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 Hunter Killer RAW novel - Chapter 138
138
138. 지드성 중앙 도서관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아무것도 닿지 않는 어둠이 끝났을 때, 눈앞에는 푸르른 하늘만 보였다. 진후는 몸을 천천히 일으켜 주변을 둘러보았다.
후우우웅!
미세한 모래를 가득 담은 바람이 온몸을 쓸고 지나간다. 시야에 닿는 지평선 끝까지 모두 노란 모래뿐이다. 사람은커녕 몬스터도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진후가 이세계에서 처음 접한 이곳은, 끝없는 사막이었다.
진후는 한 손을 들어 주먹을 쥐었다가 펴기를 반복했다. 몸 상태가 이상했다.
졸음이 밀려오는 약을 먹고 온몸이 나른해져 힘이 쥐어지지 않는 느낌.
인간을 처리하고 얻은 언데드 기운은 남아 있어 7레벨 정도의 힘은 낼 수 있다.
그도 이렇게 약해졌을까?
언데드 기운이 없는 그는 더 많이 약해졌을 텐데, 살아 있는 건가?
‘아니, 그는 무조건 살아 있을 것이다.’
즈즈즈즈.
생명체라고는 하나도 없는 줄 알았는데 두 마리의 검은 그림자가 스멀스멀 기어 오는 것이 보였다. 놈들에게서 익숙한 죽음의 기운이 느껴졌다.
“캬하악.”
“끼헥!”
살점이 거의 붙어 있지 않은 시체들이 모래 밖으로 튀어나오며 진후의 두 발목을 잡았다. 아무리 힘이 없어졌다고 해도 이런 놈들에게 당할 정도는 아니다.
콰지직!
진후는 양손에 놈들의 대가리를 잡고 모래 안에서 끌어올렸다.
그는 붉은 안광이 번쩍이는 놈들의 눈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스으으으!
놈들의 몸에서 하얀 연기가 나오더니 진후의 몸속으로 흡수되었다. 놈들의 붉은 눈은 서서히 빛이 사그라졌다.
“흐음…….”
진후는 몸이 조금 더 든든해짐을 느끼며 걸음을 옮겼다.
“그를 찾아야 한다.”
* * *
지프센 왕국의 수도 지드성, 여울은 은신을 활성화시키고 슈레인을 따라가는 두 사내의 뒤를 쫓았다.
그녀는 지금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점점 더 음습한 곳으로 들어갔다.
사내들 패거리는 두 명만이 아니었다. 어떻게 연락이 닿았는지 어느새 세 명의 사내가 더 나타나 슈레인의 앞길을 가로막았다.
“어, 아저씨들 뭐예요. 좀도둑이에요? 저리 가, 이러면 후회해요!”
슈레인은 조금 떨리는 목소리로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말했다.
앞뒤로 총 다섯 명의 사내가 단도를 돌리며 여유롭게 거리를 좁혀 왔다.
앞쪽에 세 명의 사내 중 한 명이 살짝 떨고 있는 슈레인을 보며 입을 열었다.
“귀하신 분이 왜 혼자 돌아다니실까? 맛있어 보이게.”
“마, 맛있다니, 내가 먹을 것도 아니고…….”
슈레인은 그의 말에 더욱 불안감에 휩싸였다. 이렇게 누더기를 입었음에도 그녀의 신분을 알아봤다면 그만한 실력이 있는 자들이라는 뜻.
그녀는 품에서 작은 단검을 꺼내 쥐었다.
“아가씨, 곱게 갑시다. 괜히 까불다가 예쁜 얼굴에 상처 만들지 말고.”
슈레인은 단검을 얼굴 높이까지 올리며 싸울 자세를 취했다. 사내는 귀를 후벼 파며 한 손을 휘적거렸다.
“말이 안 통하는군. 애들아, 덮쳐.”
그의 명이 떨어지자 네 명의 사내가 동시에 그녀에게 달려들었다. 그녀는 뒤로 한 걸음 물러서며 가장 앞으로 다가오는 사내에게 단검을 휘둘렀다.
