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 Hunter Killer RAW novel - Chapter 107
107
107. 허락
‘회장 이진호’라고 적힌 명패가 반짝이는 집무실.
TV에는 여울의 S랭크 발표 기자회견이 진행되고 있다.
-이건 부탁이 아니다. 협박이다.
“허헛, 이거 무섭구먼. 주보라가 비빌 언덕이 신한이 아니라 저자였군?”
오 실장이 짧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런 것 같습니다.”
“오 실장이 보기에는 어떤가? 저 친구, 잡을 수 있겠나?”
“전에 A랭크로 등록되어 있다가 이번에 재검사로 S랭크로 올라선 자입니다. 이제 막 턱걸이한 자에게 질 자신은 없습니다.”
“하하하! 그 자신감 좋구먼. 하지만 미친개를 잡는 데 오 실장을 쓸 수는 없지. 자네가 부상이라도 당하면 내 권위도 내려가.”
“부상, 당하지 않겠습니다.”
“아니야, 아니야. 저기 일본에 저놈과 딱 어울리는 미친개가 하나 있지. 마사키라고 했던가…….”
“접촉해 보겠습니다.”
오 실장은 회장에게 허리를 깊이 숙이고는 집무실을 빠져나왔다. 그러고는 곧장 지하로 향했다.
지이잉.
스스슥.
방문이 열리자 뒷걸음질을 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방 안은 칠흑같이 어둡다. 오 실장이 손짓하자 불이 켜지며 방구석에 쪼그리고 있는 보라가 보였다. 침상과 바닥, 테이블과 화장실 등 이곳저곳에 2센티미터는 될 법한 크기의 붉은 개미들이 짓눌려 죽어 있다.
“흐, 흐으…….”
그녀는 불빛을 보고는 눈을 확 가렸다가 천천히 적응해 갔다. 오 실장은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가 한쪽 무릎을 꿇고는 몸을 살펴보았다.
“놀랍군요. 웬만한 헌터들도 천 마리만 풀어 놓으면 하루 만에 해골만 남아 있는데…….”
오 실장은 자리에서 일어나 의자에 앉으며 말을 이었다.
“3일. 3일 동안에는 전처럼 귀빈 대접을 해 드리지요. 그동안 오늘 하루를 되새기며 긍정적인 답변을 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 이후에 어떤 삶을 살아갈지는 주보라 씨의 결정에 달렸습니다.”
“꺼…… 꺼져.”
그녀의 말에 오 실장은 살짝 한숨을 내쉬고는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문이 닫히기 전에 반쯤 고개를 돌렸다.
“고고한 여왕처럼 살아갈 것인지, 정신과 몸까지 철저히 더럽혀지고 노예처럼 살아갈 것인지 잘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지이이잉.
보라는 오 실장이 나간 문을 바라보다가 바닥에 널브러진 붉은 개미의 사체들을 보며 몸서리를 쳤다. 지난 밤, 불이 꺼지며 들어왔던 개미들은 자신의 살을 가차 없이 파먹어 지옥 같은 밤을 보내었다.
차라리 전에 납치당했을 때처럼 팔을 하나 자르고 회복되는 것을 보는 실험을 하는 게 낫다고까지 생각되는 보라였다. 그녀의 눈동자는 힘없이 풀려 있었다.
‘나, 나 좀 구해 줘…….’
* * *
슥, 스윽.
여울은 휴대전화로 보내온 사진 파일들을 넘겨보고 있었다. 신한병원에서 근무하는 남자들 중에 여울이 말한 체형과 일치하는 사람들의 사진이다.
여울은 그중에서 몇 명을 더 추리고는 신한병원에 직접 가서 그들을 두 눈으로 확인했다. 그러나 그때 그 기억 속에서 봤던 자와 완벽하게 일치하는 사람은 없었다.
“흠…….”
그렇다면 그는 외부인이 확실하다. 여울은 바로 지천욱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울입니다. 전에 말했던 외형의 남자 중에 대기업과 엮인 자를 수색해 주십시오. 예, 180~185, 목덜미를 보아 피부는 하얀 편인 듯합니다. 예, 그럼.”
여울이 전화를 끊자 은서와 같이 이야기 중이던 예서가 얼굴을 들이밀었다.
“아! 이게 왜 이제 생각났지? 아저씨, 저 생각났어요! 저, 정확하지는 않지만…….”
예서는 보라가 납치된 날에 봤던 사람들과 상황을 상세히 이야기했다. 보라로 의심되는 여인이 휠체어를 타고 있었고, 의사는 마스크를 쓰고 있어서 얼굴을 제대로는 보지 못했지만 눈은 봤다고 한다.
