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 Hunter Killer RAW novel - Chapter 111
111
111. 무시
진태가 밖으로 나가자 시연이 다가와 말했다.
“헌터님, 기본적인 안내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본 MS01호는 마나 에너지로 운행되는 국내 최초의 비행기로 최고 시속은 800~2,000킬로미터…….”
여울이 한 손을 들어 보이자 그녀는 말을 멈췄다.
“그만, 가서 쉬세요. 경호원분들도.”
“아, 옙.”
시연은 진태가 했던 말을 떠올리며 바로 물러났다.
‘그분은 두 번 말하게 하는 걸 싫어하신다.’
네 명의 경호원들도 고개를 살짝 숙이고는 뒤쪽으로 가서 자리에 앉았다.
이들은 수원도시 소속 헌터들 중에서도 상위 1프로 이내의 A랭크 헌터들이다. 시 헌터들은 평균 랭크가 낮은 만큼 이들의 프라이드는 하늘을 찌를 듯이 높았다. 그리고 성은 다르지만 이름이 민우, 민혁, 민수, 민아로 모두 가운데에 민짜가 들어간 덕분인지 유대감도 남다르게 두터웠다.
그중 한 사내가 작게 중얼거렸다.
“진후 헌터님도 아니고…… 세 번째 S랭크인데 우리가 경호해야 할 급인지 아직도 나는 모르겠다.”
“민우, 조용히 해. 저래 보여도 S랭크다. 들릴라.”
민우는 김진후와 대한길드의 돌격을 최초로 목격한 헌터로 그 이후부터 그를 롤모델로 삼고 있는 자다.
“헌터분이 싫다는데 이 부장님이 붙인 거잖아, 부장님 말대로 우리는 저 안내하는 여자 지키는 거라고 생각하자.”
“그러면 더 어이가 없지. 일반인을 지키는데 우리 넷이 경호를 나서다니.”
“까라면 까야지. 덕분에 UST도 구경하고 좋지 뭐. 다들 조용히 가자.”
여인, 민아의 목소리를 마지막으로 그들은 조용해졌다.
경호원들을 처음 마주했을 때는 깔끔하고 단정한 외모에, 날쌔 보이는 몸매가 마치 날이 선 칼 같은 느낌을 받았는데, 그 잠깐 사이에 투덜대는 것을 보니 겉과는 달리 재미있는 구석이 있는 듯하다.
여울은 올라간 한쪽 입꼬리를 내리며 바깥을 쳐다보았다. 손을 뻗으면 닿을 것 같은 새하얀 구름들이 끝없이 펼쳐져 있는 것을 바라보고 있자니 갑자기 보라가 떠올랐다. 그녀가 다가올 때 났던 풀 내음, 그 부드러운 볼의 촉감이 생생히 느껴진다.
그는 고개를 털어 내고는 옷깃을 걷어 어깨를 확인했다. 어느새 두 자리 수, 76으로 줄어들어 있다. 이번에 미국에 가서 측정을 하고 난 후에 그곳과 붙어 있는 나라들은 모두 돌아다니며 마족에 관련된 일을 마무리 지을 것이다.
* * *
미국 휴스턴에 위치한 헌터 능력 측정 장치 연구소 본부 UST.
연구소장 데이빗은 다리를 꼰 채 자신의 책상 위의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다.
-한국 헌터 방문, 측정 요청
“하핫.”
데이빗은 그 이메일을 보며 코웃음을 쳤다. 인구수에 비해 헌터가 많아서 콧대가 꽤 높아진 데다가 최근에 S랭크가 둘이나 생긴 나라 한국이다. 전에는 도와 달라고 그렇게 매달리던 나라가 이제는 자신들의 권위를 이용해 먹으려고까지 한다.
