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 Hunter Killer RAW novel - Chapter 134
134
134화. 묵념
“흐으, 흐으…….”
가세브 마을 촌장 리디는 지친 몸을 이끌고 초인적인 정신력으로 이틀째 서쪽으로 향하고 있다. 입 안에서 고약한 냄새가 진동했다.
눈은 점점 감겨 오고 머리는 깨질 듯이 아팠다. 중간에 만나는 몬스터들은 대충 처리했지만 조금만 더 강한 놈들이 나와도 당해 낼 수 없을 것이다.
터벅, 터벅.
한 발 한 발 내디딜 때마다 다친 발이 찌릿찌릿했는데 이제는 아예 감각이 없다.
더 안 좋은 신호라는 것을 알지만 어찌 됐건 걷기엔 편했다.
부스럭.
수풀 한쪽에서 미세한 소리가 들려왔다.
한 개체가 수풀을 가르는 소리, 리디는 최대한 소리를 내지 않으며 나무 뒤로 물러났다. 피 냄새 때문에 뿌리칠 수는 없을 테지만, 선제공격은 할 수 있을 것이다.
스윽.
‘제기랄…….’
짙은 청색의 강철 같은 비늘, 20센티가 넘는 날카로운 손톱, 두려움을 자아내는 칼처럼 반듯이 서 있는 눈동자, 놈은 몬스터들 중에서도 최상위 포식자라고 칭하는 라칸이었다.
놈은 리디가 숨어 있는 나무를 정확히 바라보며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이곳에 숨어 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알고 있는 것이다.
라칸의 최소 레벨은 6, 하지만 나가와 상극인 라칸이 이곳에 있다는 것은 그만한 실력과 레벨을 지니고 있을 것, 지금의 몸 상태로는 싸우는 것 자체가 도박이었다.
기습 한 번으로 끝낸다. 실패하면 이길 가능성이란 없다.
라칸은 뛰지 않았다. 사냥감이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잡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다.
리디는 라칸이 두 발자국 안으로 다가왔을 때 나무 옆으로 나서며 검을 뻗었다.
아니, 그러려고 했다. 라칸이 한발 먼저 움직이기 전까지는.
콰직!
“커헉!”
라칸은 그 날카로운 손톱으로 나무를 부수고 리디의 목을 휘어잡았다. 리디의 검은 라칸의 비늘에 닿지도 못하고 축 늘어졌다.
목을 조이는 악력이 점점 더 강해졌다. 눈깔이 뒤집히고 정신이 아득해졌다.
라칸은 단번에 목뼈를 부러트려 죽일 수 있는데도 천천히 죽는 모습을 지켜보고 싶은 듯했다. 지금까지 간신히 피해 왔던 죽음이 바로 코앞까지 다가왔다.
‘젠장…… 여기에 대체 왜 라칸이 있는 거야? 억울하다…… 씨부럴.’
그때, 무언가가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피융! 턱!
미스릴 화살 하나가 날아오다가 라칸의 손에 잡혔다. 그때 또 다른 화살이 날아와 놈의 옆머리에 박혔다.
퍽!
그러나 놈은 마치 불사신처럼 자신의 머리에 박힌 화살을 잡아 화살대를 부러트리고는 그것이 날아온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크르릉…….”
피유웅!
퍽! 퍼벅! 퍽! 퍽!
그때 수십 개의 화살이 놈의 몸을 꿰뚫었다. 그러자 리디의 목을 잡고 있는 손아귀에서 힘이 점점 풀렸다.
리디는 눈이 돌아간 채로 그 자리에 그대로 쓰러져 내렸다.
타다다다다닥!
다급히 달려오는 발소리, 흐릿한 시야로 사람의 얼굴이 보였다.
마인만 아니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때에 그의 귓가로 한 사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촌장님!”
리디는 그 목소리의 주인공을 단번에 알아챌 수 있었다. 지옥 같은 이틀을 견디면서 이곳까지 왔던 이유, 1대 백인대장 스캇의 목소리였다.
9레벨로 자신과 같은 레벨이지만, 검술로 따진다면 자신보다 강한 자였다.
리디는 멀어져 가는 정신을 간신히 부여잡으며 젖 먹던 힘을 끌어내 그에게 입을 열었다.
“마, 마을로 돌아가지 마…….”
리디는 그 말을 끝으로 정신을 잃었다.
* * *
팡! 파앙! 파앙!
허리춤 높이의 수풀이 빽빽이 차 있고 거대한 잎이 우거진 숲, 가죽이 터지는 소리가 숲 안에 넓게 울려 퍼졌다.
두 남자가 바닥을 박차는 소리에 그들은 한 번 도약할 때마다 10미터 이상 앞으로 쭉쭉 쏘아져 나갔다. 달리는 것이 아니라 날아간다는 표현이 더 알맞았다.
그들 중 왼쪽에 있는 남자, 여울이 입을 열었다.
