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 Hunter Killer RAW novel - Chapter 104
104
104. 감히……
‘으…… 젠장.’
주보라는 집에 들어와 방구석에 앉아 두 무릎 사이에 고개를 파묻었다. 그들 앞에서 기세 좋게 질러 놨지만 무서운 것은 어쩔 수 없다.
자신은 5레벨, 바로 앞집 둥둥은 6레벨. 둘이 합치면 웬만한 사람들은 상대할 수 있겠지만 그건 말 그대로 ‘웬만한’이다. 그들은 분명 둥둥의 전력도 파악해 놨을 것이다.
찌직.
보라는 허벅지 깊숙한 곳에 스타킹을 찢고 마녀손톱을 꽂아 넣었다. 마비 능력이 있으니 언젠가 호신용으로 써먹을 때가 있을 것이다.
길드장에게 말해서 24시간 호위대를 둘까? 아예 길드 본부에 들어가 있는 것이 낫겠다. 아니, 그들은 분명 자신이 신한길드 소속임을 알고도 찾아왔을 것, 신한을 두려워하지 않는 건가? 길드도 그리 믿음직스럽지 못하다. 길드의 최강자 수언이 누워 있지 않은가?
수언을 생각하는 순간, 이어서 누군가가 보라의 머릿속을 스쳤다. 그 누구도 건드리지 못하는 자,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그의 옆자리.
‘왜 그 생각을 못 했지?’
보라는 바로 짐을 챙겨서 걸음을 옮겼다. 그녀가 가는 방향에 신한병원이 있었다.
* * *
똑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은서가 고개를 돌렸다.
“누구세요?”
스르르.
병실 문이 열리며 보라가 모습을 드러냈다. 하얀 니트에 베이지색 스커트를 입은 그녀는 이럴 때 보면 영락없는 여대생 같았다. 그녀의 뒤에는 캐리어 하나가 있었다.
“엥?”
“아하하, 나, 나도 당분간은 여기 좀 머물까 해서.”
은서는 고개를 돌려 여울을 보았다가 보라를 보며 코를 찡긋했다.
“흐음…….”
수언의 입원실은 원래 같은 계열의 실장급 이상이나 자리를 내주는 VVIP 입원실이기에 세 명이서 지내기에도 좁은 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게 가족이 아닌 남녀라면 조금 문제가 있지 않을까 생각하는 은서였다.
수언의 팔다리를 주물러 주며 이야기를 나누던 중, 주로 은서가 말을 하고 보라와 여울은 듣는 편이었다. 여울은 중간에 추임새라도 넣지만 보라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멍한 눈으로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있다.
원래 이런 스타일이 아니기에 은서는 그녀에게 얼굴을 들이밀며 물었다.
“언니, 왜 이렇게 조용해? 어디 아파요?”
“아하, 내가 조용하면 아픈 거구나? 신경 쓰지 마, 안 아파.”
보라는 그렇게 대답하고는 여울을 쳐다보았다.
‘이 부녀 둘 다 날 이상하게 보는 눈치인데…… 하긴 내가 수언이랑 그렇게 친했던 사이도 아니고, 아무래도 여울 오빠한테 얘기를 하는 게 낫겠지?’
보라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입을 열었다.
“여울 오빠, 나랑 잠깐…….”
똑똑.
그때였다. 노크 소리가 들리며 한 소녀가 얼굴을 빼꼼 내밀었다. 은서는 그녀를 확인하고는 벌떡 일어나 다가갔다.
“예서야!”
“은서야아!”
둘은 덥석 안고는 울음을 터트렸다. 학교가 휴교라서 반가운 마음도 있고 수언이 이렇게 된 것에 대해 서로 슬픔을 나누는 마음도 있었다.
예서는 여울과 보라에게 대충 인사를 하고는 수언을 바라보며 눈물을 계속해서 떨어트렸다.
“흡, 흑, 흐윽…… 오빠가 이, 이렇게 되면 나는…… 흑.”
예서는 아주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하지만 모두가 5레벨 이상의 헌터이니 그 소리를 듣지 못한 사람은 없었다.
“예, 예서야…….”
‘예서가 수언 오빠랑 언제 이렇게 친했지?’
왜 이렇게까지 서럽게 우는지 이해가 잘 가지 않았지만 은서는 그녀의 등을 토닥이며 울음이 그치기를 기다렸다.
“괘, 괜찮대. 다 괜찮다고 했으니까 곧 일어날 거야…….”
자신도 모르게 여울이 했던 말을 그대로 하는 은서였다.
소녀 둘을 가만히 바라보던 보라는 다시 자리에서 일어섰다.
“저는 잠시…….”