한국에서 S랭크가 둘이나 나오자 타국에서는 측정 장치를 문제 삼았다. 한국 측정에 신용이 가지 않는다는 발언이 나오는 것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능력이 확실한 세 번째 S랭크를 이곳에 보내어 세계에서 인정받게 하여 국력을 더욱 굳건하게 하고 싶어 하는 것이 분명하다.
데이빗은 다리를 책상 위 모니터 바로 앞에 올리며 휴대전화를 꺼내 들었다.
“크레크, 자네 지금 레벨이 어떻게 되지? 그래? 역시…… 이번에 재검사 받아 보는 거 어떤가? 알았네, 고맙군.”
크레크는 미국의 6번째 S랭크로 데이빗과 함께 케라브에서 머물던 자다. 그 전에 측정 장치 1세대 때는 300이상 측정이 안 되어서 S랭크를 받았지만 재검사를 받으면 분명 SS랭크를 받을 것이다.
데이빗은 여울과 크레크를 같은 날에 검사를 받게 하여 한국 헌터의 기사를 묻히게 만들 생각이다.
* * *
도착 시간이 다다르자 김시연이 자리에서 일어나 여울에게 다가갔다. 그가 눈을 감고 있자 시연은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한쪽 무릎을 굽히고는 그의 귓가로 입을 가까이 대었다.
“이…….”
시연이 말을 꺼내기도 전에 여울이 눈을 뜨고는 살짝 거리를 두며 물었다.
“뭡니까.”
시연은 일어서서 차렷 자세를 취하며 말했다.
“이제 30분 후면 휴스턴에 도착합니다.”
여울은 그녀를 가만히 바라보며 생각했다. 이진태가 자신을 대하는 것을 보면 분명히 인정받는 안내와 최고의 실력을 지닌 경호원을 배치했을 것이다. 그런데 눈치는 물론 일 처리에 있어도 고지식한 것을 보니 그가 실수를 했나 싶었다.
“왜…… 그러십니까?”
갸우뚱거리며 눈을 반짝이는 그녀의 얼굴을 마주하니 왜 그런지 알 것 같기도 하다. 능력보다는 얼굴을 따지는 자들이 많은 것이다.
“아닙니다. 가서 앉으세요.”
“예, 그럼.”
곧이어 비행기가 착륙했고 밖으로 나오자 수트를 입은 네 사람이 마중을 나와 있었다. 그들의 옷을 보자 여울은 자연스레 보라가 떠올라 머리를 털었다.
시연이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조촐하네요.”
경호원들도 따라서 투덜거렸다.
“여긴 S랭크가 흔하다 이거지.”
“17명이면 흔한 것도 아닌데…….”
여울은 계단으로 발을 디디며 말했다.
“갑시다.”
한 사내가 여울에게 손을 내밀었다.
“반갑습니다. UST 연구소 수석연구원 제임스라고 합니다. 방문을 환영합니다.”
김시연이 여울의 옆에 딱 붙어서 바로 통역을 했다. 여울은 제임스의 손을 살짝 잡았다가 놓았다. 그는 미세하게 미간을 좁혔다가 펴고는 한 손으로 에스코트를 했다.
“가시죠.”
UST는 각 나라에서 찾아오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본부에 소음 공해를 끼치지 않는 거리에 비행장이 설치되어 있다.
연구소로 가는 길, 지나가는 중에 여울 일행을 본 미국인들이 수군거렸다.
“작은 나라에서 S랭크 하나 나왔다고 난리를 치네. 원정 검사를 다 하고.”
“S랭크라면서 경호원만 다섯 명이네. 부끄러워서 못 보겠다. 어휴, 내 눈.”
“우리는 재검사만 하면 SS랭크가 확실한 사람이 셋이나 있는데…… 한국이 작긴 작아.”
입고 있는 유니폼이나 명찰을 보면 UST 직원들이 분명한데 거의 대놓고 여울 일행을 씹어 대고 있었다. 외국인이라고 더 안심하고 뒷담을 하는 듯했다.