“영주와 같은 힘을 가진 자가 왕국 내에 몇이나 있습니까?”
세이에라 영주 바스크는 앞에 시선을 고정시킨 채 짧게 대답했다.
“세 명. 왜?”
웬만한 정예군도 혼자서 천 단위를 상대할 수 있을 것 같은 강자가 세 명이라는 뜻이다.
“그 힘이면 레시아 왕국을 칠 수 있지 않습니까? 아니면 북서쪽 끝부분은 좁다고 들었는데 그곳까지 밀어내고 국경을 만드는 것도 불가능합니까?”
여울의 질문에 바스크는 조금 속도를 늦췄다. 어차피 몬스터들이 추적해 오지도 않는다.
“너,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몬스터들은 인간보다 번식이 몇 배는 빠른 건 알지? 레시아는 병력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도 안 가, 최소 20만 이상 100만 이하 정도로 보지. 우리는 기껏해야 2만, 그중에 수비 병력 최소한만 남기고 영혼까지 끌어모아도 1만 2천 명이 다지. 20배 차이인데 누가 덤빌 생각을 해? 그중에는 강한 네임드도 넘칠 거다.”
“세잎 대륙의 북쪽과 남서쪽에도 인간의 왕국이 있다고 들었는데, 그들과 연합하여 레시아 왕국을 칠 수는 없는 겁니까?”
“두 왕국? 옛날이야기지, 중앙에 레시아 왕국이 있어서 두 왕국이 아직도 건재한지 아니면 패망했는지 알 수 없어, 바다는 육지보다 더 심하지, 머맨과 나가는 바다에서 더 날아다니니까…… 배로는 우리 왕국에서 동대륙으로 가는 것만 가능하다.”
“다른 왕국들이 건재하고, 그들과 협력할 수만 있다면 가능한 겁니까?”
바스크는 가던 길을 멈추고는 가만히 고민하다가 대답했다.
“병력이 세 군데로 나뉘면…… 아무리 유동 병력이 넘치는 나가들이라고 해도 힘이 대여섯 배는 줄어드는 셈이니, 죽을힘을 다해서 부딪쳐 볼 동기는 되겠군.”
“저는 은신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가 레시아 왕국을 넘어가서 그들을 설득해 보겠습니다.”
“은신도 관찰자가 있으면 소용없지 않은가? 그곳은 10레벨이 넘는 관찰자들도 많을 것이다.”
아, 몰랐던 부분이다. 관찰이 있으면 은신이 보인다는 것은…….
바스크는 눈을 내리깔고 검지로 입술을 매만지다가 다시 눈을 추켜올렸다.
“그보다 왜 그렇게 레시아 왕국을 멸하고 싶어 하지? 특별한 이유가 있나?”
여울은 그의 물음에 곰곰이 생각하다가 눈을 마주 보며 대답했다.
“그들로 인해 마늘빵을 다시는 못 먹게 되었습니다.”
순간 여울의 눈동자에 짙은 살기가 담겨 있었다. 바스크는 의외의 대답에 살짝 놀라다가 자기 나름대로 해석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의미심장한 말이군, 아예 방법이 없는 건 아니지, 언더 커버라고 들어 본 적이 있는가?”
“언더 커버?”
바스크는 지구의 잠입 수사와 비슷한 일을 설명해 주었다.
이 세계에는 마인이라 하여 몬스터들의 지배 아래에서 살고 있는 인간들이 존재했다.
대부분 노예처럼 살아가지만 개인의 강함에 따라서 수많은 병력을 지휘하는 높은 자리까지 차지할 수도 있었다.
바스크는 여울에게 마인으로 위장하여 레시아 왕국 내에서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위치로 올라서서 타 왕국을 드나드는 방법을 추천하였다.
다시 돌아와서 결과를 알려 줘야만 병력을 움직일 수 있기에 마지막까지 위장을 들켜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이 일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타 왕국에게 지프센 왕국의 국왕이 진행하는 일임을 증명하는 증표를 가져가야 하기 때문에 국왕에게 직접 허락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여울은 가세브 마을 건만 정리한 후에 바스크와 함께 지프센의 수도로 가서 국왕을 알현하기로 경로를 잡았다.
* * *
여울과 바스크가 가세브 마을에 도착하고 바로 다음 날 친위대장 오스칼과 천인대가 도착했다.
그들은 마을 이곳저곳에 널브러져 있는 사람들과 몬스터들의 시체를 두 곳에 모았다.
사람들의 시체는 마치 탑처럼 10미터 높이에 가깝게 쌓였고, 몬스터들의 시체는 그것의 1할도 되지 않았다.
“영주님, 여기…….”
“그래…….”
바스크는 친위대 중 한 명이 가지고 온 횃불을 받아 들고는 시체의 산 앞에 섰다.
