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 Hunter Killer RAW novel - Chapter 131
131
131. 마늘빵
푹!
여울의 디카르가 트롤의 미간을 정확히 뚫었다. 그 뒤로 네 마리의 트롤이 더 보였다.
등에 멘 가죽 주머니에는 손도끼가 가득 담겨 있고 양손에도 들고 있다.
팟!
여울은 디카르를 뽑으며 다음 트롤에게 튀어 나가자, 놈이 두 개의 손도끼를 교차시키며 집어던졌다.
그는 뛰어올라 거리를 좁힌 뒤, 놈을 덮쳐 심장에 검을 꽂아 넣었다. 그러고는 놈의 가슴팍을 두 발로 차며 더 뒤쪽에 서 있던 트롤 두 마리에게 곧바로 날아갔다.
“캬학!”
놈들은 뒷걸음질 치며 날아오는 여울을 향해 손도끼를 휘둘렀다.
그는 위아래로 휘둘러지는 도끼 사이로 회피하며 놈들의 옆구리에 두 개의 검을 찔러 넣었다.
푸푹!
옆구리를 깊게 찔린 트롤이 쓰러지며 손도끼를 떨어트렸다. 여울은 그것이 바닥에 떨어지기 직전에 발로 그 끝을 찼다.
그것은 가공할 속도로 날아가 옆에 있던 트롤의 이마에 정확히 꽂혔다.
풀썩!
몇 초도 되지 않는 순간에 다섯 마리의 트롤이 쓰러졌다.
다급히 뒤따라오던 털보 백인대장 데프는 중간에 멈춰 서서 입을 쩌억 벌리고 있었다.
“뭐, 뭐야! 저 신입 아주 그냥 날아다니는데?”
데프의 뒤를 따라오던 대원들도 비슷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남색 머리 제크도 고고하게 서 있는 여울을 보고 중얼거렸다.
“아, 아니, 저런 실력자가 왜…….”
그때, 언덕 너머에서 수십 마리의 트롤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데프는 공짜로 백인대장이 된 것은 아닌지 금세 정신을 차리고는 뒤따라오던 대원들을 보며 외쳤다.
“트롤이다! 산개해서 돌격하라!”
“산개 돌격!”
그의 명령에 대원들은 넓게 펼치며 트롤들을 향해 달려갔다.
여울도 그에 질세라 더욱 빠르게 수십 마리의 트롤들 사이로 파고들었다.
서걱! 서걱!
그는 몸을 낮추고 양손에 디카르를 든 채 트롤들 사이를 마치 물 만난 고기처럼 누비고 다녔다.
그의 눈부신 활약에 힘입은 데프의 백인대는 부상은커녕 생채기 하나 없이 사냥을 끝마칠 수 있었다.
사냥이 끝나고 복귀하는 길, 제크는 여울의 옆에 딱 달라붙어 조잘대기 바빴다. 데프는 힐끔힐끔 쳐다볼 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형님, 진짜 움직임 끝내줬어요. 저는 지금까지 형님처럼 그렇게 빠르고 멋지게 몬스터를 처리하는 사람은 처음 봐요. 형님 레벨이 대체 몇이에요? 아니, 여기는 어쩌다가 배치 받은 거예요?”
어느새 호칭이 ‘아저씨’에서 ‘형님’으로 바뀌어 있었다. 여울은 앞에 시선을 고정시킨 채 그에게 말했다.
“조용히 가자.”
“아, 그래도…… 옙.”
여울의 사나운 눈과 마주친 제크는 금세 입을 다물고는 자신의 턱만 쓰다듬었다.
* * *
해가 질쯤에 마을에 도착한 여울은 바로 도서관으로 가서 마나에 관한 책들을 읽었다.
끼익.
낡은 나무 바닥이 휘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도서관 지기 니르윈은 책에 집중하고 있는 여울에게 마늘빵 하나를 건넸다.
“어라? 오늘은 또 마나에 관한 책이네요?”
여울은 고개를 살짝 들어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
“또?”
그의 섬뜩한 눈빛에 니르윈은 한 발자국 뒤로 물리며 대답했다.
“아, 첫날에 읽는 거 봤죠, 사람들은 마나 관련된 책은 잘 안 찾아보니까 눈에 띄어서……. 하핫.”
“그런가?”
“네. 그런데 아저씨는 마법사가 되고 싶으신 거예요?”
여울은 마늘빵을 한입 베어 물고 다시 책에 시선을 두며 말했다.