시연은 듣는 대로 바로 여울에게 통역을 했다.
“작은 나라에서 S랭크…… 아.”
그녀는 그제야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입을 다물었다. 여울이 이런 일에 신경을 안 써서 그렇지, 다른 고위급 권위자였다면 큰일을 치렀을지도 모른다.
“안 해도 됩니다.”
“네, 넵…….”
그녀는 그렇게 꽤 오랫동안 고개를 숙이고 아무 말 없이 뒤를 따랐다.
수석 연구원이라고 소개했던 제임스는 여울 일행에게 숙소를 안내해 주었다. 이곳에서는 정확한 측정을 위하여 측정 장치에서 테스트 이후에도 제대로 결과가 나오려면 일주일이란 시간이 걸린다.
한국에서도 S랭크는 카메라 분석이다 뭐다 해서 그 정도의 시간이 걸리는 것을 보면 별반 다를 바는 없어 보인다.
숙소는 연구소 옆에 딸린 작은 별채였다. 좋긴 하지만 여섯 명이 쓰기에는 작은 곳이다.
“죄송합니다. 어제 귀한 손님이 오셔서 큰 별채가 없네요.”
그의 말에 시연의 얼굴이 순간 굳었다. 경호원들도 살짝 굳어졌다. 여울은 아무 말 없이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의 뒤통수에 대고 제임스의 말이 이어졌다.
“그럼 쉬십시오. 측정은 내일 아침 10시부터 가능합니다.”
시연의 통역에 여울이 뒤돌아섰다.
“지금 바로는 안 됩니까?”
“방금 오셨으니 오늘은 여독을 푸시고 내일 최상의 상태로 측정하시기를 추천합니다. 저희도 헌터님 측정 전에 기계를 한 번 더 점검을 하려고 합니다.”
그의 말에 경호원 중 한 명이 중얼거렸다.
“미리 해 두지 않고…….”
“알겠습니다.”
“예,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제임스는 고개를 까딱하고는 문을 닫고 사라졌다.
문이 닫히자 여기저기서 작은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안도의 한숨 소리. 그래도 타국에서 한국 사람들끼리 남았다고 급 긴장이 풀린 것이다.
여울이 방으로 가는데 시연이 그 뒤를 바짝 따라왔다. 여울은 멈추고 뒤돌아서서 말했다.
“뭡니까?”
“아, 그게…… 저희는 어떻게 할까요?”
그녀는 두 손으로 뒤에 경호원들을 가리켰다. 그들도 어정쩡하게 서 있는 것이 보인다.
“쉬세요. 내일 봅시다.”
“네, 쉬십시오!”
그녀는 90도로 허리를 꺾으며 우렁차게 인사를 건넸다. 은근히 기분을 잘 나타내는 성격인 듯하다.
문 너머로 경호원들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분명 미리 얘기했을 텐데 중요한 손님은 개뿔.”
“진짜 대접 거지같이 하네. 아무리 그래도 우리나라 S랭크한테. 좀 열 받을라고 한다.”
“네가 열 받으면 뭐 어쩌게?”
“어쩌긴, 식혀야지.”
“우리 진후 님이었으면 이런 대접 안 받았을 텐데.”
“어휴, 빠돌이.”
“닥쳐.”
그들은 서로 꽤 허물이 없는 사이인 것 같다. 여울은 그들의 대화를 들으며 스르르 잠이 들었다.
아침이 되어 일어나 밖으로 나가니 이미 검은 수트를 제대로 차려입고 대기하고 있는 경호원들과 김시연이 보였다. 시연이 여울을 발견하고는 물었다.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여울 님, 언제 측정을 받는다고 전달할까요?”
“10시.”
“아, 네 알겠습니다.”
시연은 바로 별채에 있는 인터폰으로 쪼르르 달려갔다. 그러더니 얼마 후에 난감한 표정으로 다가와 말했다.
