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 Hunter Killer RAW novel - Chapter 114
114
114. 멸종
같은 시각, 한국 수원도시 헌터등록부.
공무원 이진태는 멍하니 TV를 바라보고 있다. 그의 사무실에 있는 다른 직원들도 그와 비슷한 표정이다.
“SS인…… 줄 알았는데…….”
“만…… 만점이라니.”
“세계 최초 R랭크…….”
이진태는 마치 자신이 R랭크를 받은 것처럼 감정이 북받쳐 오르며 눈물이 찔끔 흘렀다.
“저, 정말…… 여울 님은…… 알지?! 저분이 나랑 그렇게 친해! 무슨 일만 있으면 항상 나를 찾는다고, 하하핫!”
사무실 밖까지 들리는 진태의 웃음소리는 한동안 끝날 줄을 몰랐다.
신한길드 길드장 사무실.
지천욱은 몇 명의 길드원들과 함께 TV를 보고 있다.
“R랭크라고……?”
“저분, 은서 대원 아버지 아닌가요?”
부길드장 김이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만점이라니…… R랭크라니…… 상상도 못 할 만큼 강하실 줄은 알았지만, 상상 이상이구나.”
그 옆에 있던 지연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힘을 이제 드러내셨구나…….’
수원도시 남쪽 벽 부근의 작은 호프집, 커다란 덩치의 사내가 맥주를 홀짝이고 있다. 그는 바로 여울의 전담 채굴꾼 이세진이었다.
“엇! 어엇!! 저 형 나랑 친한데.”
호프집 주인은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중얼거렸다.
“그래, 두 다리 건너면 다 형이지 뭐.”
“아니야, 진짜로 친해. 번호도 있다니까?”
세진은 휴대전화를 보여 주며 열을 올렸다. 주인은 웃음 지으며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 * *
UST 연구소장 데이빗의 모든 발표가 끝나고, 여울의 경호원들은 별채에서 떠날 채비를 했다. 김시연이 여울에게 다가와 물었다.
“여울 님, 귀국 시간은 언제로 할까요?”
“먼저 가십시오.”
“아, 언제까지 머무실지 말씀해 주시면…….”
“먼저 귀국하십시오. 나는 할 일이 있습니다.”
여울의 말에 경호원들이 다가와 말했다.
“저희는 경호원입니다. 여울 님이 안전하게 귀국할 때까지 항상 밀접 경호를…….”
“나를…… 경호?”
여울이 경호원들을 보며 위아래를 살펴보았다. 그들은 그의 말을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어느 정도 급이 맞아야 경호라는 말이 성립되지 않겠는가?
여울은 문을 열고 밖으로 걸음을 옮기며 말을 이었다.
“가십시오. 나는 알아서 돌아갈 테니.”
퍼엉!
그는 그 말을 끝으로 바로 바닥을 박찼다. 가죽 터지는 소리와 함께 그의 신형은 이미 점처럼 작아져 있었다.
경호원들은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며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 민우가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내가 저런 분한테 뭔 짓을 했던 거냐…….”
“멍청한 짓.”
* * *
여울은 옷을 걷은 다음에 어깨를 감싸고 있는 다크니스 스텐의 일부를 흐트러트렸다. 그러자 검은색으로 적혀 있는 숫자가 드러났다.
‘65.’
며칠 사이 10명은 줄어들었다. 이제 이곳으로 최소 다섯 명 이상은 올 것이다. 연구소 근처에서 한 달간 머무르며 그들을 사냥할 것이다.
여울은 별채에서 2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민가의 3층 옥상에서 경호원들과 김시연이 떠나는 것을 확인했다.
별다른 연은 없지만 어찌 됐든 자신을 위해서 이 먼 타국까지 파견 나온 사람들이다. 있으면 방해도 되고, 쓸데없는 희생은 줄여야 한다.
