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 Hunter Killer RAW novel - Chapter 112
112
112. 전신의 등장
민우는 검을 휘두르다가 끝을 교묘하게 꺾어 어깨를 찔러 넣는 변화를 주었다. 자신이 가장 자신 있어 하는 방식이다. 생각은 그러했으나 휘두르다가 중간에 멈췄다. 그의 겨드랑이에는 이미 여울의 검이 닿아 있었다.
“이, 이게 언제…….”
민우는 당황하면서도 화가 끓어올랐다. 그의 검은 분명 빠르지도 않고 자신과 비슷하거나 더 느렸다.
여울은 검을 거두었다.
“다시 할까요?”
그들을 지켜보던 다른 경호원들이 말했다.
“쟤 왜 저래?”
“이상한데?”
“오묘한데…….”
민우는 얼굴이 울긋불긋해졌다. 분명 긴장해서 시야가 좁아져 못 받아 낸 것이다. 저 정도 속도라면 연속 공격을 퍼부으면 그가 반격도 하지 못할 것이다.
민우는 이를 악물며 다시 검을 휘둘렀다.
척!
그때 등골이 써늘해지며 한 번 휘두르기도 전에 검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어느새 그의 검이 팔꿈치 안쪽에 닿아 있다. 더 휘둘렀으면 자신의 팔이 잘렸을 것이다. 이번에도 빠르지는 않았다. 그러나 오묘한 타이밍에 움직였다.
한 번은 몰라도 두 번이나 같은 일을 당하고도 방심이라고 할 정도로 무식하지는 않다. 분명히 그는 자신의 행동을 미리 읽고 반 박자 빠르게 대응한 것이다. 그것은 실력이다.
민우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여울을 쳐다보았다.
“이, 이게 어떻게…….”
여울은 검을 거두고 말했다. 그의 표정을 보니 이제야 들을 생각이 있어 보였다.
“동작이 크고 허수가 보입니다. 공격할 때도 상대를 잘 살펴야 합니다.”
여울은 거기까지 말하고 검을 시연에게 건넸다. 저쪽에서 한 사내가 다가오는 것을 본 것이다. UST의 연구원 유니폼을 입은 자다.
“오래 기다리게 해 드려서 죄송합니다. 측정 준비가 다 되었습니다. 그럼 가실까요?”
“예.”
여울은 단답형으로 대답하고는 그를 따라 측정실로 이동했다.
측정실은 웬만한 학교 강당만큼 컸다. 그리고 한국에서도 봤던 하얀색 동그란 원 형태의 기계 세 개가 주르륵 나열되어 있다. 측정 장치 옆면에는 가로 8미터, 세로 5미터는 될 법한 커다란 스크린이 떠 있다. 테스트 상황을 실시간으로 보여 주는 것이다. 그곳에는 덩치가 큰 근육질의 한 사내가 테스트를 받고 있었다.
뒤편에 2층 높이에는 통유리로 되어 있는 것이 관전실인 듯하다. 그 안에는 40명이 넘는 사람들이 있었다.
여울이 사람들을 올려다보자 연구원이 살짝 눈치를 보며 말을 이었다.
“아, 헌터님 전에 또 다른 헌터분이 측정하기로 했거든요. 이제 곧 끝날 겁니다.”
그 말을 알아들은 경호원은 물론, 시연까지 얼굴을 확 찌푸렸다. 분명 10시라고 전달했는데 준비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해 놓고는, 다른 헌터 먼저 측정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무시도 이런 무시가 없었다.
시연이 슬쩍 보니 정작 이 수모의 장본인인 여울만 평안한 얼굴을 짓고 있다.
때마침 측정이 끝나는 소리가 울렸다.
-띠링
-131
마지막 측정 장치에서 점수가 떴다. 동시에 측정실과 관전실 스피커로 기계 음성이 들려왔다.
-라타 크레크, 총점 426, SS랭크입니다.
“우와아아!!”
“SS랭크라니!”
“엄청나다!”
“휘유!”
