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 Hunter Killer RAW novel - Chapter 135
135
135. 대륙전쟁의 도화선
리디는 가세브 마을에서 여울이 금세 다시 돌아와 검기를 무자비하게 날리는 바람에 퇴로를 확보했고, 간신히 그 지옥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한데, 여울은 고개를 내저었다. 자신이 정신을 놓고 폭주할 리도 없고, 그 시간에는 한창 세이에라 성으로 달리는 중이었다.
여울은 그의 말을 듣고는 예전에 아주 잠깐 마주쳤던 도플갱어가 떠올랐다.
그런데 검기를, 그것도 세 방이나 연속으로 썼다고 한다. 도플갱어는 본연의 능력에서 외형만 따라 하는 것이 아니었나?
“리디까지 구해 주고 그곳을 빠져나와 그렇게 빨리 성에 도착하다니, 대단한 실력이군. 그런데 왜 리디가 죽었을 거라고 말했나?”
바스크의 물음에 여울은 대답하지 않고 고개를 숙여 고민했다.
리디는 바스크에게 여울이 언제 성에 도착했는지 듣고는 혼자서 더욱 골머리를 썩이고 있었다.
그러나 그 풀리지 않는 의문에 도플갱어라는 변수를 생각해 내지는 못하고 있다. 그것은 그만큼 도플갱어가 희귀한 놈이라는 것이다.
이 둘을 과연 믿을 수 있을까? 아니, 이 둘은 자신을 얼마나 믿을까?
지금 도플갱어에 관련된 이야기를 하면 신뢰도가 떨어질 수도 있었다.
게다가 어찌 됐건 리디가 그놈에게 목숨을 구했으니 지금은 비밀로 붙이는 게 나을 것 같았다.
“리디 부장님 말대로 그때는 정신이 나갔던 것 같습니다. 기억이 잘 안 나는군요.”
“그럴 줄 알았어, 그때도 자기 힘 이상으로 내고 있더라고.”
“음…… 큰 충격으로 인한 기억 장애인가, 아무튼 고맙군. 내 친구를 살려 줘서.”
“아닙니다.”
여울은 지드 성에 있는 도서관에서 도플갱어에 관한 정보를 찾아볼 생각을 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 * *
‘관찰.’
여울은 자신의 관찰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자신의 머리에 손을 얹고 관찰을 외쳤다. 그러자 바로 눈앞에 로디스어가 적히기 시작했다.
-레벨 : 11(Max) (최초의 머더러)
-경험치 : 13퍼센트
-특성 :
-Lv.10 다크니스 – 어둠의 힘이 깃든다. *
-Lv.7 민첩(Max) – 민첩이 현재의 2배 상승한다.
-Lv.8 독 내성(Max) – 9레벨 미만의 독에 내성이 있다.
-Lv.10 동체시력 – 빠른 움직임을 자세히 볼 수 있다.
-Lv.3 은신 – 시야가 밝아지며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는다.
-Lv.3 기력 – 파괴력이 담긴 기를 무기에 담아 멀리 보낼 수 있다.
-Lv.2 시력 – 멀리 자세하게 볼 수 있다.
-Lv.2 폐활량 – 숨을 오래 참을 수 있다.
-Lv.1 근력 – 근력이 현재의 1.5배 상승한다.
-Lv.1 관찰 – 접촉한 상대의 정보를 볼 수 있다.
화려했다.
나열된 특성만 눈앞을 완전히 가릴 정도였다.
오랜만에 한 관찰 덕분에 새로운 사실도 알게 되었다. 검기의 이름은 기력이었다는 것과 다크니스 드레인으로 얻은 특성들도 레벨이 오른다는 것.
은신과 기력은 9레벨 때 얻었으니 2레벨이 더 높아져서 3레벨이 된 것이다.
다크니스 드레인, 아니 다크니스 특성 자체는 정말 게임이라고 한다면 밸런스를 붕괴시키는 요소라는 생각이 들었다.
레벨은 11 그대로였고, 다운된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자신이 생각했던 마나에 관한 이유가 맞는 것이다.
지금 몸에 쌓인 마나는 레벨로 따지면 6레벨, 화려한 특성들 덕분에 8에서 9레벨에 가까운 능력을 뽐낼 수 있지만, 아직 갈 길이 한참 멀었다.
한시라도 빨리 복구해야 한다. 이 생각지도 못한 상황 때문에 발목을 잡혀서는 안 됐다.
앞으로 세 달 안에 본래의 힘을 되찾으리라.
여울은 굳게 다짐하며 바닥을 박찼다.
* * *
세이에라 성에서 출발한 지 일주일째 되던 날, 여울은 고개가 꺾일 듯이 올려다보며 입을 쩌억 벌리고 있었다.
50미터는 될 법한 어마어마한 높이의 성벽이 보였다.
중간중간 가로세로 1미터 크기로 뚫려 있고 그곳에 대포로 추측되는 무기가 있다.
성문은 가로 20미터, 세로 35미터로 그 앞에 서는 것만으로도 위압감을 주었다.