그들이 떠난 후, 여울은 눈을 감고 디카르에 다크니스 블레이드를 활성화시키며 가만히 있었다. 자신의 감각을 퍼트릴 수 있는 가장 먼 곳까지 최대한 넓게 퍼트렸다. 최소 반경 2킬로미터 이내에는 마족이 들어오면 정확한 위치가 어디인지까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삐이-.’
시이는 하늘 높이 떠올라 반경 10킬로미터 이내에 수상한 움직임을 보이는 자들을 잡아내고 있다. 이곳은 자신의 베이스다. 그리고 마족들의 무덤이 될 것이다.
‘들어와라…….’
며칠 후, 한 건물의 모서리에 얼굴만 빼꼼 내밀고 있는 한 마족 사내를 발견했다. 여울은 은신을 쓰고 최대한 기운을 죽이고는 그의 뒤로 돌아서 다가갔다.
스스스슥.
사내가 눈치를 채고 뒤돌아섰을 때는 이미 10미터도 되지 않는 거리였다. 여울은 빠르게 붙어서 그의 목을 잡아 비틀었다. 그러고는 스르르 쓰러지는 그의 심장에 디카르를 꽂았다.
“크으…….”
마족 사내는 이제야 반투명하게 모습을 드러내는 여울을 바라보며 의식을 잃었다.
즈즈즈즈.
그의 몸에서 검은 액체가 흘러나와 여울의 몸에 흡수되었다. 다크니스 스텐이 신기한 것은 질량보존의 법칙을 가볍게 무시하며 양은 늘어나지 않는데 끊임없이 흡수하는 것이다. 잘 느껴지지는 않지만 질이 조금 더 좋아졌다고 생각한다.
나흘 뒤에는 두 명의 마족이 연구소 주변에 함께 나타났다. 머리가 나쁜 건지 자신이 있는 건지 그들은 마족답게 다크니스를 마음껏 뿜어 대어 금세 만났다. 그러고는 다짜고짜 그들끼리 싸우기 시작했다.
쾅! 쾅! 콰앙!
‘재미있군.’
여울은 구석에서 은신을 하고는 가만히 그들의 전투를 구경했다. 9레벨급의 실력자들이 생사를 걸고 싸우는 모습은 꽤 볼만했다. 그러나 이 정도 고수들의 싸움은 0.1초 차이로 판가름이 난다. 그들의 전투는 5분도 되지 않아 한 명의 목이 잘리며 끝이 났다.
이제 움직일 때다. 여울은 그에게 달려 나가며 디카르를 생성시켜 바로 던졌다. 힘을 소진하고 멍하니 있던 그의 눈동자가 휘둥그레진다. 반투명한 여울의 실체를 봤을 때는 이미 디카르가 그의 코앞에 다가온 때였다.
푸욱!
그 찰나에 살짝 몸을 비튼 그는 심장 대신 어깨가 꿰뚫렸다. 뾰족하게 모은 왼손으로 다시 심장을 향해 뻗으려고 할 때, 옆에서 날카로운 기운이 느껴져서 뒤로 빠졌다.
푸른 눈의 한 여인이 이쪽으로 창을 집어던지며 날아오고 있다. 자신처럼 지켜보다가 지금의 때를 노렸던 것이다. 여울은 가까이 있는 사내의 목과 어깨를 붙잡아 창이 날아오는 쪽으로 몸을 돌렸다.
푸슉!
사내의 심장이 창에 정확히 꿰뚫렸다. 여울은 그의 등 뒤로 삐죽 튀어나온 창대를 쭉 잡아 빼고는 한 바퀴 돌려 다시 그 여인에게 던졌다. 여인은 달려오는 속도를 늦추지 않고 그대로 뛰어올라 공중에서 한 바퀴 돌아 창을 피했다.
콰직!
그러나 그사이 다가온 여울이 여인의 머리를 잡아채어 바닥에 그대로 내려찍었다. 그러고는 부들부들 떠는 그녀의 등 뒤에 디카르를 박아 넣었다.
푸욱!
츠으으으.
