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 Hunter Killer RAW novel - Chapter 125
125
125. 준비
기자는 생방송을 방금 켠 것도 잊은 채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와, 씨…… 내가 뭘 본 거지? 저 사람, 살아 있어?”
그 물음에 카메라맨은 그 깊게 파인 구덩이 한가운데에 서 있는 남자를 줌인했다.
“아…… 우, 움직입니다!”
그는 한 번의 도약으로 15미터, 20미터씩 쭉쭉 나아가 몬스터들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그러자 더 놀라운 일이 발생했다.
촤아아아아악!
그가 휘두른 검의 궤적을 따라 반경 50미터 내에 있던 몬스터들의 허리가 모두 잘려 나간 것이었다.
지금까지 고랭크라고 불리는 5레벨, 6레벨의 헌터들이 한 마리도 상대하기 벅차 했고, 마력총도 한 통은 쏟아부어야 쓰러트릴 수 있었다.
그런 몬스터가 지금 손짓 한 번에 수백 마리가 나가떨어졌다.
같은 시각, 워싱턴 벙커 안에서는 그 광경을 실시간으로 확인하고 있었다.
작은 나라 어쩌구 하며 이죽거리던 의원들은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꾹 다물고 눈만 크게 뜨고 화면을 보고 있다.
“그 R랭크가…… 온다는 시간이…….”
“지금쯤이었지요…….”
미국 정상 크레인은 연구소장 데이빗에게 고개를 돌려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저, 저자가…… 소장님이 말한 그 사람이 맞습니까?”
데이빗은 화면을 보며 감격 어린 표정으로 고개를 굳게 끄덕거렸다.
“네…… 네! 맞습니다. 저 사람이 바로 한국의 지원군, R랭크 여울입니다!”
“허…… 허허, 사람이 어떻게 저런 힘을…….”
“어마어마하군요…….”
크레인은 자리에서 일어나 의원들과 장관들을 보며 말을 이었다.
“자, 이제 몬스터들이 방어선에 거의 도달했습니다. 저분이 지원군으로 온 이상 워싱턴이 방어에 실패한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군요. 전군을 방어선에 배치해서 한 마리도 넘어오지 못하도록 하세요.”
“예, 각하!”
“알겠습니다, 각하.”
크레인의 명을 받고 모두가 회의실을 나섰다. 그는 텅 빈 회의실에서 화면으로 여울의 활약을 지켜보며 중얼거렸다.
“한국이라…… 부럽군.”
* * *
몬스터 군단이 멕시코에서부터 미국의 심장부까지 가로지르며 모두 초토화시켰지만, 그래도 미국은 미국이었다.
그들은 최첨단 무기들과 미스릴 방벽, 그리고 17만의 헌터들로 철통같은 방어를 보여 주었다.
여울은 얼마 충전되지 않은 검기를 모두 소모한 후, 이그리트와 라칸 위주로 처리했고, 연구소장 데이빗에게 이야기하여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다행히 그가 한국을 떠나 있던 며칠 동안엔 아무런 문제도 생기지 않았다. 게이트는 여전히 검은색이었고, 어떤 몬스터들도 나오지 않았다.
문제는 다른 방면에서 생겼다. 대구가 인구 포화 상태로 인해 식량과 식수가 문제가 대두된 것이다.
해결 방안이 제대로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대한 길드를 필두로 중국으로 지원을 떠났던 헌터들이 무사히 귀환하였다.
이번 강대국들을 지원하면서 미국에서는 한국에 마력기관총과 미스릴 강판 등, 최신식 무기와 재료를 대량으로 지원해 주었고, 중국은 마석과 인적 지원을 약속했다.
그로 인해 한국은 한강 부근부터 서울을 재건하기 시작했다.
바깥벽과 안쪽 벽으로 이중벽을 만들고, 벽과 벽 사이에도 구역을 나누어 중간 벽을 세우기로 하였다. 어디서 게이트가 생겨도 금세 다른 구역으로 이동하여 효율적인 대피와 방어를 할 수 있도록 설계한 것이다.
한강이 훤히 보이는 11층 펜트하우스에서 여울은 은서와 함께 소파에 앉아 TV를 시청하고 있었다.
언제든지 대피할 수 있는 헌터들이나 인부들은 서울의 멀쩡한 건물에 들어가 생활하면서 재건 공사를 돕는 중이었다.
은서는 다리를 흔들거리며 TV에 시선을 고정시킨 채 입을 열었다.
“아빠.”
“응?”
“엄마 돌아가신 거 맞아?”
그 질문에 여울은 고개를 홱 돌려 은서를 보았다. 완전한 무표정, 아무런 감정을 담기지 않은 얼굴이다. 무언가 느낌이 이상하다.