그때.
턱!
슈레인의 앞에 불투명한 무언가가 생겨나며 단검을 휘두른 손이 막혔다. 그 불투명한 것이 그녀의 손에 쥐어진 단검을 빼앗은 것이다. 그녀가 당황하는 사이에 넓은 어깨와 검은 가죽옷이 완전히 모습을 드러냈다.
익숙한 옷, 오늘 하루 종일 본 넓은 등판이었다.
여울은 단검을 살짝 돌려 역수로 쥐고는 앞에 시선을 고정시킨 채 입을 열었다.
“단검은 그렇게 쓰는 것이 아니다.”
그 말과 함께 여울이 한 발 앞으로 나아갔다. 그의 갑작스런 등장에 사내들이 당황한 것도 잠시, 한 명이라는 것을 알고는 다시 기세 좋게 달려들었다.
두 명의 사내가 그의 배와 목을 노리며 단도를 휘둘렀다. 여울은 단검으로 상대하지 않고 오히려 그 안으로 교묘하게 들어가 배를 노리던 자의 손목을 잡아 긋고 목을 노리던 자의 손목은 어깨로 올려 쳐 한 손을 들게 만들었다.
서거걱!
한 사내의 손목을 그은 단검은 자연스럽게 위로 올라가 다른 사내의 겨드랑이와 목을 한꺼번에 베었다.
“커헉!”
사내는 혈선이 그어진 목을 부여잡고는 피를 울컥울컥 토해 냈다.
손목이 베인 사내는 잡고 있던 단도를 놓쳤다. 여울은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는 그것을 공중에서 낚아채 바로 사내의 턱밑을 한 번 찌르고, 그대로 뒤돌아서며 단검과 단도를 던졌다.
챙!
“컥!”
“헙.”
슈레인의 뒤를 덮쳐 오던 사내 중 한 명은 여울이 던진 단검에 심장이 꿰였고, 다른 한 명은 무기와 부딪쳐 공격의 기회를 잃었다.
그사이에 지켜보던 조장급 사내가 분위기를 파악하고는 뒤로 빠지는 것이 보였다.
여울은 달려가며 슈레인에게 소리쳤다.
“숙여!”
“에루렉!”
슈레인은 뭐라 말하려다가 일단 숙였다. 덕분에 외계인 같은 소리를 내고 말았다. 여울은 바닥을 박차고 뛰어올라 다시 단검을 휘두르려는 사내의 얼굴에 무릎을 찍었다.
콰직!
둔탁한 느낌을 보니 코뼈가 안쪽으로 깊숙이 들어간 것으로 예상되지만, 마무리는 완벽해야 한다. 여울은 공중에서 무릎을 빼고 뒤로 쓰러지고 있는 사내의 머리채를 낚아채 앞으로 잡아당겼다가 바닥에 도달함과 동시에 내리꽂았다.
퍼석!
그의 뒤통수가 터지며 붉은 피가 길바닥에 퍼졌다. 여울은 볼 새도 없이 그의 단검을 빼앗아 도망치는 조장급 사내에게 던졌다.
슈욱, 퍽!
“크어억!”
단검은 공기를 찢으며 가공할 속도로 날아가 그 사내의 아킬레스건에 정확하게 박혔다. 사내는 달려가는 속도 때문에 더욱 볼썽사납게 바닥을 나뒹굴었다.
“아윽, 으흐윽.”
저벅, 저벅, 저벅.
여울은 놈에게 천천히 걸어갔다. 놈은 발목의 통증 때문에 아파하면서도 자신의 품을 열심히 뒤적거렸다.
그러고는 갑자기 뒤돌아서며 여울에게 두 개의 단검을 순차적으로 던졌다.
슈슝! 터덕!
여울은 피하지도 않고 단검의 검신을 엄지와 중지로 잡아챘다. 그 모습에 놈은 절망의 눈빛을 지으며 고개를 떨어트렸다.
여울은 놈에게 가까이 도달하자 두 개의 단검을 놈의 양쪽 어깨에 깊게 박아 넣었다.
