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 Hunter Killer RAW novel - Chapter 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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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 외교
‘저 말도 안 되는 기술은 또 언제 터득한 것인가…… 전에는 없었는데.’
진후는 열등감에 사로잡혀 멍하니 그의 뒷모습만 바라보고 있던 그때, 열댓 번의 검기를 뿌리며 수천 마리의 몬스터들을 도륙하던 여울의 움직임이 멈췄다.
그는 살짝 고개를 돌려 진후를 쳐다봤다가 다시 몬스터들 사이로 몸을 던졌다. 그러나 이번에는 검기가 아닌 직접 그 안으로 들어가 한 마리 한 마리 목을 쳐 내는 것이었다.
여울의 검기도 충격파처럼 제한이 있었다. 그는 양손에 베아와 디카르를 들고 몬스터들 사이를 누비며 일검에 일살을 이뤘지만 검기로 처리할 때보다는 느릴 수밖에 없었다.
여울은 동분서주하며 라칸이나 갈퀴나가처럼 강한 몬스터들 위주로 처리했다. 덕분에 북문을 지키는 헌터들은 조금씩 안정적으로 싸울 수 있었다.
북문 너머에 백여 명의 검은 기사들이 맡은 곳은 한정된 수의 몬스터들이기에 그들로 충분히 막을 수 있었다.
“크륵, 크륵.”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검은 기사들이 시간이 다 되었는지 하나둘씩 소환이 해제되고, 채 열 명이 남지 않았을 때였다.
몬스터들이 주춤거리더니 이내 뒤돌아서 도망을 치기 시작했다.
사방으로 흩어지는 것을 보니 전처럼 작전상 후퇴가 아닌, 가망 없는 싸움에서 살아남기 위한 도주로 보였다.
“하아…….”
“후…….”
사람들이 저마다 한숨을 내쉬며 무기를 떨어트렸다. 그들을 쫓을 여력 따위는 없었다. 승리를 만끽할 기력도 기분도 없었다.
주변엔 이미 몬스터와 인간의 피로 강이 이루어져 있었다.
사람들은 몬스터들의 수에 비해 수십 배는 더 큰 피해를 입었다.
살아남은 사람들도 사지가 멀쩡한 사람은 몇 명 보이지 않았다. 모두가 피를 뒤집어쓰고 있어 누가 시체인지, 누가 산 사람인지 제대로 분간하기도 힘들다.
“아…….”
사람들은 멍한 표정을 짓고 있거나 바닥에 그대로 쓰러졌다.
자신의 뒤에 여러 사람이 교체될 동안, 처음부터 끝까지 북문을 지키고 있던 진후 역시 두 무릎을 꿇었다.
털썩.
“끝…… 난 건가.”
몸은 원기가 계속 충전되어도 정신적으로 너무 지친 것이다.
여울은 이상함을 느꼈다. 인피니티 게이트는 닫히는 게이트가 아니다. 그렇다고 몬스터의 공격이 멈추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다.
케라브의 기억이 이 이후까지 진전되지는 않았으니까. 그는 진후에게 다가가 물었다.
“게이트가 어디에 생겼지?”
“동쪽 벽 바로 너머에, 남쪽에도 생겼는데 어딘지는 모른다.”
“보고 오지.”
여울은 바로 바닥을 박차고 몬스터들의 뒤를 쫓았다.
동쪽으로 가다 보니 한쪽 벽이 완전히 무너진 것이 보였다.
벽 위에 올라서니 2킬로미터쯤 거리에 인피니티 게이트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곳에서는 더 이상 몬스터들이 나오지 않고 있었고, 물이 담긴 컵에 검은 잉크를 떨어트린 것처럼 게이트의 중앙에서부터 천천히 검게 변하고 있었다.
몬스터들은 각자 살 길을 찾아 사방으로 흩어졌다. 여울은 디카르를 던져 몇 마리의 머리통을 꿰고는 남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남쪽은 게이트가 어디에 생겼는지 찾을 수가 없었다. 적어도 수원시의 벽 너머 10킬로 이내에는 없었다. 여울은 시이에게 찾아보라고 하고 일단 발끝을 돌려 북문으로 다시 돌아갔다.