“무슨 일 있었니?”
그때, 은서의 고개가 돌아가 여울과 눈이 마주쳤다. 마치 어릴 적에 공룡 장난감을 들이대며 이름이 뭐냐고 물어봤을 때처럼 천진난만한 표정이다.
“아빠, 지연 언니가 내 엄마야?”
“그게 무…….”
여울은 말끝을 흐렸다. 티 하나 없는 유리 구슬처럼 반짝이는 그 눈을 보고 있자니 거짓말이라는 죄악을 저지를 수가 없었다.
그렇게 한참 동안 가만히 서로를 마주 보고 있다가 여울이 다시 입을 열었다.
“아마도…… 맞을 거야.”
“아마도?”
은서는 그 말의 의미를 단번에 파악하고는 되물었고, 여울은 죄를 지은 사람처럼 시선을 피했다.
그러자 은서는 한 단계 높은 톤으로 말을 이었다.
“역시! 여자 한 번 못 만나 봤을 것 같은 아빠가 어떻게 결혼을 해서 나같이 예쁜 딸을 낳았나 했어, 이제야 의문이 풀렸네, 풀렸어. 아, 속 시원해!”
여울은 애써 밝은 미소를 짓는 은서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한 손을 잡았다.
“은서야, 아빠는…….”
그러자 은서가 그 손 위에 또 하나의 손을 덥썩 올렸다.
“아빠, 나는 부족함 없이 사랑받았고, 지금도 넘치게 사랑받고 있어, 누가 낳았건 무슨 상관이야? 아빠가 내 아빠인 게 중요하지, 지연 언니는 그냥 지연 언니 하고, 아빠는 아빠 할래, 난 지금이 좋아, 아빠는?”
“……아빠도, 지금이 좋아.”
“헤헤, 그럼 이제 이 얘기는 끝, 안 할게.”
은서는 정말 속이 시원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려 다시 TV를 보았다.
그때 마침 TV에는 200미터 크기의 검은 게이트를 비춰 주고 있었다.
주변을 보니 한국의 게이트는 아니었다. 곧이어 앵커의 멘트가 흘러나왔다.
-중국의 치운 길드가 검은 게이트에 들어간 지 사흘째, 그들을 삼킨 게이트는 아무런 변화도 없습니다.
“어머, 어떡해…… 저 사람들 다 죽은 건가? 그런 거야 아빠?”
“아니, 그건 아닐 거다. 아직 돌아오지 못하는 중일 거야.”
“그렇겠지? 무섭다. 저 게이트…….”
“응……. 내 딸, 아빠 씻고 올게.”
“응.”
여울이 욕실에 들어가 홀로 남은 거실, 은서는 TV에서 뭐 그리 재미있는 걸 하는지 그곳에 시선이 완전히 고정되어 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의 건조한 눈동자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TV에선 슬픈 장면이 나오지 않고 있었다.
* * *
촤아악.
여울은 뜨거운 물을 담은 욕조에 몸을 담갔다.
지연과 마주할 때마다 언젠가는 은서에게 사실을 이야기해야겠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다.
그러나 한 나라를 뒤엎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이 문제만큼은 도저히 어떻게 풀어야 할지 답을 찾지 못했었다.
그런데 우연히 은서가 진실을 알게 되고, 혼자 고민하다가 결론을 지어 버린 것이다.
고마우면서도 한편으론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자신이 먼저 얘기를 꺼내는 것이 더 나았을까? 충격을 더 받진 않았을까?
어떤 결과든 이 비밀을 죽을 때까지 숨기는 방법이 아니라면 은서는 무조건 상처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지연에게는 은서가 사실을 알았다는 것을 당분간 비밀로 해야 할 듯하다.
여울은 TV에서 나왔던 중국의 치운 길드를 떠올리며 또 다른 고민에 빠졌다.
그도 동쪽에 생긴 검은 게이트에 손을 넣어 본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 안의 온도나 바람, 그런 것은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오랫동안 집어넣고 있어도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다.
그 전에 몬스터들을 막 뱉어 냈던 투명한 게이트는 강한 반탄력으로 사람들을 튕겨 냈었다.
그런데 지금은 누구나 들어갈 수 있게 변하여, 게이트 안에 분명 게이트키퍼가 있을 것이고, 놈을 처리하면 게이트가 닫힌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래서 그중 중국의 한 길드가 용기 내어 들어갔지만, 아무런 소식이 없는 상태였다.
일반적인 게이트는 들어가면 바로 나올 수 있는 길이 있었다.
300여 명이 넘는 길드원들이 들어갔는데 한 명도 나오지 못했다는 것은 저 게이트에는 길이 없다는 뜻이 분명했다.