성벽은 폭이 30미터는 되어 그 안에 병사들의 휴식처도 만들어 놓은 듯했다. 세이에라 성을 보고도 놀랐는데 그곳은 새 발의 피였다.
이곳이 바르센 왕국의 수도, 지드 성이다.
‘작은 왕국이 맞나? 어디 한번 가는 데 일주일씩이나 걸리고…….’
처적.
“로드!”
“로드!”
“그래, 수고해라.”
바스크를 알아본 성문의 문지기들이 오른 주먹을 왼쪽 가슴에 가져다 대며 예의를 표했다.
급하게 나오느라 꽤 추레한 모습에다가 사진기도 없는 세상임에도 한 번에 알아본 것이다.
물론, 바스크가 독보적으로 거대한 덩치에 위압적인 인상이기는 했다.
성문 안으로 들어서니 저 멀리에 왕궁이 보였다. 왕궁은 더욱 화려하고 멋들어졌다.
영화에서나 보았던 중세 왕궁의 모습인데, 그 크기는 훨씬 더 압도적이었다.
베헤모스나 이그리트 같은 초대형 몬스터들을 견제하기 위한 설계인 듯했다.
내성은 1차 성벽부터 2차, 3차, 마지막 4차까지 구분되어 있었는데, 점점 안으로 좁아지며 높아지는 형태로 가장 끝에 산 위에 지어져 있는 것처럼 가장 높고 뾰족한 곳이 바로 왕이 머무는 곳이라고 했다.
케라브가 이곳 로디스 세계는 지구의 70배 크기라는 지식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말이 이제야 실감이 난다.
“워어, 워어.”
바스크의 친위대원들이 앞장서 가며 길을 텄다. 길거리에는 사람들이 넘쳐 나고 활기가 띤다.
어떤 구조로 만들었는지는 몰라도 길거리 중간중간에 거대한 수도꼭지 모양이 있고 성 주민들이 그것을 돌려 물을 받아서 쓴다.
광장으로 보이는 넓은 곳 중앙에는 거대한 분수대가 있고 물줄기가 멋들어지게 뿜어져 나오고 있다.
“아그리스 평원 북쪽 사냥 갑니다!”
“포드닐 습지로 해독제 구하러 가실 분!”
“글라드 영지로 같이 넘어가실 파티 구합니다!”
광장에 모인 사람들이 칼로 대충 파낸 팻말을 들고 소리치고 있었다. 여울은 그들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리디에게 물었다.
“저들은 뭐하는 겁니까? 자유 기사들입니까?”
“자유 용병들이라고 할 수 있지, 저들은 대부분 저레벨이거나 돈을 아끼고 싶은 사람들이야. 저런 파티는 다 용병 길드에서 수수료를 받고 매칭해 주거든. 너도 나중에 저런 일 있거든 그냥 용병 길드로 가. 저런 놈들은 수상쩍기도 하고…….”
리디는 말을 하다가 멈추고는 여울의 얼굴을 힐끔 보았다.
“하긴, 널 받은 나도 있는데 저놈들이 대수냐, 네 마음대로 구해라.”
“예.”
그렇게 많은 사람을 지나치며 드디어 왕궁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안으로 들어서기 전에는 리디와 바스크 역시 무기를 모두 내려놓고 몸수색을 철저하게 한 후에 들어갈 수 있었다.
여울은 혹시나 디카르를 알아보는 사람이 있을까 하여 몸 안쪽으로 아예 감췄다.
그리고 네 개의 내성 문을 지나 드디어 국왕이 머물고 있는 알현실 앞에 설 수 있었다. 입구에 하얀 바탕에 금색 줄로 마감되어 있는 로브를 입은 아리따운 여인이 바스크를 보고는 다소곳이 고개를 숙이고 문 안쪽을 보며 입을 열었다.
“세이에라의 영주, 바스크 디 세이에라 자작이 도착했습니다.”
가녀린 손목만큼이나 작은 목소리여서 안에 전달이 잘 되었을까 걱정이 들 정도였다.
그 걱정이 무색하게 바로 폭이 6미터, 높이가 10미터는 되는 거대한 문이 열렸다.
기이이이이익.
바스크의 뒤를 따라 안으로 들어서자 붉은 카펫이 앞으로 길게 깔려 있고 양옆으로 번쩍거리는 은색의 전신 갑주를 입은 기사들이 도열해 있는 것이 보였다.
그 기세가 상당히 날카로워 웬만한 주민들은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할 것 같았다.
그러나 지금 이 앞에 있는 사내는 웬만한 주민과는 거리가 먼 자였다.
바스크는 오히려 그들이 주눅이 들 정도의 기운을 내뿜으며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쿵! 쿵! 쿵!
그 끝에는 열 개의 계단이 나 있고, 그 위에 두 개의 용이 서로 엉켜 날개를 펼치고 있는 모양의 왕좌가 놓여 있었다.