관전실은 축제 분위기였다. 사람들은 아직 그 주인공이 측정 장치에서 나오지도 않았는데 점수를 사진 찍고 난리가 났다. 그 자리에서 노트북으로 바로 기사를 올리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여울과 함께 온 경호원들도 놀랐는지 입을 쩌억 벌리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다. 시연만이 여울의 눈치를 보며 안쓰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
이쯤 되면 눈치가 느린 시연마저도 UST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이렇게 측정을 미뤄 왔는지 대충 예상이 되는 것이었다.
지이이잉.
마지막 측정 장치의 문이 열리며 스포츠머리에 터질 듯한 근육을 지닌 사내가 걸어 나왔다. 키가 2미터는 넘어 보이고 팔뚝이 여울의 허리보다 더 굵은 듯했다.
그가 나오자마자 한 중년인이 그에게 다가갔다.
“잘했네, 크레크. 역시 자네는 SS랭크가 나올 줄 알았어.”
중년인은 연구소장 데이빗이었다. 크레크는 뒤돌아서 점수를 확인하며 한쪽 눈썹을 올렸다.
“이거 생각보다 점수가 낮네. 다시 한번 해 보고 싶은데.”
“아, 그럴 순 있는데, 다른 사람이 대기하고 있다고 들어서…….”
그때, 민우가 그 타이밍에 헛기침을 했다.
“크흠.”
그 소리에 데이빗이 뒤돌아섰다.
“아, 이번에 한국에서 온 헌터님이신가? 반갑네, 나는 UST 연구소장 데이빗이라네.”
몇 명 없는 측정실인 데다가 이곳에 온 지 1분은 넘었는데 그제야 발견한 듯이 인사를 건넨다. 여울은 데이빗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소장이라는 자가 그렇게 귀한 신분인지 이제야 처음 보게 된다.
그때, 크레크가 여울에게 다가와 어깨에 손을 덥석 올렸다.
“이 친구구먼? 한국이라고 했나? 역시 조그만 게 귀엽군그래. 하하핫!”
그는 뭐가 그리 즐거운지 고개를 뒤로 젖히고는 호탕하게 웃어 댔다. 여울은 고개를 돌려 그의 손을 슬쩍 보며 말했다.
“치워.”
한국말이지만 눈빛과 분위기에서 그 뜻을 읽은 크레크는 순간 얼굴을 찌푸렸다. 소장도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다. 순식간에 장내에 긴장감이 돌려는 찰나, 크레크가 다시 크게 웃으며 손을 내렸다.
“흐핫핫! 재미있어, 재미있는 친구야. 측정 앞두고 긴장했나 보군. 파이팅 하라고, 친구!”
그는 여울의 얼굴에 대고 그 큰 주먹을 쥐어 보이고는 걸음을 옮겼다.
드디어 여울의 차례가 되었다. 안내원의 안내에 따라 그는 첫 번째 측정 장치로 들어갔다.
크레크가 측정실 밖으로 나가자 기자들이 벌 떼처럼 몰려들었다. 거의 꽉 차 있던 관전실은 거의 텅텅 비어 있다. 한국 기자 둘만 초라하게 남아 있는데 그마저도 크레크에게 눈이 가 있었다.
문도 닫지 않아 매우 시끄러웠다. 그래서 김시연이 문을 닫으러 가는 길이었다.
그때, 첫 번째 측정 장치에서 소리가 울렸다.
-띠링
-200
그 순간, 거짓말처럼 장내의 모든 잡음이 확 가라앉았다. 숨소리조차도 들리지 않았다. 마치 시간이 멈춘 것처럼 모든 행동과 말이 완전히 멈춰 섰다. 그 시끄러운 상황 속에서도 마치 키워드를 지정한 것처럼 200이라는 소리는 들렸던 것이다.
크레크는 말을 하다가 멈춘 그 표정 그대로 고개만 돌려 측정 장치를 보았다.
“에?”
아직 모두가 어안이 벙벙한 상태다. 다들 무슨 상황인지 제대로 인지를 못 하고 있다. 그러나 저 점수가 실력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어떤 문제인지 어서 UST 측에서 파악해 주길 바랄 뿐이다.
