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 Hunter Killer RAW novel - Chapter 110
110
110. 미국행
신한길드 소유 폐학교의 강당.
여울은 은서의 이끌림에 이곳으로 도착했다. 은서는 강당 중앙에 자리를 잡고 그에게 말했다.
“아빠, 사 와코 한번 봐줄래? 환상은 관찰이 되질 않아서. 근데 뭔가…… 엄청 강해, 생각했던 것보다 더.”
“음…… 불러내 봐.”
“웅, 잠깐만…… 후우.”
은서는 서너 걸음 떨어져서 한숨을 길게 내쉬고는 중얼거렸다. 그러자 곧 바닥에서 원형의 검은 공간이 생겨나더니 그곳에서 갈색 긴 생머리에 자주색 코트를 입은 여인이 리프트를 탄 것처럼 천천히 올라왔다.
스으으으.
사와코가 나타나자 주변 공기부터가 달라졌다. 그녀 특유의 나른하고 위험한 기운이 온몸을 감쌌다. 은서는 그 기운을 받아 내지 못하고 식은땀을 흘리며 뒷걸음질을 쳤다.
‘하아…….’
그녀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소리가 아닌 것 같은 신비로운 음성을 내뱉으며 여울을 바라보았다. 한 손은 뒷짐을 지고 한 손은 검지로 아랫입술을 매만지고 있다. 마치 자아가 있는 듯한 행동이다.
느껴지는 힘은 매우 강하다. 전에 맞붙었을 때와 그리 차이가 나 보이지 않았다. 분명 실체감이 30퍼센트라고 했는데?
환상이 어떤 방식으로 죽인 몬스터의 환상을 불러내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사 와코 본인의 힘이 인간에게 담겨져 여울과 싸울 때 5할의 힘만 발휘했다면 환상 상태에서는 인간의 몸이 아니니 10할의 힘을 개방할 수 있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지금 이 강함은 예상을 훨씬 웃돈다. 한번 검을 섞어야 제대로 된 답이 나올 듯하다. 여울은 사 와코에게 시선을 고정시킨 채 걸음을 뒤로 물렸다.
“아빠한테 덤비도록 지시해 봐.”
“응, 사 와코, 아빠랑 싸워 봐. 다치지 않게.”
은서의 명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사 와코의 신형이 원래 있던 곳에서 사라졌다. 다시 나타난 곳은 여울의 코앞이다.
채쟁! 챙! 챙!
여울은 디카르를 소환하여 사 와코의 일본도를 정신없이 받아쳤다. 눈으로 보고 있는데도 저 도가 어떻게 저리 빨리 휘둘러지는지 의문이 들 정도다. 그녀는 정말 일본도에 특화된 듯하다.
은서가 분명 다치지 않게 싸우라고 한 것 같은데 이건 죽이려고 달려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실전을 방불케 한다. 여울은 강당 끝에서 끝을 넓게 활용하며 그녀의 반응 속도와 변칙 공격의 대응, 힘 등을 체크했다.
일본도를 휘두르는 속도는 단연 압도적이었다. 민첩 특성에 기존 민첩도 거의 최대치라고 생각하는 자신과 비견될 정도였다.
스르륵.
갑자기 사 와코의 검 끝이 흐릿해지더니 이내 온몸이 반투명해지다가 완전히 사라졌다. 소환 시간인 6분이 다 된 것이다.
여울은 디카르를 거두고는 은서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아무래도 그때 힘의 30퍼센트가 아닌 듯하구나. 이 정도라면 9레벨에서 약한 10레벨에 근접할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되는구나.”
“와아…… 10레벨이라니……. 근데 아빠한테는 저런 기운이 안 느껴졌는데? 아빠도 10레벨 아니에요?”
“사 와코는 환상이라서 자신의 힘을 숨기지 못하는 거야. 아빠는 숨기는 데 습관이 돼서 잘 내뿜지도 못해.”
“에이, 가끔은 나쁜 놈들한테 그런 느낌을 좀 보여 줘야 하는데.”
“하하하, 우리 은서 누가 괴롭히면 보여 줘야지.”
여울은 말을 마치고는 사 와코가 있던 자리를 슬쩍 보았다. 사 와코를 담은 인간의 레벨은 7이었다. 10레벨이면 마족의 본체의 힘을 거의 완벽하게 담을 수 있다고 알고 있다.
30퍼센트가 이 정도 힘이면…… 사 와코의 본체의 힘은 자신의 두 배는 될 것으로 추정된다.
앞으로 마족 본체와 싸울 일은 없지만 괜히 걱정이 된다. 한편으로는 언제든지 부를 수 있는 은서의 환상 사 와코가 이렇게 강하니 든든한 마음도 들었다.
은서도 무섭도록 강한 힘을 가진 사 와코를 얻은 것이 기쁜지 손바닥을 바라보며 씨익 미소 지었다.
