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 Hunter Killer RAW novel - Chapter 121
121
121. 재앙의 시작
손바닥 크기만 3미터가 넘는 그 손은 서한의 몸을 빠르게 덮쳐왔다. 여울은 그 손을 향해 디카르를 던지며 그에게 달려갔다.
-콰아앙!
여울의 외침에 서한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걸음을 옮겼으나 괴물의 손톱 끝에 등을 주욱 긁혔다. 동시에 디카르가 그 손등에 박혔다.
“크흡.”
여울은 비틀거리는 서한의 겨드랑이에 두 손을 넣고는 번쩍 들어서 뒤쪽으로 옮겼다. 그러고는 그에게 얼굴을 가까이하며 말했다.
“서한, 서한! 정신이 드나?”
서한은 한 손을 휘적거리며 대답했다.
“어우 씨, 부담스럽다…….”
“서한, 잘 들어라. 너는 어서 수원시로 돌아가서 방어선을 지켜라, 이런 게이트가 몇 개는 더 생겼을 것이다.”
그때, 그 소녀는 천기를 누설하면 멸망의 시기가 앞당겨진다고 했으나 이제는 더 이상 최악의 상황도 없으니 비밀이랄 것도 없다.
여울의 말에 서한은 정신이 번뜩 들어 되물었다.
“몇, 몇 개? 너는 그걸 어떻게 알아? 넌 어떻게 하게?”
그사이 팔만 보였던 몬스터의 얼굴이 모습을 드러냈다.
10미터가 넘을 것 같은 긴 팔, 박쥐와 비슷한 얼굴에 머리에는 긴 뿔이 하나 달려 있다.
쩌억 벌린 입은 강철도 씹어 먹을 듯이 날카로워 보였다.
짙은 갈색의 살가죽에는 모공에서 검은 연기를 끊임없이 배출하고 있다. 마치 지옥에서 막 튀어나온 악마와 같은 형상이었다.
기이이아아아악!
처음 듣는 주파수의 포효 소리다.
여울이 지금 심각한 이유는 대충 보기에도 만만치 않은 저 악마 같은 몬스터가 케라브의 마지막 기억에서도 본 적이 없는 놈이기 때문이었다.
여울은 놈을 보고는 다급히 서한을 밀쳤다.
“설명할 시간 없다. 나도 금방 가겠다. 어서!”
“알았어! 빨리 와라!”
서한은 뒤돌아서 걸음을 옮기며 정부 대원들에게 크게 외쳤다.
“전원! 전속력으로 수원시로 복귀한다!”
대원들은 앞장서서 가는 서한을 따라 바로 걸음을 옮겼다. 길이 아닌 숲이 우거진 산이지만 이미 5레벨이 넘는 대원들에게 그리 어려운 코스는 아니었다.
보라는 여울이 아예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자 걸음을 멈추고는 외쳤다.
“여울 오빠!”
여울은 그녀에게 살짝 고개를 돌리고는 말했다.
“나는 걱정을 받을 대상이 아니다. 어서 가서…… 은서와 함께 있어라.”
“아, 알겠어요. 이따 봐요!”
여울은 보라까지 가는 것을 확인하고는 그 괴물과 똑바로 마주했다.
거미처럼 긴 팔과 다리, 관절이 위로 향하게 꺾여 있어 그로테스크한 모양새였다.
천천히 나오는 놈은 하체까지 거의 다 모습을 드러냈다. 네 발로 땅을 디딘 놈인데도 그 높이가 30미터는 되는 어마어마한 덩치를 지니고 있었다.
그아아아아악!
놈은 여울을 보고는 하늘 위로 고개를 쳐들며 다시 포효를 내질렀다. 고작 한 명이 자신을 상대하려는 것이 화가 난다는 듯한 모습이다.
여울은 놈의 손등에서 회수한 디카르를 앞으로 겨눴다.
스으으으!
그의 뒤로 어둠이 내리더니 강력한 기운을 뿜어내는 열 명의 검은 기사들이 일어났다. 그들이 저마다의 무기를 꺼내어 들자 여울이 입을 열었다.
“빨리 끝내자.”
* * *
수원시 동쪽 벽, 그 너머로 몇 미터 떨어지지 않은 곳에 거대한 투명 게이트가 일렁이고 있다.
벽을 지키던 경계병의 신고에 의해 최고 경보령이 발동되었고 동원할 수 있는 모든 길드가 지원을 나가는 중이다.
그중에는 신한 길드도 포함되어 있었다.
길드장 지천욱과 부길드장 김이수, 그리고 전투조 편성부장을 맡게 된 한지연도 그 현장에 이제 막 도착할 때였다.
콰아아앙!
거대한 진동과 함께 벽이 터져 나갔다.
“으아아악!”
“크하악!”
벽 위에 있던 군인들은 하늘 높이 날아가 버렸고 그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콘크리트 잔해에 깔리며 비명을 질러 댔다.
한쪽 벽면이 완전히 박살이 나버린 것이다. 뿌연 먼지 사이로 거대한 괴물이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헤에엑…….”
