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 Hunter Killer RAW novel - Chapter 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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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 검은 게이트
띵동!
벨이 울리자, 은서는 누군지 확인도 하지 않고 문을 벌컥 열었다.
“언니이!”
은서는 양손 가득 검은 비닐봉지를 가지고 온 보라에게 확 안겼다.
보라는 못 이기는 척 안아 주며 투덜거렸다.
“아잇, 다 커서 징그러워졌네.”
“원래 컸거든? 수언 오빠도 안녕!”
보라 뒤쪽에 쭈글거리고 있던 수언은 은서의 인사에 표정을 활짝 피며 한 손을 흔들었다.
“아, 안녕, 은서야.”
그들이 들어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벨이 울렸다. 은서는 이번에도 바로 문을 열었다.
“둥두…… 웅?”
은서는 둥둥에게 다가가다가 그 옆에 찰싹 달라붙은 여인을 보고 우뚝 멈춰 섰다.
“안녕? 네가 은서니? 반갑다.”
“누구…….”
은서는 둥둥에게 애인이 생겼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당황하는 은서의 뒤에서 보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얼마 전에 생긴 둥둥 껌딱지, 낯짝도 두껍지, 여기까지 따라왔어?”
“언니, 껌딱지니까 따라왔죠. 그치, 자기야?”
“으흐, 그, 그러타.”
껌딱지라고 불린 여인, 사라는 둥둥의 팔뚝을 끌어당겨 자신의 가슴에 착 붙이며 애교를 떨었다. 둥둥은 또 그것을 좋아했다.
“자, 자기……?”
그 모습에 은서는 두 손으로 팔뚝을 비비며 낯설어했다. 요란한 환영 중에 뒤쪽에서 여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으로 들어와라.”
“옙.”
“넷!”
“넵.”
그의 말에 세 명이 칼같이 대답하며 후다닥 들어왔다. 여울을 정부 헌터 단장이라는 쳐다보지도 못할 직책으로 보고 있는 사라와 원래 무서워했던 둥둥, 그리고 여울을 존경하는 수언이었다.
“앉아라.”
“넵.”
“넷.”
금세 자리가 정리되자 여울은 주방에서 보라의 도움을 받아 요리를 하기 시작했다. 여울이 있다는 것을 인식한 사라는 그때부터 꿀 먹은 벙어리처럼 가만히 그의 눈치를 살폈다.
“뭐야, 생각보다 잘하는데요? 생긴 거랑 다르게.”
“나는 요리 잘하게 생겼다.”
“나눈 요리 좔하게 생겻똬. 깔깔.”
보라는 여울의 말투를 따라 하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사라는 보라가 여울에게 눈웃음을 살살 치며 농담을 하는 것을 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뭐야, 둘이 원래 저렇게 친했어? 그냥 직책상 따라다니는 줄 알았는데…….’
“둥둥의 어디가 그렇게 좋아요?”
그때, 사라를 유심히 관찰하던 은서가 대뜸 물었다.
딱 달라붙는 줄무늬 원피스에 호피 하이힐, 여우 같은 눈빛, 아무리 봐도 콧대가 높아 둥둥에게 달라붙을 것 같지 않은 미녀였다.
화들짝 놀란 사라는 은서와 그 옆에 따라서 쳐다보는 수언에게 시선을 돌렸다.
“응?”
그러고는 질문을 곱씹더니 이내 눈빛이 변하여 둥둥의 얼굴을 쳐다보며 대답했다.
“어디가 좋긴…… 다 좋지, 어디 하나 꼽을 수 있으면 그게 사랑이니?”
“사랑…….”
“으으.”
수언은 더 이상 듣지 못하겠다는 듯이 두 귀를 막았다. 가만히 그 얼굴을 바라보던 은서는 다시 질문을 이었다.
“그럼…… 언제 처음 좋아하게 됐어요?”
“글쎄…… 처음 봤을 때…… 는 아니구나, 날 위해 저 멀리서 그 큰 대검을 들고 달려왔을 때…… 그때 난 후광이라는 걸 처음 봤지.”
“후, 후광…… 그렇구나.”
은서는 아련한 눈빛으로 그때를 떠올리는 사라를 보며 진심이라고 판단했다.
저 얼굴이 연기면 배우를 해도 될 것이다. 둥둥에게도 이런 날이 오다니, 케라브에서 그 오랜 시간 동안 함께했던 동료로써 마음이 기쁜 은서였다.
“잘 됐다, 진짜. 잘 어울린다, 둥둥!”
“브, 브끄덥다.”
그렇게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요리가 완성되었다. 여울이 만든 꽃게탕과 보라가 만든 김치전이었다.
“와! 진짜 맛있다! 아빠, 이거 쉰라면보다 더 맛있어.”
“그 정도구나, 고맙다.”
“오오…… 단장님께 이런 요리 솜씨가.”
여울은 음식을 맛있게 먹는 사람들을 둘러보다가 마지막에 보라와 눈이 마주쳤다. 그녀도 그를 보고 있던 것이다.
여울은 한숨을 내쉴 정도의 시간 후에 눈길을 피하며 입을 열었다.
