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 Hunter Killer RAW novel - Chapter 101
101
101. 약속
끔뻑끔뻑.
기억이 끊기기 전에는 저녁이었는데 어느새 해가 떠오르고 있다. 햇빛의 따사로움이 느껴지고 피 냄새가 풍겨 온다. 아직 살아 있다는 것이다.
진후는 상체를 일으켜 주변을 둘러보았다. 옆에는 자신의 검과 방패가 나란히 놓여 있고, 앞에는 한 남자가 부서진 콘크리트 더미 위에 앉아서 깍지를 끼고 턱을 괸 채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 절대 잊을 수 없는 자다.
“여울…… 어떻게 된 거지?”
여울은 깍지를 풀며 입을 열었다.
“기억이 안 나나?”
진후는 한 손으로 머리를 붙잡고는 고개를 저었다.
“드문드문. 그놈의 검이 찔린 이후에는 전혀.”
“그렇군. 네가 마족을 처리했다.”
“마족?”
진후는 처음 들어 보는 단어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여울은 그의 물음을 무시하고는 질문했다.
“너의 특성은 뭐지?”
진후는 순간 멈칫했다. 이자가 뭔가를 알고 있나? 몬스터와 같은 언데드가 되었다는 것을 안다면……. 진후는 일단 한 발을 빼기로 했다.
“알고 있지 않나? 후천적 특성으로 냉기 방출을…….”
그 말이 튀어나옴과 동시에 여울의 오른손에서 디카르가 만들어졌다. 검은 검신에 그 끝부분이 붉은 것을 보고는 지금까지 상대했던 푸른 불꽃의 눈빛을 한 자들이 떠올랐다. 여울처럼 검은 무기를 든 자들이었다. 하지만 여울은 눈이 파랗지 않다. 어떤 관계지? 마족이란 대체 뭐지?
그때, 여울에게서 살기가 피어올랐다.
“제대로 밝히지 않는다면 난 너를 죽일 수밖에 없다.”
그 말에 진후는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지금은 8레벨 완성에 언데드의 힘으로 인해 전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강해졌다.
이제 그와 검을 맞설 정도는 되지 않을까? 괜한 호승심이 생겨났다. 진후는 데가베르를 들며 대답했다.
“쉽지 않을 텐데?”
스윽.
그의 대답에 여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진후도 따라서 같이 일어나 눈을 마주쳤다. 둘 사이에 살얼음판 같은 긴장감이 흘렀다. 그렇게 세 번의 숨을 내쉴쯤, 여울은 검을 거두며 뒤돌아섰다.
진후는 자신의 앞에서 등을 보인 여울을 보고는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나를 무시하는 건가?’
그때, 여울의 말이 이어졌다.
“마족은 나와 같은 특성을 가진 자가 살의에 먹혔을 때 나타나는 존재들이다. 내가 너를 발견했을 때는 살의와 광기에 이성을 잃은 상태였고, 마족이 되기 전의 상황과 비슷하다고 판단했다.”
여울은 다시 돌아서서 진후와 눈을 맞추며 말을 이었다.
“마족은 오직 살의만 남아 모든 생명체를 해친다. 마족이 현신하여 발휘할 수 있는 힘은 숙주의 힘에 비례하니 네가 변한다면 그 힘은 더욱 강하겠지. 난 그 전에 너를 처리할 것이다.”
여울은 담담히 말했지만 말속에는 그 어느 때보다 살기가 가득 담겨 있었다. 그는 호승심 따위로 실험할 사안이 아니라는 것이다.
‘내가…… 살의와 광기에 미쳐 있었다고?’
그렇다면 여울이 나타났을 때 그도 공격했다는 것, 비록 정신이 나간 상태였어도 그가 자신의 광기를 강제로 잠재운 것이다.
언데드, 몬스터와 인간의 기운을 먹고 사는 자. 이 이야기를 하면 그는 어떻게 반응할까? 그저 자신과 같은 특성이 아니라고 넘길까?
생각해 보면 그도 그의 엄청나게 위험한 특성을 당당히 밝힌 것이다. 진후는 데가베르를 내리고 여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대답했다.
“나는…… 죽었다. 내 몸에는 차갑고 검은 피가 흐른다. 생명체에게서 생기를 흡수하는데 그게 아니라면 이 몸은 썩어 문드러지는 거지. 우리가 11층에서 봤던 그 해골들처럼.”
진후는 눈을 내리깔았다가 다시 번뜩 뜨며 말했다.
“언데드…… 내 특성은 언데드다.”
그 말과 함께 진후의 기운이 사나워졌다. 자신의 치부를 밝혔으니 이제 그의 선택만 남은 것. 처음으로 남에게 말하다 보니 자신이 진짜 몬스터와 다름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울은 그의 달라진 기운을 받으며 가만히 있었다. 다크니스 특성자가 아니길 바라는 마음에 물었지만 돌아온 대답은 꽤 충격적이었다.