은서에게 먼저 가 보니 지연은 보라에게 치료를 받아 고비를 넘겼고, 보라는 다시 기절했다고 한다. 지금은 은서의 무릎에 두 여인이 누워 있는 상태였다.
여울은 진후를 찾아가 동쪽 게이트의 상태를 알려 줬다. 그러자 진후가 뒤돌아서 사람들을 향해 큰 소리로 외쳤다.
“게이트에서 몬스터들은 더 이상 나오지 않고, 남은 몬스터들은 모두 도망쳤습니다!”
“후아…….”
“하…… 살았다.”
“크흡…….”
사람들은 진후의 목소리를 듣고 나서야 한시름을 놓으며 제대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자신의 얼굴에 묻은 붉은 피와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살가죽들이 방금 전까지만 해도 자신의 친구, 가족, 동료였으니……
진후는 대한 길드 대원들과 다른 길드의 수뇌부들을 불러 모았다.
“지금 물러났다고 안심하고 있어서는 안 됩니다. 게이트의 색만 바뀌었을 뿐, 완전히 닫힌 것은 아니니, 위급한 부상자들만 최소한의 응급치료를 해 놓고 이 부근에 월드컵 경기장으로 이동해서 추후 진로에 대해 의논해봅시다.”
“예 알겠습니다.”
“그게 좋겠군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진후는 각자의 자리로 다시 흩어지는 그들을 바라보다가 인기척이 느껴져 뒤돌아섰다.
여울이었다.
그는 진후의 눈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어깨에 한 손을 올리며 말했다.
“너는, 누구보다 인간답군.”
진후는 그의 말에 순간 울컥하는 감정이 올라왔다.
남들도 아니고 유일하게 자신의 정체를 정확하게 알고 있는 여울이 이런 말을 하니 왠지 지금의 행동을 인정받는 마음이었다.
그렇다.
자신은 틀리지 않았다.
앞으로도 지금처럼 살아가면 된다. 악은 응징하고, 약자들을 지키면서…….
* * *
제3차 재앙, 지금까지의 재앙은 재앙도 아니었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전 세계는 어마어마한 피해를 입었다. 아니, 입고 있는 중이었다.
대한민국은 수원시와 천안시가 완전히 초토화되고, 사상자만 천만이 넘어갔다.
대구에는 게이트가 생기지 않아 피해가 거의 없었지만, 소식을 듣고 천안으로 지원을 나간 주력 헌터들이 전멸하였다.
그리하여 한국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모두 대구로 이동하였고, 더욱 요새를 굳건히 하는 작업을 진행하였다.
백두산 부근에 열린 게이트에서 나온 몬스터들은 검은 기사들이 모두 처리를 했는지, 아니면 다른 방향으로 갔는지 아래쪽으로 내려오지 않았다.
중국은 지금까지 확인된 인피니티 게이트만 11개였는데, 속수무책으로 당하다가 천혜 요새인 시안성에서 간신히 버티며 전 세계에 급박하게 지원을 요청했다.
일본은 아무런 연락도 닿지 않았다.
사람들은 일본이 몬스터들에게 완전히 망했을 것으로 추측하고, 바다를 건너올 놈들을 대비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돌았다.
재앙 이후에도 세계 최고의 강대국이라는 타이틀을 빼앗기지 않은 미국도 온전치는 않았다.
워싱턴의 중앙에 위치한 철갑을 두른 거북이 모양의 한 벙커, 미국의 고위급 간부들이 한자리에 모여 심각한 표정으로 지도가 펼쳐진 스크린을 바라보고 있다.
하얀색 투피스를 입은 금발의 여인이 손으로 스크린을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현재 멕시코 쪽에서 올라온 몬스터 군단이 샌안토니오, 오스틴, 댈러스를 지나 내슈빌로 향하고 있습니다.”
“허…… 참.”
“내슈빌에는 크레크를 포함하여 스칼로 길드의 강한 헌터들이 많으니 막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몬스터들의 수나 강함으로 볼 때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들도 불가능하면 우리 미합중국이 저딴 몬스터 군단에게 쓰러질 수밖에 없다는 겁니까?”