일반인의 기억이기에 정확하지는 않지만 여울이 봤던 자와 외형과 머리카락까지 일치했다. 여울은 예서에게 얼굴을 가까이하며 물었다.
“의사하고 간호사 얼굴, 생각나는 대로 그려 보겠니?”
“아…… 간호사 얼굴은 생각이 아예 안 나고…… 의사 얼굴 한번 그려 볼게요.”
예서는 꽤 자세하게 그 의사의 눈을 그렸다. 문득 은서가 예서는 미술부에서 탐내는 인재라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여울은 예서가 그려 준 그림을 지천욱에게 전송하기 위해 사진을 찍었다. 그때, 귓가에서 정보부의 소리가 들려왔다.
-외부에서 S랭크 헌터 밀입국 확인. 국적 일본, 이름 마사키, 연결 그룹 확인 중.
-확인, 세이버.
세이버. 재계는 물론 길드도 대한길드가 나타나기 전까지 대한민국 1위에 우뚝 서 있던 그룹이다. 지금도 귀환자들이 나타나자마자 어마어마한 돈을 들여 대한길드만큼이나 세이버길드에 가입되어 있는 자들이 많았다.
무엇 하나 부러울 것도, 이루지 못할 것도 없는 자들이 보라를 왜? 여울은 일단 지천욱에게 사진을 전송하고는 전화를 걸었다.
“예, 들었습니다. 제가 보낸 사진을 토대로 세이버 내의 인물들을 조사해 주십시오. 예, 그럼.”
그리고 얼마 후, 휴대전화로 세이버그룹에 관련된 사람들의 사진이 전송되기 시작했다. 몇 분 단위로 계속 전송되는 것을 보면 실시간으로 보내는 듯했다.
여울은 바로 예서에게 사진을 보여 줬다. 예서는 한 사람 한 사람 입을 가려 가며 보다가 머리카락으로 한쪽 눈을 가린 사람에서 멈춰 섰다.
“흐음…… 그때는 머리를 올리고 있던 거 같아서 잘 모르겠는데…… 한쪽 눈은 비슷한 거 같아요.”
“그래, 고맙구나.”
여울은 예서를 보며 고개를 한번 끄덕이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같이 사진을 확인하던 은서가 그에게 물었다.
“아빠, 이제 보라 언니 찾을 수 있는 거야?”
“응, 예서랑 같이 수언이 잘 봐주고 있어.”
여울은 그렇게 말하고는 바로 뒤돌아서 병실을 나섰다.
지천욱에게 확인해 본 결과 눈을 가린 사내는 세이버그룹은 물론 헌터 등록도 하지 않은 자였다. 그러나 마사키라는 S랭크 헌터를 들일 때 그가 대표로 가서 맞이했다고 한다.
S랭크로 발표를 하니 자신들도 S랭크만 있으면 상대가 가능하다고 판단하고 외부에서 들인 듯하다. 결과적으로 SS랭크로 발표하지 못한 것이 이들을 드러내는 데 큰 역할을 한 셈이다.
이제 결정적인 것은 직접 가서 확인한다. 여울은 세이버그룹 본사가 있는 천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 * *
해당그룹을 상징하는 초록색 간판이 걸려 있는 거대 빌딩이 보인다. 여울은 그 건물의 입구가 훤히 보이는 원룸을 하나 잡고는 안에서 대기 중이다. 혹시 자신이 놓칠 수도 있어 시이에게도 그 입구에서 머리카락으로 한쪽 눈을 가린 사내를 찾도록 지시했다.
그리고 반나절 후, 밖이 어두워지자 수트를 입은 한 무리의 사내들이 빌딩 밖으로 나왔다. 동시에 시이의 알림이 들려왔다.
‘삑삑! 삐익!’
창문을 열고 안력을 돋워 보니 다섯 명 중에 가장 선두에 선 남색 수트의 사내가 눈에 띄었다.
‘그자다!’
‘시이, 200미터 유지하면서 따라붙어.’
‘삑!’
9레벨에 버금가는 마족도 시이를 100미터쯤부터 눈치챘다. 노출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외부 S랭크를 들였다면 그 힘과 동일하거나 그 이하, 200미터면 시이가 들킬 일은 없을 것이다.
여울은 건물 옥상으로 올라가 건물과 건물 사이를 뛰어넘으며 시이의 뒤를 쫓았다.
그를 태운 차가 멈춰 선 곳은 20분 거리에 있는 세이버길드 본부였다. 여울은 은신을 하며 아래로 뛰어내렸다.