“그러면 좋고.”
니르윈은 책에 다시 집중하고 있는 그의 얼굴을 보며 살짝 미소를 지었다.
“아저씨는 왠지 진짜 될 것 같아요. 마법사.”
“뭘 봐서?”
“그냥요. 그냥 느낌이 아저씨는 되고자 하면 다 될 것 같아요.”
여울은 책에 시선을 고정시킨 채 그의 끝말을 되새겼다.
“되고자 하면 다 된다라…… 좋군.”
여울은 그날도 니르윈과 같이 퇴근했다.
* * *
다음 날, 여울의 활약은 세이에라 영지의 정보부장이자 가세브 마을의 촌장인 리디의 귀에도 들어왔다.
다시 마나 측정을 해도 결과가 그다지 달라지지는 않았지만, 데프 백인대 대원들 모두가 같은 말을 하니 믿지 않을 수가 없었다.
리디는 여울을 따로 불러 물었다.
“그래, 마나에 어울리지 않게 강한 사람들이 가끔 있지. 신체가 인간 이상으로 단련된 자들, 그런 자들이 고레벨이 되면 한 시대를 뒤흔들 만큼 절대자가 되는 것이지, 너 같은 사람들을 두고 하는 말인가 보군.”
“아닙니다.
“아무튼, 내가 군에 가입하라고 했을 때 냉큼 수락한 거나, 최하인 4대 백인대에 집어넣으니 하루가 무섭게 실력을 입증한 것을 보면 목적이 있어 보이는데, 네가 원하는 건 뭐지?”
질문하는 리디의 눈빛은 날카로웠다. 마인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염두에 둔 탓이리라.
여울은 담담한 어투로 대답했다.
“제 레벨에 맞는 사냥터에서 안전하고 빠르게 레벨 업을 하고 싶습니다.”
“음…… 소소하군, 레벨이 얼마인지 물어도 되나?”
“5레벨 정도입니다.”
“5레벨도 아니고 5레벨 정도라…… 놈들 얘기로는 7레벨은 거뜬히 넘어 보이는 실력이던데, 역시 똥눈들 말은 믿을 게 못 된다니까. 그 정도면 2대나 3대 백인대에 편성시켜 줄 수 있어, 2대는 평균 레벨이 7인데 5레벨짜리 애들도 몇 명 있고, 3대는 평균이 5고, 어디 들어갈래?”
“2대로 가고 싶습니다.”
“2대면 카리바 백인대…… 거기가 지금 토벌 가서 한 일주일은 있어야 할 거야, 그럼 그동안만 데프 백인대에서 놀고 있으라고, 귀환하면 바로 거기로 편성시켜 줄 테니까.”
“알겠습니다. 그리고 사람 한 명을 찾고 싶습니다.”
리디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사람? 누구?”
“이름은 비아느, 이 정도의 키에 외관상 나이는…….”
여울은 비아느에 대해 아는 대로 이야기했다. 리디는 알아보겠다고는 했지만 세이에라 영지 외의 정보는 전세계에 펼쳐져 있는 정보 길드를 통해 알아보는 것이 더 낫다며 정보 길드들을 만나는 방법도 이야기해 줬다.
어느 정도 마나를 회복하면 후에 큰 도시를 찾아가 정보 길드에 들러야겠다.
* * *
여울은 그날 이후로 데프의 백인대에게 거의 사냥터 안내만 받고 독자적으로 사냥했고, 해가 질 때가 되어 마을로 귀환하면 도서관으로 향해 마나에 대해 연구를 이어 갔다.
니르윈은 그때마다 마늘빵을 하나씩 건네줬다.
하루는 그가 마늘빵을 건네주지 않아 괜히 기다려지고, 불안한 것이 어느새 그것에 중독이 된 듯했다.
일주일 후, 제2대 백인대, 카리바의 백인대가 도착하여 여울은 그곳으로 전입하게 되었다. 백인대장 카리바는 새하얀 얼굴에 검은 머리를 깔끔하게 뒤로 넘긴 날카로운 인상의 사내였다.
카리바는 여울이 뒤늦게 리디의 권한으로 들어와서 그런지 다른 대원들을 볼 때와는 다르게 싸늘한 눈빛을 짓고는 했다.
하지만 대놓고 욕을 퍼붓고 싫어하는 티를 내던 데프와는 달리, 아무런 충돌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렇게 한 달이라는 시간이 더 흘렀고, 여울은 이제 7레벨 정도의 마나를 회복했다.
