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 Hunter Killer RAW novel - Chapter 14
14
14 칼론의 주머니
여울의 질문에 한지연은 조금 차분해진 어투로 입술을 열었다.
“네 맞아요. 저기…… 말 편히 놓으세요. 아…… 저씨.”
몇 살 차이 나 보이지도 않는데, 호칭이 거슬렸지만 넘어가고 칼론의 주머니를 건넸다.
“그래, 이거 관찰 좀 부탁하지.”
“아…… 이게 그 기여도 보상으로 받은 물건이군요.”
지연은 금세 눈을 반짝이며 호기심을 보였다. 전부터 궁금했지만 먼저 얘기하자니 욕심을 내는 것 같아서 말을 꺼내지 못했었다.
그녀는 바로 두 손으로 감싸고 시동어를 외쳤다. 그녀의 눈동자가 주머니에서 20센티미터가량 위쪽 허공에 머물러 있다.
뭐라고 적혀 있는지 그녀의 눈동자가 점점 더 커진다. 입도 자신도 모르게 벌어진다.
“말해 봐.”
여울의 물음에 지연은 기다렸다는 듯이 큰 소리로 설명을 쏟아 냈다.
“이거! 대박이에요! 이 조그만 주머니에 1평만큼 물건을 보관할 수 있대요! 마법의 주머니예요, 마법의 주머니!”
이제는 별의별 아이템들이 다 나온다. 놀랍지도 않았다. 아니, 솔직히 조금 놀라웠다.
여울은 슬그머니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내리고 차분히 질문을 이었다.
“그래? 무게는?”
“무게 관련해서는 따로 안 적혀 있는데…… 한번 넣어 봐요!”
진실을 빠르게 판단하기 위해 검을 넣어 보았다. 신기하게도 쑥 들어간다. 주머니가 뚫리기는커녕 바깥 부분에서는 느껴지지도 않았다.
검을 하나 더 넣고 주머니를 흔들어 보았다. 검의 무게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한데, 주머니의 입구보다 큰 물건은 못 집어넣을 것 같았다.
고개를 들었을 때 지연과 눈이 마주쳤다. 칭찬을 바라는 얼굴이었다. 여울은 주머니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군.”
“그렇죠? 진짜 좋다. 이게 있으면 사냥 도중에 라브 떨어질 일은 없겠네요?”
그때, 지연의 목소리를 듣고 백일권이 다가왔다. 그의 특성인 정신 장악은 오우거에게는 전혀 통하지 않아 토벌 때 거의 활약을 하지 못했다.
“무슨 일이 있나요?”
지연은 눈을 크게 뜨고 검지로 주머니를 가리키며 말했다.
“네! 이 주머니가…….”
“아무것도 아닙니다.”
여울은 지연의 말을 끊었다. 어차피 그가 알고 있을 거라고 판단하지만 쓸데없이 정보가 새나가서 사람들의 질투를 유발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보니 이미 늦은 듯했다.
일권은 사람 좋게 웃으며 바로 다른 말로 돌렸다.
“여울 씨, 계속 함께하실 거죠?”
“생각 중입니다.”
일권은 여울의 옆에 앉으며 말을 이었다.
“케라브 특성상 이번처럼 많은 사람들이 몰려다닐 수는 없을 겁니다. 안전도 중요하지만 레벨을 올리는 것도 그만큼 중요하니까요. 아마 최대 10명 안쪽으로 고정적인 파티가 생길 텐데, 저는 우리 파티에 여울 씨가 꼭 와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같이 듣고 있던 지연은 돌연 한 손을 번쩍 들었다.
“저도요. 저도 일권 아저씨네 파티로 갈래요.”
지연이 생각하는 일권은 신체 능력은 다소 떨어지지만, 배려심이 좋아서 사람들을 잘 챙겼다.
그리고 정신 장악이라는 희귀한 특성으로 트롤끼리 싸우게 하는 모습은 그녀의 머릿속에 선명하게 각인되어 있었다.
“물론 지연 씨도, 날쌘 몸놀림에 놀랐어요.”
일권의 칭찬에 지연은 몸을 배배 꼬았다.
여울은 고민했다.
휴식층이 없을 때는 잠을 자기 위해 무리가 있는 것이 좋지만, 평소에는 잘 모르겠다. 부수적인 감정 소모와 시간 소모가 마음에 걸렸다.