그곳에 붉은 망토를 걸치고 머리 위에는 금빛의 오색찬란한 왕관을 쓴 국왕이 앉아 있었다.
국왕은 40대 초중반의 위엄이 넘치는 중년인이었다.
바스크는 계단 앞에 멈춰 서서 한쪽 무릎을 꿇으며 알현실이 쩌렁쩌렁 울리도록 외쳤다.
척!
“바스크 디 세이에라! 지프센 국왕님을 뵈옵니다!”
리디가 여울의 팔을 붙잡고 그의 뒤로 가서 똑같은 자세를 취하게 했다.
국왕은 어깨를 들썩하더니 두 귀를 막는 시늉을 하며 말했다.
“아잇, 귀가 다 아프구려. 누가 우리 자작님 힘 넘치는 거 모를까? 좀 작게 얘기하시오, 귀청 떨어지겠소.”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뭘 또 갑자기 죽어, 죽기는. 진짜로 죽을 것도 아니면서…… 아무튼 잘 왔소. 바스크 자작, 안 그래도 보고 싶었는데.”
“여, 영광입니다, 폐하.”
당황하는 바스크의 모습은 또 처음 본다.
국왕은 생긴 것과는 달리 처음 행동과 말투부터 반전을 보여 줬다.
이 거대한 왕궁과 무시무시한 호위대들에 반해 그는 동네 형 같은 가벼운 말투다.
“영광이기는 하지. 그래, 나에게 긴히 할 말이 있다고?”
“그렇습니다, 폐하.”
“그래요? 그럼 가까이 와 봐요, 가까이. 긴히 할 말이라면서.”
국왕은 한 손을 들어 앞뒤로 휘적거리면서 그에게 다가오라는 시늉을 취했다. 바스크가 자신도 모르게 한쪽 무릎을 들어 올리자 양쪽에 있던 호위대원 네 명이 한 발자국 앞으로 나섰다.
처적.
그 모습에 정신을 차린 바스크는 다시 원래의 자세를 취하며 말을 이었다.
“어찌 제가 감히 왕의 계단을 오르겠습니까? 이곳에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아, 내가 괜찮다는데 정말. 여기 못 올라오는 건 나 죽일까 봐 그러는 거고. 바스크 자작, 혹시 나 죽이려고 왔어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그럼 얼른 와요. 안 그러면 나 죽이러 온 걸로 간주한다?! 친위대, 거기서 한 발자국만 더 움직이면 다 잘라 버릴 거야. 백수 되고 싶어?”
“그, 그런…….”
바스크는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허리를 반쯤 접은 채로 계단을 올랐다.
그곳으로 오르는 시간은 바스크에게 수십 년과도 같은 느낌이었다.
드디어 끝까지 올라선 바스크는 십수 년 만에 왕의 얼굴을 가까이서 보았다. 국왕은 그를 마주하고는 두 입꼬리를 올리며 입을 열었다.
“하…… 진짜 오랜만이다. 그렇지요, 스승님?”
그는 다시금 한쪽 무릎을 꿇으며 대답했다.
“폐하, 저는 감히 그 호칭을 받을 수 없습니다.”
“알겠어요. 흐흐, 그럼 이야기를 들어 볼까요?”
“예, 레시아 왕국에 관한 일인데…….”
바스크는 국왕에게 여울과 상의했던 계획에 대해 이야기했다.
가벼운 마음으로 옛 검술 스승인 바스크를 맞이했던 국왕은 점점 진지한 눈빛으로 변하며 이야기를 진심으로 듣기 시작했다.
“우와…… 보통 일이 아니잖아? 그러니까 저 검은 옷의 용사가 레시아 왕국에 마인인 척 들어가서 세브렐이랑 지스타드 왕국의 생사를 확인하고, 그사이 우리는 다 같이 레시아 왕국을 치자고 설득을 하고, 확정 날짜까지 받아서 다시 온다는 거네? 그러니까…… 대륙 전쟁을 벌이자는 말이잖아?”
바스크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유야 어찌 됐건 국가의 안녕이 달린 대륙 전쟁임은 틀림없다.
“맞습니다. 두 왕국이 건재하고, 저 친구가 만약 해낸다면 이번 기회를 반드시 잡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왕국의 미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나가 년들이 백 년 안에 우리를 다 잡아먹겠지.”
국왕은 턱을 괴고는 가만히 생각에 잠겨 있다가 갑자기 왕좌에서 일어서서는 큰 소리로 말했다.
“좋아. 일단 나라의 기둥들을 불러서 얘기해 봐야겠군. 친위대는 들으라.”
국왕의 말에 쭉 나열되어 있던 마흔 명의 친위대가 한 몸처럼 절도 있게 충성의 자세를 취했다.
“백작 이상 귀족들의 소집령을 내리겠다. 기한은 보름, 보름 후에 이곳에서 다시 모이겠다.”
“예스, 마이 로드!”
알현실이 흔들릴 정도로 큰 소리의 대답과 함께 가장 끝에 있던 친위대원 두 명이 밖으로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