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 Hunter Killer RAW novel - Chapter 133
133
133. 자신감
쩌정!
“크흡!”
리디는 미노타우로스의 도끼를 정통으로 맞아 뒤로 날아갔다.
공중에 떠 있는 그 짧은 순간 주변을 둘러보니 자신과 생사고락을 함께 하던 부하들은 대부분 죽었다. 이제 병장기가 부딪치는 소리도 거의 들리지 않았다.
누군가의 살을 찢거나 가르는 소리만 들릴 뿐, 남은 마을 사람들만이 학살당하고 있는 것이다.
리디가 바닥에 떨어져 구르자 그 근처에 있던 몬스터들이 일제히 달려들었다.
그들의 그림자 때문에 금세 어두워졌다. 자신을 둘러싼 몬스터들만 해도 다섯 마리, 사지가 찢기기까지는 눈 깜짝할 새도 안 들 것이다.
‘내 부하들은 다 죽었나? 복수는 못해 줘도 버티면서 지켜봐 주기는 했다. 이 정도면 대장 노릇은 한 거겠지? 너무 원망 마라.’
리디가 죽음을 받아들이려는 때였다.
촤좌좌좌좌좍!
몬스터들의 진득한 피가 얼굴에 마구 튀었다. 고개를 돌려보니 자신을 덮쳐오던 놈들이 상체는 떨어지고 있고 하체만 남아 있었다.
그것도 한 마리가 아니라 다섯 마리 모두, 리디는 상체를 일으켜 미어캣처럼 주변을 둘러보았다.
“뭐야, 너! 왜 다시 왔어!”
리디는 없던 힘까지 쥐어짜며 소리쳤다. 동쪽으로 간 놈이 왜 남쪽에서 나타났는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여울이었다.
그는 리디의 말을 무시하며 그 특이한 거무튀튀한 검을 들고 묵묵히 검기를 뿌려 대고 있다.
한 번밖에 못 하는 줄 알았는데 세 번이나 연속으로 뿌리고 나서야 멈추고는 앞에 보이는 것들을 모조리 베어 내고 있다. 그로 인해 남쪽으로 자연스레 퇴로가 확보되었다.
“뭐, 나 구하려고?”
그는 대답 없이 계속해서 검만 휘두를 뿐이었다. 리디는 그가 열어 놓은 퇴로로 발을 옮기며 말을 이었다.
“이 새끼가 진짜, 너도 같이…… 허업!”
리디는 자신에게마저 서슴없이 검을 휘두르는 여울의 공격에 식겁하며 뒤로 확 물러났다.
마치 눈이 멀어 적아를 구분하지 않고 베어 버리는 듯했다.
그의 눈을 보니 동공은 제대로 자리를 잡고 있지만 분위기가 이상했다.
그가 검이 적중되지 않은 리디에게서 시선이 멈춰 섰다. 그러고는 검 끝으로 그를 겨누며 입을 열었다.
“가라.”
“뭐, 뭐? 보내 줘야 가지 이놈이…….”
그때 뒤쪽에서 미노타우로스와 갈퀴나가가 다가왔다. 리디는 속는 셈치고 다시 여울이 뚫어 놓은 퇴로로 도망쳤다.
이번에는 시선만 따라갈 뿐 리디를 공격하지는 않았다. 그러고는 바로 그 뒤쪽에 있는 몬스터들에게 달려들었다.
리디는 젖 먹던 힘을 몇 마리 붙은 몬스터들을 떨쳐 내고는 간신히 마을 밖으로 빠져나왔다. 그의 몸은 성한 곳이 한 군데도 없었다. 한쪽 다리는 절뚝거리고 있고 온몸은 피투성이다.
“크흡…… 그 새끼 대체 뭐야…… 눈 돌아간 거야?”
계속 뒤를 힐끔거리지만 여울은 오지 않았다. 지금 자신의 몸 상태로는 그에게 도움이 되지 못한다.
그보다 토벌을 간 1, 3백인대에게 이 사실을 알리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들이 지금 마을로 귀환하면 개죽음밖에 되지 않는다.
찌직, 지이익!
리디는 가죽 갑옷 안쪽 티셔츠를 찢어 출혈 부위가 심한 부분부터 묶었다. 몬스터들은 피 냄새를 귀신같이 추적해 왔기 때문이다.
절뚝거리며 서쪽으로 이동하고 있는데 마을에 두고 온 여울이 떠올랐다.
검기, 지금 밝혀진 특성자는 단 한 명, 아니 한 마리밖에 없는 전설적인 특성이라고 할 수 있는 검기 사용자가 나타났다.
무언가 상태가 이상해 보였지만 그의 실력이라면 잘 빠져나올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리디는 그렇게 되기를 간절히 빌며 걸음을 옮겼다.
* * *
타다다다다닥!
한 무리가 우거진 숲을 빠르게 지나치고 있다.
동방의 라칸 바스크와 그의 친위대, 그리고 세이에라 성 1대 백인대가 가세브 마을을 향해 전속력으로 달려가고 있는 것이다.
“꺄아아악!”