“커헉.”
케라브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지연마저도 눈을 화등잔만 하게 뜨고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몸집은 케라브에서 가장 큰 베헤모스만큼이나 거대했고, 온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압도적인 기운은 다리가 후들거렸다.
지연은 눈가를 좁히며 그 거대한 괴물을 집중해서 관찰했다.
-종족: 이그리트
-레벨: 9
-특이 사항: 생기를 흡수할수록 강해진다.
보통 특이 사항에는 약점이 드러나 있었다. 그러나 이 몬스터는 강점만 적혀 있다. 그만큼 강하다는 뜻이리라.
“뭐야…… 이 괴물은…….”
기아아아아아아!
이그리트가 한 손으로 바닥을 길게 쓸어버렸다. 놈의 거대한 손에 붙잡힌 사람은 셋.
놈은 날카로운 이빨로 그들을 아그작 물어뜯었다. 그러자 붉은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오며 세 사람의 상체가 사라져 버렸다.
“끼야아아악!”
“으아아!”
이야기 속 악마의 현신 같은 모습에 사람들은 도망치기 시작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그리트의 뒤로 수많은 몬스터들이 밀려들었다.
“키햐아!”
“샤아!”
지연의 입이 더욱 커졌다. 그녀는 파도처럼 밀려오는 그 몬스터들을 익히 알고 있다.
케라브 가장 마지막 층에서 본 나가와 머맨, 그리고 리자드맨이었다.
지금까지 지구에서 만났던 몬스터들보다 훨씬 더 강력한 놈들이다.
‘재앙, 세 번째 재앙인가?’
지연은 자연스레 1년 전에 게이트가 동시다발적으로 생겼던 그날이 떠올랐다. 이번 싸움이 쉽지 않을 거라는 직감과 함께…….
타당 탕탕탕탕!
정부 군인들은 마력총으로 이그리트에게 공격을 퍼부었다. 그러나 거의 대부분 튕겨 나가거나 피부에 박혀도 아무런 타격을 주지 못했다.
지연은 지천욱의 팔을 잡아당기며 말했다.
“저놈은 우리가 맡아요! 군인들에게는 그 뒤에 놈들을!”
“알았다!”
지천욱은 바로 군인 간부에게 전달했다. 나가와 머맨, 리자드맨에게는 다행히 마력총이 통했다. 수십 방을 쏴야 하지만.
지연은 다른 길드의 헌터들을 향해 소리쳤다.
“쓰러지면 재생되기 전에 머리를 잘라요!”
신한 길드원들은 한지연을 필두로 이그리트에게 달려들었다.
그아아아아아!
놈도 총알만 상대하다가 검으로 피부를 자르면서 치고 빠지자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이다.
노란 눈에 검은 눈동자가 칼처럼 세워져 있는 것이 마치 뱀의 눈과 같았다. 그 눈동자가 돌연 지연에게 돌아갔다.
카아아아아!
놈은 다른 길드원들의 공격을 무시하며 한지연에게 손을 뻗었다. 그녀가 전투조를 지휘한다는 것을 눈치챈 것이다. 그 모습에 김이수가 소리쳤다.
“지연 씨!”
이그리트의 손이 날아오는 것을 본 지연은 다급히 뒤로 걸음을 옮겼다.
하나, 큰 덩치에 비해 빨라도 너무 빠른 손가락 끝에 부딪쳐 날아갔다.
콰앙!
“커헉!”
지연은 저 멀리 날아가 건물 외벽에 박혔다. 눈앞에는 이그리트가 귀찮다는 듯이 양손을 휘저어 대원들을 쳐 내며 천천히 다가오는 모습이 보였다.
콰직!
놈이 지연을 향해 손을 뻗어 그녀와 함께 건물 한쪽을 아예 뜯어 버렸다.
“크흡…….”
지연은 놈의 손아귀에 꽉 잡혀 신음을 흘렸다.
“이 자식아!”
김이수는 일부러 들으라는 듯이 크게 외치며 놈의 반대쪽 손등에 검을 찔러 넣었다. 놈은 고개를 내려 이수를 슬쩍 보더니 돌연 손등을 뒤집어 바닥에 내려찍었다. 손등에 달라붙어 있던 이수의 몸은 그대로 콘크리트 바닥에 찍혀 피가 터져 나왔다.
그 끔찍한 모습에 지연이 비명을 내질렀다.
“꺄아아악! 부길드장님!”
지연은 젖 먹던 힘까지 내며 몸을 버둥거렸으나 이그리트의 손아귀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지연을 잡은 손이 높이 들어 올려졌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바닥에는 김이수가 미동도 하지 않고 누워 있는 모습이 보였다.
“아, 아…….”
어느새 지연은 검처럼 날카로운 눈동자와 눈을 마주하게 되었다. 놈은 지연을 잠시 바라보다가 입을 쩌억 벌렸다.
아래쪽에서 놈의 발등을 내려찍던 지천욱이 소리쳤다.
“안 돼애애!”
그때.
콰아앙!
으득!