“못난 영주라서 미안하다. 너희의 자식을, 부모를, 마을을, 행복을 짓밟은 놈들에게는 이 몸이 바스러질 때까지 철저히 복수할 것이다. 지켜 주지 못한 죗값은…… 그곳에서 만나면 받으마.”
그는 시체 더미를 복잡한 눈빛으로 둘러보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일동 묵념.”
바스크의 친위대, 1대 백인대, 1대 천인대가 동시에 충성을 의미하는 오른 주먹을 왼쪽 가슴에 가져다 대며 고개를 살짝 내렸다.
그렇게 약 1분여간 무거운 침묵이 흐른 후, 그는 한 발자국 앞으로 다가가 횃불을 시체 더미에 놓았다.
화아아악!
사람들의 시체는 마치 기름이라도 부은 것처럼 빠르게 타올랐다.
이곳은 시체를 태우지 않으면 칼로에게 영혼을 찢긴다. 이 정도 죽음의 기운이면 언데드가 될 가능성도 있다고 한다.
활활 타오르는 시체 더미를 보는 이 순간만큼은 그 강철 같은 바스크의 눈가에 슬픔과 그리움이 가득했다.
어렸을 때부터 동고동락했던 리디가 생각난 것이다. 그와는 소년 때부터 함께 지낸 30년 지기로 상하 관계보다는 친구의 개념이 컸다.
‘이럴 줄 알았으면 여기를 더 자주 들렀을 것을…… 미안하다, 친구야.’
“바스크!”
스물두 살 때 처음으로 영주직을 받기 전까지는 리디가 자신을 이렇게 막 불렀다.
그때가 벌써 20년은 지났다.
“바아스크!”
어쩜 그 억양까지 똑같은 환청이 들려왔다. 마치 바로 옆에서 소리치는 듯했다.
그에 대한 그리움이 이렇게 컸나 싶었는데, 목소리는 그 소년 때보다 많이 늙었다.
마치 요즘처럼…….
“음?”
바스크는 그 소리가 워낙 생생하여 이상하다고 생각하고는 뒤를 돌아보았다.
서쪽에서 두 명의 대원들의 부축을 받으며 절뚝절뚝 걸어오고 있는 사내가 보였다.
온몸은 피투성이에 그 며칠 사이 많이 핼쑥해졌지만, 리디가 분명했다.
바스크는 그에게 걸음을 성큼성큼 옮기며 입을 열었다.
“누가 감히 영주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나?”
리디는 그의 기운과 무서운 표정에 기세가 눌려 뒷걸음질을 치며 중얼거렸다.
“아, 정말 죽다가 살았는데 이 정도도 못 봐주…… 시겠지요. 죄송합니다. 영…….”
터억!
바스크는 그의 부하들이 보든 말든 리디를 꽉 껴안았다. 아마 리디는 모를 것이다.
죽은 게 확실하다고 생각했던 친구가 살아 돌아온 기분을, 그는 리디의 등을 팡팡 두드리며 말을 이었다.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다.”
“아, 아! 이러다 죽겠네.”
리디는 마지막까지 엄살을 부렸다. 그의 상처들을 보면 엄살 같지도 않았다.
바스크는 천인대와 가세브 마을의 1, 3대 백인대를 마을에 주둔시켜 놓고는 마을 재건을 명했다.
많은 피해가 발생했지만 생존자도 3,000명은 됐다.
주민들과 의논해 본 결과 마을을 재건하여 죽은 이들을 기리며 살아가기로 한 것이다.
리디는 제대로 치료를 받기 위해, 여울과 바스크는 국왕을 알현하기 위해 친위대 열 명만 이끌고 지프센 왕국의 수도 지드로 향했다.
친위대도 있었지만 여울은 정찰대원을 자청하여 그들보다 앞장서 몬스터들을 미리미리 처리했다.
여울이 친위대를 상대하는 모습을 보기는 했지만, 전장에서의 활약을 본 적이 없는 바스크는 걱정의 말을 건넸다.
“너무 앞서 가지 말게. 아니, 차라리 우리 대원 두 명과 삼인일조로 움직이는 것은 어떤가?”
그때, 옆에 있던 리디가 한마디 툭 던졌다.
“뭘 걱정합니까? 검기도 막 날리는 녀석인데 뭔 일 있으려고.”
“검기?”
리디의 말에 바스크의 고개가 홱 꺾였다가 다시 여울에게 휙 돌아갔다.
도망가면서 한 번 사용한 걸 정확하게 눈치챌 줄은 몰랐기에 여울은 설명을 요하는 바스크의 눈빛을 보고 어쩔 수 없이 입을 열었다.
“특성이 두 개입니다. 아직 많이 약합니다.”
여울의 대답에 리디가 거들었다.
“약하긴 개뿔, 몬스터들이 다 나가떨어지던데. 눈깔 뒤집혀서 나까지 죽이려고 했으면서, 그때 기억은 나냐?”
“그게 무슨 말입니까?”
여울은 고개를 갸웃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