“저기…… 여울 님, 죄송하지만 그들이 아직 준비가 안 되었다고 12시 이후에 하자고…….”
“그러죠.”
“아, 네, 그럼 12시로 전달하겠습니다.”
여울의 시원스러운 대답에 시연은 금세 밝은 표정을 지으며 다시 인터폰이 있는 곳으로 갔다.
아침 식사를 하는 자리, 여울의 말에 경호원들과 시연도 같이 식사 중이다. 하루 지났다고 편해졌는지 아니면 여울의 편을 드는 말이기 때문인지 경호원들이 바로 앞에서 투덜거렸다.
“이놈들…… 무시도 정도껏 해야지…….”
“한국이 완전히 독립하고 자기네 도움 안 받으니까 이럴 때라도 기를 죽이고 싶은 거지.”
“하여튼, 속 보이는 것들이네.”
시연은 조용히 여울의 눈치를 보면서 식사를 했다. 모두 식사를 마치고 여울이 밖으로 나가려고 하자 시연이 다가와 물었다. 다른 경호원들은 경직되었다. 그가 나간다면 무조건 따라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여울 님, 어디 나가십니까?”
“앞마당 갑니다.”
“앗, 넵.”
앞마당은 잔디가 잘 다듬어져 있고 테이블과 벤치가 놓여 있었다. 여울은 그곳에 앉아서 가만히 바람을 쐬었다.
어느새 경호원들도 슬금슬금 나와 겉옷을 벗고는 몸을 풀더니 자기들끼리 대련을 하기 시작했다.
여울이 보고 있어서인지, 오랜만에 몸을 움직여서인지 많이 굳어 있다. 쓸데없는 잡동작과 허수가 많다. 그런 건 마족과 싸우는 게 아니라면 불필요하다. 몬스터에게 허수를 쓴다고 해서 통하기나 하겠는가?
여울은 그들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그런데, 다들 랭크가 어떻게 되십니까?”
경호원들은 모두 순간 멈칫했다. 아직 몰랐다는 것에 적잖은 충격을 받은 것이다. 민우가 어깨를 피며 말했다.
“모두 A랭크입니다.”
여인, 민아가 한 손을 들며 말을 이었다.
“전 여기 오기 직전에 A랭크 달았습니다.”
“그렇군요.”
그렇게 건조한 대답 이후에 여울의 고개가 다시 돌아갔다. 민우의 한쪽 눈썹이 살짝 올라갔다. 자신들이 대련을 하는 모습을 보고 무시하는 느낌을 받은 것이다.
레벨이 낮아 랭크만 여울보다 낮을 뿐이지 기술은 한 수 위라고 생각하는 민우는 발을 떼었다. 민우가 하려는 행동을 눈치챈 민수가 그의 어깨를 잡으며 말렸다. 그러나 민우는 그의 손을 쳐 내고는 여울에게 다가갔다.
“헌터님, 아직 시간이 남았는데 저희한테 한 수 가르쳐 주시겠습니까?”
여울은 천천히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본능적으로 어깨를 움찔거리며 반걸음을 뒤로 물렸다.
‘무슨 눈동자가 저렇게 무서워…….’
여울은 눈을 거두고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누굴 가르쳐 본 적은 없는데…….”
그 말은 제대로 배운 적도 없다는 것이다. 민우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여울은 그의 허리춤에 있는 검을 가리키며 말했다.
“검을 들죠. 저도 누가 하나 빌려 주시겠습니까?”
그의 말에 경호원들이 멈칫하며 서로의 눈치를 살폈다. 그때 시연이 금세 다가와 검을 빌려 주었다. 시연도 C랭크 헌터다.
여울은 검을 내려뜨린 채 민우를 바라보며 말했다.
“들어오십시오.”
민우는 그의 자세를 보며 검을 움켜쥐었다.
‘분명 방심했을 터, 기선제압한다.’
민우는 온 힘을 다하여 검을 휘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