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 Hunter Killer RAW novel - Chapter 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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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7. 로디스의 첫날
드드드드드드드!
“와아아아아!!”
“다 죽여라!”
두 집단의 돌격으로 바닥이 지진이라도 난 듯이 흔들렸다. 그들이 뿜어내는 살벌한 기세가 전장을 뒤덮었다.
‘젠장……!’
정 가운데에 떨어졌기에 전장을 벗어나려면 최소한 3킬로미터는 뛰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 몸 상태로는 부딪치기 전에 벗어나기란 불가능했다. 검은 기사들도 소환이 되지 않았다. 은신은 옷깃만 스쳐도 풀리기 때문에 지금 상황에서는 비효율적이었다.
여울은 두 손에 디카르와 베아를 들고 몬스터들이 달려오는 쪽을 바라보았다.
무섭게 들이닥치는 속도로 보아 최소 레벨이 5레벨 이상인 몬스터들, 지금 자신의 몸 상태는 3레벨 내지 4레벨쯤, 위험하기는 하지만 이것밖에는 선택지가 없다.
여울은 몬스터들을 노려보며 두 검을 꽈악 쥐었다.
‘다크니스 블레이드, 다크니스 버서커.’
후우우웅!
디카르와 베아를 검은 화염이 사르르 감싸고, 온몸의 근육과 힘줄들이 수축되었다가 팽창하며 낯익은 통증이 찾아왔다.
두 집단이 충돌하기까지는 50미터 안팎, 여울은 눈앞에 자신을 덮쳐오는 화염 고릴라를 향해 검을 뻗었다.
푸욱!
놈은 여울을 얕잡아보며 들이댔다가 순간 놀라면서 몸을 틀었다.
옆구리를 깊게 파고 들어간 디카르를 무시한 놈이 거대한 주먹을 휘둘렀다.
‘뭐 이런…….’
몬스터가 자신의 검을 피하는 것은 꽤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거대 오크 갈락 이후로 몬스터에게 예상한 타격을 주지 못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여울은 다급히 디카르를 뽑으며 림보를 하듯이 뒤로 몸을 쫙 눕혔다. 머리 위로 놈의 주먹이 무섭게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흡.”
상체를 다 일으키기도 전에 그 뒤에 있던 소머리의 근육질 몬스터, 미노타우로스가 서슬퍼런 도끼를 내려찍는 것이 보였다.
여울은 오른발을 살짝 들었다가 바닥을 차며 그 힘으로 옆으로 공중회전을 하여 그 공격을 피했다.
콰직!
아슬아슬하게 빗겨나간 도끼가 바닥에 찍히며 땅거죽이 뒤집혔다.
그때, 거대 불곰을 탄 인간들과 몬스터들의 선두가 충돌했다.
콰과과과과과광!
“케에에엑!”
“아흑!”
두 집단은 누구 하나 밀려나는 것 없이 그 중앙에서 모두 중복되어 충돌하였다.
사람들은 불곰의 등을 박차고 뛰어올라 몬스터들에게 달려들었다.
여울에게 주먹을 휘둘렀던 화염 고릴라는 그 충돌의 여파로 온몸이 찢겨져 나갔고, 도끼를 내려찍던 미노타우로스는 머리가 반쯤 함몰된 채 미친 듯이 도끼를 휘두르고 있었다.
순식간에 전장은 난전이 되었다.
공격하며 몬스터들을 뚫고 전장을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했다.
놈들의 레벨도 예상할 수가 없었다.
동체 시력은 11레벨 때 그대로인데, 10레벨은 될 법한 몬스터들도 흔하게 보였다. 자신의 눈이 이상해진 것일까?
아무튼 이대로는 차원 이동을 하자마자 개죽음을 당할 수도 있었다.
다행히 몬스터들의 신경은 오로지 맞은편의 불곰을 탄 인간들에게 향했으므로 시야의 사각지대를 공략하는 게 상책이었다.
탁!
여울은 공격을 포기하고 오로지 몬스터들의 공격을 피하는 데만 집중하며 옆으로 이동을 시작했다.
몬스터의 다리 사이로 지나가거나 뜀틀을 넘듯이 등을 손으로 짚고 넘어가기도 하고, 무기를 밟거나 몬스터의 머리를 밟으며 빠르게 지나갔다.
인간 진영의 후방, 짧은 머리에 부리부리한 눈, 볼에 검상이 있는 구릿빛 피부의 사내가 팔짱을 끼고는 전장을 천천히 둘러보고 있다.
그는 세잎 대륙에서 동방의 은빛 라칸이라고 불리는 바스크였다.
그는 검지로 전장 한 곳을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저놈은 뭐지?”
그의 말에 옆에 있던 노란색 긴 머리의 사내가 대답했다.
“무서워서 도망을 치는가 봅니다. 처리할까요?”
“무서워? 네놈 눈에는 저게 무서운 놈의 움직임으로 보이냐?”
“잘 모르겠습니다. 쥐새끼처럼 잘 피해 다니기는 하네요.”