하지만 혹시나 하는 생각이 마음 한편에 자리 잡고 있어 아까는 확인하지 못했던 실시간 스크린에 눈을 돌렸다. 그 사이 두 번째 테스트가 시작되었다.
두 번째는 사방에서 쏘아지는 광선을 피하는 테스트다. 여울은 마치 거의 가만히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미세하게 조금씩 움직이는 것이 느껴진다. 사람들은 그의 움직임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막 SS랭크를 받은 크레크의 눈은 튀어나올 듯이 커지고 있었다.
“뭐, 뭐…….”
그가 놀라는 사이 30초가 지났다.
-띠링
-200
크레크는 경악하며 연구소장 데이빗과 눈을 마주쳤다. 그도 똑같은 표정을 짓고 있다. 크레크보다는 낮은 레벨이기에 그의 움직임에 경이로움을 느낀 것은 아니지만 직접 만든 기계이니만큼 그 정확성에 신뢰가 매우 높아 점수에 놀라는 것이다.
세 번째 테스트는 근력 측정으로, 원하는 방법으로 펀치를 날리는 것이다. 여울은 추진력을 사용할 생각이 없는지 펀치 머신 바로 앞까지 걸어갔다. 그러고는 자세를 대충 잡더니 주먹을 짧게 끊어 쳤다. 그 순간.
콰아아앙!
커다란 굉음과 함께 세 번째 측정소의 뒤쪽이 기계와 함께 터져 나갔다. 문도 완전히 부서지고 매캐한 냄새와 함께 연기가 흘러나왔다. 그 연기를 뚫으며 여울이 천천히 걸어 나왔다.
-띠링
-200점
-여울, 총점 600, 등록된 랭크가 없습니다.
총점을 들으며 경호원들과 시연은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아…….”
연구소장 데이빗은 한 치의 계산도 담지 않은 탄성을 내뱉었다. 등록된 랭크가 없는 것이 당연하다. 400~499까지 SS랭크, 500~599까지 SSS랭크로 지정해놨을 뿐, 600점이 나올 것이라고는 전혀 상상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떤 기자가 데이빗에게 시선을 돌리며 물었다.
“어, 어떻게 된 겁니까, 소장님?”
“기계가 고장이 난 겁니까?”
몇몇 기자들이 데이빗에게 질문을 할 뿐, 나머지는 모두 조용히 여울을 바라볼 뿐이다. 그에게 감히 말을 붙이는 용기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여울은 데이빗에게 다가와 입을 열었다.
“이제 끝난 겁니까?”
멍하니 그를 바라보고 있던 김시연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자신의 머리를 콩 쥐어박고는 얼른 다가와 통역했다. 데이빗은 신기한 것을 바라보듯이 여울을 보며 눈을 몇 번 깜빡이고는 간신히 말을 내뱉었다.
“그, 가, 간단한 신체검사만 하고 기다리시면 며칠 후에 정확한 측정 결과가 나올 겁니다. 모, 모든 연구진을 총동원하여 최대한 빠르게, 정확한 결과가 나올 수 있도록 힘쓰겠습니다.”
말투와 자세까지 바뀐 그는 직접 신체검사실을 가리키며 설명해 주었다. 여울이 그곳에 들어가고 문이 닫히자 그제야 기자들이 데이빗에게 달려들며 질문을 퍼부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기자들에게 둘러싸여 있던 크레크의 곁에는 단 한 사람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러나 크레크 역시 얼빠진 표정으로 여울이 들어간 신체검사실을 바라보고 있었다. 지금 이곳에서 동체시력이 가장 뛰어난 사람은 다름 아닌 크레크다. 여울의 본 실력을 가장 제대로 알아본 사람이다.
그는 그곳을 바라보며 혼자 중얼거렸다.
“신……? 전신의 등장인가…….”