띠. 띠. 띠.
그때, 스크린에 표시된 푸른 점이 반짝이다가 붉은 점으로 바뀌었다. 방금 전까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던 내슈빌이다.
“허…….”
“이, 이런…….”
한 중년인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지금 당장 눈에 보지 않는다고 이렇게 앉아만 있을 상황이 아닙니다. 우리도 다른 나라에 지원 요청을 해야 합니다.”
“아니, 우리 미국이 지원 요청을 하다니요. 그건 절대 불가능…….”
“지금까지 쌓아 올린 위상이 단번에 무너질 겁니다.”
“하! 위상 같은 소리 하고 있네. 그러다 나라가 망하면 당신들이 책임질 거야?! 그리고 데이빗 소장도 말이 되는 의견을 내놓으십시오. 지금 전 세계가 다 난리인데 어느 나라에서 우리를 지원한다는 말입니까?”
중년인, UST 연구소장 데이빗은 손으로 스크린의 한 곳을 가리키며 말했다.
“한국, 한국입니다.”
“한국? 그 작은 나라 말이오?”
“전에 소장님이 난리를 치며 R랭크 헌터를 발표했던 사람이 있는 곳 아닙니까?”
“네, 맞습니다. 피해는 상당했지만 두 개의 게이트가 열렸음에도 완전히 막았고, 현재는 안정기에 들어가 있다고 합니다. 한국이라면 도움을 줄 수 있는 여력이 있을 겁니다.”
그의 말에 사람들은 미간을 좁히며 반발했다.
“그래 봤자 얼마나 도움이 된다고…….”
“차라리 우리끼리 막읍시다. 헌터들도 많고, 무엇보다 이곳에 상급 마력기관단총이 무려 백여 대나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까? 6레벨이건 7레벨이건 모두 벌집으로 만들 수 있을 겁니다.”
그때, 미국의 대통령 크레인이 오른손을 들어 그들을 조용히 시키고는 입을 열었다.
“국가의 위신이나 외교적인 위치 또한 중요하지요. 하지만 지금은 때가 아닙니다. 작은 도움이라도 받을 수 있다면 받아야지요. 데이빗.”
“예, 각하.”
“한국에 연락 넣어 봐요.”
“알겠습니다. 바로 넣겠습니다.”
데이빗은 휴대 전화를 들고 회의실을 나섰다. 그가 바로 한국헌터협회장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그도 죽었는지, 아니면 전화기가 박살이 났는지 연결이 되지 않았다.
그러면 아는 전화번호가 몇 개 남지 않는다. 데이빗은 침을 꿀꺽 삼키고는 그 번호를 눌렀다.
* * *
끼익.
데이빗이 조심스레 회의실 안으로 들어왔다. 그가 돌아오자마자 다른 의원들이 닦달했다.
“어떻게 됐습니까?”
“연락이 닿았습니까?”
데이빗은 그들을 둘러보다가 크레인에게 시선이 멈추었다.
“각하, 먼저 약속 하나를 해 주십시오.”
“뭡니까?”
“이번 지원으로 몬스터 군단을 막는다면, 미국에서 한국을 위해 물질적으로나 외교적으로나 전폭적인 지지를 아끼지 않겠다는 약속입니다.”
크레인은 생각할 필요도 없다는 듯이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겠다고 하세요.”
“감사합니다. 지원…… 오기로 했습니다. 그곳에도 움직일 수 있는 비행기가 남아 있다고 하여 최대한 빠르게 와 달라고 했습니다.”
“얼마나 온다고 합니까?”
데이빗은 질문을 한 의원에게 시선을 돌리고는 천천히, 굳게 대답했다.
“R랭크 헌터, 한 명입니다.”
“하, 한 명?”
“허, 참!”
“그렇게 자신만만하게 나가더니…….”
“황당하군.”
“R랭크라고 한들, 혼자서 뭘 해낼 수 있다고…….”
의원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데이빗을 향해 독설을 퍼부었다. 크레인 역시 실망스런 기색을 감추지 못하며 그에게 물었다.
