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 Hunter Killer RAW novel - Chapter 122
122
122. 후퇴
푸우욱!
검은색의 거대한 창이 이그리트의 정수리에 꽂혔다. 여울은 창대 끝을 손바닥으로 쳐 내 더욱 깊숙이 박아 넣었다.
그러자 창날이 놈의 턱으로 툭 튀어나왔다.
쿠우우우웅!
30미터 크기의 이그리트가 바닥에 쓰러져 내렸다. 그 육중한 무게에 산 전체가 흔들리는 듯했다.
그 뒤에서 끊임없이 나오는 몬스터들은 검은 기사들이 부지런히 처리하고 있다. 초반에 케라브에서 잡았던 의뢰 대상들과 UST에서 잡았던 리치언 등 네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마족의 영혼이 담긴 자들이었다.
최소 9레벨이나 다름없는 최정예 친위대들인 것이다.
지금은 저들이 잘 막고 있지만 얼마나 시간을 끌 수 있을지는 모른다. 이 거대한 괴물이나 그보다 강한 놈이 나오지 말란 법은 없으니까.
여울은 그들에게 위험해지면 알아서 소환 해제되도록 일러 놓고는 발끝을 돌렸다.
안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확인해 보니 아직 신호가 잡히지 않는다. 그는 수원시가 있는 방향을 보며 바닥을 강하게 박찼다.
퍼엉!
폭탄이 터지는 듯한 효과와 함께 여울의 몸이 총알처럼 쏘아져 나갔다.
‘은서야, 제발 무사해 다오.’
* * *
챙, 채쟁, 챙!
검은 방어복을 입은 헌터들이 200미터 크기의 게이트 앞에 일렬로 서서 몬스터들을 상대하고 있다.
“크흡!”
“크악!”
그들은 후퇴선을 지키고 있는 대한 길드의 대원들이었다. 최소 레벨이 5레벨 완성인 그들 힘으로도 끝없이 쏟아져 나오는 몬스터들을 상대하기는 역부족인지 부상자가 점점 늘어 갔다.
그들의 비명에 백일권이 고개를 돌려 군인들과 다른 헌터들을 확인해 보았다.
이제 500미터는 빠진 듯하다. 남쪽에서 올라오는 수만 마리의 몬스터들과의 거리는 이제 3킬로미터도 되지 않는다.
일권은 다급히 진후에게 물었다.
“길드장님! 언제 빠집니까?!”
진후는 검과 방패를 정신없이 휘두르며 생각했다. 지금 후퇴하더라도 제대로 방어선을 구축하려면 북쪽 벽을 넘어가야 한다.
남쪽 몬스터들과 동쪽 몬스터들이 합류하기 전까지 최대한 시간을 끌어야 다른 사람들이 일반인들을 대피시키고 방어선을 구축할 시간이 생기는 것이다.
하지만 이미 동쪽 몬스터들만 상대하는데도 대한 길드로는 역부족이다. 하나둘씩 희생자가 생기고 있다.
진후는 방패에 냉기를 장전시켜 번쩍 추켜들며 소리쳤다.
“모두 후퇴하라!”
“후퇴!”
“후퇴하라!”
꽈아아앙!
진후는 말과는 다르게 앞으로 나가며 방패를 바닥에 내려찍었다.
그러자 반경 20미터 내 모든 몬스터들과 바닥이 하얗게 얼어붙었다. 바로 뒤로 빠지려던 일권이 그 모습을 보았다.
“길드장님!”
진후는 방패를 휘둘러 그것들을 깨부수며 소리쳤다.
“빠져! 나도 곧 간다!”
아무리 날고 긴다는 진후라고 해도 사방에서 몰려오는 5레벨 이상의 몬스터들에게 둘러싸이면 찢겨 죽는 것은 순식간일 것이다.
일권은 이미 100미터 이상 뒤로 빠져 있는 대원들의 뒷모습을 보다가 발끝을 돌렸다.
“같이 갑니다!”
“일권!”
“내 손으로 자식들을 묻고 길드장님을 찾아왔을 때부터 이미 정했습니다. 절대 길드장님은 내 손으로 묻지 않을 것이라고!”
채쟁!
일권은 여섯 마리의 나가를 정신 장악으로 돌려세워 다른 몬스터들을 밀어내며 그 자신도 일선에서 검을 휘둘렀다.
그러나 아무리 그들이라고 해도 200명의 힘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그들은 금세 몬스터들에게 둘러싸였고, 진후는 점점 상처가 늘어가는 일권을 보며 이를 악물었다.
“리덕션! 내가 퇴로를 만들겠다! 우리도 바로 빠져나간다!”
외침과 동시에 그의 몸을 푸른빛이 스캔하듯이 한 번 슥 지나갔다. 최상급 리덕션이 활성화된 것이다.
“알겠습니다!”
쾅! 쾅! 콰앙!
진후는 거의 맨몸으로 몬스터들을 부딪쳐 날리며 퇴로를 뚫으려고 했다.