둔탁한 소리와 함게 지연의 바로 앞에서 이그리트의 이빨이 닫혔다. 놈의 팔이 흔들려서 그녀를 뜯어먹지 못한 것이다.
놈이 감히 자신의 팔을 친 대상을 찾기 위해 고개를 내리려고 할 때, 아래에서 검은 무언가가 위로 솟구쳐 올라갔다.
꽈아앙!
그것은 놈의 턱을 강하게 후려쳤다. 머리 크기만 5미터는 될 법한데 마치 사람처럼 그 큰 머리가 뒤로 휙 젖혀졌다.
강타한 힘이 얼마나 강한지 알 수 있는 모습이었다.
공중에 떠 있는 자는 뒷모습만 보였지만 지연은 그를 알아보았다.
검은 코트에 늑대 문양, 사람만 한 거대한 방패, 그는 바로 대한민국 최강 대한 길드의 길드장 김진후였다.
“와아아아아!”
“대한! 돌격하라!”
“돌격하라!”
동시에 귀청을 찢을 듯한 함성 소리가 들려왔다.
아래에선 어느새 검은 물결이 출렁이고 있다. 강원도로 네임드 몬스터를 토벌하러 갔던 대한 길드가 드디어 도착한 것이다.
콰과아앙!
진후가 바닥을 딛고 다시 뛰어올라 방패로 놈의 턱을 가격했다.
새하얀 파장이 터지는 것으로 보아 그의 특성인 냉기 방출을 일으킨 듯했다.
충격이 컸는지 지연을 쥐고 있는 이그리트의 손에서 힘이 스르르 풀렸다.
지연은 정신을 차리고 추락에 대비하려 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터억!
잠시 후에 느껴지는 것은 아찔한 충격이 아닌 포근한 품이었다.
어느새 다가온 진후가 그녀의 몸을 받아 준 것이다.
김진후는 고개를 내려 한지연의 눈을 바라보다가 한쪽 구석에 내려 주었다.
“쉬고 있어라.”
“아…….”
진후는 짧게 말하고는 다시 이그리트에게 달려갔다.
* * *
“대한 길드다!”
“진후 님이다!”
“와아아아!”
밀리고 있던 군인들과 타 길드원들은 대한 길드의 등장에 사기가 백배 충전되어 벽 밖으로 몬스터들을 천천히 밀어내기 시작했다.
진후는 그의 친위대와 함께 이그리트를 압박해 갔다. 놈의 머리통 한쪽이 함몰되고, 두 손은 부러져 거의 다 잡았다고 생각할 때쯤이었다.
정신 장악으로 몬스터들끼리 싸우도록 유도하고 전장을 전체적으로 파악하고 있던 백일권이 돌연 안색이 파래져서 진후에게 다가왔다.
“길드장님!”
이제 막 이그리트를 마무리 지으려던 진후는 일권의 다급한 외침에 그를 돌아보았다.
일권이 다급히 검지로 남쪽을 가리켰다.
그곳에서 이미 벽을 넘어선 수백, 수천 마리의 몬스터들이 도시를 초토화시키며 달려오고 있었다.
거리는 채 5킬로미터도 남지 않았다.
콰아앙!
진후는 온 힘을 다하여 방패를 휘둘러 이그리트의 머리통을 터트리고는 모두를 향해 있는 힘껏 외쳤다.
“모두 북쪽으로 후퇴하라!”
“후퇴하라!”
“후퇴하라!”
대한 길드 대원들이 반사적으로 그의 말을 복명복창하며 다른 길드원들과 군인들이 빠질 수 있도록 길을 만들었다.
진후는 바닥에 방패를 내리꽂고는 비장하게 외쳤다.
“대한 길드는 나와 함께 가장 마지막에 물러난다!”
* * *
같은 시각, 서쪽 필드.
두 남녀가 빠른 속도로 숲을 날아가고 있다.
“나도 이제 곧 레벨 업 하겠네.”
“아, 정말? 오빠 따라잡았다고 좋아했는데, 또 이렇게 도망가네?”
“큭, 그러게.”
띠링
벽 부근에 다가오자 울리는 문자 소리에 소녀, 은서가 입을 열었다.
“응? 이거 긴급 문자인데? 수언 오빠, 잠깐만.”
“으, 응.”
수언이 속도를 낮추자 은서가 품에서 휴대폰을 꺼내어 문자를 확인했다.
-발신자: 신한 길드 길드장 지천욱
-동쪽 벽 밖 2킬로미터 부근에서 직경 200미터 크기의 게이트 발생, 확인 즉시 지원 바람
“헤엑, 200미터라니…… 이거 30분 전에 온 거네……. 오빠, 어떡하지?”
“일단 가 보자, 아직 경보 풀렸다는 문자는 안 왔으니까.”
수언은 고개를 크게 끄덕이는 그녀에게 등을 내밀며 수줍게 말을 이었다.
“업, 업혀…… 전속력으로 갈 테니까.”
“응. 알겠…… 꺄아아악!”
수언은 그녀가 팔로 허리를 두르자마자 바로 총알처럼 쏘아져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