여울은 자리에서 일어나 눈을 감고는 다크니스 스텐이 흡수되는 느낌을 만끽했다. 두 자리 수인데 하루 만에 세 명. 세계적인 영상 매체를 이용한 것은 참 잘한 행동이었다.
그렇게 연구소 주변에서 기운을 숨기고 지켜보다가 처리한 마족이 한 달 동안 17명이다. 어깨에 새겨진 숫자는 34로 줄어들었다. 이곳으로 오다가 중간에 마주쳐서 치고 박고 싸우며 줄어든 것일 수도 있다.
그 후로는 주변 국가를 돌아다니며 마족들을 찾아다녔다. 다크니스 특성자들은 모두 마족에게 먹혔는지 한 명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이제 마족에게 먹히지 않은 특성자는 자신과 서인교, 둘 뿐인 듯했다. 서인교는 살아 있을까?
그렇게 미국과 땅이 붙어 있는 모든 나라를 돌아다니며 마족들을 처리한 지 다섯 달째. 어깨에는 3이라는 숫자가 적혀 있고 한 달 동안에는 한 명도 만나지 못했다. 자신을 제외하고는 전 세계에 두 명이 있다는 것, 찾기 힘들 수밖에 없다.
둘 중에 하나다. 우연히 마주치거나, 우연이라도 마주치지 않고 그냥 살거나…….
자신의 공개적인 선전포고에도 나타나지 않았으니 겁을 집어먹어 깊숙이 숨어 있는 서인교 같은 특성자들이기를 바란다.
이제 그 소녀가 말한 재앙의 날까지는 반년이 남았다. 한국으로 돌아가 어떡해서든 그것을 준비해야 한다.
여울은 비행기를 타기 위해 다시 UST 연구소로 돌아갔다.
후우웅.
활기 넘치고 북적북적했던 연구소가 오늘따라 을씨년스럽다. 밖을 돌아다니는 사람들도 한 명도 보이지 않는다.
저벅저벅.
여울은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는 빠른 걸음으로 연구소로 다가갔다. 진한 피비린내가 코끝을 스친다.
강화유리로 된 정문은 완전히 박살이 나 있다. 안으로 들어서니 새하얀 벽에 붉은 피가 여기저기에 그림처럼 흩뿌려져 있다.
여울은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한 연구원에게 다가갔다. 상체만 남아 있는 그는 손가락이 모두 박살이 나 있고 팔다리는 검이 아닌 손으로 뜯었는지 절단면이 지저분했다.
이건 전투가 아닌 학살이다. 목표가 없는 곳의 사람들을 괴롭히며 시간을 보내는 것은 마족의 스타일이 아니다.
스윽.
여울은 고개를 돌려 광장 중앙을 쳐다보았다. 그곳에는 수석연구원 제임스의 머리를 들고 있는 한 청년이 서 있었다.
여인처럼 검고 긴 머리, 새하얗고 갸름한 얼굴, 핏빛 입술에 날카롭게 올라간 눈매. 검신만 2미터가 넘는 긴 태도를 한 손으로 들고 있는 그 청년은 마치 케라브의 마지막 보스, 주인노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다크니스의 기운은 그를 능가했다.
청년의 눈동자는 파랗게 빛나지 않았다. 마족에게 먹히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같은 인간이라는 것이다.
여울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에게 물었다.
“이들은 왜 죽인 거지?”
“죽이다 보면 당신이 찾아올 거 아니야? 지금처럼.”
그의 말과 함께 어마어마한 죄책감이 여울의 몸을 짓눌렀다. 자신이 조금 더 편하고 빠르게 처리하고자 이용했던 영상 매체로 인해 이 많은 연구원들이 죽은 것이다. 다른 자가 이런 식으로 이용할 줄은 몰랐다.
적어도 6개월은 여기 있었어야 했나? 아니, 그때는 그게 최선의 선택이었고 최고의 행보였다.