놈들의 검이 그의 몸에 닿으면 속절없이 부러져 나갔다. 그러나 이미 순식간에 몬스터가 몇 겹으로 쌓였는지 도저히 뚫리지 않았다.
푹!
“큭!”
일권이 날쌘 리자드맨에게 허벅지를 깊게 베였다. 진후는 지금 이 강한 힘을 가지고도 지금의 상황을 타파하지 못하는 것이 매우 저주스럽고 답답했다.
일권은 마지막까지 자신의 곁에서 자신을 믿어 주고, 자신이 인간으로 남아 있을 수 있게 해 준 일등공신이다.
그를 잃어서는 안 된다.
진후는 그의 멱살을 강하게 잡아 앞으로 온 힘을 다하여 던졌다.
“제발, 당신은 살아남아! 크하아악!”
후우우우웅!
일권의 몸이 저 멀리 날아갔다. 부디 포위망 너머로 날아가길 바랐다.
그러면 아무리 다리를 다쳤더라도 이 자리를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푸북, 푹! 푹!
이제 리덕션이 풀렸는지 그의 몸에 동시다발적으로 검들이 들어왔다.
일권의 몸은 공중에서 빙글빙글 돌다가 점점 포물선을 그리며 떨어지고 있었다. 그 아래에는 아쉽게도 머맨들의 수십 개의 창날이 대기하고 있었다.
진후는 자신의 몸을 파고든 검을 맨손으로 잡아채며 소리쳤다.
“안 돼애애애!”
그때, 옆에서 무언가가 가공할 속도로 날아와 일권의 몸을 낚아챘다.
“나이스 캐취!”
그 모습에 진후의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수…… 언?”
쏜살처럼 날아와 공중에서 일권의 몸을 낚아챈 청년은 바로 염력 특성자 수언이었다.
그는 몬스터들의 손에 닿지 않는 5미터 위로 올라가 진후를 보며 말했다.
“아저씨도 같이 가요!”
그 말과 동시에 진후의 몸이 붕 떠올랐다. 아니, 떠오르려고 했다. 그러나 몬스터들의 검에 온몸이 고슴도치처럼 꿰어 있어 떠오르지 않았다.
그때, 짙은 장미향과 함께 자주색 코트를 입은 묘령의 여인이 진후의 앞에 나타났다. 그녀의 오른손에는 도신이 긴 일본도가 들려 있었다.
사삭, 사사사삭!
그녀의 일본도가 마치 수십 개로 늘어난 듯이 무서운 속도로 휘둘러졌다. 진후도 쉽게 피하지 못할 빠르기였다.
그러자 거의 동시에 그를 둘러싸고 있던 몬스터들의 팔과 머리가 후두둑 잘려 나갔다. 그제야 자유로워진 그의 몸이 붕 떠올라 수언과 함께 포위망을 벗어날 수 있었다.
진후는 날아가는 동안에도 충격을 받은 얼굴로 몬스터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자주색 코트의 여인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때, 언제 나타났는지 모를 은서가 그에게 물었다.
“아저씨! 괘, 괜찮아요?”
은서는 진후와 몇 번 말은 섞어 보지 않았지만 케라브 안에서 여울과 자주 협동하여 어려운 보스들을 무너트린 것을 알고 있었다.
그녀가 보기에 진후는 곧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상처를 입었기 때문에 걱정 가득한 목소리로 물은 것이다.
진후는 은서를 쳐다보았다가 다시 여인에게 고개를 돌리며 입을 열었다.
“저…… 여인은?”
은서는 실시간으로 살이 아물어져 가는 진후의 환부를 신기한 듯이 바라보며 대답했다.
“아…… 사와코는 내 환상이라서 괜찮아요. 그…… 아빠가 그랬어요. 빠른 검의 사와코는 양민 학살? 에 최적화되었다고…….”
“환상, 환상이 저런 힘을…….”
진후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내저었다. 사와코는 아무리 보아도 자신과 비슷하거나 자신보다 강해 보이기 때문이다.
몬스터들과 거리가 멀어지고 염력의 시간도 떨어지자 수언은 일권을 제외하고는 모두 땅에 내려놓았다.
그들은 직접 달려서 북문으로 향했다. 진후의 몸은 벌써 거의 대부분 회복된 상태였다.
“헤에엑…….”
북문에 도착한 은서는 입을 쩌억 벌리고는 탄성을 내질렀다.
폭이 10미터가 조금 넘는 북문이 활짝 열려 있는데도 수를 셀 수 없는 사람들로 꽉 차 있었기 때문이다.
그 뒤로도 끝없는 줄이 이어져 있고, 가장 끝에 군인들과 다른 길드원들, 그리고 대한 길드 대원들이 보였다.
“길드장님!”
“부, 부길드장님?!”
“괜찮으십니까!”
대원들은 다급히 달려와 진후와 일권의 몸을 살폈다. 그중 응급 치료를 담당하는 한 대원이 곧바로 오우거의 피를 꺼내 일권의 허벅지에 아낌없이 뿌려 댔다.