언데드, 누구보다도 사람들이 의지하고 따르던 그가 그런 특성을 가지게 된 줄은 몰랐다. 이 차가운 기운이 생긴 때를 되짚어 보면 그의 팔이 잘린 후에 실종이 되었을 때 같다. 그사이 이런 사달이 난 것이다.
자신처럼 선택의 여지도 없이 특성이 생긴 것인지, 아니면 스스로의 선택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자신에게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특이한 특성이군. 그래서, 네가 잡은 마족은 이게 처음인가?”
‘특이한 특성? 그 정도의 말로 쉽게 넘어갈 만한 사안이던가?’
진후는 그의 대수롭지 않은 반응에 놀람을 금치 못하며 살기를 거두었다. 생명체의 생기라면 인간도 포함이 되는 것이고, 인간을 사냥하는 것도 직접 목격한 그인데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넘길 줄은 몰랐다.
그라면 뭔가 다른 생각을 가질 것이라는 생각에 털어놓은 이유도 있지만, 이렇게 자신의 큰 짐이자 비밀을 쉽게 넘기고 나니 마음이 급격히 홀가분해졌다. 마치, 언데드임을 밝히고 나서도 이 세상에,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도 된다는 허락을 받은 기분이었다.
진후는 건조해진 눈가에 물기가 차오르는 느낌과 함께 다리가 풀려 한쪽 무릎을 꿇었다.
“고…… 맙다.”
“뭘 말이지?”
“아니다.”
“싱겁군.”
여울은 그의 심경의 변화를 눈치채고는 아무 말 없이 기다려 주었다. 지금 반응을 보면 자신이 언데드라는 것을 처음 말한 듯했다. 그동안 자신이 인간이 아니라는 생각에 수없이 고뇌하며 괴로워하다가 이제서 조금 짐을 덜어 버린 것이다.
고개를 떨어트리고 한참을 가만히 있던 진후가 얼굴을 들었다.
“네 명, 지금까지 네 명의 마족을 잡았다.”
그래서 한국에 마족들이 없었던 건가? 인구가 수십 배는 많은 중국에서도 40명밖에 잡지 못했다.
여울은 옷을 걷어 어깨를 보았다. 154명. 이제 줄어드는 시간이 점점 느려진다. 당연한 일이다. 강한 자들만 살아남고 서로 간에 거리가 점점 더 멀어졌을 테니까…….
“그들을 조심해라. 지금 잡은 놈보다 몇 배는 강한 놈도 존재한다.”
진후는 순간 멈칫했다. 능력치로 따져 보면 9레벨은 될 법한 존재의 몇 배? 전혀 어울리지는 않지만 여울이 부풀려 말한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몇 배라……. 그런 놈들이 나타나면 한 나라가 망하는 것은 순식간이겠는데?”
“목적이 확실한 자들이니 그들의 동선에만 걸리지 않는다면 국가와 부딪칠 일이 없다.”
“그런 자들은 어떻게 잡지?”
진후의 물음 아닌 물음에 여울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내가 잡는다.”
진후는 그의 눈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저런 자가 허언을? 하지만 진실로 듣기에는 무리가 있다. 진후는 자신이 지금 가진 이 힘이야말로 천외천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힘을 부리면서도 벅차다고 생각을 할 정도다.
그런데 몇 배? 그렇다면 눈앞에 여울이 자신보다 몇 배는 더 강하다는 말이 된다. 1년 전이라면 몰라도 지금은…… 쉽게 인정이 되지 않는다.
복잡 미묘한 진후의 눈을 바라보던 여울은 미련 없이 뒤돌아섰다.
“어디 가지?”
“일본.”
“잠깐.”
“뭐지?”
진후의 말에 여울은 반쯤 고개를 돌려 그를 보았다. 그는 의심 가득한 방금 전과는 다르게 진중한 눈빛이었다.
“만약…… 내가, 또 이렇게 미쳐 날뛰면, 다시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면…….”
진후는 침을 한 번 꿀꺽 삼키고는 말을 이었다.
“나를 죽여다오.”
여울은 완전히 돌아서서 그의 눈동자를 지그시 바라보다가 입을 천천히 열었다.
“그러지.”
* * *
저벅, 저벅, 저벅.
무너진 마을, 수백 명의 사람들이 빠른 걸음으로 길을 걷고 있다. 그 속도는 일반인들이 마라톤을 하는 수준이었다.
왼쪽 네 줄은 새하얀 코트를, 오른쪽 네 줄은 진청색 코트를 입고 손에는 각기 무기를 들고 있었다. 가장 선두의 하얀 코트를 입은 사내가 입을 열었다.
“이제 곧 가즈카의 서식지가 나오겠군요.”
그의 말에 옆에 있는 진청색 코트의 사내가 대답했다.
“네, 전에 발견했던 곳이 3킬로미터 남았군요.”
“추정 레벨이 7레벨이라고 했던가요? 더 올라가지 않았기를 바라야겠네요.”