“은서야, 아빠가 지금 할 이야기를 너에게 미리 해 주지 못했던 건 이 사람들과 함께 들어야 괜찮지 않을까 싶어서야, 먼저 사과부터 할게.”
“으, 응?”
은서는 게 다리를 집던 손을 멈추고는 여울에게 시선을 고정시켰다.
설마 이 사람들 앞에서 엄마 이야기를 꺼낼 생각인가? 라는 생각에 표정이 굳은 은서였다.
다른 사람들은 대체 무슨 이야기이기에 이렇게 진지한가 의문이 들어 귀를 쫑긋 세웠다.
여울은 그들의 눈을 하나하나 마주했다. 그래, 이 사람들에게만 알리면 된다.
서한의 원팀은 알아서 잘살 것이고, 지연도 신한 길드의 부길드장이 되었으니 그곳 일만 신경 쓰면 된다. 은서를 생각하여 일부러 부르지 않은 이유도 있었지만 말이다.
“나는, 검은 게이트 너머의 세상으로 갈 것이다.”
“네엣?!”
“뭐?”
“저도 갈래요.”
“헐…….”
보라는 식탁을 두 손으로 치며 벌떡 일어섰고, 은서는 확 인상을 찌푸리며 되물었다.
수언은 별생각도 안 하고 바로 의사를 밝혔고, 둥둥은 그저 멍한 표정이다.
보라는 여울에게 뭐라고 몰아붙이려다가 은서의 눈치를 보며 입을 간신히 다물었다.
“왜? 왜 아빠가 거기로 가야 하는데? 중국에서도 수백 명이 들어갔는데 아직 안 돌아온다잖아.”
은서의 목소리와 표정은 매우 성이 난 듯했지만, 눈에서는 이미 눈물이 고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찢어질 듯이 아파 왔다.
여울은 한 손을 뻗어 은서의 눈물을 닦아 주려 했으나 그녀가 홱 고개를 돌리며 그 손을 뿌리쳤다.
“아빠밖에…… 아빠밖에 갈 사람이 없어, 미안하다…… 내 딸.”
은서는 여울이 한번 이렇게 입 밖으로 내뱉으면 절대로 되돌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얼마나 깊게 고민했을지도 알고 있다.
그러니 떠나보내야 한다는 것도 안다.
그래서 눈물이 그치지 않는 은서였다.
“그,그런 게 어디…….”
은서는 벅차는 설움에 말을 잇지 못했다. 보라는 일어서서 은서의 얼굴을 품에 안으며 입을 열었다.
“거길 왜 가야 하는데요? 그곳에 가 있는 동안 또 저 게이트가 열려서 몬스터들이 몰려들면, 오빠가 없어서 우리 다 죽으면 어떡해요? 그 슬픔은 감당할 수 있어요?”
여울은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보라는 처음 보는 그의 힘없는 고갯짓에 눈가에 물기가 차오르며 말을 이었다.
“나도 감당 못해요. 오빠 안 돌아오면…… 그러니까 가지 마요.”
“가지 않으면…… 모두 죽는다. 이 년 안에.”
“그럼 같이 죽죠, 차라리 그게 낫…….”
여울은 자리에서 일어나 보라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의 손길에 아슬아슬했던 보라의 입이 꾹 닫히며 눈물이 쏟아졌다.
“그만, 나는 그곳으로 갈 것이고, 반드시 살아서 돌아올 것이다. 이 년 안에.”
“흡, 이 년이 무슨 짧은 시간도 아니고…… 흐읍, 이놈남자가 진짜…….”
“흐윽, 흑, 왜 아빠는 맨날 어딜 가야돼…… 흐응!”
결국 두 여자가 서로를 안고 울음을 터트렸다. 여울이 어쩔 줄 몰라 할 때 수언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저도 아저씨 따라갈 거예요.”
여울은 수언의 단호한 눈빛을 보며 생각했다. 염력 특성의 수언과 함께한다면 분명 편할 일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그곳은 자신보다 레벨이 높을 것으로 예측되는 몬스터들도 많았다.
“수언이는 은서를 지켜 줘야지.”
그 말에 수언은 고개를 내리고는 머뭇거리며 대답했다.
“으, 은서는…… 사와코가…….”
여울은 그의 머리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아니, 나는 수언이가 은서 옆에 있어야 안심이 된다. 은서도 그럴 거야.”
은서는 그 와중에 힐끔 수언을 보며 붉어진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수언은 얼굴이 확 달아올라 더듬거리며 대답했다.
“아, 알겠습니다. 전 은서 옆에만 있을게요.”
은서는 고개를 들어 여울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아빠가…… 안 가면 사람들 다 죽어?”
“……응.”
“아빠가 영웅 같은 거야?”
“그건 아니지만…… 비슷해.”
“아빠, 정말 이 년 뒤에 올 거야?”
“이 년 안에.”
“알겠어, 꼭 그 전에 와.”
“알았어. 미안하다, 내 딸.”
여울은 은서를 품에 꼬옥 안았다. 순식간에 품에서 은서를 빼앗긴 보라는 그 둘을 보며 중얼거렸다.