“나중에 이야기하죠.”
여울은 그 말을 끝으로 돌아서서 누웠다. 일권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몸이 곤하니 일단 쉽시다.”
일권은 그렇게 말하고는 자신의 옆에 자리를 잡고 누웠다. 웃기는 건 지연도 반대편에 자리를 잡고 누웠다는 것이었다.
‘그녀를 따르던 사내들은? 아, 죽었군.’
여울은 눈을 닫았다.
이 빌어먹을 케라브, 10층이 끝이 아니라 11층이 개방되었단다.
‘대체 어디가 끝인 건지…….’
* * *
여울은 꿈을 꿨다. 얼굴은 검은 안개로 가려져 있고 눈은 붉게 빛나는 자들이 서슬퍼런 칼로 은서를 마구 찌르는 모습을 봤다.
은서는 피눈물을 흘리며 자신에게 손을 뻗었다. 죽을힘을 다해서 자신도 손을 뻗었지만, 그 희고 가는 손에 절대로 닿지 않았다.
오히려 점점 더 멀어지기만 했다.
이윽고 은서의 몸 전체가 그 검은 안개로 완전히 둘러싸였다.
여울은 상체를 벌떡 일으켰다.
“커헉, 헉, 허억…….”
전신이 땀으로 범벅이다. 주변을 둘러보았다. 여전히 그 케라브라는 빌어먹을 던전이었다.
같이 토벌을 갔던 사람들은 자고 있는 것이 이르게 깼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양옆에 일권과 지연도 세상모르게 편히 자고 있었다.
여울은 검을 챙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 4레벨에 진입한 후에 혼자서라도 빨리 올라가야 한다.
전에 레벨 업을 했던 장소인 음푹 패인 곳으로 올라갔다. 그곳은 여전히 아무도 찾지 않았다.
여울은 가부좌를 틀고 눈을 감았다. 레벨 진입 명령어를 외치는 데 망설임은 없었다.
“후우…… 케라브, 레벨 업.”
후우웅!
[4레벨에 진입합니다.] [특성 : 다크니스가 강화됩니다.] [다크니스 스킬2가 개화합니다.] [특성 : 독 내성이 강화됩니다.] [특성 : 민첩이 강화됩니다.] [특성 : 동체시력이 강화됩니다.] [레벨 동기화를 진행합니다.]‘잠깐, 다크니스 스킬 뭐? 크흐읍!’
시스템은 여울이 생각할 겨를을 주지 않으려는 듯이 바로 해일과도 같은 고통이 밀려왔다.
* * *
번개라도 맞은 것처럼 쭈뼛 서 있던 머리카락들이 서서히 가라앉았다. 눈을 뜨자 순간 안광이 흘러나왔다가 사라졌다.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아직 같은 자리에서 일권과 지연이 아직 자고 있다. 며칠은 흘렀을 줄 알았는데 얼마 지나지 않은 것이다.
레벨 동기화 전에 들었던 메시지가 떠올랐다.
“다크니스…… 스킬?”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다크니스 명령어, 케라브 다크니스, 다크니스 스킬 목록.”
…….
묵묵부답이었다. 이 시스템은 참 불친절했다. 게임으로 치면 튜토리얼이나 인터페이스 따위로 사용자에게 설명을 해 줄 생각은 없는 듯했다.
시스템이 몸에 개입되고 나서 불쾌감을 느꼈던 모순된 시절은 잊은 지 오래.
어떻게든 이 시스템을 최대한 활용해서 빨리 나가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다크니스…….”
다음 붙일 말을 생각해 내려고 할 때, 머릿속에서 음성이 들려왔다.
[현재 다크니스 수치는 2입니다.]“다크니스 수치?”
이 수치가 언제 생긴 건지, 어떻게 쓰는 건지 의문이 들었다.
답답하다. 분명 레벨 동기화 때 다크니스 스킬2를 얻었다고 했다. 내가 모르는 스킬1도 있는 것이고, 분명 전투에 도움이 될 것이다.
시선이 자연스레 지연에게 돌아갔다.
‘그녀에게 관찰을 맡기면 알 수 있을까? 그녀는 비밀을 지켜 줄까?’
여울은 금세 고개를 털었다.
지금까지의 정보를 종합해 보면 특성은 보통 1개에서 많아야 2개였다.