“그 한 명을 위해 내게 그런 약속을 시킨 겁니까? 그자가 저 몬스터 군단을 막을 수 있습니까?”
“혼자서 막는다고 장담할 수는 없지만, 헌터 한 연대보다 강할 것입니다. 믿어 주십시오.”
“허…….”
크레인은 그의 굳건한 눈빛에 고개를 내저었다.
* * *
후우우우웅!
대한민국이 안전해지려면 주변국부터 안전하게 만들어야 한다.
한국은 진후을 필두로 지원군들을 꾸려 중국으로 지원을 나갔다. 그중에 여울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그는 지금, 홀로 미국 워싱턴으로 가는 중이었다.
여울은 창문가에 팔을 올려 턱을 괸 채 UST의 소장 데이빗과의 통화를 떠올렸다.
‘그곳의 비행기로 바로 출발해 주게, 이번에 몬스터 군단만 막을 수 있다면 미국에서는 할 수 있는 모든 지원을 해 줄 것이야, 무너진 한국을 재건하는 데 큰 힘이 되어 줄 것을 약속하겠네!’
중국을 지원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지만, 천안과 수원이 무너져 퇴보한 한국을 재건하고, 더욱 견고한 성을 만드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미국과 같은 강대국에게 빚을 지워 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었다.
* * *
“크룩 카하오!”
“케륵!”
이제 거의 도착을 했는지 창문 밖을 보니 수를 셀 수 없는 몬스터 무리가 도시를 무너트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한데, 비행기는 계속 그 주변을 맴돌고 있었다.
“무슨 문제 있습니까?”
그의 말에 기장이 당황하며 대답했다.
“그, 그게 마땅히 착률할 곳이 없습니다. 비행장도 모두 점거되어…….”
여울은 다시 창문 밖을 보았다가 그에게 물었다.
“문 열어 주십시오. 내리겠습니다.”
“네. 알겠습…… 네에?!”
기장은 깜짝 놀라며 되물었다. 아무리 낮게 날고 있어도 수백 미터 상공이다.
게다가 헬기라면 몰라도 시속 500킬로미터로 날고 있는 비행기에서 뛰어내리는 것은 상상도 해 보지 못한 일이었다.
그사이, 여울은 비행기 내에 비상문 레버를 당겨 문을 열었다.
쐐애애애애액!
살인적인 칼바람이 여울을 얼굴을 강타하고, 기내가 순간 흔들거렸다.
여울은 바로 밖으로 몸을 내던졌다.
“엇, 어억!”
힐끔 돌아보았던 기장의 두 눈이 빠질 듯이 커졌다.
국가 자산이라고 할 수 있는 R랭크 헌터 여울이 낙하산도 메지 않고 뛰어내렸기 때문이다.
* * *
같은 시각, 2인 드론으로 공중에서 현재 상황을 중계하고 있던 한 기자가 그 모습을 포착했다.
“엇? 저거 뭐야? 사람 아니야? 야, 찍어, 찍어!”
카메라맨은 빠르게 카메라를 줌인하여 하늘에서 떨어지는 사람을 찍었다.
“그런데 투신자살하는 사람 찍어서 뭐해요?”
“닥치고 찍어, 뭐든 그림은 되니까.”
그때, 바닥에 가까워지는 그 사람의 허리춤에서 하얀빛이 뿜어졌다.
그러나 이제 곧 신형이 바닥과 부딪쳐 산산조각이 날 것이 분명했다.
“끄읍, 난 못 보겠다!”
카메라맨은 눈을 질끈 감으며 고개를 돌렸다.
그 순간, 가공할 속도로 떨어지던 사람의 몸이 바닥에 강하게 충돌했다.
그때,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콰아아아아아앙아아앙!
우레와 같은 소리와 함께 그 주변 70미터 부근에 있던 모든 몬스터들이 터져 나간 것이었다.
떨어진 사람이 내려선 곳은 마치 작은 행성이 떨어진 것처럼 넓고 깊게 파여 있었다.
그 중앙에는, 두 개의 검을 든 남자가 오롯이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