탁!
“아얏.”
바스크는 그의 뒤통수를 때리며 말을 이었다.
“보는 눈 없다는 말을 참 뻔뻔하게도 하는구나, 움직임은 느려도 쓸데없는 움직임은 단 하나도 없고, 눈빛에는 감정이 담겨 있지 않아, 크게 될 놈이다. 저놈, 신입이냐?”
사내는 뒤통수를 어루만지며 중얼거렸다.
“다 큰 놈으로 보이는데…… 본 적이 없으니 신입인 것 같습니다.”
이야기하는 중에 도망을 치던 남자, 여울이 전장을 이탈했다.
바스크는 한 번 뒤돌아보았다가 숲속으로 들어가는 그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시선을 거두었다.
‘마인만 아니었으면 좋겠군…… 언젠가는 다시 보겠지’
마인은 몬스터들에게 굴복하여 그들의 통치 아래에 사는 인간을 칭했다.
바스크는 3미터 길이에 폭이 40센티는 되는 은색의 대검을 어깨에 걸치고는 바로 옆에 대기하고 있는 집채만 한 불곰, 불칸의 위에 올라타며 말했다.
“대가리가 움직였구나, 가자!”
“옙! 대장.”
“크허어엉!”
사람처럼 머리와 몸에 철갑을 두른 불칸이 앞발을 추켜세우며 포효하더니, 무서운 속도로 전장 한가운데로 돌진했다.
일반적인 불칸보다 1.5배는 더 덩치가 큰 그놈은 폭주 기관차처럼 걸리적거리는 놈들은 모두 쳐 내며 전장 깊숙한 곳까지 들어갔다.
곧 그곳에서부터 은빛의 대검이 춤을 추기 시작했다.
* * *
여울은 전장을 벗어나 어두운 숲속으로 들어가 은신을 하고 한참을 내달렸다.
차분하게 몸 상태를 돌아볼 수 있는 안전한 곳이 필요했다.
상대가 인간이라고 해서 무조건 안전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더 위험할 수도 있었다.
그 생각만으로 한참을 달리다가 ㄴ자 모양의 바위 옆에 섰다.
“후우, 후우…….”
쏴아아아아아!
커다란 소리와 함께 진동이 울린다. 그것은 끊어지지 않고 지속적으로 울렸다. 여울은 소리를 따라 앞으로 가보았다.
“아…….”
감정기복이 적은 여울의 입에서 절로 감탄의 소리가 새어 나왔다. 지구에서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거대한 나무들이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는데, 그 잎들이 오색찬란하다.
가장 원초적인 초록색에 보라색, 파란색, 노란색과 하얀색까지 여러 가지 색의 나무들이 저마다의 빛을 내뿜으며 조화롭게 어우러져 있다.
마치 요정들이 사는 상상의 세계에 온 듯했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자로 잰 듯이 깔끔하게 깎인 절벽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특이하게도 절벽 중간 부분에서 폭포수가 흐르는데 그 크기 또한 이곳에 걸맞게 어마어마했다.
길이는 500미터는 되어 보였고 폭도 200미터는 넘는 듯했다.
후우우웅!
청량한 바람이 불어와 뒤를 돌아보았다.
자신이 달려온 곳의 옆으로는 푸르른 초원이 끝없이 광활하게 펼쳐져 있다.
마치 지구에서의 아마존처럼 자연 그대로다. 사람의 손길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곳이 이렇게 넓게 펼쳐져 있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자연스레 지구가 떠올랐다.
사실 재앙 이후 자연 파괴는 전보다 50퍼센트 미만으로 줄어들었다.
그리고 3차 재앙 이후에는 자연의 회복력으로 인해 1퍼센트 미만으로 측정되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몬스터들 중에서도 오크나 트롤처럼 부족 생활을 하며 보금자리를 만드는 종을 빼고는 전혀 자연을 건드리지 않기 때문이다.
잔혹한 현실이지만 재앙이 지구의 환경에는 오히려 좋은 효과를 가져다준 것이다.
수많은 종의 몬스터들이 끝없이 펼쳐져 있는 곳으로만 생각했지, 이런 대자연을 만나 이렇게 감탄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케라브의 기억 속에서는 오로지 전쟁뿐이었고, 그나마도 온전하지 않다. 그가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들만 보였던 것이다.
여울은 뜻하지 않던 대자연과의 만남으로 인해 들떴던 마음을 가라앉히고 현실을 직시하였다.
품에서 시이를 꺼내었다.
티끌 하나 묻지 않은 새하얀 깃털, 하얀 부리, 눈썹 한 가닥만 붙여 놓은 것처럼 꼭 감은 눈.
케라브에서 지구로 이동했을 때는 약 두 달 정도 만에 깨어났었다.
그때는 베헤모스의 기운이 바닥이 난 것 외에 몸은 전혀 이상이 없었다.
한데 지금은…….
여울은 눈을 감고 모든 감각을 최대로 펼치고는 오른쪽 새끼손가락 끝부터 세밀하게 살폈다.