그렇게 잠시 한시름 놓는가 싶었으나, 진후의 표정은 펴지지 않았다.
쿠구구구구구구구구……!
그 원인이 바로 존재감을 드러냈다. 잔잔한 진동과 함께 저 멀리서 뿌옇게 흙먼지의 파도가 밀려오는 것이 보였다.
아직 반도 빠져나가지 못한 사람들은 설마? 하는 표정으로 뒤돌아서 남쪽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거대하고 흉악한 몬스터들이 시야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으, 으아아아아악!”
“몬스터다!”
“꺄아아아악!”
몬스터들이 이곳에 도달할 때까지 빠져나가지 못할 것이라고 직감한 사람들은 패닉에 빠졌다.
목청이 찢어지라 비명을 내지르며 앞사람을 마구 밀었고, 이성을 잃고 벽을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어떤 이들은 다른 사람들을 밟고 먼저 나가려는 이들도 있었다.
하나, 아무도 그들을 욕할 수 없었다.
진후는 인상을 찌푸린 채 사람들과 몬스터들을 번갈아 보았다. 이 모든 사람이 문밖으로 나가려면 최소 30분은 걸린다.
헌터들은 직접 벽을 뛰어넘을 수 있지만 그러면 남은 사람들은 떼죽음을 당할 것이다.
모여 있는 헌터들은 일만 명이 채 되지 않았고, 그중에 이번 게이트에서 나오는 몬스터들을 일대일로 상대할 수 있는 5레벨 이상 헌터들은 천 명 안쪽, 결단을 내려야 한다.
효율을 위해서는 사람들이 어떻게 되든 말든 벽 위에 헌터들을 배치하고 역방어전에 돌입해야 마땅했다.
“으허어억!”
“제발, 제발, 하나님.”
“꺄아아아아!”
공포에 빠진 사람들이 벌써 자기들끼리 밀치고 밟은 탓에 사상자가 속출했다.
공포는 웃음보다 빠르게 전염된다.
마력총을 들고 있는 군인들도, 우월한 인간이라는 취급을 받던 콧대 높은 헌터들도, 무적 길드라고 각광을 받던 대한 길드 대원들마저도 무기를 든 손을 떨며 공포에 빠져 있다.
이 사람들을 버리며 최대한 효율적으로 싸우면 이길 수 있을까?
아니, 이들을 버린다면 이긴다는 것이 의미가 있는가?
그으아아아아아아!
아파트 10층 높이의 초대형 괴물 이그리트가 앞장을 서며 두려움에 떨게 만드는 포효를 내질렀다.
수만 마리의 몬스터 군단이 덮쳐 오기까지는 이제 500미터도 남지 않았다.
저벅, 저벅.
진후는 방패를 단단히 잡고 앞으로 걸어 나왔다. 그 옆으로 오른팔 백일권이 따라나섰다.
그 모습에 케라브에서부터 진후의 뒤를 따르던 친위대가 나란히 섰다. 그러자 공포에 떨던 대한 길드의 대원들이 너도나도 비장한 표정으로 바뀌며 그 뒤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진후는 입을 크게 벌린 채 사람들을 삼키러 오는 몬스터들을 노려보며 생각했다.
‘나는 인간이다. 나는 인간들을 지킬 때 인간으로 살아 있음을 느낀다. 나는 이들을…… 지킬 것이다!’
진후는 한 발자국 나서서 바닥에 방패를 강하게 내려찍었다.
쿠우웅!
그러고는 그의 턱이 빠지도록 크게 외쳤다.
“대한 길드!”
척!
그의 외침에 대한 길드 대원들이 반사적으로 무기를 들어 올렸다. 진후는 방패를 하늘 높이 추켜올리며 몬스터들을 향해 소리쳤다.
“전진하라!”
“전진하라!”
진후는 방패를 앞세우며 전속력으로 돌진했다. 그를 선두로 이제 이백여 명밖에 남지 않은 대원들이 맹목적인 믿음으로 전진했다.
저 밑바닥까지 내려가 있던 사기가 그의 한마디에 하늘 높이 올라간 것이다.
그러나 그 수가 너무 적었다. 다른 길드원들과 군인들이 그들을 따라나서지 않은 탓이다.
곧 수만 마리의 몬스터들이 대한 길드를 집어삼키는 모습이 눈에 절로 그려졌다.
그들은 용감했으나 무모했다.
그때.
“모두! 쓸어버려라!”
북문 위쪽에서 귀청을 찢는 외침이 들려왔다.
“와아아아아아아!”
“와아아아!”
“다 쓸어버리자아!”
“우와아아아!”
그 거칠고도 우렁찬 함성에 사람들이 모두 위를 쳐다봤다.
하늘에 순간 그늘이 드리워졌다. 그곳에는 짙은 남색 방어복을 입고 오른손에 검을 들고 있는 자들이 벽을 박차며 날아가고 있었다.
한 사내가 그들을 보며 외쳤다.
“저, 정부 헌터들이다!”
드디어 여울이 직접 키운 3,000명의 정예 정부 헌터들이 도착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