“히…… 아빠, 나 레벨업 이제 엄청 빨리 할 수 있을 거 같아.”
은서는 병원에서 사 와코에게 상황을 정리해 달라고만 했는데 밖으로 나온 모든 몬스터를 처리하고 A등급 게이트까지 닫아 버렸다. 그 모든 것이 6분 만에 일어난 일이다.
게이트 안에서는 경험치를 더 준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정확한 누적 데이터는 없기에 속설로 돌고 있다. 그런데 거의 0퍼센트에 가깝던 은서의 경험치가 80퍼센트가 된 것을 보면 사실에 무게가 간다.
“사 와코가 잡는 경험치가 우리 딸한테 가는 건가?”
“응, 무섭긴 해도 사 와코 덕분에 하루 만에 80퍼센트 올렸어.”
“많이 올렸구나. 어서 레벨업해서 실체감 더 올리면 좋겠네.”
“응…… 아빠, 이제 내일 가는 거지?”
여울은 은서와 얼굴을 마주 보며 웃음 짓다가 그 질문에 순간 멈춰 섰다. 얼마 되지 않아 또다시 어딘가로 떠난다는 것이 미안하고 지켜 주지 못해서 불안하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곳으로 가야만 은서를 포함한 모두를 더욱 안전하게 만들 수 있으니 조금이라도 서두를 수밖에 없다.
“그래…….”
은서는 여울의 마음을 살피고는 더욱 밝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걱정 말고 잘 다녀오세요!”
“아마…… 거기서도 좀 오래 머물 거야. 그때까지 잘 지낼 수 있겠어, 우리 딸?”
“아빠가 방금 봤잖아. 나 사 와코도 있고 수언 오빠도 있고 보라 언니도 있어, 걱~쩡하지 마.”
여울은 자신에게 당찬 모습을 보이려는 은서의 마음을 읽고는 머리를 한 번 쓰다듬어 주었다.
* * *
은서의 학교는 휴교가 끝나고 등교를 하기 시작했다. 은서가 3학년 일진이자 헌터였던 빛나의 귀를 잘랐던 일은 자연스럽게 묻혔다.
그날 몬스터들의 습격으로 그들을 포함하여 많은 학생들이 희생당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직접 눈으로 본 아이들은 은서를 볼 때마다 그 장면을 떠올리며 무서워했다.
은서는 그 일 전부터 느꼈던 시선이기에 담담히 그 눈빛을 넘기며 조용히 학교를 다녔다.
보라는 금세 안정을 찾고 전과 같이 도도하고 엉뚱한 모습을 되찾았다. 하지만 가끔 길에서 검은 수트를 입은 사내들을 보면 움찔하거나 돌아서 가고, 어쩔 때는 길거리에 그냥 주저앉아 여울에게 데리러 오라고 전화를 할 때도 있었다.
그런 모습을 보면 어쩌면 퇴원을 빨리 하고 싶어서 안정을 찾은 척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했다.
띠리리리리, 띠리리리리.
이제 세 시간 뒤면 미국행 비행기를 타는데도 이렇게 또 전화가 울리고 있다.
“뭐지.”
-나 여기 모기바게트 사거리요…… 언능 와 주세요.
“난 이제 비행기 타러 가야 한다.”
-아이, 알아요. 아직 시간 남았잖아요. 저 데리고 같이 거기로 가요~ 은서도 학교 가서 배웅할 사람도 없잖아요. 내가 배웅해 줄게요. 안 그래도 오늘이 마지막이잖아요.
“……알았다.”
여울은 묘한 기분에 전화를 급히 끊고는 보라를 데리러 갔다.
그녀는 베이지색 원피스에 흰색 카디건을 걸치고 있었는데, 옷이 더러워지는 것은 상관없는지 보도 블럭과 도로 사이에 그냥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있다.
가까이 다가가자 그녀가 여울을 발견하고는 입가에 미소가 자연스럽게 번진다. 그 화사한 미소에 여울은 문득 의문이 들었다.
‘언제부터 내 얼굴만 보고 저렇게 환하게 웃었지?’
그 미소가 퍽 보기 좋으니 넘어간다.
여울이 다가오자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엉덩이를 털고는 바짝 붙으며 자연스레 팔짱을 끼웠다. 여울은 바로 손을 빼내고는 거리를 걷기 시작했다. 그녀는 입을 삐죽 내밀었다가 금세 표정을 풀고는 바로 옆에서 같이 걸었다.
“왜 길드 경호원을 두지 않지? 안 붙여 주나?”
“에이, 이렇게 전화만 하면 아무 때나 달려와 주는 사람이 있는데 뭔 필요예요~”
뒷짐을 지고 팔랑팔랑 걷는 그녀의 얼굴은 자신에게 고정되어 있다. 이 여자가 원래 이렇게 소녀스러웠나? 정신과 치료 이후에 성격이 바뀐 듯하다.
여울은 그녀의 검은 눈동자를 마주 바라보다가 휙 고개를 돌리고는 걸음을 옮겼다.