그것도 2개인 사람은 김진후 외에는 밝혀진 사람이 없다.
한데 특성이 4개라고 하면 수많은 사람의 질투와 시기를 받을 것이다. 솔직히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한 시스템에서 적을 만드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었다.
* * *
김진후가 잠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인기척을 들은 측근들도 일어나기 시작했다. 여울은 어느새 내려와 감정의 돌 근처에 앉아서 아침 회의를 기다렸다.
세수를 하러 지나가는 중에 진후와 눈이 마주치자 그가 먼저 고개를 끄덕여 인사를 건넸다. 여울은 미세하게 마주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 후, 사람들은 감정의 돌을 중심으로 둥그렇게 모였다. 토벌대가 안쪽, 토벌대에 참여하지 않았던 다른 사람들도 대부분 몰려들었다. 300여 명 가까이 돼 보였다.
사람들이 더 늘어난 느낌이었다. 아마 진후의 소문 때문일 것이다.
김진후 사람들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다들 모이셨습니까? 지금부터 11층 진입에 관한 의견을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사람들은 여러 가지 의견을 내놓았다. 발언을 하는 사람들은 실질적으로 토벌에 참여한 대원들이 대부분이었다.
“어차피 이제 10층을 뚫어 놨으니 11층은 5층이 없어지는 날에 올라갑시다. 레벨이 낮은 사람들도 많고, 11층의 괴물들은 얼마나 강한지 모르니 다 함께 레벨을 최대한 올려야죠.”
“11층이 미지의 땅이기에 더욱더 미리 올라가서 대비를 해야죠, 보스는 우리가 깼는데, 다른 굴 사람들이 먼저 올라가서 라브 다 싹쓸이하고 으스대는 꼴을 보고 싶소?”
“달에 맞춰서 한 층씩 올라가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최대한 레벨을 높이며 올라가 희생을 최소화시키는 것입니다. 상향평준화되면 휴식층이 아닌 9층에서도 생활하기 쉬울 것입니다.”
“그러다가 11층에서 한 달 안에 위층으로 못 올라가면 어떻게 할 거요? 당신이 책임질 거요?!”
쿠웅!
“잠시…….”
목숨이 걸린 일이다 보니 감정이 점점 격해지는 찰나, 진후가 방패를 꺼내어 바닥에 세우며 입을 열었다. 그의 중저음의 목소리가 퍼지자 사람들은 거짓말처럼 조용해졌다.
그의 존재감이 얼마나 절대적인지 판단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제가 새로운 의견을 내겠습니다. 5층이 없어지는 날에 맞춰서 올라가는 겁니다. 그러나 저를 포함한 정예 멤버는 미리 올라가서 정보를 얻어 그때 올라오는 분들을 위한 포석을 다져 놓는 것입니다. 다같이 한 번에 올라가면 돌발 상황에 대한 희생도 클 것이라고 생각해서입니다. 제 의견에 이의를 제기하실 분은 손을 들어 표해 주십시오.”
진후는 한 손을 든 채로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아무도 손을 드는 자는 없었다. 반대 의견이 있다고 하더라도 감히 누가 그의 의견을 부정하겠는가?
동의의 뜻을 거수하는 것이라면 조금 더 정확히 나오겠지만, 진후는 영리하게 자신의 존재감으로 의견을 굳혀서 회의를 끝내려는 것이다.
“좋군요. 누군가가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놓으면 그만큼 새로운 곳에 대한 불안감은 줄어드니까.”
타인이 위험한 일을 먼저 해 주겠다는 데 반대하지는 않는 것이다. 권위의 입김이 작용했다지만 여울이 생각해도 가장 이상적인 방법이다.
“그럼, 이틀 동안 채비를 한 후에 올라가겠습니다. 그리고 한 달 후에 이곳으로 내려오겠습니다. 만약 제가 오지 않으면 내려오는 방법이 없거나, 당했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헐.”
“그럴 리가…….”
“그런 말 하지 마요, 진후 님.”
사람들은 모두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런 일은 아예 생각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만큼 진후는 이미 다른 사람들과는 격이 다른 존재로 인식된 것이다.
“자, 그러면 저와 함께 올라가실 분들을 정하겠습니다. 물론 거부 의사는 자유고요. 강민철 씨, 한지연 씨, 기웅 군, 여울 씨, 그리고…….”