4에서 7까지 3레벨을 올리는 데 한 달이면, 전과는 달리 경이로운 속도였다.
하지만 이곳은 케라브 안이 아니었다. 층마다 난이도가 높아지고, 그 이상의 돌발 상황이 발생하지 않는 제한된 장소도 아니었다.
언제 어디서든지 나가 여왕, 또는 네임드급 몬스터의 습격을 대비해야 했다.
그래서 제1대 백인대로 전입했어도 7레벨 이상의 몬스터들을 잡으러 간 적이 없었다.
그러니 경이로운 레벨 업 속도는 이제부터 확 느려질 게 분명했다.
시이와 베아, 검은 기사들은 아직도 깨어나지 않았다.
* * *
유독 먹구름이 많아 낮부터 초저녁처럼 어두운 날, 그날은 4대 백인대장 데프의 부탁으로 트롤 네임드 토벌에 홀로 지원을 나갔다.
순조롭게 토벌을 마치고 마을로 돌아오는 길, 먼저 앞서가며 그 부근의 몬스터들을 사냥하던 중이었다.
‘음?’
며칠 전까지 여울이 머물렀던 2대 백인대 대장 카리바가 혼자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방향은 가세브 마을의 반대편이었다.
아무리 백인대장이라고 해도 홀로 나오는 것은 위험하여 금기시되어 있다.
하지만 그 불문율이 답답할 때가 있다고 느끼던 여울이기에 그를 의심하지 않았다.
‘담력이 좋군.’
얼마 지나지 않아 가세브 마을에 도착했다. 그런데 문 앞 경비병이 처음 보는 자였다.
이제 한 달 반이 지나 대부분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차례가 돌아갈 인원이 남아 있는 듯했다.
저벅, 저벅.
숙소로 복귀하는 길, 마을 드문드문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자들이 자주 보였다.
서로 눈짓을 하는 자도 있었다.
이상함을 느끼고 문득 기억을 되새겨 보니 마을로 돌아올 때, 정찰병들이 유독 보이지 않았다.
무언가 느낌이 좋지 않다.
* * *
“여 아저씨!”
여울이 도서관을 지나칠 때, 문 앞에 있던 니르윈이 살갑게 인사를 했다. 여울은 그의 인사를 듣지 못하고 그대로 지나쳤다.
니르윈은 당연히 그가 도서관으로 들어올 줄 알았는데 심각한 표정으로 그냥 지나가니 무슨 일이 있나 고민했다.
“걱정거리라도 있나…… 설마 마법사가 안 돼서 실망했나?”
여울은 숙소로 가지 않고 바로 리디의 집무실로 향했다. 리디는 마침 밖에서 신입 대원들의 검술을 지도하는 중이었다.
여울이 다가오자 그가 한 손을 들어 먼저 인사를 건넸다.
“아, 신입! 요즘 날아다닌다며? 내가 사람 보는 눈이 있어.”
여울은 다짜고짜 그에게 가까이 다가가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오늘 특별한 일이라도 있습니까?”
리디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대답했다.
“특별한 일? 아니? 음…… 굳이 꼽자면 서쪽으로 토벌대를 꾸려서 보낸 것 정도?”
“그럼 마을 수비 병력은 이 신입들밖에 없습니까?”
“에이 그럴 리가, 카리바 백인대는 남겨 놨지.”
카리바라는 말에 여울은 등골이 싸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토벌대는 언제 돌아옵니까?”
“모르지? 한 사흘? 나흘? 아니 왜 그러는데?”
“느낌이 좋지 않습니다. 정찰병들도 보이지 않고 경비병들도 바뀌었고 카리바가…….”
그때, 하늘 위로 불꽃이 쏘아져 올라갔다.
유독 어두운 밤이었기에 초저녁이었음에도 불꽃은 밝게 빛났다.
피유우우우웅! 퍼엉!
그것은 마치 폭죽처럼 백여 미터쯤 올라가더니 넓게 번졌다. 그 모습에 리디는 당황하며 중얼거렸다.
“뭐, 뭐지?”
그와 동시에 마을 곳곳을 거닐고 있던 수상한 자들이 어느새 이마에 붉은 띠를 매더니, 검을 뽑아 들며 외쳤다.
“레시아 님을 위하여!”
“와아아아아!”
그들은 마을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베기 시작했다. 리디는 눈에 불을 켜고는 검을 들며 소리쳤다.