“크흐악!”
굵은 힘줄이 지나가는 곳이니 단검을 들어 반격할 생각조차 못할 것이다.
여울은 놈의 머리채를 잡고 슈레인의 앞으로 질질 끌고 왔다.
“아…….”
슈레인은 반쯤 입을 벌리고 눈은 무슨 인형처럼 동그랗게 뜬 채로 여울에게 완전히 고정되어 있었다.
“이놈은 어떻게 할 거지? 데려가서 배후를 밝히는…….”
“아저씨, 완전 무섭다. 싸움 진짜 엄청 잘하네요? 사, 사람의 목을 막 아무렇지도 않게 따고…….”
여울은 사내의 머리를 들어 올려 머리와 턱을 잡고는 말했다.
“목 부러트리는 것도 보여 줄까?”
그 살벌한 모습에 슈레인은 두 손을 들어 손사래를 치며 다급히 말렸다.
“아, 아니에요. 됐어요, 됐어. 그 사람은 내가 알아서 할게요. 아저씨 말대로 배후도 알아내야 하니까…….”
“그러지.”
여울은 사내의 두 어깨에 박힌 단검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이건 나중에 빼라, 잘못하면 과다출혈로 금방 죽을 수 있으니.”
“네……. 아저씨, 고마워요. 저 걱정돼서 따라온 거예요?”
“추가 완수금 값하는 거다.”
“에이…… 걱정돼서 그런 거 같은데. 아무튼…… 엇! 아저씨, 저 이제 괜찮아요! 얼른 가요!”
슈레인은 골목 어귀에서 달려오는 제복을 입은 사내들을 발견하고는 다급하게 말했다. 여울이 주춤거리자 두 손으로 등을 떠밀며 말을 이었다.
“얼른 가요! 저 사람들한테 얼굴 보여 봤자 좋을 거 하나도 없으니까!”
“알았다. 그럼…….”
여울은 한 손을 들어 올리다가 황급히 내리고 걸음을 옮겼다.
슈레인은 그를 보며 피식 웃음 짓고는 빠르고 작게 손을 흔들며 말소리는 들리지 않게 입만 벙긋거렸다.
‘즐거웠어요. 잘 지내요.’
* * *
여울은 그 길로 바로 성 외곽에 자리하고 있는 바스크의 별장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곳으로 걸어가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슈레인과 함께 했던 오늘 하루가 계속해서 맴돌았다. 워낙 성격이 특이해서 그런지 여운이 진하게 남았다.
여울은 머리를 강하게 털었다. 지금 자신의 상황에서는 사치밖에 되지 않는 감정, 기존의 목적을 위한 행동만 한다.
지금도 은서와 보라가 자신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사전에 알려 준 위치로 가 보니 앞마당에 넓고 푸르른 잔디가 깔려 있는 3층 저택이 모습을 드러냈다. 안으로 들어가니 얼굴과 복장을 미리 언질 받았는지 집사와 하녀들이 예의를 갖춰 인사를 했다.
여울은 두리번거리다가 복도에 보이는 하녀 한 명에게 물었다.
“내 방은 어디지?”
“아, 네. 여우…… 르 님, 안내하겠습니다.”
이 하녀도 그렇게 발음을 한다. 이쪽 사람들에게는 여울이라는 발음이 어려운 것 같았다.
덕분에 슈레인이 다시 떠올랐다. 그녀가 생각나니 주머니에 달랑거리는 에메랄드빛 눈도 떠오른다. 생각해 보면 참 여러모로 특이했던 여인이다.
안내에 따라 2층으로 올라가 계단에서 왼쪽으로 꺾으면 보이는 큰 방 앞에 도착했다. 여울은 오른쪽으로 꺾으면 보이는 방이 불이 켜져 있자 그곳을 가리키며 물었다.
“저 방에는 누가 있지?”
“네, 리디 정보부장님이 머물고 계십니다.”
“그렇군.”
“어엇.”