* * *
테스트 영상 판독실, UST연구소의 전문가들이 한데 모여 있다. 중앙에는 연구소장 데이빗이 앉아 있고, 그의 옆에는 크레크가 있었다. 여울의 영상을 제대로 보고 싶다는 이유에서였다.
한 연구원이 데이빗의 눈치를 보며 말을 꺼냈다.
“확인해 본 결과, 측정 장치에는 아무런 문제점도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겠지…… 영상 틀어 봐.”
측정 장치에 설치된 카메라는 초당 2,000프레임인, 초고화질의 초고속 카메라다. 한 연구원이 통상적인 영상 속도를 5배로 낮추어 재생했다.
여울의 움직임이 도저히 제대로 보이지가 않는다. 데이빗은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한 손을 아래로 휘휘 저었다.
“더 내려 봐요.”
“넵.”
“더더.”
연구원은 데이빗의 명에 따라 계속해서 속도를 낮췄다. 이제야 움직임을 제대로 판단할 수 있을 때쯤이었다. 영상은 이제 프레임이 모자란 애니매이션처럼 툭툭 끊기는 감이 있었다.
심상치 않음을 느낀 데이빗은 의자에서 등을 떼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몇 배 낮춘 거지?”
“30배…… 입니다.”
순간 장내에는 침묵이 맴돌았다. 30배는커녕 10배도 낮춘 적이 없다. 그런데 30배라니, 어느 정도의 속도인지 감도 오지 않는다. 너무 먼 얘기이니 별로 놀랍지도 않다.
데이빗은 고개를 돌려 크레크에게 물었다.
“자네가 보기에는 어떤가?”
크레크는 영상 안에 빠져 들어갈 듯이 집중하고 있다가 화들짝 놀라며 의자에서 등을 떼었다.
“뭐, 뭐가?”
“600점을 받을 만한 실력이 되어 보이냐는 말이야.”
그의 질문에 크레크의 표정은 금세 진중해졌다.
“모자라지…….”
방금 전까지 얼빠져서 영상을 보고 있었기에 의외의 대답이었다. 데이빗은 한쪽 눈썹을 올리며 다시 물었다.
“모자라다고? 그럼 기기가 잘못 측정되었다는…….”
“점수가…….”
“그, 그게 무슨…….”
“허…….”
여울 일행을 처음 맞이했던 수석연구원 제임스가 말을 이었다.
“저는 S랭크 이상 헌터분들의 능력은 한 번의 측정으로는 제대로 된 평가가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한번 측정을 하여 조금 더 정확한 평가를…….”
그때 크레크가 의자를 박차고 일어섰다.
“내가!”
그의 우렁찬 목소리와 거친 기세에 그곳에 있는 모든 연구원들이 입을 다물고 집중했다.
“내가 그와 공개 대련을 하겠다! 그러면 자네들도 그의 실력을 좀 체감하겠지?”
“그, 그런…….”
“크흠, 그건 그렇습니다만…….”
연구원들은 목을 가다듬으며 그의 눈빛을 피했다. 지금 그들은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여울이 눈앞의 크레크보다 강하다는 것을 직감하고 있다. 그런데 그가 지는 싸움을 나서서 한다?
SS랭크와 SSS랭크의 대련은 세기의 대결이다. 전 세계의 이목이 순식간에 집중이 되고 그 대결이 벌어지는 연구소는 여러 방면으로 큰 이득이 될 것이다.
“자네…… 괜찮겠나?”
데이빗이 걱정 어린 말을 건넸다. 크레크는 그 두꺼운 팔뚝을 굽혀 힘을 주며 말했다.
“괜찮기는, 나야 영광이지.”
크레크는 그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 감히 짐작할 수도 없었다. 영상을 보면서 느꼈던 그 경이로움을 자신이 직접 눈앞에서 느껴 보고 싶었다. 그리고 지금 상황 판단이 되지 않는 자들에게 그의 힘을 자신이 나섬으로 제대로 입증시키고 싶었다.
그리고 사흘 후, 연구소 앞마당에서 수많은 기자들의 플래시 세례를 받으며 여울과 크레크가 마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