“두 달 전이니까…… 오르지는 않았을 겁니다.”
하얀 코트 사내, 신한길드의 길드장 지천욱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앞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이곳은 충남 예산. 천안에 거주하고 있는 대한민국 5대 길드 중 하나인 혜성길드와 신한길드가 합작하여 가즈카라는 트롤 네임드 몬스터를 토벌하러 온 것이다.
은서와 수언은 물론 원팀과 보라, 지연까지도 모두 이곳에 참가하였다. 전이라면 몰라도 귀환자들이 있는 지금, 7레벨 네임드는 만만히 볼 상대는 아니지만 충분히 별다른 피해 없이 잡을 수 있기 때문에 사기 충전차 최소 인원만 제외하고 모두 참가한 것이다.
문솔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창을 휙휙 돌려 대며 말했다.
“오랜만이네, 이런 레이드.”
그녀의 옆에서 걷는 거대한 근육질의 담덕이 말했다.
“그렇군. 베헤모스 잡으러 갈 때가 생각나네.”
“내 사랑 리안 씨 보고 싶다.”
“리안 씨가 왜 네 사랑이냐, 안 보인다고 험담하지 마.”
“허, 험담이라니! 대장 거 말이 심한 거 아니요?”
“쉿, 이러다 몬스터 몰리면 우리만 또 욕먹어요.”
무영은 툭탁거리는 서한과 이건수를 말리느라 정신이 없었다.
부길드장 김이수는 은서 옆에 자연스레 붙어서 물었다.
“은서야, 아버님은 잘 계시니? 길드 아직 없으시댔지?”
은서는 시선을 앞에 고정시킨 채 대답했다.
“잘 계시겠죠?”
“응?”
은서의 고운 미간이 살짝 좁혀졌다.
“몰라요. 아빠 어디 갔어요. 원래 바쁜 사람이에요.”
은서는 뾰로통한 표정을 지으며 앞장서서 갔다.
“으, 은서야.”
수언이 그녀를 부르며 바짝 뒤따라간다. 이수는 자기가 뭘 잘못했나 싶어 고개를 갸웃거렸다.
“역시, 중2 소녀는 대하기가 참 힘들어…….”
얼마 지나지 않아 허름한 마을이 지나고 숲이 펼쳐졌다. 그곳에 들어서자마자 장내가 급격히 조용해지는 것을 느꼈다.
풀벌레 소리나 바람이 나뭇잎을 스치는 소리라도 들려야 하는데 누군가가 그 모든 것을 조종하는 것처럼 고요하다.
그때 비릿한 쇠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은서는 이 냄새를 익히 알고 있다.
‘피……?’
끼긱, 끼긱.
저 멀리서부터 기괴한 소리가 들려온다. 은서는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갔다. 다른 사람들도 모두 이 기괴한 분위기를 느꼈는지 발걸음을 죽이며 뒤따라오고 있었다.
트롤의 시체들이 숲 이곳저곳에 널브러져 있다. 죽은 지 얼마 안 됐는지 피가 흐르고 있는 사람들의 시체도 같이 있다. 공통점은 대부분의 시체의 단면이 깔끔하다. 검의 베기에 당한 것이다.
후우웅.
까마귀라도 찾아와 울 법도 한데 이곳은 죽음의 기운만이 오싹하게 맴돌고 있다.
숲의 길을 꺾으니 공터라고 불릴 만한 공간이 나오고 한 거대한 트롤이 바닥에 엎어져 있다. 그 위에 올라선 채 검으로 트롤의 목을 자르고 있는 한 여인이 보인다. 자주색 코트에 안에는 피처럼 붉은 원피스를 입었다. 그의 손에는 검은색 일본도가 들려 있었다.
그녀가 톱질 같은 검질을 멈추고는 은서에게 고개를 돌렸다.
“에?”
갈색 긴 생머리에 속눈썹이 긴 여인은 눈을 반쯤 감고 있엇는데, 나른하면서도 묘하게 관능적인 느낌을 주었다. 푸른색 눈동자는 불에 타듯이 이글거리고 있었다.
은서는 왠지 신비로운 분위기가 풍기는 그녀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누…… 구세요?”
그녀가 작은 입술을 열었다.
“뭐라는 거야?”
“일본어?”
“너도 죽어.”
그녀는 낮잠을 자기 직전의 나른한 표정 그대로 검은색 일본도를 툭 던졌다. 꼬마아이가 호숫가에 돌멩이를 던지는 듯이 가벼운 동작이었다. 그러나 그 기세와 속도는 은서가 감히 반응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슈욱!
도 끝이 은서의 왼쪽 가슴에 파고드는 것과 동시에 몸이 의지와는 상관없이 뒤로 당겨졌다. 하지만 당겨지는 속도보다 일본도의 속도가 월등했다. 은서의 심장이 꿰뚫리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채앵!!
그때, 검은 태도가 그 일본도를 올려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