여울은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그는 하녀가 말릴 새도 없이 리디의 방문을 거침없이 두드리며 말했다.
똑똑.
“여울입니다.”
리디는 아랫사람들에게 농담을 자주 하지만 지킬 것을 지키지 않을 때는 따끔하게 혼을 내는 이미지였다.
그렇기에 하녀는 화가 난 그의 목소리가 들려올 줄 알았다. 그러나 들려오는 목소리는 그녀의 예상을 확 깼다.
“아, 왔군. 들어와.”
마치 친구를 대하는 것처럼 다정한 목소리다.
게다가 이 늦은 시간에도 고민 없이 바로 허락한다. 소문으로는 두 달도 되지 않은 신입대원이라는데 어찌 이렇게 특별 대우를 하는지 의문이었다.
여울은 문을 열고 리디의 방 안으로 들어섰다. 그는 침대에 기대어 앉아 책을 보고 있었다.
여울은 바로 주머니에서 슈레인에게 받은 1골드를 꺼내어 그에게 내밀었다.
“빌린 돈 지금 갚겠습니다.”
리디는 금색 동전을 보고는 보던 책을 확 덮으며 낚아채었다.
“오?! 하루 만에 1골드라니, 대박인데? 연기 좀 하나 봐?”
“뭐, 대충 했습니다. 덕분입니다.”
“이야, 이렇게 금방 갚을 줄은 몰랐네. 이자 좀 붙이려고 했더니 아쉽네.”
리디 특유의 농담으로 빠지자, 여울은 고개를 살짝 숙이며 말했다.
“감사했습니다. 그럼 주무십시오.”
“아아, 그래. 내일 보자고.”
“예.”
* * *
다음 날, 여울은 돈을 벌기 위해 어제 보았던 대련장으로 아침 일찍부터 나갔다.
그러나 구경을 하는 사람들은커녕 선수들도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분수대에 앉아 있는 한 중년인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대련은 몇 시쯤에 시작합니까?”
중년인은 고개를 들어 여울을 위아래로 훑어보고는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그걸 모르는 사람이 있나? 대련은 1일, 6일에만 열리잖아. 맨날 열리면 도박쟁이들 날린 돈은 어디서 벌어.”
“아, 네.”
그는 중년인에게 고개를 살짝 숙이고는 발끝을 돌렸다. 대련장이 다시 열리려면 앞으로 5일은 더 남은 것이다.
여울은 그동안 책으로 정보를 얻기 위해 중앙 도서관으로 향했다. 그곳은 가세브 마을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거대했다.
그곳에 들어서자 책 특유의 냄새가 확 풍겨 왔다.
자연스레 도서관 지기 소년 니르윈이 떠올랐다. 그 작은 소년의 최후가 눈에 선하여 기분이 조금 울적해졌다.
1층은 교육과 잡학, 2층은 몬스터에 관한 지식, 마나, 그리고 현재 정세에 관한 지식이 나열되어 있었다.
마나에 관한 책을 꺼내어 읽어 보았지만 가세브에서 봤던 것처럼 그저 정보일 뿐이다.
뜬구름을 잡는 듯하다. 마치 저자 역시 마나를 보지 못하고 전해 들은 이야기로 책을 지은 느낌이다.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3층도 있는데 그곳은 거대한 경비병 한 명이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몇 명은 그에게 무언가를 보여 주고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여울은 그에게 다가가서 물어보았다.
“3층에 들어가려면 어떤 자격이 필요합니까?”
2미터가 넘는 경비병은 바로 대답하지 않고 작지 않은 키의 여울을 가만히 내려다보다가 입을 열었다.
“너 같은 놈들은 안 된다.”
그 말에 여울은 순간 경비병을 노려보았다. 그러다가 다시 눈꼬리를 내리며 대답했다.
“아, 그렇습니까?”
“당연하지, 알면 눈앞에서 얼른 꺼져라.”
“그렇다면 오늘은…….”
여울은 다시 고개를 들어 올려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강제로 들어가야겠다.”
“뭐…… 어?”
콰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