“사, 살려 줘!”
한 여인과 사내의 목소리가 미약하게 들려온다. 바스크는 그 소리를 놓치지 않고 바로 방향을 꺾어 들리는 쪽으로 바닥을 박찼다.
머맨 네 마리에게 쫓기는 마을 주민들이 보인다. 그는 망설임 없이 거대한 대검을 던지며 달려 나갔다.
푸슉!
대검이 머맨 한 마리의 몸을 정확히 꿰뚫었다. 거의 동시에 도착한 바스크는 바로 손잡이를 잡고 옆으로 찢으며 근처에 있던 머맨 두 마리의 허리를 한 번에 베었다.
퍼석!
반대쪽에서 공격해 오던 머맨은 한 손으로 목을 잡고는 그대로 뽑아 버렸다. 그는 척추 뼈까지 반쯤 딸려 나온 머맨의 목을 거칠게 집어 던지고는 마을 주민들에게 물었다.
“괜찮은가?”
“그, 그…….”
“영주님, 아니십니까?”
“맞다.”
“살았다…… 살았어…… 흐윽.”
여인과 사내는 다리가 풀렸는지 바닥에 주저앉아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바스크는 고개를 돌려 친위대를 보며 말했다.
“너, 백인대 세 명을 데리고 이들을 지키고 있어라.”
척.
“예스, 마이 로드.”
바스크는 바로 가세브 마을을 향해 걸음 옮겼다.
휘유우우웅!
바스크의 군대는 세이에라 성에서 출발한 지 하루 만에 가세브 마을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곳의 광경은 실로 처참했다.
마을 곳곳의 벽에는 붉은 피가 칠해지지 않은 곳이 없고, 지붕, 길거리, 분수대, 모든 곳에 사람들의 찢겨진 시체가 여기저기 나뒹굴고 있었다.
“영주님, 몬스터들은 보이지 않습니다. 발자국을 보니 북쪽으로 후퇴한 것 같습니다.”
정찰을 보냈던 친위대 대원 중 한 명이 돌아와 그에게 보고했다.
나가 여왕 레시아가 다스리는 레이사 왕국과는 끝나지 않는 세력 다툼을 하는 중이다. 다툼이라고 말하기도 초라한 버티기였다.
그런데 보통 영지를 넓히기 위해서는 이렇게 마을을 함락시키고는 완전히 자신들의 영지로 삼는 게 정상인데, 후퇴를 한 것이다.
‘군사들이 주둔할 만한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여 짓밟기만 한 것인가? 그렇다면 마을도 모두 불살라 버렸을 텐데?’
바스크가 왜 레시아의 군대가 후퇴했는지 고민하던 때에 여울은 마을의 남쪽에서 몬스터들의 시체를 확인하고 있었다.
수십 마리의 몬스터들이 모두 한 방향으로 쓰러져 있고, 허리가 두 동강이 나 있다. 아무리 길고 거대한 검이라고 해도 5미터를 넘어가지 않는다. 이것은 자신도 익히 알고 있는 기술밖에 없다.
‘검기…….’
이 세계에는 검기가 흔한가? 자신이 알기로는 가세브 마을의 군대 중에는 없었다. 그럼 그사이 다른 사람이 지원을 나왔다는 뜻이다.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거지?’
그때 바스크가 여울의 옆으로 와서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몬스터 사체를 뒤적거렸다.
“이 흔적은…….”
“검기가 맞습니까?”
여울의 물음에 바스크가 고개를 돌리며 대답했다.
“검기 아니면 마법사의 바람 마법이겠지, 검기를 어떻게 아나?”
“들어 봤습니다.”
어차피 자신의 검기를 본 사람들은 모두 죽었다. 여울은 말을 빨리 끊기 위해 대충 둘러댔다.
“그렇군…….”
바스크는 몬스터들의 사체를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어쩌면, 놈들의 피해도 커서 잠정적으로 후퇴를 했을지도 모르겠군, 그나저나 검기라니…… 대체 누가…….”
바스크는 친위대와 백인대를 열 조로 나누고는 그들에게 명령했다.
“1, 2조는 동쪽, 3, 4조는 서쪽, 5, 6조는 남쪽, 북쪽은 내가 가겠다. 7조부터 마지막 조까지는 마을 안을 샅샅이 뒤져서 최대한 생존자들을 찾아라, 너는 날 따라와라.”
그가 검지를 들어 콕 지목하여 여울은 함께 북쪽으로 이동을 했다.
북서쪽은 레시아 왕국으로 향하는 방향으로 사냥터에서도 제외가 되는 곳이다. 가세브 마을의 1대 백인대도 그곳만큼은 기피했다.
바스크는 빠른 속도로 이동하며 앞에 시선을 고정시킨 채 입을 열었다.
“발자국이나 피의 온도를 보면 떠난 지 반나절도 안 되었다. 우리는 놈들이 후퇴하는지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온다.”
“확인만 하고 오는 겁니까?”
여울의 질문에 그는 잠시 조용히 있다가 말을 이었다.