‘시이, 멀리서 그가 나오는지 지켜봐.’
‘삐삑.’
시이는 새끼손톱만 하지만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헌터들에게 들키기 쉽다. 하여 여울은 직접 그의 뒤를 따라갔다.
그는 4층에 위치한 사무실에 들어갔다. 잠시 문이 열린 틈으로 본 그의 명패에는 오태현이라고 쓰여 있었다.
언제 나올지 모르니 은신이 풀리기 5분 전까지만 기다리다가 화장실로 가려고 했는데 그가 서류를 들고 금세 나왔다. 그러고는 다시 차를 타고 이동했다.
‘세이버길드에는 없는 건가? 아니면 샅샅이 뒤져 봐야 하나? 일단 되는 데까지 그의 뒤를 쫓는다.’
오태현은 다시 그룹 본사로 돌아왔다. 여울은 은신을 하고는 그의 뒤를 바짝 쫓았다.
그는 네 명의 경호원들을 물리고는 임직원 전용 엘리베이터를 탔다. 그리고 지하 4, 5층을 같이 누르자 지문을 인식하는 창이 떴다. 그가 버튼 아래쪽에 엄지손가락을 대자 그제야 엘리베이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기밀층, 이제 가는 건가.’
엘리베이터는 체감상 지하 6층에서 멈춰 섰다. 문이 열리자 사면이 합금으로 이루어진 복도가 펼쳐졌다. 웬만한 총알로는 흠집 하나 내기 힘들 듯이 견고해 보였다.
복도를 따라 드문드문 벽만큼이나 단단해 보이는 문이 보였다. 그 문은 아래에 마치 교도소의 독방처럼 배식구로 보이는 것이 있었다. 여울은 더욱 발소리를 죽이며 그의 뒤를 따랐다.
저벅저벅.
맞은편에는 한 사내가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다. 뒤로 넘긴 곱슬머리, 가자미 같이 쭉 째진 눈, 얍삽해 보이는 턱수염, 사진으로 보았던 S랭크 헌터 마사키다.
오태현은 마사키에게 거의 다다랐을 때 중얼거렸다.
“특성이 은신인 줄은 몰랐습니다. 그런데 내가…… 관찰이라서 말입니다!”
그가 외침과 함께 바로 뒤돌아서며 여울에게 단검을 내던졌다. 여울은 고개를 옆으로 틀어 그것을 피하며 은신을 풀었다.
타다다다닥.
그와 동시에 오태현과 마사키의 뒤로 수십 명의 사내들이 소총을 들고 와 여울에게 겨누었다. 마사키는 여울과 소총을 든 사내들을 번갈아 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이거, 내가 나설 필요 없는 거 아닌가?”
오태현은 마사키와 함께 뒤로 걸음을 물리며 말했다.
“귀한 몸 함부로 쓰시면 안 되죠. 쏴라!”
그의 명령과 함께 수십 구의 총구에서 불꽃이 터져 나갔다.
타당! 타다다당!
여울은 날아오는 총알을 바라보며 품에서 갈락의 대검을 꺼내어 앞을 막았다.
타당! 타당! 타다당!
몇몇의 총알들이 옷깃을 스치고 어깨에 박혔지만 전신을 감싼 다크니스 스텐을 뚫지는 못했다.
그렇게 30초간 총알 세례를 퍼붓고는 장전을 위하여 잠시 소강상태가 들어갔다. 오태현은 아무런 타격도 없어 보이는 여울을 보고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때 마사키가 검을 뽑으며 말했다.
“역시 S랭크는 S랭크라는 말인가?”
마사키는 검을 앞세우며 여울에게 달려들었다. 그가 나서는 것을 보고 오태현은 고개를 돌려 손짓으로 부하들을 물렸다.
그때, 검은 무언가가 그의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다.
콰아아앙!!
복도 끝에 커다란 대검이 깊숙이 박혔다. 대검에 배가 뚫린 채로 벽에 매달려 있는 자는 바로 마사키였다.
“컥, 커헉…….”
그가 나선 지는 채 3초도 지나가지 않았다. 65억짜리가 3초도 버텨 주지 못한 것이다. 예상했던 그림과는 너무 달라서 순간 상황을 받아들이는 데 시간이 걸리는 듯했다.
오태현은 눈을 몇 번 깜빡이며 고개를 느릿하게 돌려 여울을 보았다. 그의 오른손에는 검고 진득한 무언가가 흘러나와 뾰족한 도의 형태를 이루는 중이었다. 저런 무기는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다.
그가 여유로운 걸음으로 다가오며 입을 열었다.
“누가…… 여길 나갈 수 있다고 허락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