
보라는 순간 볼이 발개지더니 급기야 그 자리를 벗어났다.
“아, 덥네, 갑자기……. 부녀지간이 오붓하게 이야기 나누세요.”
여울은 고개를 한번 털고는 은서를 쳐다봤다. 은서의 맑은 눈망울과 마주치니 자신도 모르게 마음에 찔림이 있었다.
“빨리 와.”
은서도 알고 있다. 아빠가 자신을 얼마나 아끼고 사랑하는지, 얼마나 같이 있고 싶은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가 이렇게 바로 떠나야 한다면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여울은 그녀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다가 고개를 깊게 끄덕였다.
“응.”
꽈악!
여울은 은서를 깊게 안아 주고는 정수리에 입맞춤을 하고 밖으로 나왔다.
한국에서는 마족을 탐색한 적이 없다. 중국에서 돌아온 후로 다크니스를 쓴 적이 없지만 언제 어디서 마족들이 자신에게 들이닥칠지 모른다.
한자리에 오래 머물고 있는 것은 위험을 초래한다. 특히 이곳에서는 더욱. 어서 멀리 떨어져 다른 곳에서 다크니스로 유인해야 한다.
밖으로 나오니 해가 지고 세상이 어두워져 있었다. 이제 막 걸음을 옮기는데 보라가 긴 카디건 하나만 대충 걸치고는 급히 밖으로 뛰어나왔다. 여울은 무의식적으로 그녀의 가슴으로 가는 시선을 간신히 돌리고는 입을 열었다.
“왜 왔지?”
“그냥 궁금해서요. 은서는 아빠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이 있는지 모르지만 나는 아니거든요. 왜 은서를 두고 떠나는 거예요? 그 이유를 좀 듣고 싶어서요. 은서를 반년 동안 먹여 주고 재워 준 보호자로서 그 정도는 알 권리 있죠?”
여울은 그녀의 진갈색 눈동자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문득 생각이 들었다. 이들에게 비밀로 할 거리는 아니었다. 오히려 퍼트려야 할 일이다.
“나와 같은 특성을 가진 자가 그 힘에 먹히면 마족이라고 부른다. 그들은 무차별하게 살인을 저지르고 강하다. 전 세계에 퍼진 마족들은 지금 그들끼리 전쟁을 치르고 있다. 그들은 나와 같은 특성자들을 쫓는 것을 더 우선시하지, 그래서 내 근처에 있으면 위험하다.”
“마족…… 그게 뭐 얼마나 강한데요? 수언이도 있고 원팀도 있잖아요.”
여울은 느리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 수언이도, 원팀도 그들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 그들을 보거든 무조건 피해라. 그들의 목표는 특성자와 마족뿐이기에 일반인이 자신의 시야 밖으로 벗어나면 굳이 쫓지는 않을 것이다.”
삐삑, 삑삑.
그때, 마족 탐색을 보냈었던 시이에게서 연락이 왔다. 여울은 잠시 눈을 감았다가 이 근처가 아닌 것을 확인하고는 눈을 다시 떴다.
여울은 검지로 자신의 눈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명심해라. 눈, 눈동자가 푸른 불꽃으로 타오르고 있으면 무조건 피해라. 은서는 물론 수언이, 원팀, 모든 사람들에게 이 사실을 전달해 주도록, 그럼.”
“푸른 불꽃…… 에, 예? 앗!”
여울은 그녀를 지나쳐 몇 걸음 가는가 싶더니 이내 바닥을 박차고는 저 멀리 사라졌다.
* * *
삑삑!
‘알았어, 지금 바로 가지.’
오랜만에 마족을 찾아서 그런지 시이의 성격이 많이 급해졌다. 마족을 발견한 곳은 수원도시 동쪽 벽 밖 10킬로미터 부근, 도시 안이나 다름없는 곳이다.
콰앙! 쾅! 콰직!
아직 육안으로 보이지도 않는데 진동과 굉음이 들려온다. 두 마족이 싸우고 있거나 몬스터 네임드급과 마족이 싸우는 듯하다. 여울은 은신을 하며 다리에 힘을 주었다.
쾅쾅쾅콰앙!!
굉음이 연이어 터져 나가더니 건물 하나가 무너져 내린다. 자신도 다른 마족들과 싸울 때 저렇게 요란하게 싸웠던가?
쿠와앙!
무너진 건물 더미에서 튀어나오는 두 마족이 보였다. 한 놈은 오른쪽 가슴에 검이 반쯤 관통된 상태였고, 다른 놈은 그의 손에 목이 잡힌 상태였다. 얼마나 치열했는지 둘의 옷은 너덜너덜하게 찢어져 있었다. 누가 봐도 승자가 결정된 상태.
그런데 한 놈의 얼굴이 낯익다.
‘진…… 후?’
마족의 검에 가슴이 꿰뚫린 사내는 대한길드의 길드장 김진후였다. 혹시 그가 어떤 모르는 경로로 마족이 되었나 싶었는데 눈동자를 보니 그건 아닌 듯하다. 그의 방패와 데가베르의 뿔은 저 멀리 널브러져 있었다.
여울은 바로 디카르를 만들며 달려 나갔다. 그때, 진후가 짐승처럼 소리치며 마족의 목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크아아아악!!”
우드득!
마족의 목이 왼쪽으로 완전히 꺾이며 검을 쥔 손에 힘이 풀렸다. 진후는 몸에 박힌 검을 빼내어 그의 심장에 강하게 쑤셔 넣었다.
푸욱! 푹! 푹!
뻥 뚫린 그의 오른쪽 가슴에서는 검은 피가 주르륵 흘러나오고 있었다. 절대 만만한 양의 피가 아니었다.
여울은 오우거의 피를 꺼내 들며 그에게 다가갔다.
“김진…….”
“크하아!”
그때, 진후가 확 뒤돌아서며 여울에게 두 손을 뻗었다. 그의 눈에는 초점이 없고 광기만이 가득했다.
턱!
여울은 디카르를 다급히 거두며 그의 손을 마주 잡았다.
으드드득.
마주 잡은 손이 점점 꺾이며 여울의 몸이 뒤로 밀려났다. 진후의 힘이 이렇게 강했던가?
40명에 가까운 마족을 잡으면서 다크니스 드레인으로 얻은 특성은 바람의 검을 만드는 검기와 시력, 지구력에 불과했다. 근력을 간절히 원했지만 드레인이 실패한 것인지 아니면 그 특성을 가진 자가 없는 것인지 얻을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해도 자신은 10레벨, 진후는 최대 8레벨일 것이다. 2레벨의 차이를 특성으로 극복이 가능하다는 것인가? 충격적이다. 애초에 그의 힘으로 마족과 동수를 이루는 것은 이론상 불가능이다.
검은 피, 한기를 담은 공격, 뒤집힌 눈과 광기, 원래의 힘 이외에 다른 무언가가 있다. 자신의 다크니스, 그 이상의 특성이…….
여울은 힘을 빼며 손을 놓고는 옆으로 빠졌다. 진후는 자신의 힘에 못 이겨 앞으로 몇 걸음 걸어왔다. 그사이 번쩍 들어 올린 여울의 발이 진후의 뒷목을 찍었다.
퍼억!!
둔탁한 소리와 함께 진후는 바닥에 개구리처럼 뻗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