“……상황을 봐서 놈들의 대장 목을 딸 것이다. 그래야 내 친구의 묘비 앞에 설 체면이 서니까.”
“알겠습니다.”
옆에서 나란히 달리니 그의 눈동자가 아주 잠시 흔들렸다가 금세 제자리를 찾아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의 담담함이 오히려 더 큰 슬픔으로 와 닿아 바스크와 리디 정보부장이 깊은 친우였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리디의 시체는 발견되지 않았지만 그 얘기를 해서 희망고문을 주고 싶지는 않았다.
실제로 마을에는 사람을 식별할 수 있는 시체 자체가 거의 없었으니까.
그렇게 거의 전속력으로 달린 지 대략 두 시간, 바스크와 여울은 한 언덕 위에서 멈춰 섰다.
철컥, 철컥.
덜그덕, 덜그덕.
갑옷이 부딪치는 소리, 병장기가 끌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살짝 내밀어 보니 아래쪽에 300여 마리의 몬스터들이 꽤 느린 속도로 행군을 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대충 봐도 전에 자리를 피할 때보다 절반은 가까이 줄어 있다.
‘1, 3백인대와 충돌했나?’
“저놈이 대장이군.”
바스크는 중앙에서 나가들에게 빙 둘러서 호위를 받으며 가고 있는 갈퀴나가를 가리켰다. 여울에게 검을 던졌던 그놈이다.
같이 있던 미노타우로스는 어디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그때, 여울의 눈앞에 이상한 현상이 일어났다.
-종족 : 갈퀴나가
-이름 : 미들렌
-레벨 : 9
-경험치 : 11퍼센트
-특성 : Lv8. 동체시력
지금 보고 있는 갈퀴나가의 머리 위에 작은 글씨로 정보가 뜨는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다크니스 드레인을 했던 존재는 카리바, 마족들에게도 그렇게 나오지 않았던 관찰 특성이 그에게서 나온 것이다.
그런데 상태창이 종족창만 빼놓고는 마치 인간의 상태창을 보는 듯했다.
몬스터들에게도 특성이 있었던 것이다. 케라브 안에서는 몬스터를 공략하는 힌트를 주기 위하여 상태창을 임의로 조정한 것 같았다.
여울은 자신의 머리에 손을 얹고 관찰을 시전하려고 했다.
그런데 그때, 옆에 있던 바스크가 등에 메어 놨던 거대한 대검을 풀어 어깨에 걸치며 말했다.
“여기 있어라, 나는 친구 놈 가는 길에 동무 좀 만들어 주고 와야겠다.”
바스크는 그 말과 함께 바로 바닥을 박차고는 수십 미터 아래로 뛰어내렸다.
그 용감한 행동에 여울은 고개를 돌려 가며 그 주변 몬스터들의 레벨을 확인했다.
‘8, 8, 7, 8, 9…….’
그 호위병들도 절대로 만만한 레벨이 아니다. 여울은 작은 왕국의 영주가 무슨 자신감으로 저렇게 홀로 뛰어드나 싶어 두 눈을 부릅뜨고 그의 행동을 지켜보았다.
“객기일지 자신감일지…….”
콰아앙!
바스크는 언덕에서 떨어지며 바로 세 마리의 몬스터들을 찍어 누르고 시작했다.
쾅! 콰직!
그는 대검을 마치 둔기처럼 검날이 아닌 검면으로 몬스터들을 쳐 냈다.
그의 갑작스런 기습에 놈들은 우왕좌왕하다가 검면에 맞고 그대로 터져 나갔다.
그 모습 보며 그의 악력이 얼마나 될지 상상도 되지 않았다.
“흐아압!”
그는 검면을 마치 방패처럼 앞에 세우고는 갈퀴나가 미들렌을 향해 돌진했다.
그 앞을 가로막던 몬스터들은 모두 양옆으로 날아가 버렸다.
콰앙!
폭주기관차 같던 그의 돌진이 나가 호위병 세 마리에게 막혔다.
그때, 그가 대검을 높이 추켜올리며 외쳤다.
“리덕션!”
그의 몸이 발끝부터 정수리까지 순간 하얗게 반짝였다. 그는 나가 호위병들의 검을 온몸으로 받아 내며 중앙에 있는 갈퀴나가 미들렌에게 파고 들어가 대검을 휘둘렀다.
쾅! 쾅! 콰직!
미들렌은 당황하며 네 검을 들어 올려 그의 대검을 막았다. 그러나 방어를 도외시하고 무식하게 찍어 오는 그의 공격을 막을 수는 없었다.
결국 대검에 완전히 짓이겨져 나중에는 형태조차 알아볼 수 없게 되었다.
그는 할 일을 마쳤다는 듯이 대검을 넓게 한 바퀴 휘둘러 주변을 물리고는 뒤로 달리기 시작했다.
미친 듯한 괴력의 그에게 퇴로를 뚫는 것쯤은 문제도 되지 않았다.
여울은 그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감이었군…….”
바스크 영주, 그는 최소 11레벨은 되는 것 같다. 자신이 마나를 잃기 전의 레벨이다. 로디스 세계, 역시 만만치 않은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