생존을 위해서는 자신의 몸 상태를 제대로 아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오랜 시간 탐색한 결과, 갑자기 레벨이 다운된 것은 아닌 것으로 결론을 냈다. 근육도 혈맥도 힘줄도 모두 전과 다를 것이 없었다.
다만 그 초인적인 힘을 낼 수 있게 해 주는 원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 무언가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인식하지 못했었는데 이렇게 사라지고 나니 항상 자신의 몸 안에 그 무언가가 자리 잡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베헤모스의 기운이 있어야만 베아의 충격파를 쓸 수 있는 것처럼, 그 힘을 쓰려면 원천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지금은 그저 신체만 11레벨이기에 4레벨 정도의 힘을 낼 수 있는 것으로 보였다.
자신도 이 정도인데 중국의 치운 길드 사람들은 이곳의 몬스터 한 마리만 만났어도 모두 몰살당했을 것으로 판단됐다.
여울은 이것을 ‘마나’라는 새로운 무형의 에너지로 가정했다.
케라브의 기억이 아니면 몰랐을 단어였다.
케라브는 마나를 보는 능력으로 대마법사가 되었고, 용들을 능가하는 힘을 가지게 되었다.
그의 기억을 엿봤다고 자신이 마나를 보는 방법을 알게 된 것은 아니지만 무엇인지는 어렴풋이 알 것만 같았다.
레벨이 생성되면서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게 만드는 에너지, 조그마한 돌 하나가 산 하나를 날려 버리는 어마어마한 에너지를 품고 있는 마석, 에너지원이 마나라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모든 것이 들어맞는다.
텅텅 빈 마나를 채운다면 본래의 힘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하지만, 닥친 가장 큰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
‘마나를…… 어떻게 채우지?’
케라브는 마나를 보기 때문에 대기 중의 마나를 자신의 힘으로 끌어들여 몸 안에 저장하는 방식으로 채웠다. 자신에게는 불가능한 이야기.
스슥!
그때, 저 멀리서 수풀 한 곳이 부스럭거렸다. 여울은 몸을 뒤로 물리며 디카르를 들었다.
그곳에는 수풀 사이로 투명하고 끈적한 액체 덩어리가 보였다.
그런데 그것이 점점 검은색으로 변하더니 머리와 두 팔이 있고, 두 발로 서는 인간의 형태를 잡아갔다.
액체 덩어리는 눈코입까지 세밀하게 잡혀 가더니 이내 완전히 인간의 모습으로 화해 여울을 바라보았다.
그것은 여울과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케라브의 기억에는 없지만, 여울은 이런 종류의 이야기 속 괴물을 익히 알고 있었다.
“도플갱어?”
“도플갱어?”
그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마치 거울처럼 똑같은 표정과 똑같은 말투로 입을 열었다.
그다지 좋은 느낌은 아니었다.
케라브 훈련소에서도, 지구에서도 본 적이 없는 몬스터는 강하다는 인식이 박혀 있다.
여울은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게처럼 조금씩 왼쪽으로 움직였다. 그러자 그 도플갱어도 반대쪽으로 똑같이 움직였다.
“가라.”
“가라.”
그가 자신을 따라 한쪽 손을 휘적거렸다. 얼굴의 미세한 표정까지도 똑같이 따라 하는 모습에 괜히 소름이 돋는다.
정보가 없는 몬스터와는 되도록 싸움을 피하는 게 상책이었다.
지금처럼 기습을 가하기 힘든 경우에는 더욱더.
물론, 겉모습만 똑같을 뿐, 자신의 능력과 같지는 않을 것이다.
여울은 뒤를 돌아보고 은신을 하자, 도플갱어는 건전지가 떨어진 로봇처럼 움직임이 완전히 멈췄다.
은신한 모습까지 볼 수 있는 건 아닌 것이 확실했다.
여울은 바로 초원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워낙 수풀의 키가 큰 숲이라 은신을 해도 흔적이 쉽게 남았기 때문이다.
여울이 사라진 자리, 도플갱어는 여울이 사라진 곳을 하염없이 바라보다가 손을 뻗으며 입을 열었다.
“가지 마…….”
힘없는 걸음으로 터벅터벅 걸음을 옮기던 도플갱어의 몸은 점점 흐릿해지더니 이내 완전히 사라졌다.
* * *
타다다다다닥!
여울은 몇 번이고 뒤를 돌아보며 그 도플갱어가 따라오는지 확인했다. 자신과 같은 모습과 표정을 해서 그런지 기억에 계속 맴돌고 기분을 묘하게 만드는 놈이었다.
일단 인적이 드문 마을을 찾아야 한다. 케라브의 기억 덕분에 로디스 언어를 유창하게 하지는 못하지만 알아듣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제압이 가능할 것 같은 사람을 찾아 마나를 보지 못해도 그것을 채울 수 있는 방법을 알아내야 한다.
이세계 로디스에 온 첫날부터 녹록지 않았다. 여울은 입을 꾹 다물며 바닥을 박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