보라는 병실 안 화장실을 한 번 쳐다보았다가 밖으로 나갔다. 아무래도 여울이 병실에 있으니 소리가 신경이 쓰이는 것이었다.
그녀는 병실 밖에 위치한 공용 화장실에 들어가 스커트를 내리고 자리에 앉았다.
“흐음…….”
그렇게 볼일을 보며 생각에 잠겨 있을 때, 누군가가 문을 두드렸다.
똑똑.
‘뭐야, 빈자리도 많던데 왜…….’
“있어요.”
그녀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나 대답은 없고 무언가 사부작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래를 내려다 보니 하얀 연기가 들어오고 있었다. 보라는 숨을 참고 스커트를 급히 올렸다. 그러고는 허벅지 안쪽에서 마녀손톱을 꺼내어 쥐고는 여울이 준 팔찌의 보석을 누르려고 할 때.
쾅!
잠금장치가 부서지며 문이 활짝 열렸다. 밖은 뿌연 연기가 가득하고 앞에는 흐릿하게 의사 가운을 입고 마스크를 쓴 사내가 보였다.
훙!
수술용 장갑을 낀 그의 손이 확 뻗어졌다. 보라는 고개를 꺾어 옆으로 피하며 마녀손톱을 그에게 뻗었다. 그러나 걸리는 것이 없다. 허공을 찔렀다는 것. 다시 손을 회수하려고 할 때 바로 손목이 잡히며 밖으로 확 끌어당겨졌다.
자신보다 훨씬 빠르고 강한 힘이다. 민첩은 1레벨 위, 근력은 차이가 많이 나는 것을 보면 특성?
퍽!
사내는 보라의 뒷목을 수도로 내리쳐 기절을 시켰다. 몸에 힘이 풀린 그녀의 겨드랑이 사이에 두 팔을 집어넣고 잠시 있자 그 옆에 간호사복을 입은 여인이 휠체어를 들이밀었다.
그곳에 앉히자 그녀가 미리 준비한 환자복 상의를 덧입히고 마스크를 씌운 후에 담요로 하의를 덮었다. 그 행동은 매우 자연스럽고 빠르게 이루어져 10초도 걸리지 않은 듯했다.
사내와 여인은 보라를 데리고 화장실 밖으로 나오며 문고리에 걸린 공사 중이라는 팻말을 떼었다.
스윽.
그들 옆으로 한 소녀가 지나쳐가다가 뒤돌아섰다.
“음? 아까 그 언니…… 아닌가?”
예서는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시선을 거두고는 다시 갈 길을 갔다.
* * *
“으, 음…….”
보라는 몸을 뒤척거리다가 눈을 번쩍 떴다. 낯선 천장이 보인다. 불현듯 떠오르는 마지막 기억에 그녀는 상체를 벌떡 일으키고는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사방이 막혀 있고 창문 하나 없는 방이다. 약 30평 정도로 방 하나 크기로는 꽤 큰 곳이다. 욕실, 액자, 침대, 테이블, 서재, TV, 환풍구……. 창문만 없을 뿐이지 아주 제대로 꾸며져 있다.
귀빈을 납치했을 때 대우해 주는 척하며 감금하기 딱 좋은 곳이다. 이런 공간을 만들어 놓은 것을 보니 평소에도 납치, 감금, 살인 등등을 서슴없이 하는 자들임이 분명하다.
퍽! 퍽!
주먹으로 벽을 두드려 보았지만 안에서 소리가 울리지 않는다. 꽉 차 있는 느낌이다. 최소 벽 두께는 1.5미터 이상, 공간 활용에는 매우 비효율적이지만 납치 대상이 헌터임을 생각해서 만든 공간. 재앙 후에 만들어진 곳이라는 뜻이다.
‘이놈들 아주 작정을 했구먼?’
똑똑.
노크 소리에 보라의 시선이 문으로 갔다. 금속으로 된 문은 아래쪽이 직사각형으로 여닫을 수 있는 공간이 있다. 손만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크기인 것으로 보아 배식구로 보인다.
“주보라 님, 들어가겠습니다.”
중저음의 목소리와 함께 ‘삐빅’ 하는 전자음이 들려왔다.
찌직.
보라는 스커트 한쪽을 찢고는 팔다리를 풀었다. 몸을 구속하고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조금 부끄럽지만 기절하고 난 후에 숙면을 취했는지 머리도 맑고 몸도 가볍다.
지이이잉.
자동식 문이 옆으로 열리며 한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머리카락으로 한쪽 눈을 가린 사내, 전에 마주쳤던 자다.
보라는 바닥을 박차며 바로 그의 얼굴을 향해 발을 뻗었다.
슉!