게이트 연구협회에서 하루에 한 번씩 크기를 측정하지만, 게이트는 검은색으로 바뀌었을 뿐, 단 1센티미터도 줄어들지 않았다.
이런 것을 물어볼 사람은 그 소녀, 비아느밖에 없는데 그녀를 만날 길이 없었다.
일반 게이트에서 다크니스를 사용했을 때 만났었는데 이제는 그것도 생기지 않으니 답답했다.
따져 보면 거의 일 년 반 주기로 재앙이 찾아왔다. 만약 이보다 더 강한 몬스터들이 온다면? 아니, 지금 저번에 막은 몬스터들이 그대로 다시 와도 버틸 수 없을 것이다.
막았다고는 하지만, 도망친 몬스터들이 그 수를 불리고 있고, 전 세계 인구는 3분의 1로 줄어들었으며, 헌터는 5분의 1만 살아남았다.
케라브의 기억을 더듬어 보았을 때, 저 검은 게이트 너머의 세계인 로디스에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수의 몬스터들이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케라브 시점이기에 얼마나 강한지는 제대로 측정이 되지 않지만, 이그리트보다 강한 몬스터도 셀 수 없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했다.
하나, 저 검은 게이트가 존재하는 이상, 사람들은 언제나 불안에 떨며 살아야 하고, 언젠가는 분명 멸망할 것이다.
중국의 치운 길드 사람들이 넘어간 곳이 로디스라면, 그들은 그곳으로 가자마자 바로 모두 찢겨 죽었을 것이다.
만약 자신이었다면?
“후…… 후웁!”
풍덩!
여울은 답답하고 어지러운 생각을 지우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물 안에 완전히 담갔다.
폐활량 특성이 있어 잠수는 1시간가량 할 수 있다. 원래 1레벨 특성이 30분 추가인 걸 보면 기본적인 잠수 시간도 30분 가까이 늘어난 듯하다.
그는 물 안에서 눈을 떴다. 그 투명했던 게이트처럼 출렁이는 물결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이를 악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촤아아악!
밤의 왕이 될 때부터, 아니 최초의 머더러가 되는 순간부터, 아니 은서가 납치됐을 때부터 이렇게 될 운명이었던가?
여울은 보이지 않는 운명의 끈이 자신을 어딘가로 이끌어 가고 있음을 느꼈다.
“나는…… 게이트 너머의 세상으로 가야만 한다.”
넘어가서 게이트를 여는 존재를 부수어야만 했다. 그래야 은서가 사는 세상의 미래가 보장될 테니까.
그러지 않으면 항상 불안감을 가지고 처절한 전쟁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
게이트가 다시 열릴 것으로 추측되는 시간은 일 년 반, 그 시간 안에 미래를 바꾸고 다시 돌아올 것이다.
* * *
무너진 항구도시 부산, 여러 종류의 방어복을 입은 수백 명의 헌터들이 공터에 모여 있었다.
그들의 가운데에는 검은 방어복을 입고 어깨에 거대한 방패를 멘 사내가 서 있었다.
척.
그가 한 손을 들자, 헌터들이 열댓 명씩 짝을 지어 반파된 건물 사이로 빠르게 흩어졌다.
홀로 남은 사내, 진후는 가만히 하늘을 올려다보며 조명탄을 기다렸다.
그때, 하늘 위에서 천사와 같이 새하얀 무언가가 빠르게 날아왔다.
그것은 매우 조그맣고 아름다운 새였다.
후우우웅.
진후는 방패를 내리며 재빨리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검은 옷을 입은 한 남자가 서 있었다.
“진후.”
“……여울.”
여울은 그 세계로 넘어간다는 것을 진후에게 가장 먼저 알리기로 했다.
자신이 사라지면 이곳에 남아 있는 가장 강한 자는 진후였다. 리더십도 자신과 비교할 수 없이 뛰어나 타고난 지도자라고 생각되었다.
“할 말이 있어서 찾아왔다.”
여울은 바로 자신의 계획을 털어놓았다.
그 말을 듣고 진후는 충격을 받았다. 여울은 자신과는 다르게 가족이 있었다.
그것도 각별하게 생각하는 자기 딸을 놔두고, 살아 돌아올 가능성이 희박한, 아니 돌아올 방법이 없을지도 모르는 곳에 간다는 것 자체가 이해가 안 되는 것이다.
진후는 할 말을 마치기 무섭게 바로 뒤돌아서 떠나가는 여울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너는……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행동으로 옮길 수 있지?’
자신이 여울에게다 뒤처지는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여울은 생각하는 것 자체가 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