그의 손에 들려 있는 제임스의 눈은 공포에 질린 채로 부릅뜨고 있었다. 그 눈을 마주하고 있으니 한쪽 가슴이 쓰렸다. 이들의 몸에서 흐르는 피, 그 온기가 살을 태울 것처럼 뜨겁게 느껴진다.
여울은 다크니스 버서커를 사용하지도 않았는데 눈에서 실핏줄이 터져 나갔다. 지금 마음 깊은 곳에서 끓어오르는 감정은…… 분노다.
이 다크니스 특성자는 마족에게 먹힌 자들보다 더 위험하다. 여울은 그의 눈을 바라보며 씹어 먹듯이 말을 내뱉었다.
“너는…… 죽어야겠구나.”
“풉.”
그는 여울의 분노를 비웃으며 말을 이었다.
“인간들이 강하다며 추켜세워 주니까 정말 오만해졌구나? 오늘 천외천이 무엇인지 보여 주마.”
말이 끝남과 동시에 놈의 신형이 사라졌다. 10레벨이 되고 나서는 특성이 동체시력인 만큼 단 한 번도 누군가의 움직임을 놓친 적이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예외였다.
여울은 만만치 않은 상대라는 것을 직감하고는 온 감각을 집중했다. 아니 집중하려는 순간, 아래에서부터 싸늘한 기운이 솟구쳤다. 여울은 턱을 추켜올리며 뒤로 걸음을 물러섰다. 턱 끝에 검은 태도가 지나가며 살가죽이 찢겨 나간다. 조금만 늦었어도 턱에 구멍이 났을 것이다.
탁.
여울은 바로 태도의 도신을 맨손으로 잡아채고는 다른 손으로 디카르를 만들며 놈의 심장을 향해 뻗었다. 놈이 두 손으로 태도를 잡고 뒤로 빼며 상체를 옆으로 틀었다.
투두둑.
여울의 세 손가락이 잘려 나가며 동시에 놈의 상체에 긴 검흔이 생겨났다. 놈은 가슴에 길게 난 상처의 고통을 무시하며 태도를 가로로 휘둘렀다. 여울은 품에서 갈락의 대검을 역수로 잡아 꺼내며 디카르를 든 손으로는 이어서 그의 심장을 찔러 넣었다.
촤악!
챙!
푸욱!
서로 다른 세 개의 소리가 동시에 들려왔다. 놈의 태도가 여울의 왼손을 자르고 목까지 자르려는 시점에서 대검이 그것을 잠시 막았고, 그사이에 디카르가 놈의 심장을 가른 것이다.
“끅, 끄르륵…….”
놈은 피를 울컥 토해 내며 눈을 부릅뜨고 여울을 바라보았다. 매우 억울하다는 눈빛이다. 그럴 것이다. 이제 두 명만 더 처리하면 밤의 왕이 되었을 것이니…….
여울은 얼굴을 가까이 하여 놈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다크니스 드레인.”
“이, 이…….”
대단한 말도 아니고 고작 스킬을 빼앗기 위한 재료, 여울에게 자신이 딱 그쯤으로 느껴져 모멸감을 받은 것이다.
촤아아악!
여울은 놈의 눈을 바라보다가 검신을 돌리고는 위로 추켜올렸다. 그러자 놈의 상체와 함께 머리가 반으로 잘려 나갔다.
* * *
아무도 없는 깊고 어두운 숲, 한 중년인이 나무에 등을 기대고는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다.
“흐으, 흐으…….”
그의 눈은 반쯤 풀려 있고 정신이 나갔는지 입에서는 진득한 침이 주르륵 흐르고 있다.
-그가 돌아온다. 한 방이면 돼. 가까이 붙어서 심장에 단 한 방. 그러면 네가 왕이 되는 거야……. 모든 만물을 내려다보는…… 만인지상의 자리.
“끄으아아아아악!!”
그 중년인은 두 손으로 귀를 막고는 하늘을 향해 처절한 비명을 외쳤다. 그의 눈동자는 파란 불빛이 넘실거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