수원도시 전투비행장. 우리나라에서 세 개의 도시를 통틀어서 딱 하나 남은 비행장으로 모든 외국 일정은 이곳에서부터 시작된다.
그곳에 도착하니 이진태와 진 부장, 그리고 얼굴을 알지 못하는 중년인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기자들도 서른 명 정도 나와 있었지만 출국장 게이트 안으로 들어서자 수트를 입은 대원들이 그들을 통제했다.
보라가 여울의 옆에 딱 붙어 있기에 신분만 확인하려고 한 사내가 다가왔다. 보라는 그 수트 사내를 보고는 움찔하며 여울의 뒤로 숨어 두 손으로 그의 팔을 잡았다.
“흡…….”
그녀의 손끝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여울은 지금 이 순간 더욱 가녀리고 보호 본능을 일으키는 보라를 보며 다시 한번 다짐했다.
‘인간들은 절대로 내 주변을 건드릴 수 없도록 만들겠다.’
보라에게 다가가던 대원은 그 모습에 멈칫하고는 팔뚝을 꼬옥 감싼 그녀의 손을 보며 말했다.
“아, 부인이시군요.”
여울은 아무 말 없이 대원을 바라보다가 게이트를 지나갔다.
사방이 막힌 통로를 통해 비행기로 걸어가는 길, 떨림이 잦아든 보라가 작게 입을 열었다.
“왜 아무 대답 안 했어요? 기분 좋아서?”
“귀찮아서. 그런데 언제까지 따라올 거지?”
보라는 비행기 안으로 들어가는 입구 앞에 서 있는 중년인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까지, 저 아저씨들만큼은 배웅해야지.”
“흐음…….”
여울은 말없이 발을 떼었다.
이제 정말로 떨어질 시간이다. 여울은 뒤돌아서서 보라를 바라보며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그녀는 다시금 오리처럼 입을 한번 빼쭉 내밀고는 말했다.
“뭐야 그게, 멋대가리 없어, 진짜.”
그 말과 함께 두 걸음 떨어져 있던 보라의 몸이 움직였다. 청량한 풀 내음과 함께 그녀의 보드라운 볼이 목에 닿았다. 가느다란 팔은 자신의 허리에 둘러져 있다.
그리 속도가 빠른 것도 아니었는데 제대로 보지 못했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그녀는 이미 다시 한 걸음 떨어져서 싱그러운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얼른 다녀와요. 은서랑 같이 목 빠지게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여울은 흔들리는 동공을 간신히 진정시키고는 고개를 급히 끄덕이고 뒤돌아섰다. 귓가로 풋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다정해 보이십니다.”
비행기 안으로 들어가는 길에 이진태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여울은 굳이 설명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여 말없이 걸음을 옮겼다.
안쪽에는 최고급 안마 의자처럼 생긴 의자 스무 개 정도가 놓여 있고 중앙에는 검은 수트를 입은 다섯 명의 대원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이진태는 뒤따라오며 그들을 소개했다.
“이번 미국행에서 지금부터 한국에 돌아올 때까지 여울 님을 모실 대원들입니다.”
그들은 배꼽에 두 손을 올리고는 깊이 허리를 숙였다. 두 명은 여인, 세 명은 사내였다. 머리를 깔끔하게 넘기고 뒤로 묶은, 가운데 여인이 말을 이었다.
“이번 미국행 안내와 통역을 맡게 된 김시연입니다.”
여울은 건조한 눈으로 그녀 뒤에 있는 사람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나머지는?”
그의 물음에 이진태가 바로 대답했다.
“경호…… 원입니다.”
진태도 여울에게 경호원을 붙인다는 말이 썩 입에 붙지가 않는지 뜸을 들였다.
“필요 없습니다.”
“아아, 네, 당연히 여울 님이 경호가 왜 필요하겠냐마는…….”
진태는 눈동자가 왔다갔다하다가 안내자 김시연에게 시선이 멈췄다.
“안내, 안내하는 김시연 씨도 경호가 필요하니까 안심하고 일을 하기 위해서 같이 붙이려고 하는데, 불편하시다면…….”
여울은 그린 듯이 반듯한 눈썹이 두드러지는 김시연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전혀 몰랐던 사실에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다.
당연한 일이다. 진태는 여울의 원정에서 우리나라가 대우받기를 원했다. 다른 나라에, 특히 헌터강대국 미국에서 아무리 여울의 스타일이 있다고 해도 딸랑 둘만 온다면 결과가 발표되기 전까지는 무시받을 것이 분명했다.
그의 속내를 모르는 여울은 자리에 앉아 앞으로 시선을 고정시키며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같이 가죠.”
“하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이 친구들에게도 좋은 경험이 될 것입니다.”
“예.”
“그러면 귀국 때 뵙지요.”
“가십시오.”
여울은 진태에게서 눈을 거두고는 창밖을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