“이년이나 저놈이나 뭐가 저렇게 쿨해…… 흐읍, 흑, 난 누가 지켜 줘! 나도 따라갈…….”
그때, 여울이 오른손을 뻗어 그녀를 확 끌어안았다. 양팔로 은서와 보라를 끌어안고 있는 모양새였다.
“거긴 위험하다. 여기서…… 날 기다려라.”
“흑…… 진짜 제멋대로…….”
보라는 처음으로 감정을 보여 준 그의 말에 얼굴을 가슴에 파묻고 그저 눈물만 흘렸다.
* * *
검은 게이트로 넘어간다는 이야기는 그들 말고는 아무에게도 하지 않았다.
그렇지 않아도 서울의 벽이 다 만들어지려면 적어도 일 년은 있어야 하는 상황.
언제 몬스터들이 또 넘어올지 모르는 불안한 시기에 자신이 사라졌다는 소식을 들으면 한국은 물론이고 다른 나라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것이다.
어차피 나중에는 다 알게 되겠지만, 혼란을 피하려면 최대한 늦추는 것이 좋았다.
수원 동쪽이나 대구에 있는 남쪽 게이트는 군인들이 24시간 지켜서고 있었으나,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치지 않아서인지 북쪽 백두산 인근에 있는 게이트는 아무도 지키지 않고 있다.
여울은 지인들에게 작별 인사를 고한 뒤, 북쪽 게이트로 걸음을 옮겼다.
그곳으로 가는 길목에는 뜻하지 않은 손님이 와 있었다. 새하얀 코트에 검은 원피스, 하얗고 가녀린 얼굴, 지연이었다.
아마도 보라가 이야기해 준 듯했다. 그녀가 두 손을 곱게 모은 채 여울을 바라보며 조그마한 입을 열었다.
“안 가면, 안 되는 건가요?”
“……은서에게는, 지금 그대로 남아 있어라.”
“아…….”
여울의 말에 지연은 그대로 굳어 버렸다. 여울은 그녀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걸음을 옮겼다. 그때 뒤에서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은서를 낳은 사람으로서…….”
처음으로 듣는 그녀가 은서의 엄마임을 인정하는 말에 여울의 걸음이 우뚝 멈췄다. 지연은 여울의 등 뒤에 허리를 깊이 숙이며 말을 이었다.
“정말 미안합니다. 그리고……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여울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다시 걸음을 옮겼다.
지이이이잉.
검은 게이트 앞, 아주 가까이에 서서 귀를 기울이니 미세하게 고주파음이 들려왔다.
여울은 시이를 불러 품에 넣었다. 그러지 않기를 바라지만 차원 이동을 하면서 장기 수면에 빠질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것이다.
이 게이트 너머에 있을 로디스라는 세계로 간다면 과거와 현재의 세계를 가장 잘 파악하고 있을 비아느를 찾아야 했다.
케라브의 기억에는 게이트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었다. 그러니 그녀에게 게이트를 누가 여는 것인지, 어떻게 막을 수 있는지 그 방법을 알아내야 한다.
“간다…….”
여울은 검은 게이트를 향해 한 발을 내디뎠다.
* * *
쏴아아아아아!
빗소리, 죽창처럼 굵은 빗줄기가 귀가 멍해질 정도로 강하게 바닥을 내려찍었다.
발끝에는 아무것도 닿는 것이 없었다.
그는 지금 공중에 떠 있는 것이다.
스윽
고개를 올려다보니 하늘만 보일 뿐 게이트로 보이는 것은 전혀 없다.
돌아가는 길이 사라졌다는 뜻.
중국의 치운 길드도 이래서 다시 돌아올 수 없었던 모양이다.
철퍽!
그는 체감상 꽤 긴 시간 후에 바닥에 착지하였다.
“흡.”
지구에선 비행기 위에서 뛰어내려도 별다른 충격이 없었는데 다리가 저릿했다.
“다 쓸어버려라아!”
“크하아아아아!!”
“캬하아아!”
고막을 찢을 듯한 함성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저 멀리서 수천, 수만 마리는 되어 보이는 몬스터들이 무서운 속도로 달려오고 있다.
지구나 케라브에서 본 적이 없는 몬스터들도 보였다.
“돌격하라!”
“와아아아아아!”
“으아아아아!
반대편을 돌아보니, 그곳에는 불곰의 2배 크기인 괴수를 타고 돌격해 오는 수만 명의 사람들이 보였다. 그들은 빛이 번쩍이는 갑옷을 전신에 두르고 있었다.
여울은 지금 전쟁터 한가운데에 떨어진 것이다.
누구에게 도움을 청하고 누구를 칠 것인지는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여울은 몬스터 무리 쪽으로 발끝을 돌리고는 다리에 힘을 주었다.
아니, 그러려고 했다. 그런데 베헤모스의 기운이 텅텅 비어 있다. 이런 상황 어느 정도 예상은 했었다. 그런데…….
‘몸이 왜 이러지?’
다리도 물먹은 솜처럼 무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