진후는 검지로 열 명의 사람들을 지목했다. 그리고 한 손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이렇게 최소 인원을 정했습니다. 그 외에 저희와 함께하실 분은 손들어 주세요. 위험한 곳인 만큼 자기 자신을 챙길 수 있는 2레벨 이상인 분들로.”
진후는 이름이 불리지 않아 약간 서운한 얼굴의 백일권을 보며 입을 열었다.
“아, 백일권 씨는 가급적 이곳에 남아서 사람들을 이끌어 줬으면 해요. 가장 믿음직스러워서요. 괜찮으시겠죠?”
“아…….”
일권은 여울에게 잠시 시선을 뒀다가 뒤에 수백여 명의 사람들을 둘러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뭐, 괜찮습니다. 그러도록 하지요.”
“감사합니다. 든든하네요.”
진후와 함께 11층으로 올라갈 선발대는 31명이 더 추가되어 총 42명이었다. 2레벨 이상이 일단 별로 없기도 하고, 생소한 곳에 대한 두려움으로 가지 않는 사람들도 많은 것이다.
“이제 각자 일을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라브와 무기를…….”
여울은 듣다 말고 뒤돌아섰다. 이틀이나 이곳에 있을 여유는 없었다. 칼론의 주머니 덕분에 라브도 마음껏 챙길 수 있다.
9층에는 아직 라브가 넘쳐났다.
게다가 5층 단위로 휴식층이 있다는 것이 유력한 가설이었으니, 미리 올라가면 그만이었다.
무엇보다 1층에서도 휴식층 없이 잘 살아왔지 않은가? 이틀이란 시간은 자신에게 사치였다.
올라가기 위해 걸음을 옮기는데 백일권이 물었다.
“어디 가십니까?”
“먼저 갑니다.”
일권은 짐짓 놀라워했다. 그의 생각에 어차피 이틀 후에 선발대가 출발하는데 여울이 그 큰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미리 간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11층에요? 혼자서요?”
여울은 미세하게 끄덕이고 고개를 돌렸다. 일권은 그 모습에 어차피 자신의 말이 먹히지 않을 것을 예감하고 급히 인사를 건넸다.
“몸조심하시고, 나중에 만납시다!”
여울은 미련 없이 뒤돌아서 계단을 올랐다.
터벅, 터벅.
* * *
이제는 익숙해진 음성이 머리를 울렸다. 이곳은 아직도 사람들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7층에 비해 트롤의 빈도수가 급격히 늘어나기 때문일 것이다. 아직은 1레벨이 대부분이고, 트롤은 1레벨의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간간이 보이는 트롤들을 기습으로 처리하며 가는 중에, 사냥하고 있지 않은 무리를 발견했다. 사내 넷이다. 그런데 왠지 거리를 벌리고 서 있는 폼이 길목을 막는 느낌이었다.
무기도 모두 손에 들고 있었다. 언제든지 휘두를 기세였다.
그들 중 한 사내가 한 발자국 다가오며 입을 열었다.
“형씨, 어디 가시나요? 같이 가시는 게 어때요?”
“괜찮습니다.”
여울은 바로 거절하고 옆길로 지나가려는데 사내가 검으로 앞을 막으며 말을 이었다.
“아, 거참 빡빡하게 구네. 모가지가 아홉 개라도 되시나?”
“그러게 처음부터 그냥 죽이자니까, 3레벨이 무슨 개 이름도 아니고, 3레벨일 리가 없잖아.”
“그래도 여기 혼자 올라온 거 보면…….”
“나도 혼자 올라올 수 있어. 쫄지 마, 병신아.”
그들은 아직 검도 뽑지 않은 여울을 보고 이죽거리며 거리를 좁혀 왔다. 처음 말을 붙였던 사내가 턱을 거만하게 들고 검면으로 손바닥을 툭툭거리며 말했다.
“거, 됐고. 그 주머니나 내놓으쇼. 그러면 그냥 보내 줄게.”
칼론의 주머니를 알고 온 자들이었다.
‘그때 지연의 목소리가 너무 컸나? 아니면 그녀, 혹은 일권이 알린 것인가?’
미처 대비하지 못했으니, 주머니의 정체를 아는 자는 많을 것이다. 그들을 의심할 근거는 너무 적었다.
그리고 이유가 어찌 됐건, 이들이 지금 뿜어내는 기운은 살기였다.
스윽.
여울은 안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었다.