“뭐야, 저 자식들! 백인대 나와!”
그의 외침에 숙소에 있던 카리바의 2대 백인대원들이 튀어나왔다. 그런데 그들의 이마에도 붉은 띠가 매여 있었다.
“다 죽여라!”
그들은 마당 앞에서 훈련을 하고 있던 신입들의 목을 먼저 베어 버리며 어떤 상황인지 몸소 알려 주었다.
콰아아앙!
콰직!
그 순간, 울타리가 무너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사방에서 수백 마리의 몬스터들이 마을 주민들을 덮쳐오고 있었다.
“그어어어어!”
“크하아아!”
미노타우로스에 리자드맨, 갈퀴나가까지 최소한 5레벨은 넘어가는 것으로 보이는 몬스터들.
여울은 아직 정신을 못 차리는 리디에게 소리쳤다.
“카리바가 마인이었던 것 같습니다! 어서 피하십시오!”
“카, 카리바, 이 개자식! 넌 어디가!”
여울은 그의 부름을 무시하고 어딘가로 급히 달려갔다. 도서관 앞에 나와 있던 니르윈이 떠오른 것이다.
* * *
촤악 촤아악!
“꺄아아아아!”
“으악!”
“사, 살려…… 커헉!”
마을 인구는 대략 7,000명.
그중에서 싸울 수 있는 자들은 600여 명.
그들이 똘똘 뭉쳐 있어도 이길까 말까 한 숫자의 몬스터들이 쳐들어왔는데, 주력 부대는 밖으로 나가 있고, 남아 있던 수비 병력 중 절반은 배신자였다.
애초에 가능성이라는 것이 성립되지 않는 싸움인 것이다.
싸울 줄 모르는 일반인들은 모두 힘없이 몬스터들에게 찢겨 나가고 있었다.
처음 들어왔을 때 느껴지던 평화로움에 안정을 가졌던 마을이 순식간에 피로 얼룩지고 있었다.
여자, 어린아이, 노인 가릴 것 없이 거칠고 무자비한 손길에 생명을 잃어 갔다. 그들에게 대항하는 자들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서걱! 서걱!
여울은 눈앞에서 걸리적거리는 것들을 베며 도서관으로 갔다.
입구에는 누구의 것인지 모를 붉은 피가 묻어 있다. 안으로 들어가니 밖의 소란이 거짓인 것처럼 조용하다. 책장은 여기저기 쓰러져 있고 니르윈은 보이지 않는다.
“니르윈, 니르윈! 어디 있나!”
공허한 울림만이 다시 되돌아올 뿐이다. 그때.
“으, 으…….”
아주 미세한 신음이 들려왔다.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시선을 돌려보니 무너진 책장 아래에 익숙한 신발이 보였다.
여울은 날아가듯이 그곳으로 가서 책장을 뒤집어 거칠게 집어던졌다.
그 아래에는 니르윈이 가슴을 부여잡고 누워 있었다. 가슴에는 피가 철철 흐르고 있었고 입에서는 피를 울컥울컥 토해 내고 있다.
“니르윈!”
“아, 아, 아저씨…….”
“가만히 있어라. 아저씨가 금방 살려 주마.”
여울은 재빨리 칼론의 주머니에서 오우거의 피를 꺼내어 환부에 넘치도록 부었다.
하나, 니르윈은 여전히 피를 토하며 생기가 돌아오지 않고 있다.
겉에 살은 붙어서 출혈을 막을 순 있지만 장기가 완전히 파열되어 회복이 불능한 것이다.
이미 피도 너무 많이 흘린 상태였다.
“어, 어서 피하세…… 쿨럭!”
여울의 얼굴에 피가 튀었다. 여울은 잠시 눈을 감았다가 떴다.
그사이 니르윈의 눈을 뜬 채 멈춰 있었다. 동공은 전혀 움직이지 않았고, 가쁘게 움직이던 가슴은 완전히 잦아들었다.
“니르윈, 일어나라.”
여울은 담담히 그의 이름을 부르며 몸을 흔들었다. 그러나 열여섯 살 주근깨 소년은 아무런 대답도 없었다.
여울은 세 번의 숨을 쉴 동안 그를 가만히 내려다보다가 한 손을 들어 눈을 감겨 주었다.
끼익,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낡은 나무 바닥이 소리를 냈다. 니르윈이 마늘빵을 주러 올 때마다 났던 소리였다.
여울은 한 번 더 니르윈을 눈에 담은 뒤,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