사내는 고개를 틀어 발차기를 피하며 보라의 발목을 한 손으로 잡았다. 그녀의 한쪽 발이 쭉 올라가 그의 어깨에 걸치고 있는 모양새다. 그는 눈을 살짝 내려 그녀의 다리 끝부분의 그 은밀한 곳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부끄러움도 없으시군요.”
“당신들 따위에게 그딴 거 없어.”
보라는 신경질적으로 다리를 털어 그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고는 뒤돌아서서 올라간 스커트를 내렸다.
사내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고개를 깊이 숙였다.
“무례를 용서하십시오. 정식으로 인사드리겠습니다. 오태현 실장이라고 합니다.”
그의 태도나 밝히는 타이밍을 보면 본명으로 생각된다. 그가 이름을 밝힌 이유는 이제 말해 줘도 된다고 판단한 것이다. 강제로 납치해 놓고 본명을 밝힌다? 앞으로도 절대 풀어 줄 생각이 없다는 뜻이다.
“무례한 건 아시네요. 절 이제 어쩔 생각이죠?”
“전에 말씀드렸던 일을 하시면 됩니다.”
보라는 두 팔짱을 끼고 가슴을 받치며 그를 흘겨보았다.
“자기 찬 여자한테 지저분하게 질척대는 스타일이죠? 끈질기게 붙으시네.”
“짐작하셨겠지만, 선택권이 있는 건 아니었습니다.”
“강제라…… 그쪽은 저를 잘못 건드리셨어요. 제 뒤에는 강제라는 명사가 성립되지 않는 사람이 있거든요.”
보라의 말에 오실장이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희망을 버리십시오. 신한이 알 수도 없겠거니와, 설령 안다고 해도 우리를 흔들 수 없습니다. 우리의 힘은 신한을 능가합니다.”
“신한 아닌데요?”
그 말에 오 실장은 멈칫했다가 뒤돌아섰다.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해 보이는군요. 그럼, 편히 쉬십시오.”
‘특성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년이 허세는…… 곧 그 콧대 높은 자존심도 몸도 꺾일 것이다.’
* * *
신한병원 상황실.
여러 사람들이 한곳에 둘러서서 컴퓨터 화면으로 어떤 영상을 보고 있다.
“여기서 보라 씨가 화장실을 들어가고…… 그 이후에는 아무도 나오지 않아요. 화장실은 외부로 나갈 수 있는 크기의 창문이 아니고요. 누군가가 CCTV를 조작한 거죠.”
은서는 주먹을 꽉 쥐며 중얼거렸다.
“누가 우리 언니를…….”
보라와 6개월을 동고동락했던 은서다. 누구보다 더 정이 많이 들었을 것이다. 여울은 주머니에서 부서진 팔찌를 꺼내어 보았다.
전에 한성그룹을 처리하고 자신이 주었던 팔찌다. 보라가 없어지고 바로 추적해 봤지만 병원 밖 도로가에 부서진 채로 발견되었다.
‘시이, 보라를 찾아봐.’
‘삑!’
잠잠했었는데 지금 일이 터진 것을 보면, 그때 수언을 치료하느라고 능력을 보였던 것이 의심이 된다. 신한이라는 울타리가 있으면서도 그녀를 건드린 곳, 신한과 맞먹거나 그보다 큰 단체, 또는 죽을 때까지 그녀를 숨길 수 있는 능력이 있는 단체다.
병실로 올라온 여울은 평안한 얼굴로 눈을 감고 있는 수언을 바라보았다.
‘수언아, 일어나라, 네가 은서를 지켜 줘야지…….’
여울은 고개를 돌려 은서를 보고 입을 열었다.
“마족들은 이런 건물 안까지 들어오지 않아. 분명한 목표가 있을 때가 아니면.”
“응? 분명한 목표?”
“아빠 같은 사람.”
“음…….”
은서는 쉽게 이해하지 못했다. 그럴 수밖에 없다. 여울은 말을 이었다.
“몬스터를 제외하고는 우리 은서와 수언이에게 위협을 가할 것이 없다는 거야. 무슨 일이 생기면 무조건 휴대전화 전원 버튼 세 번 누르고, 사 와코를…….”
은서는 돌연 여울의 입술에 자신의 검지를 가져다 대었다. 그리고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아빠, 나 걱정 말고 얼른 언니 구해 줘.”
여울은 말을 멈추고는 그녀의 고사리 같은 손을 붙잡고 고개를 끄덕였다.
“응, 아빠가 보라 언니 금방 데리고 올게.”
여울은 자리에서 일어서고는 바로 뒤돌아섰다. 돌아선 그의 얼굴은 은서를 마주했을 때와는 다르게 살기가 넘치고 있었다.
‘감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